아메데오 아보가드로
연표
1776
1796
1800
[법률가를 넘어 과학의 길로 들어서다]
법률가로 활동하던 아보가드로는 1800년대 초부터 수학과 물리학을 독학하기 시작했으며, 전기 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과학 분야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1806
1809
1811
[세상을 바꿀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발표하다]
인류 과학사에 길이 남을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처음으로 제시한 논문, "단위입자의 상대적 질량 및 이들의 결합비를 결정하는 하나의 방법"을 발표했습니다.
이 법칙은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같은 부피 안에 같은 수의 입자가 존재한다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세계최초).
당시 과학자 존 돌턴의 원자설은 홑원소물질이 하나의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보았기에, 반응하는 기체의 부피가 간단한 정수비로 나타나는 게이뤼삭의 법칙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보가드로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수소나 산소 같은 홑원소물질도 사실은 두 개 이상의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 형태로 존재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그는 물, 질산, 암모니아 등 여러 화합물의 정확한 분자식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생전에는 그의 연구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814
[분자식 연구를 지속하다]
이산화 탄소, 이황화 탄소, 이산화 황, 황화 수소 등 추가적인 화합물의 올바른 분자식을 제시하며 그의 이론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1815
1820
[토리노 대학교 교수로 돌아오다]
모교인 토리노 대학교의 수리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도량형 위원회 등 정부 기관에도 참여하며 사회적 역할을 다했습니다.
1837
[생애의 연구를 집대성한 논문집을 출판하다]
방대한 연구 결과가 담긴 4권짜리 논문집 'Fisica di corpi ponderabili'를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은 184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1850
[토리노 대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하다]
오랜 기간 봉직했던 토리노 대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하며 학자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1856
[위대한 과학자, 생을 마치다]
80세의 나이로 고향 토리노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생전에는 그의 업적이 널리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의 죽음 이후 위대한 통찰이 재조명될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1860
[사후, 마침내 재조명된 아보가드로의 법칙]
아보가드로 사망 후 4년 뒤, 스타니슬라오 칸니차로가 카를스루에 화학국제회의에서 아보가드로의 법칙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로소 전 세계 화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아보가드로의 위대한 통찰이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최초 대규모 인정).
칸니차로의 발표는 아보가드로의 법칙이 현대 화학의 기초 원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이상기체 계산의 핵심이자, 입자 개수 계산이 중요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기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그 가치를 입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