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고 사키
아리고 사키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축구 감독이자 혁신적인 전술가입니다. 프로 선수 경력 없이 지도자로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기수가 되기 위해 말이 될 필요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AC 밀란을 이끌고 세리에 A와 유러피언컵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1994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공격적이고 조직적인 4-4-2 전술은 이탈리아 축구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현대 축구 전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연표
1946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푸시냐노에서 아리고 사키가 태어났습니다.
1973
26세의 나이에 푸시냐노와 알폰시네의 감독을 맡으며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선수단 장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고했습니다.
1977
벨라리아를 거쳐 당시 세리에 B 소속 체세나의 유소년부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1982
세리에 C1에 있던 리미니 FC의 감독을 이끌고 우승에 근접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1983
ACF 피오렌티나 유소년부 감독으로서 큰 성과를 올렸고, 이를 통해 당시 세리에 C1 소속 파르마의 관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1984
피오렌티나 유소년부 감독직을 마친 후, 1984년부터 1985년까지 다시 리미니 FC 감독으로 복귀하여 팀을 지휘했습니다.
1985
세리에 C1 소속 파르마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1년차에 팀의 승격을 이룩했고, 이듬해 세리에 A 승격권까지 승점 3점 차로 추격했습니다. 특히 코파 이탈리아에서 AC 밀란을 1-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밀란 구단주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1986
파르마 칼초 1913의 감독으로서 1985-86 시즌 세리에 C1 우승을 달성하며 팀을 승격시켰습니다.
1987
[AC 밀란 감독 부임]
AC 밀란의 감독으로 부임, 선수 시절 경력이 없다는 비판에 '기수가 되기 위해 말이 될 필요는 없다'는 명언으로 응수했습니다.
파르마에서의 성공으로 AC 밀란 감독에 취임했습니다. 프로 선수 경력이 없다는 언론의 비판에 대해 그는 '기수가 되기 위해서 말이 될 필요는 없다'는 유명한 명언으로 재치 있게 응수하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1988
AC 밀란 감독 부임 첫 해인 1987-88 시즌, 팀을 이끌고 세리에 A 정상에 올랐고, 이어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도 석권하며 밀란의 황금기를 예고했습니다. 또한 이 해에 황금 파종자상을 수상했습니다.
1989
[유럽 정복과 세계 최고의 감독 등극]
AC 밀란을 이끌고 유러피언컵 우승, 유러피언 슈퍼컵 우승, 인터콘티넨털컵 우승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AC 밀란을 지휘하여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4-0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유러피언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털컵도 석권하며 '월드 사커 시상식 올해의 감독' 및 '유럽 올해의 감독(제프 헤어베어거 상)'에 선정되는 등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90
[AC 밀란 유러피언컵 2연패 달성]
AC 밀란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 유러피언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털컵도 2년 연속 우승하며 전례 없는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1989-90 시즌, AC 밀란을 유러피언컵 2연패로 이끌며, 1980년 이래 처음으로 유럽 정상을 지킨 선수단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한 유러피언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털컵도 2년 연속으로 석권하며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지만,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유벤투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 해 '유럽 이번 시즌의 감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91
1990-91 시즌 유러피언컵 8강전에서 패퇴하고 세리에 A 준우승,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전에서 패배하며 아쉬운 시즌을 보낸 후 AC 밀란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는 그가 밀란과 함께한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1991년 11월, 아첼리오 비치니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밀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고, 특히 로베르토 바조를 공격진의 상징적인 돌격대장으로 배치했습니다.
1994
[FIFA 월드컵 준우승]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199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브라질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가 아니었음에도 아일랜드에 첫 경기를 패한 후에도 기어코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사상 첫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996
이탈리아는 유로 1996 본선에 올랐지만, 나중에 결승에 오르는 독일과 체코에 밀리며 조별 리그를 넘지 못했습니다. 이 결과로 사키 감독은 1996년 11월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사키는 1996년 12월, 오스카르 타바레스의 후임으로 AC 밀란 감독으로 복귀하며 2기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1997
AC 밀란 2기에서는 과거의 성공을 재현하지 못했으며, 1996-97 시즌 리그에서 11위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유벤투스에는 안방에서 1-6으로 참패하는 굴욕을 맛본 후 1997년 6월 감독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1998
AC 밀란 지휘봉을 내려놓고 쉬다가 1998년 6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이 되어 라리가 구단을 잠시 이끌었습니다.
199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이끄는 동안 소속 구단이 하위권을 전전하는 부진을 겪자, 1999년 2월 사표를 제출하고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2001
2001년 1월, 알베르토 말레사니의 후임으로 파르마 칼초 1913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적 부진으로 결별하고 그의 후임으로 렌초 울리비에리가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2004
2004-05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단장으로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출현하며 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2011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2
2022년 유럽 축구 연맹(UEFA)으로부터 축구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UEFA 회장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