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 치에하노베르
연표
1947
[격동기에 태어난 아이]
이스라엘 건국 직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하이파(Haifa)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가, 어머니는 영어 교사였다.
1965
[의사의 길을 선택하다]
육군 장교가 되라는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의학에 매력을 느껴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하다사 의과대학(Hadassah Medical School)에 입학했다.
1972
[의학 석사, 군에 입대하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 석사(M.Sc.)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징집되어 군 복무를 시작했다.
1973
[전쟁터의 군의관]
군 복무 중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이스라엘 해군 함정의 군의관(ship's doctor)으로 참전하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이 끔찍한 전쟁 경험은 그가 임상의사가 아닌, 생명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1976
[운명을 바꾼 선택 기초과학]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 임상 의사의 길이 아닌 기초 과학 연구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하이파에 있는 테크니온(Technion) 공과대학 의학부의 대학원 과정에 입학했다.
1977
[위대한 스승 헤르슈코를 만나다]
테크니온에서 생화학자 아브람 헤르슈코(Avram Hershko) 교수의 연구실에 합류했다.
이 만남은 훗날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파트너십의 시작이었다.
당시 헤르슈코는 '세포 내에서 단백질이 어떻게 분해되는가?'라는, 당시 학계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주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1978
[세포의 '쓰레기 처리' 미스터리]
당시 과학계는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DNA→RNA→단백질)'는 알았지만, '어떻게 죽는지(분해)'는 몰랐다.
치에하노베르와 헤르슈코는 이 거대한 미스터리에 도전했다.
1980
[단백질의 '죽음의 키스'를 발견하다]
헤르슈코, 그리고 미국 폭스체이스 암 센터의 어윈 로즈(Irwin Rose)와 함께, 세포가 특정 단백질을 분해하기 위해 '유비퀴틴(Ubiquitin)'이라는 작은 단백질을 '죽음의 표식'처럼 붙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단백질 분해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에너지를 사용하는(ATP 의존적) 정교한 '태그 부착 시스템'임을 증명했다. 이 논문은 처음엔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81
[의사 출신 과학자, 박사되다]
이 위대한 발견을 토대로 테크니온에서 생화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MD(의사)이자 Ph.D(과학자)가 되었다.
[미국 MIT에서 경험을 쌓다]
박사 학위 취득 후 미국으로 건너가, MIT의 하비 로디시(Harvey Lodish)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Post-doc)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1984
[테크니온 교수로 금의환향]
미국에서의 연구를 마치고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와, 자신의 모교인 테크니온 의학부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독립적인 연구실을 이끌게 되었다.
1990
[암 정복의 실마리를 찾다]
그들이 발견한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UPS)'이 세포 분열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사이클린)을 분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곧 이 시스템이 암과 직결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만약 이 '세포 청소부'가 고장 나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청소하지 못하면 암이 발생하고, 반대로 암 억제 단백질을 너무 많이 청소해도 암이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2
1994
[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되다]
테크니온 의학부의 라파포트 의학연구소(Rappaport Institute for Research in Medical Sciences) 소장으로 임명되어, 연구소의 발전을 이끌었다.
2000
[이스라엘 최고 영예를 안다]
유비퀴틴 시스템 연구 20년 만에, 이스라엘 최고의 영예인 '이스라엘상(Israel Prize)'을 수상했다.
[퇴행성 뇌질환의 원인을 밝히다]
유비퀴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잘못 접힌 단백질이 뇌에 쌓이면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연구는 암뿐만 아니라 뇌 질환, 면역 질환 등 거의 모든 질병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열쇠가 되었다.
2003
[기초과학이 신약으로 벨케이드 승인]
그들의 발견에 기반한 최초의 의약품이 FDA 승인을 받았다.
'프로테아좀 억제제'인 벨케이드(Velcade)는 다발성 골수종 치료에 획기적인 효과를 보이며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이는 기초 연구가 어떻게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의학 혁명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가 되었다. 노벨상 수상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2004
[이스라엘 최초의 과학 노벨상]
아브람 헤르슈코, 어윈 로즈와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는 이스라엘 국적의 과학자가 수상한 세계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되었다.
수상 사유: '유비퀴틴 매개 단백질 분해의 발견'. 텔아비브 증권거래소는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거래를 일시 중단하고 다 함께 축배를 들 정도로 국가적 축제였다.
[노벨 화학상 수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가적 영웅이자,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되었다.
2010
[현재 맞춤형 의학을 연구하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테크니온의 석좌교수로서 활발한 연구와 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맞춤형 의학(Personalized Medicine)과 암 정복을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과학자가 된 것을 '일생의 행운'이라 부르며, 젊은이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것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