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1960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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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1960년 알프레드 히치콕이 제작하고 감독한 '싸이코'는 미국 공포 스릴러 영화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꾼 전설적인 걸작입니다. 로버트 블록의 1959년 소설을 바탕으로 저예산 흑백 영화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촬영 기법, 버나드 허먼의 소름 끼치는 음악,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샤워실 살인 장면 등을 통해 엄청난 상업적 대성공과 비평적 찬사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개봉 초기에는 파격적인 폭력성과 성적 묘사로 검열 당국의 강한 반발을 샀으나, 이 영화는 훗날 슬래셔 장르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며 미국 영화계의 표현 한계를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1992년 미 의회도서관에 의해 영구 보존작으로 선정되는 등 지금까지도 전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연표
1959
1959
[원작 소설 출간 및 발굴]
로버트 블록이 위스콘신주의 실제 무덤 도굴꾼이자 살인마였던 에드 게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동명의 소설을 출간했다.히치콕 감독의 오랜 조수였던 페기 로버트슨이 뉴욕 타임스의 긍정적인 서평을 읽고 이 소설을 히치콕에게 추천하게 된다. 당시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대본 검토진은 이 작품의 영화화를 이미 거절한 상태였다.
1959
[본격적인 영화 촬영 돌입]
약 80만 7천 달러의 빠듯한 저예산으로 레뷔 스튜디오(Revue Studios)에서 역사적인 영화 본 촬영이 시작되었다.영화는 인간의 시야와 가장 유사한 화각을 제공하기 위해 35mm 카메라에 50mm 렌즈를 장착하여 촬영되었다. 이는 스크린 밖의 관객들이 영화 속의 끔찍한 상황에 더욱 생생하게 몰입하고 동화될 수 있도록 한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히치콕은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과 반전을 관객들에게 숨기기 위해 매우 철저히 움직였다. 그는 조수 로버트슨에게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원작 소설의 모든 복사본을 전부 사들여 숨기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1959
[제작비 갈등 및 자체 자금 조달 결의]
파라마운트 경영진이 영화의 소재를 문제 삼아 평소의 예산 지원을 거부하자, 히치콕은 사비를 털어 직접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제안했다.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히치콕은 자신의 텔레비전 시리즈인 '알프레드 히치콕 프레젠츠'의 스태프들을 활용하여 흑백으로 촬영하겠다고 나섰다. 감독료 25만 달러를 포기하는 대신 영화 수익의 60%를 지분으로 받는 파격적이고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1959
[제임스 P. 카바나의 초고 거절]
텔레비전 시리즈 작가로 활동하던 제임스 P. 카바나가 영화의 첫 번째 각본을 집필했으나 히치콕에 의해 단칼에 거절당했다.히치콕은 해당 각본의 전개가 너무 늘어질 뿐만 아니라 그저 짧은 텔레비전 호러 단편물처럼 읽힌다며 크게 실망했다. 결국 이 초고는 사용되지 못하고 전면 폐기되었으며 새로운 각본가를 물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9
[조셉 스테파노 각본가 합류]
영화 각본 경험이 단 한 번뿐이었던 조셉 스테파노가 새롭게 고용되어 캐릭터와 서사를 영화에 맞게 대폭 수정했다.원작 소설의 노먼 베이츠가 비호감의 중년 남성으로 묘사된 반면, 스테파노는 앤서니 퍼킨스가 캐스팅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객이 동정심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로 각색했다. 알코올 중독 설정이나 강신술에 대한 관심 등 불필요한 설정은 과감히 삭제되었다.
1959
[야외 로케이션 촬영 진행]
본 촬영에 앞서 제2촬영팀이 파견되어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 등에서 다양한 야외 장면을 담아냈다.주인공 마리온이 차를 몰고 도망치는 고속도로의 낮과 밤 장면, 그리고 차에서 잠들었다가 경찰에게 발견되는 긴장감 넘치는 씬들이 이 시기에 촬영되었다. 피닉스 시내 촬영 중 크리스마스 장식이 카메라에 잡히자, 히치콕은 재촬영 대신 오프닝 자막에 '12월 11일 금요일'을 명시하여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1960
1960
[영화 촬영 공식 종료]
1959년 11월 중순부터 쉼 없이 달려온 모든 촬영 일정이 약 두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무사히 완료되었다.매주 목요일마다 히치콕 부부가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 위해 오후 6시 이전에 반드시 촬영을 마치는 등 엄격하고 빡빡한 일정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렇게 신속하게 완성된 촬영분은 이후 조지 토마시니의 정교한 편집을 거치게 된다.
1960
[뉴욕 극장 프리미어 개봉]
뉴욕에 위치한 디밀 극장과 바넷 극장 두 곳에서 영화가 최초로 개봉되어 대중에게 처음으로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영화가 다루는 파격적이고 불쾌한 소재 탓에 개봉 직후 평론가들의 의견은 엇갈렸으나, 관객들의 호기심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매표소에서의 엄청난 성공은 곧이어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재평가하도록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1960
[미국 전역 대규모 극장 개봉]
뉴욕 등지에서의 뜨거운 흥행 열기와 긍정적인 관객 입소문을 바탕으로 미국 전역의 극장으로 영화 상영관이 대폭 확대되었다.관객들의 엄청난 열광에 힘입어 뉴욕 브로드웨이의 대형 극장들과 각 지역의 동네 극장들에서 유례없이 동시 상영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를 통해 '싸이코'는 미국 전역의 일반 대중들에게 깊은 트라우마와 영화적 충격을 선사하게 되었다.
1960
[검열 기관과의 강도 높은 마찰]
미국 및 해외의 영화 검열 기관들이 영화에 담긴 극단적인 폭력성과 파격적인 성적 묘사 등을 문제 삼으며 수정을 요구했다.당시로서는 금기시되었던 미혼 남녀가 같은 침대에 있는 오프닝 씬이나, 미국 주류 영화 최초로 변기 물을 내리는 장면 등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의 검열 기구인 BBFC를 비롯하여 싱가포르, 아일랜드 등 여러 국가에서 살해 장면과 노출 장면을 삭제하라는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1960
[지각 입장 불가 정책 시행]
히치콕 감독의 강력한 지시로 상영이 일단 시작된 후에는 그 누구도 극장에 추가로 입장할 수 없는 엄격한 관람 정책이 도입되었다.영화 중반에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자넷 리가 돌연 살해당하기 때문에, 늦게 들어온 관객들이 이를 보지 못하고 표값을 낭비했다고 느낄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초기엔 극장주들이 수익 감소를 우려해 반발했으나, 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규정 덕분에 극장 밖에 끝없는 대기열이 생기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1960
[배우 인터뷰 통제 및 비밀 마케팅]
영화의 핵심인 치명적인 반전을 대중에게 숨기기 위해 히치콕 감독이 주연 배우들의 모든 언론 홍보와 인터뷰를 철저히 금지시켰다.자넷 리와 앤서니 퍼킨스는 텔레비전, 라디오, 인쇄 매체 등 그 어떤 곳에서도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콧대 높은 영화 평론가들에게조차 사전 시사회를 제공하지 않고 일반 관객들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도록 강제하여 스포일러 유출을 원천 봉쇄했다.
1960
[기록적인 박스오피스 수익 달성]
80만 달러 남짓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전 세계 극장가에서 무려 5,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쓸어 담았다.비디오 렌탈 등 2차 부가 판권 수익을 제외하고 오로지 전 세계 극장표 판매만으로 이룩한 엄청난 흥행 성과였다. 파라마운트와 수익의 60%를 지분으로 받는 계약을 맺었던 히치콕 감독 본인 역시 이 흥행으로 막대한 개인적 부를 거머쥐게 되었다.
1960
[아카데미상 4개 부문 후보 지명]
흥행 돌풍에 힘입어 평단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영화는 영예로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4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는 쾌거를 달성했다.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최우수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며, 샤워실 장면에서 소름 끼치는 열연을 보여준 자넷 리는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단순한 상업적 호러 영화를 넘어 영화 예술로서의 완성도를 주류 시상식에서 공인받은 셈이다.
1964
1964
[유니버설 픽처스 모회사에 지분 매각]
영화 개봉 4년 후, 히치콕 감독은 자신의 독립 제작사인 섐리 프로덕션(Shamley Productions)의 보유 주식을 유니버설 픽처스의 모회사인 MCA에 전량 매각했다.원래 이 영화의 극장 배급은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담당했으나, 이 매각 계약을 계기로 히치콕이 훗날 연출한 남은 6편의 영화는 모두 유니버설 픽처스를 통해 제작되고 배급되었다. 파라마운트는 그로부터 다시 4년 뒤 영화의 모든 판권마저 유니버설 측에 넘기게 된다.
1980
1980
[히치콕 사망 이후 프랜차이즈 확장]
1980년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세상을 떠난 이후, 유니버설 픽처스는 이 걸작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후속 영상 프로젝트를 활발히 기획하기 시작했다.원작의 거대한 명성에 기대어 3편의 공식 속편 영화가 차례로 개봉되었으며, 이후 컬러 리메이크작, TV용 스핀오프, 그리고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등 시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파생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팝 문화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1986
1986
[영국 검열 기관의 무삭제판 통과]
개봉 당시 무자비한 가위질을 당했던 것과 달리, 무삭제 원본 버전이 오랜 시간이 흘러 영국영화등급분류위원회(BBFC)의 심의를 최종적으로 무사통과했다.영국의 검열 기관은 시대의 변화와 표현의 자유 확대에 따라 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존중하여 무삭제판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부여했다. 개봉 후 무려 26년이 지나서야 감독이 본래 의도했던 폭력성과 섬뜩함이 온전히 묻어나는 버전을 관객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992
1992
[미 국립영화등록부 영구 보존작 선정]
미국 의회도서관이 이 영화가 지닌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국가 차원의 영구 보존 작품으로 엄숙히 지정했다.이로써 '싸이코'는 미국 국립영화등록부(National Film Registry)에 당당히 등재되며 미국 영화사에서 반드시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핵심적인 걸작으로 공인받았다. 폭력과 일탈적 행동의 묘사 등에서 미국 영화계의 새로운 표현의 자유 기준을 세웠다는 점이 가장 큰 등재 이유로 꼽힌다.
2020
2020
[60주년 기념 무삭제판 블루레이 출시]
영화 개봉 6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여 유니버설 픽처스는 사상 최초로 영화의 완전한 무삭제 버전을 블루레이 포맷으로 대중에게 공식 출시했다.1960년 개봉 당시 각종 검열로 인해 잘려 나가거나 수정되어야만 했던 예민한 장면들이 온전히 복원되어 고화질로 수록되었다. 이를 통해 현대의 영화 팬들도 과거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히치콕 감독 본연의 연출 의도와 완전한 몰입감을 거실에서 그대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