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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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라디오 DJ, 방송인, 사회 운동가, 록 음악가 대중음악 가수/아이돌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전설, '마왕' 신해철은 독창적인 록 음악과 테크노 음악으로 90년대 문화를 선도했습니다. 그는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폴리테이너'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진정한 아티스트이자 사회 비판적 지식인으로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2014년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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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8

[신해철 출생]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빠져 '각시탈' 밴드 활동 및 부활의 김태원에게 기타를 배웠습니다.

신해철은 1968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에서 약사 출신 기업가인 아버지와 약사 출신 전업 주부인 어머니 아래,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음악에 빠져 '각시탈' 밴드 활동을 하였고, 부활의 김태원에게 기타를 배웠습니다. 특히 1986년부터 KBS 제2FM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푹 빠져 지냈는데, 훗날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학교에 갈 수 있는 머리였는데 매일 밤마다 전영혁의 프로그램을 듣느라고 서강대학교에 갔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1988

[강변가요제 출전 및 실패]

고교 시절 밴드 동료들과 함께 만든 '아기천사'의 객원가수로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했으나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2학년이던 1988년 8월, 신해철은 고교 시절 밴드 동료들이 만든 ‘아기천사’라는 밴드의 객원가수로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했으나,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결선을 목전에 앞둔 본선 3차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및 데뷔]

무한궤도의 리드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여 자작곡 〈그대에게〉로 대상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혜성같이 등장했습니다.

1988년 12월 24일, 신해철은 어린시절 친구들과 밴드 무한궤도를 이루어 언더 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중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게 됩니다. 그는 앞서 강변가요제에서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가요제 특성을 분석하여 전략을 짰고, 신해철이 작사·작곡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합니다. 심사위원장이었던 조용필은 전주만 듣고 대상감임을 직감했다고 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로써 신해철은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1989

[첫 라디오 DJ 활동 시작]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장윤정과 MBC AM 《우리는 하이틴》을 공동 진행하며 첫 라디오 DJ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9년 1월, 신해철은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장윤정과 MBC AM (현재 표준FM)의 《우리는 하이틴》을 공동진행하였습니다. 이는 신해철의 기나긴 라디오 DJ 이력의 시작이었으며, 당시 정식 데뷔하지 않은 대학생 신분으로서는 이례적인 파격 발탁이었습니다.

[무한궤도 1집 발매 및 해체]

무한궤도가 1집을 발표하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를 히트시켰으나, 멤버 간 입장 차이로 해체되었습니다.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후 멤버 구성 변화를 겪은 무한궤도는 1989년 6월 1집을 내놓으며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를 히트시켰습니다. 그러나 멤버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몇몇 멤버들이 탈퇴하게 되었고, 오래 활동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되었습니다.

[대마초 흡연 구속 및 석방]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초범이고 가담 정도가 경미하다는 점이 참작되어 10월 28일 석방되었습니다.

1989년 10월 16일, 신해철은 대마초 흡연으로 인해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그 후 10월 28일에 구속적부심에서 재판부는 초범인 데다가, 대학생 신분이며,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고, 친구들이 산 대마초를 두 모금만 피워 가담정도가 경미한 점을 감안해 신해철을 석방시켰습니다.

1990

[솔로 데뷔 및 대중적 성공]

무한궤도 해체 후 솔로 활동을 시작, 데뷔앨범의 타이틀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와 영어랩이 삽입된 〈안녕〉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무한궤도 해체 후 1990년, 신해철은 솔로로 활동을 시작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솔로 데뷔앨범의 첫 번째 히트곡은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였으며, 또 다른 수록곡인 〈안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영어랩의 삽입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신해철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를 휩쓸고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올랐습니다.

1991

[솔로 2집 《Myself》 발매 및 미디 음악 선구]

솔로 2집 앨범 《Myself》를 발매,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등이 히트했으며, 국내 최초의 미디 음반으로 실력파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신해철은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등이 수록된 솔로 2집 앨범 《Myself》를 발매하였습니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도된 그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은 당시 대중가요의 경향과는 차별화된 점을 보였고, 이때부터 아이돌의 이미지를 벗고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솔로 2집의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당시 우리나라에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은 미디(컴퓨터 음악) 작업을 거의 혼자 해내면서 실력파 뮤지션의 '싹'을 보여주었으며, 이 앨범은 대한민국 최초의 미디 음반이라는 역사적 특전도 갖고 있습니다. 같은 해 MBC FM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의 디스크쇼》 DJ를 맡기도 했습니다.

1992

[N.EX.T 결성 및 1집 'HOME' 발표]

록 밴드 'N.EX.T'를 결성하고 첫 앨범 'HOME'을 발표하여 '인형의 기사 Part II', '도시인' 등을 히트시키며 록 밴드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솔로 앨범 활동 이후 신해철은 무한궤도 해체 직전 멤버였던 이동규, 솔로 투어 공연 세션이었던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함께 1992년, '''N.EX.T'''라는 록 밴드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HOME'이라는 타이틀의 넥스트 1집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컨셉(concept) 앨범이었습니다. 1집 앨범에서는 솔로 시절의 분위기를 이어간 발라드곡 ‘인형의 기사 Part II’를 비롯하여 테크노와 록을 결합한 ‘도시인’ 등이 히트하였고, 나레이션 송인 '아버지와 나 Part I'도 감동적인 가사로 인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넥스트는 1집 때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방위병 입대 및 대마초 사건 재발]

방위병으로 입대했으나, 1993년 1월 또 한 번의 대마초 흡연으로 몇 개월간 복역 후 가석방되었습니다.

1992년 11월, 신해철은 방위병으로 입대하였습니다. 그러나 1993년 1월에 또 한 번의 대마초 흡연으로 몇 개월간 복역한 뒤 가석방되어 출소했습니다. 이 시기 신해철은 같은 해 개봉한 영화와 동명의 OST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앨범을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1994

[넥스트 2집 《The Being》 발표 및 명반 등극]

넥스트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을 발표, '존재(Being)'를 주제로 한 철학적인 컨셉 앨범으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습니다. 수록곡 〈날아라 병아리〉는 큰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1994년 신해철은 넥스트 1집부터 함께 해온 이동규, 그리고 새로 영입한 멤버들과 작업한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존재(Being)'를 주제로 한 컨셉 앨범이었는데, 평론가들로부터 '철학적 언어를 가요에 접목했다'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헤비한 사운드의 곡들이 주가 된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다소 소프트한 노래인 〈날아라 병아리〉는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하였습니다.

1995

[넥스트 3집 《World》 발표 및 노땐스 결성]

넥스트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를 발표, 세상(World)을 주제로 한 컨셉 앨범으로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올해 나온 음반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윤상과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했습니다.

1995년 넥스트는 세 번째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세상(World)을 주제로 한 컨셉 앨범으로서,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의 유명 록 음악 잡지에 소개되었으며, 음악평론가로부터 '올해 나온 음반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또한 같은 해 윤상과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하여 감상을 위한 테크노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넥스트 첫 단독 콘서트 대성공]

COEX 대서양관에서 넥스트의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 표가 매진되고 COEX 유료공연 사상 최고의 입장객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펼쳤습니다.

1995년 2월 4일, COEX 대서양관에서 넥스트의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1집 발표 후 신해철의 군입대, 대마초 사건, 멤버교체 등의 우여곡절 때문에 넥스트의 첫 콘서트는 결성 후 4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표가 모두 매진된 것은 물론 COEX에서 열린 유료공연 사상 최고의 입장객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하였습니다.

1996

[《FM 음악도시》 DJ 및 레이블 설립]

MBC FM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FM 음악도시》의 초대 DJ를 맡아 1997년 10월까지 진행했으며, '빅뱅뮤직' 레이블을 설립하여 음반 기획과 매니지먼트를 직접 담당했습니다.

1996년 4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MBC FM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FM 음악도시》의 초대 DJ를 맡아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1996년 말에는 ‘빅뱅뮤직’이라는 레이블을 설립해 음반기획과 매니지먼트, 캐릭터 사업을 직접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1997

[넥스트 첫 싱글 《Here, I Stand For You》 대히트]

록 발라드 곡 〈Here, I Stand For You〉가 수록된 넥스트의 첫 싱글이 발매되어 국내에는 생소했던 싱글 앨범임에도 5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큰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곡의 가사는 훗날 신해철의 묘비명에도 쓰였습니다.

1997년 1월에는 록 발라드 곡인 〈Here, I Stand For You〉가 수록된 넥스트의 첫 싱글이 발매되었는데, 해당 곡은 큰 히트를 하였고, 당시 국내에는 생소했던 싱글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50만 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하였습니다. 참고로 신해철의 묘비명에는 〈Here, I Stand For You〉의 가사가 쓰여 있기도 합니다.

[넥스트 4집 《Lazenca: A Space Rock Opera》 발매]

넥스트 4집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발매,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로 제작되어 〈해에게서 소년에게〉, 〈Lazenca, Save Us〉 등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7년 11월, 신해철은 넥스트 4집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발매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1997년 당시 TV 채널 투니버스에서 제작, 방송된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사운드트랙이었고, 해당 앨범 수록곡 중 〈해에게서 소년에게〉, 〈Lazenca, Save Us〉 등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N.EX.T 해체 선언]

넥스트 4집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내 시장의 한계와 멤버들 간의 일본 진출 의견 차이로 밴드의 활동 지속이 어렵다고 밝히며 넥스트의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1997년 12월 31일, 넥스트 4집 앨범 발표 기자회견에서 신해철은 국내 시장과 공연 시스템의 열악한 구조로 인해 밴드 활동의 지속이 어려워 음악적으로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고 말하며 밴드를 해체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훗날 2008년 인터뷰에서는 일본 진출 제의 수용 여부에 대한 멤버들 간 의견 차이가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혔습니다.

1998

[영국 유학 및 솔로 앨범 《Crom's Techno Works》 발표]

이민과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테크노 음악에 기반한 솔로 앨범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했습니다.

1998년 이민과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신해철은 넥스트 4집에서 프로듀서를 맡은 기타리스트 크리스 샹그리디와 손잡고, 테크노 음악에 기반한 솔로 앨범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발매한 앨범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일상으로의 초대〉가 있습니다.

1999

[MONOCROM 프로젝트 및 미국 유학]

크리스 샹그리디와 'MONOCROM'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동명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라이브 앨범 3장과 영화 《세기말》 OST 프로듀싱을 담당했습니다.

1999년 4월, 신해철은 크리스 샹그리디와 'MONOCROM'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동명의 타이틀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미국으로 다시 유학을 떠나 라이브 앨범 3장 발표와 영화 《세기말》의 OST 프로듀싱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2000

[비트겐슈타인 결성 및 게임 음악 참여]

키보디스트 임형빈, 기타리스트 데빈 리와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조직하여 저예산 홈레코딩 앨범을 발표했으며, 스타크래프트 게임 뮤직 앨범에 〈Zergs Are Coming〉을 수록했습니다.

2000년에 들어서 신해철은 키보디스트 임형빈, 뉴욕 유학생활 중 만난 재미교포 기타리스트 데빈 리와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조직하여 저예산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앨범을 발표하며 넥스트 시절과는 다른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뮤직 앨범에는 신해철의 〈Zergs Are Coming〉이라는 곡이 수록되었습니다.

2001

[《고스트 스테이션》 DJ 활동 및 겸임교수 역임]

SBS 파워FM에서 《고스트 스테이션》의 DJ를 맡았는데, 뉴욕에서 녹음하여 서버에 올리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같은 해 세종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습니다.

2001년 4월 1일, 신해철은 SBS 파워FM에서 《고스트 스테이션》의 DJ를 맡게 되었는데, 당시 뉴욕에 있던 신해철이 녹음을 하여 서버에 올리면 SBS 제작진이 다운받아서 방송하는 파격적인 방식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는 세종사이버대학교의 겸임교수를 잠시 맡기도 했습니다.

2002

[귀국, 월드컵 응원가 제작 및 결혼]

이민과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한일 월드컵 응원가 〈Into the Arena〉를 제작했으며, 이 곡은 붉은악마의 응원구호 '대한민국!'의 음원저작권을 신해철이 소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9월에는 미스코리아 출신 회사원 윤원희와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002년에 이민과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한일 월드컵 직전에 붉은악마 회원용으로 배포된 《꿈★은 이루어진다》 앨범에 〈Into the Arena〉를 만들어 수록했습니다. 이 곡은 붉은 악마의 응원구호 '대한민국!'의 음원저작권 소유자를 신해철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해 9월에는 유학시절 만나 교제해오던 미스코리아 출신의 회사원 윤원희와 일본의 한 성당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제16대 대선 노무현 후보 지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선거 유세 및 방송에 참여하기 위해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의 지지 유세 및 선거 방송을 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을 잠시 중단했다가 선거가 끝난 후, 같은 해 12월 20일 복귀하였고, 2003년 4월 봄 개편 시기에 방송은 막을 내렸습니다. 신해철은 TV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대본 없이 20분간 연설한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2003

[이라크전 파병 반대 운동]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전쟁 파병 결정을 반대하며 동료 연예인들과 결의대회에 참여하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적극적인 반전 운동을 펼쳤습니다.

2003년, 신해철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을 반대하며 동료 연예인들과의 결의대회나 참여연대가 주관하는 1인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신해철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며 "깡패가 칼질할 때, 나는 칼을 안 쥐었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칼 갈아주고, 심부름해주고, 뒤처리해준다고 해서 나는 책임이 없고 도덕적으로 깨끗한가?"라고 발언했습니다.

[《고스트네이션》 방송 및 넥스트 5집 발표]

MBC FM4U에서 《고스트 스테이션》의 다른 이름인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새로운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의 5집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을 발매했습니다.

2003년 10월부터 MBC FM4U에서 ‘고스트 스테이션’의 다른 이름인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하게 됩니다. 2004년에는 새로운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의 다섯 번째 정규앨범이자 저예산 레코딩 방식으로 제작한 더블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을 발매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일본의 'Euro Rock Press'라는 록 음악 잡지에서 평론가의 리뷰를 통해 수작으로 평가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2004

[체벌 금지 운동 전개]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여 체벌 금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신해철은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체벌 금지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훗날 제가 눈을 감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체벌을 금지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2005

[《안녕, 프란체스카》 출연 및 '마왕' 별명 굳히기]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2에 '안드레 대교주' 역으로 출연하여 '마왕'이라는 별명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년 MBC에서 방송되었던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2에 안드레 대교주 역으로 출연하였습니다. 극중에서 검은 망토를 입은 모습이 마치 마왕을 연상시켰기에 해당 별명은 더욱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100분 토론에서 간통죄 폐지 주장]

MBC 100분 토론에서 간통죄 폐지 찬성 패널로 출연하여 "국가가 형법으로 개입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주장은 신해철 사후인 2015년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2005년 11월 3일 MBC 100분 토론에서는 간통죄 폐지 찬반을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고, 이 방송에 신해철은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는 측의 패널로 출연하였습니다. 그는 "부부간의 신뢰와 책임의 문제다. 간통에 대해 국가가 형법으로 개입해 쇠고랑을 채우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신해철 사후인 2015년 2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하며 현실이 되었습니다.

2006

[첫 딸 신지유 출생]

결혼 4년 만에 첫 아이인 딸 신지유를 얻으며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2006년 9월 14일, 신해철은 결혼 4년 만에 첫 아이인 딸 신지유를 얻었습니다. 2008년에는 아들 신동원을 얻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넥스트 탈퇴 심경 및 자살충동 고백]

넥스트 팬 사이트에 기타리스트 데빈의 탈퇴설과 관련하여 "차라리 깨끗한 은퇴가 낫겠다"는 심경 글을 남기고, 교통사고를 겪은 후 자살충동 고백 글을 게시했습니다.

2006년 10월 30일, 신해철은 넥스트의 팬 사이트 게시판에 ‘데빈과 나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 해 보겠다’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통해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그 글에서 신해철은 당시 불거진 기타리스트 데빈의 탈퇴설과 관련해 7년여간 동고동락한 둘의 우정을 회고하며 안타까움을 표시했으며 예고 없이 데빈이 무대에 오르지 않은 넥스트 공연 무대에서 일부 팬들이 보인 반발에 대해 유감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신해철은 “차라리 깨끗한 은퇴가 낫겠단 생각이 든다”는 말로 해당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이러한 글을 올린 직후 신해철은 직접 운전하는 차량을 끌고 강북강변을 질주하다 길이 휘어지는 가드레일을 정통으로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11월 2일 넥스트의 팬 사이트 게시판에 '어쨌든 살아나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자살충동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그럼에도 교통사고 순간 핸들을 꺾어 죽음을 피한 이유는 음악 때문이었음을 밝혔습니다.

2007

[재즈 솔로 앨범 《The Songs For the One》 발매]

재즈 음악으로만 수록된 솔로 앨범 《The Songs For the One》을 발매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같은 해 KBS 스포츠 타이틀 로고음악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재즈 음악으로만 수록된 솔로 앨범 《The Songs For the One》을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을 위해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에서 하차했습니다. 또한 KBS 스포츠 타이틀 로고음악을 제작했습니다.

2008

[MB 정부 영어 공교육 정책 비판]

인터넷방송을 통해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추진하는 영어 공교육 정책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2008년 1월 30일, 신해철은 본인이 진행하는 인터넷방송에서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추진하는 영어 공교육 정책에 대해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스스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지, 영국의 영연방에 들어가 스스로 식민지가 되든지 …… 이게 무슨 엿같은 소리냐?”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습니다. 신해철은 자신의 딸을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서울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하기까지도 하였습니다.

[데뷔 20주년 앨범 발매 및 아들 출생]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Remembrance》를 발매하고 기념 공연을 가졌습니다. 같은 해 아들 신동원을 얻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2008년 7월, 두 번째 베스트 앨범이자 본인의 데뷔 20주년 앨범인 《SHIN HAE CHUL 20th Anniversary - Remembrance》를 발매하며 데뷔 20주년 공연을 가졌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아들이 태어나 신해철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100분 토론에서 사이버 모욕죄 비판]

MBC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 출연하여 사이버 모욕죄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며, 법적 처벌보다는 근본적인 품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2008년 12월 19일, 신해철은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 출연하여,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처참한 언어들의 폭력 현상들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파고들어가서 '우리 국민들의 품성이 거칠어지고 어린 시절부터의 품성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문제가 있다'라는 점에서 출발해야지, 그것을 처벌하고 법을 만든다고 해서 크게 개선되어질 것 같지 않다"라고 하며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2009

[입시학원 광고 출연 논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게재된 특목고 대비 입시학원 전면광고에 출연하여, 그동안의 사회정치활동이 '진보 상업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2009년 2월 9일, 10일에는 조선일보·동아일보에 게재된 특목고 대비 입시학원의 전면광고에 출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신해철의 그동안 사회정치활동이 진보 상업주의와 쇼맨십이 아니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신해철은 이 사건을 "왜곡의 메카니즘"으로 칭하면서, 자신은 "공교육의 총체적 난국을 (…) 비판해 왔지만 (…) 사교육과는 거의 무관한 얘기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북한 로켓 발사 축하 글 논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북한이 합당한 주권과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켓을 발사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축하한다"는 글을 올려 '친북 행위' 논란에 휩싸였으나,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2009년 4월 8일, 신해철이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이 합당한 주권과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켓을 발사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축하한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습니다. 보수 우익단체들은 신해철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리하였습니다. 신해철은 인터뷰에서 "북한을 동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표시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노무현 추모 콘서트 참여 및 활동 중단]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활동을 중단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으며, 6월 22일 열린 추모 콘서트에 참가해 노무현을 추모했습니다. 이후 3년여간 음악 활동을 거의 중단했습니다.

참여정부 이후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별세했을 때, 신해철은 한동안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이 후 3년여동안 여러 개인적 문제와 겹쳐 음악 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습니다. 신해철은 2009년 6월 22일 열린 노무현 추모 콘서트에 참가해 특유의 독설을 섞어가며 노무현을 추모했습니다.

2011

[《Ghoststation》 DJ 복귀]

MBC FM4U 봄 개편으로 신설된 《Ghoststation》(고스트스테이션)의 DJ를 맡아 복귀했습니다.

2011년 5월 9일부터 MBC FM4U 봄 개편으로 신설된 《Ghoststation》(고스트스테이션)의 DJ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쇼 두드림》 진행자 합류]

KBS 2TV 토크쇼 《이야기쇼 두드림》에 합류하여 진행자로 출연했습니다. 2012년 4월에 하차했습니다.

2011년 11월부터 KBS 2TV의 토크쇼 프로그램 《이야기쇼 두드림》에 합류 및 출연하였으며, 2012년 4월에 하차했습니다.

2012

[담낭염 수술]

담낭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2012년 2월, 신해철은 담낭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대철과 프로젝트 그룹 결성]

시나위의 신대철과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앨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012년 7월, MBC 노조의 파업으로 일시 중단되었던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재개했으며, 같은 시기에 시나위의 신대철과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앨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봉하음악회에서 신곡 〈Goodbye Mr.Trouble〉 공개]

봉하마을에서 열린 '봉하음악회'에 참가해 신곡 〈Goodbye Mr.Trouble〉을 공개했으며, 이 곡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음반에 수록되었습니다.

2012년 9월 1일에는 봉하마을에서 열린 '봉하음악회'에 참가해 신곡 〈Goodbye Mr.Trouble〉을 공개하고, 10월 12일에는 이 곡의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습니다. 〈Goodbye Mr.Trouble〉은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음반 《탈상: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의 수록곡이 되기도 했습니다.

[《고스트스테이션》 방송 완전 종료]

MBC FM4U 가을 개편 날짜에 맞춰 10여 년간 존속해오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완전 종료했습니다.

2012년 10월 22일, 신해철은 MBC FM4U 가을 개편 날짜에 맞추어 10여 년간 존속해오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완전 종료했습니다.

[제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지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전격 지지하며 데뷔곡 〈그대에게〉를 선거 로고송으로 제공했습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전격 지지하고, 자신의 데뷔곡 〈그대에게〉를 선거 로고송으로 제공했습니다. 신해철은 이전까지 숱한 요청에도 자신의 곡을 특정 정치인의 로고송으로 제공하는 것을 거부해왔으나, 문재인이 후보로 당선된 이후 직접 문재인에게 연락해 새로운 버전으로 편곡한 〈그대에게〉의 음원 파일을 직접 전달했습니다.

2013

[《K소리 악동》 진행]

KBS 1TV 프로그램 《K소리 악동》에서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공동으로 진행을 맡아 국악 퓨전 밴드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KBS 1TV 프로그램으로, 국악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무대를 첫 목표로 삼아 국악 퓨전 밴드를 꿈꾸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K소리 악동》에서 그는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공동으로 진행을 맡게 되었고, 8월부터 첫 방송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중독관리법 비판]

트위터를 통해 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한 '중독관리법' 법률안을 비판하며, "오만한 공권력이 함부로 개인의 삶과 가치를 규정하는 해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13년 10월 30일, 신해철은 트위터에서 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한 '중독관리법' 법률안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그는 "애시당초 '게임 셧다운제'에서 못 막았으니 더 치고 들어올 밖에. 국민을 '통치'하고 '교화'할 '백성'으로 보는 문제보다는 그렇게라도 '좋아지면' 되는 게 아니냐는 노예근성들이 문제. 비대한 공권력이 오만을 두르고 다음번에 침입하는 건 너네 집 안방이다"라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2014

[6년 만의 솔로 6집 《Reboot Myself》 발매]

6년 만의 솔로 6집 앨범 《Reboot Myself》를 발매하며 컴백했습니다. 이 앨범의 첫 싱글 〈A.D.D.a〉는 1000개 이상의 트랙을 사용한 원맨 아카펠라 곡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4년 4월, 신해철이 6년 만에 컴백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고, 6월 17일 신보의 첫 싱글인 〈A.D.D.a〉(아따)를 공개했습니다. 이 곡은 원맨 아카펠라 곡으로 1000개 이상의 녹음 트랙을 제작하고 보컬을 입힌 방식으로 제작한 곡입니다. 이후 6월 26일에 신해철의 여섯 번째 솔로 앨범의 첫 번째 파트로서 《Reboot Myself》가 발매되었습니다.

['바른음원 협동조합' 출범식에서 음악산업 비판]

'바른음원 협동조합' 출범식에 참석하여 왜곡된 음원 유통 구조와 불합리한 한국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축사를 했습니다.

2014년 4월, 록 그룹 시나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이 언론과 SNS를 통해 왜곡된 음원 유통 구조와 불합리한 한국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7월에 '바른음원 협동조합'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신해철은 이 행사에서 축사를 맡게 되었는데, 축사에서 "MP3가 생겨나고 이동통신업체가 음원 서비스를 맡는 등 창작 환경이 많이 바뀌어왔는데 그때마다 착취당하는 것은 항상 음악가들이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속사정 쌀롱》 MC 참여 (마지막 방송 활동)]

JTBC 《속사정 쌀롱》의 첫 방송 녹화에 MC로 참여했으며, 이 방송분은 그의 생전 마지막 방송 활동이 되었습니다.

2014년 10월 9일, 신해철은 JTBC 《속사정 쌀롱》의 첫 방송 녹화에 MC로 참여했습니다. 이 방송분은 11월 2일에 방영되었으며, 그의 생전 마지막 방송 활동이 되었습니다.

[장협착 수술]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분당의 모 병원을 찾았으나 대기 시간 문제로 서울스카이병원으로 이동, 장협착 수술을 받았습니다.

2014년 10월 17일, 신해철은 갑작스러운 복통을 느껴 분당의 모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대기 시간이 긴 탓에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스카이병원으로 이동, 각종 검사 후 장협착에 관한 수술을 강세훈(서울스카이병원 원장)에게 받았습니다.

[수술 후 통증 및 병원 재방문 반복]

서울스카이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은 후 퇴원했으나, 20일 새벽부터 수술 부위 통증과 미열, 고열이 발생하여 병원을 여러 차례 재방문했습니다. 병원 측은 복막염이 아니라고 진단했으나, 22일 새벽 다시 복부 통증을 느껴 재입원했습니다.

2014년 10월 19일 오후, 서울스카이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은 신해철은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10월 20일 새벽, 미열과 함께 수술 부위에 통증이 발생하여 수술을 하였던 해당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곧 퇴원했지만, 당일 오후 고열이 발생하여 또 다시 해당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해당 병원에서는 복막염은 아니라는 진단을 하였고 신해철은 퇴원했습니다. 그러나 10월 22일 새벽, 다시 복부와 흉부에 통증을 느껴 해당 병원에 재입원하였습니다.

[심정지 발생 및 서울아산병원 이송]

재입원 중 오후 1시경 심정지가 발생하여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당시 의식불명 상태였으며, 아산병원에서 복강 내 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2014년 10월 22일 오후 1시경, 서울스카이병원에 재입원 중이던 신해철에게 심정지가 발생해 병원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심폐소생술이 시행됐고, 해당 병원은 신해철을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아산병원에 후송될 당시 신해철은 의식불명 상태였고 동공반사 및 자발호흡이 없었습니다. 아산병원 의료진은 당일 오후 8시부터 3시간에 걸친 복강 내 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하였으나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향년 46세로 사망]

의식불명 6일째 되던 날 오후 8시 19분, 향년 46세로 의료사고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직접 사인은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발표되었으나, 이후 국과수는 복막염 및 심낭염, 이에 합병된 패혈증으로 판단했습니다.

의식불명 6일째 되던 날인 2014년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 향년 46세로 끝내 사망하였습니다. 사망 직후 아산병원이 발표한 직접 사인은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었습니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차 부검을 마친 뒤, "복막염이나 심낭염에 의해서 병발된 것으로서, 법의학적 사인으로 표현하자면 복막염 및 심낭염 그리고 이에 합병된 패혈증으로 우선 판단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정확히 요약하자면 췌장에 구멍이 나고, 의사의 과실로 수술을 하자 여러 장기들이 녹아서 비누처럼 부글부글 떨린 것이었습니다. 소장 부근이 꼬여서 피가 나와 합병증까지 왔고, 일부 장기를 제외한 대부분이 녹았습니다. 그 고통으로 뇌손상까지 와서 병원을 간지 7시간 만에 요절했습니다.

[의료사고 관련 소송 결정]

소속사가 유족과 상의하여 장협착 수술을 담당한 S병원(서울스카이병원)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으며, 유족은 해당 병원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故 신해철의 사망과 관련하여 장협착 수술을 했던 S병원의 과실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신해철의 소속사는 발인 하루 전날인 2014년 10월 30일 "유족 측과 상의한 결과 해당 병원을 상대로 민, 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신해철의 부인은 장협착수술을 하였던 해당 병원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영결식 중단 및 부검 결정]

영결식 및 발인 절차가 시작되었으나, 화장을 앞두고 동료 음악인들의 요청으로 유족이 부검을 받아들여 화장을 중단했습니다.

2014년 10월 31일 오전 8시 영결식, 발인 등 장례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영결식에서 추도사는 서태지가 낭독하였습니다. 하지만, 화장을 앞두고 장례식에 참석한 신해철의 동료 음악인들은 사망의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유족에게 부검을 요청했고, 유족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화장을 중단했습니다.

[시신 부검 및 최종 안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경찰의 의뢰를 받아 신해철의 시신을 부검했습니다. 11월 5일에는 두 번째 장례식이 치러졌고, 유해는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유토피아추모관에 봉안되었습니다.

2014년 11월 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경찰의 의뢰를 받아 신해철의 시신을 부검하였습니다. 부검이 끝난 후 2014년 11월 5일, 장례식이 다시 치러져 신해철의 시신은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되었고, 유해는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유토피아추모관에 봉안되었습니다.

[국과수 최종 부검 결과 발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최종 부검 결과를 발표, 심낭과 소장에서 발견된 천공은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2014년 11월 2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최종 부검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심낭과 소장에서 발견된 천공은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2015

2015.3.3 사후 1년

[수술 의사 검찰 송치]

경찰이 수술을 집도한 S병원 원장 강세훈의 과실로 신해철이 사망했다고 판단, 강세훈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4개월여간의 수사 끝에, 수술을 집도한 S병원(서울스카이병원) 원장 강모 씨(강세훈)의 과실로 신해철이 사망했다고 판단, 강씨(강세훈)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뒤 불구속 입건했으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습니다.

[유족, 의사 강세훈에게 민사 소송 제기]

신해철의 유족이 해당 의사 강세훈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부인 윤원희와 강세훈 간의 첫 공방 및 대질신문이 진행되었습니다.

2015년 5월, 신해철의 유족은 해당 의사 강세훈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5월 6일에는 부인 윤원희와 강세훈 간의 첫 공방 및 대질신문이 벌어졌습니다.

2015.8.24 사후 1년

[검찰, 의사 강세훈 불구속 기소]

검찰이 신해철의 사망 원인을 의료과실로 판단하고, 해당 병원 원장 강세훈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2015년 8월 24일, 검찰은 故 신해철의 사망 원인을 의료과실로 사망한 것이라고 하며 해당 병원 원장 강씨(강세훈)를 불구속 기소조치했습니다.

2016

2016.11.25 사후 2년

[의사 강세훈 1심 유죄 선고]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집도의 강세훈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가 선고되었으나, 유족 측은 형량에 부당함을 느껴 항소의 뜻을 밝혔습니다.

2016년 11월 25일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집도의 강세훈에게 유죄(업무상과실치사 혐의 ·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가 선고되었습니다. 재판부는 “강씨가 신해철의 복막염 증상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이 인정된다”며 의사로 인해 고인이 사망하게 된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과실치사죄는 의료법상 면허 취소 사유가 아니어서 강씨의 의사면허는 유지될 것이라는 견해도 나왔으며, 유가족은 "적은 형량에 부당함을 느낀다"며 항소의 뜻을 밝혔습니다.

2018

2018.1.30 사후 4년

[의사 강세훈 2심 징역 1년 및 법정구속]

서울고등법원 2심에서 강세훈에게 징역 1년이 선고되고 법정구속되었으며, 1심에서 무죄였던 '업무상 비밀누설 및 의료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되었습니다.

2018년 1월 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재판부는 "강씨가 집도한 복강경 수술의 경우 천공 발생 여부를 인지할 확률이 낮아 당시 신씨에 대해 사후 추적 관리의 필요성이 컸다. 그런데도 퇴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신씨는 강씨의 지시에 따라 퇴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2심에서 1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던 '업무상 비밀누설 및 의료법 위반'이 유죄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로써 강씨는 1월 30일 법정구속되었습니다.

2023

2023.1.26 사후 9년

[강세훈, 추가 의료 과실로 금고형 선고]

신해철을 사망하게 한 강세훈은 이후 의료 과실로 2명을 더 사망하게 하여 총 6명을 사망시킨 혐의로 1심에서 금고 1년이 선고되었습니다.

신해철을 사망하게 한 강세훈은 이후 의료 과실로 2명을 더 사망하게 하여 총 6명을 사망시키고 2023년 1월 26일, 1심에서 금고 1년이 선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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