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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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 소설가, 아나키스트 문학가(시인/소설가)

단재 신채호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전설적인 인물로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뜨겁게 외쳤던 사학자 언론인 소설가였습니다. 일제에 맞서 언론으로 역사 연구로 그리고 무장 투쟁의 최전선에서 투신하며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정의했죠. 임시정부의 외교 노선을 강하게 비판하고 민중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그의 삶은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끝내 일제 감옥에서 순국했지만 그의 정신은 우리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880

[신동의 탄생]

충청도 공주목에서 출생.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며, 14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독파하며 신동으로 불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독서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1898

[애국 계몽의 시작]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독립협회 활동에 참여하며 애국 계몽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규탄하는 성토문에 연명하는 등,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05

[『시일야방성대곡』과 언론 투쟁]

성균관 박사 임명 하루 만에 사직하고 단발 후 황성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집필을 도왔으며, 장지연 투옥 후에는 폐간될 때까지 황성신문을 이끌며 언론을 통한 항일 투쟁에 앞장서 대중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1907

[『독사신론』 발표와 민족사관 정립]

황성신문 폐간 후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초빙되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그의 나이 29세에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최초의 한국고대사서로 평가받는 『독사신론』을 발표하여 역사를 통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신민회 가입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10

[해외 망명, 독립운동 기반 마련]

국권 피탈이 확실시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안창호 등 신민회 간부들과 독립군 기지 창건을 논의했습니다.

이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한촌 형성, 한글 신문인 해조신문 발행, 권업회 및 광복회 조직 등 해외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19

[임시정부 참여와 결별]

3.1운동 후 상하이 임시의정원 개회에 참여했으나,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과 외교 우선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승만을 향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고 성토하며 임시정부를 탈퇴하는, 독립운동 노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드러낸 결단을 내렸습니다.

1922

['조선혁명선언' 집필]

이승만 노선에 반대하며 상하이 임시정부를 불신임하고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주도했습니다.

의열단장 김원봉의 요청으로 한국독립운동사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조선혁명선언'을 집필, 민중의 직접적인 폭력 혁명을 통한 독립 쟁취를 주장하며 강력한 투쟁 노선을 제시했습니다.

1923

[창조파 활동과 국사 연구 몰두]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의 주동자로서 새 헌법 제정과 '조선공화국' 수립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과 소련의 불인정 등으로 좌절을 겪고 공산주의에 실망, 이후 국사 연구에 더욱 전념하며 『조선상고사』 등의 저술에 몰두했습니다.

1928

[무정부주의 활동과 체포]

무정부주의동방연맹 북경회의를 조직하여 일제 관공서 폭파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금 마련을 위해 위조화폐를 가지러 타이완 기륭항에 상륙하다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나라를 찾기 위한 수단은 모두 정당하다"고 당당히 맞서며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1936

[뤼순 감옥 순국]

체포 후 뤼순 감옥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친일파 보증을 거부하며 가석방을 마다했습니다.

결국 뇌일혈, 동상, 영양실조, 고문 후유증 등의 합병증으로 57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며 독립을 향한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1962

1962.3 사후 2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숭고한 공훈을 기려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훈 2등)을 추서했습니다.

이는 신채호 선생의 희생과 업적에 대한 국가적 예우이자, 그가 남긴 독립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조치였습니다.

2009

2009.3.1 사후 73년

[97년 만의 국적 회복]

"왜놈이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무국적자로 지내던 그는,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순국 97년 만에 가족등록부에 이름이 올라가며 국적을 회복했습니다.

이는 그의 철저한 반일 정신을 다시 한번 기리는 상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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