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연표
1679
[시카고 지명 첫 기록]
프랑스 탐험가 로베르 드 라살이 이 일대를 '세카고우'(Checagou)라고 회고록에 기록하며 시카고 지역이 외부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이 지명은 '야생 양파' 또는 '야생 마늘'을 뜻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1780
[최초 외래이주자 정착]
아프리카계 유럽인(프랑스계) 장바티스트 푸앙 뒤사블이 시카고에 최초로 정착한 외래이주자로 알려져 있습니다.그의 정착은 시카고의 근대적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1795
[그린빌 조약 체결]
북서 인디언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그린빌 조약에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시카고 지역을 미국에 할양했습니다.이는 시카고가 미국 영토로 편입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803
[디어본 요새 재건]
미국 육군이 디어본 요새를 재건했습니다.이 요새는 1812년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나, 재건을 통해 시카고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습니다.
1816
[세인트루이스 조약]
미국은 세인트루이스 조약으로 오타와, 오지브와, 포타와토미 부족으로부터 시카고 인근 추가 영토를 양도받으며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습니다.
1833
[포타와토미족 강제 이동]
포타와토미 족은 시카고 조약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동되었습니다.이로 인해 시카고 지역의 아메리카 원주민 역사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시카고 인구 200명 기록]
당시 시카고의 인구는 약 200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이는 도시로서의 정식 설립을 앞두고 초기 정착촌의 규모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1835
[최초 국유지 판매 시작]
에드먼드 딕 테일러가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국유지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이는 도시 개발과 성장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837
[시카고 시 공식 설립]
시카고 시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이후 몇 십년 동안 시카고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로 발돋움하며 역동적인 발전을 시작했습니다.
1848
[세계 최초 선물 거래소 설립]
시카고 상품 거래소(CME Group의 전신)가 설립되어 세계 최초로 선물 거래의 표준을 정립했습니다.이는 시카고가 금융 무역의 국제적인 중심지로 성장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운하 및 첫 철도 개통]
일리노이 미시간 운하가 개통되어 미시시피강과 오대호를 연결했고, 시카고의 첫 철도인 Galena and Chicago Union Railroad도 같은 해 개통되었습니다.이는 시카고가 미국 서부와 동부 사이의 중요한 교통 중심지로 떠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856
[美 최초 종합 하수도 계획]
체스브로가 미국에서 최초로 종합적인 하수도 시스템 건설 계획을 시의회로부터 승인받았습니다.이는 도시의 위생 수준과 시민들의 삶의 질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선구적인 노력이었습니다.
1860
[링컨 대통령 후보 지명]
에이브러햄 링컨이 시카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확보하며 국가적인 무대로 진출했습니다.이는 이후 미국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를 예고했습니다.
1871
[시카고 대화재 발생]
시카고 대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4마일에서 1마일 지역이 파괴되었습니다.이는 시카고 역사상 가장 큰 피해였지만, 역설적으로 철과 돌을 이용한 현대 건축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나무 건축물이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대부분의 철길과 가축 사육장 등은 온전히 남아있어 도시 재건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1883
[북미 시간대 표준화 협의]
북미 시간대가 표준화되면서 시카고 철도 경영자들이 '제너럴 타임'을 협의했습니다.이는 효율적인 철도 운영과 더 넓은 지역의 시간 통일에 기여했습니다.
1885
[세계 최초 철골조 빌딩 건설]
도시 재건 과정에서 세계 최초로 철골조 고층 빌딩인 '홈 인슈란스 빌딩'이 건설되었습니다.이는 현대 건축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시카고를 마천루의 도시로 만드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886
[헤이마켓 사건 발생]
헤이마켓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산업 호황과 노동력 확장에 따른 노사 갈등이 폭력적으로 표출된 이 사건은 노동 운동사에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1889
[헐 하우스 설립]
제인 애덤스가 시카고의 빈곤한 이민자들을 위해 공동으로 헐 하우스를 세웠습니다.이는 당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사회사업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1892
1893
[가장 영향력 큰 만국 박람회]
1893년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어 총 2,750만 명의 관객을 기록했으며, 이는 세계 박람회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행사로 평가받습니다.시카고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0
[이민자 인구 급증]
시카고 인구의 77%가 외국 태생이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외국 태생이었습니다.독일인, 아일랜드인, 폴란드인 등이 주요 이민 계층을 이루며 도시의 다양성을 형성했습니다.
1900년 도시의 백인 인구 비율은 98.1%였습니다.
1910
[흑인 대이동 시작]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와 1920년대에 걸쳐 미국 남부에서 직업을 구하기 위한 흑인들이 시카고로 대규모 이주하면서, 1930년까지 시카고의 흑인 인구가 44,103명에서 233,903명으로 급증했습니다.이는 시카고 블랙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1919
[금주법 시대 개막]
미국 수정 헌법 제18조에 따라 알코올 음료 생산과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금주법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이는 시카고에 알 카포네와 같은 악명 높은 갱스터들이 활개 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시카고 인종폭동]
흑인 대이동으로 인한 인구 구성 변화와 사회적 긴장 속에서 시카고 인종폭동이 발생하여 인종 간 갈등과 폭력이 심화되었습니다.
1924
[美 최초 동성애 인권 단체 설립]
시카고는 미국 도시 중 최초로 동성애 인권 단체인 '인권협회'가 설립된 곳입니다.이 단체는 미국 최초의 게이 소식지를 출간했으나, 경찰과 정치적 압박으로 곧 해산되었습니다.
1929
[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
알 카포네가 보낸 남자들이 라이벌 조직인 노스 사이드 조직원들을 총으로 쏴 죽인 '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 사건이 발생하며 시카고는 갱스터들의 도시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1933
[Century of Progress 박람회]
1934년까지 'Century of Progress'라는 주제로 세계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이는 시카고 설립 이후 100년간의 기술 혁신을 보여주며 도시의 위상을 더욱 높였습니다.
[시카고 시장 암살 시도 부상]
미국 대통령 당선자 프랭클린 D.루스벨트 암살 시도 중 시카고 시장 안톤 체르막이 부상을 입었습니다.이 사건은 시카고와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42
[세계 최초 핵반응 실험 성공]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시카고 대학교에서 극비리에 세계 최초로 핵반응 실험을 성공시켰습니다.이는 맨해튼 계획의 일환으로, 이후 원자폭탄 개발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5
[리처드 J. 데일리 시장 당선]
민주당의 리처드 J.데일리가 시장으로 선출되며 폴리티컬머신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그는 시카고의 도시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60
[블록버스팅 현상 심화]
블록버스팅 현상으로 많은 백인들이 도시 교외로 이탈하고, 인근 지역의 인종 구성이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이는 시카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66
[시카고 자유운동 주도]
마틴 루터 킹 2세와 앨버트 래비가 시카고 자유운동을 이끌며 인종 차별에 맞서 싸웠습니다.이 운동은 미국 민권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1968
[민주당 전당대회 폭동]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중 대회장 내외부에서 격렬한 반전 시위와 경찰과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이는 미국 사회의 분열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74
[세계 최고층 시어스 타워 완공]
시어스 타워(현재 윌리스 타워)가 완공되어 197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기록되었습니다.이는 시카고의 건축 기술과 도시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1979
[시카고 첫 여성 시장 선출]
제인 바이른이 시카고 최초의 여성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그녀는 카브리니 그린 저소득층 주택단지의 범죄율을 줄이고, 학교 제도를 확립하며 금융 위기에서 도시를 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83
[시카고 첫 흑인 시장 선출]
해럴드 워싱턴이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그는 빈곤층과 소수 집단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도시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1987
[해럴드 워싱턴 시장 사망]
해럴드 워싱턴 시장이 재선되었으나, 임기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시카고 정치계에 큰 공백을 남겼습니다.
1989
[리처드 M. 데일리 시장 당선]
리처드 J.데일리의 아들인 리처드 M.데일리가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그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원 개선 등 다양한 업적을 남기며 시카고 시장 중 가장 오래 재임했습니다.
2007
[스파이어 타워 건설 착공]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150층(610m) 규모의 스파이어 타워 건설을 착공하였습니다. 해당 건물은 미주 대륙 최고층을 목표로 하였으나 자금난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2011
[람 이매뉴얼 시장 선출]
전 일리노이 하원이자 대통령 수석 보좌관이었던 람 이매뉴얼이 5명의 후보 가운데 55%의 지지율로 시카고 시장에 선출되었습니다.
2012
[4천6백만 관광객 유치]
국내외를 포함해 총 4,637만 명의 관광객이 시카고를 방문하며, 도시의 매력과 문화적 영향력을 입증했습니다.
[美 3대 도시총생산 기록]
시카고는 5,710억 달러의 지속적인 도시총생산(GMP)을 기록하며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경제력을 자랑했습니다.
[알파 글로벌 도시 선정]
시카고는 세계화와 세계도시조사망(GaWC)에서 '알파 글로벌 도시'로 평가받았습니다.이는 시카고가 세계 경제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2014
[글로벌 도시 지수 7위]
시카고는 글로벌 도시 지수에서 세계 7위에 선정되며 국제적인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이는 도시의 경제, 문화, 영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