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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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최고지도자, 정치인,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 카테고리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 주석 국가주석을 겸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반부패 운동 중국몽 공동부유를 추진했으며 마오쩌둥 이후 최초로 3연임에 성공하며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강력한 1인 체제를 구축하며 내외부의 비판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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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3

[시진핑 탄생]

베이징에서 혁명 원로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아버지가 탄압받아 농촌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시진핑은 1953년 6월 15일 베이징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농민 운동가 출신이자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공신인 아버지 시중쉰은 1962년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으로 마오쩌둥 정권에서 탄압을 받으면서 베이징에서 산시성으로 강제 좌천되었고, 시진핑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며 갖은 고초를 겪는 부친으로 인해 농촌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랐습니다.

1962

[아버지 시중쉰의 좌천]

아버지 시중쉰이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으로 마오쩌둥 정권에서 탄압받아 베이징에서 산시성으로 강제 좌천되었습니다.

농민 운동가 출신이자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공신이었던 아버지 시중쉰은 1962년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으로 마오쩌둥 정권에서 탄압을 받으면서 베이징에서 산시성으로 강제 좌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시진핑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며 농촌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랐습니다.

1973

[중국공산당 입당]

10번의 실패 끝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며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덩샤오핑의 시장적 개혁주의자로 발탁된 인물이었습니다.

시진핑은 1973년에 10번의 실패 끝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시중쉰은 덩샤오핑에 의해 시장적 개혁주의자로 발탁되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공신이었습니다.

1978

[아버지 시중쉰의 정치 복귀]

아버지 시중쉰이 11기 3중 전회에서 광둥성 제2서기로 정치 무대에 복귀하며 덩샤오핑의 경제 개혁 실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78년 11기 3중 전회에서 시중쉰은 중국공산당 광둥성 제2서기로 중국공산당의 정치 무대에 복귀하였고 후에 광둥성 제1서기가 되었으며 덩샤오핑의 사상 해방과 경제 개혁 실시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1979

[칭화 대학 졸업 및 정치 생활 시작]

칭화 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무원 부총리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진핑은 1979년에 칭화 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하였고, 학부 졸업 후 국무원 겅뱌오 부총리의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2001

[법학 박사 학위 취득]

칭화 대학 인문사회학원에서 중국 농촌 경제 개혁 분야 연구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2001년에는 칭화 대학 인문사회학원에서 중국공산당의 1980~1990년대 중국 농촌 경제 개혁 분야의 성과를 연구한 《중국 농촌의 시장화 연구》라는 논문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2002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 역임]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로 부임하여 2007년까지 재직하며 경제 발전에 공을 세워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를 지냈습니다. 그는 푸젠성 당위원회 서기,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 재직 시 경제 발전에 공을 많이 세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였습니다.

2007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 및 최고위직 진입]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를 지내고, 같은 해 17기 1중 전회에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및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앙당교 교장으로 선출되어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습니다.

2007년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를 지냈습니다. 같은 해 제17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습니다.

2008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취임]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으로 취임하며 국가 지도부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이후 2013년까지 부주석직을 수행했습니다.

2008년 3월 15일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으며, 2013년 3월 14일까지 재직했습니다. 이로써 국가 지도부의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0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 선출]

제17기 5중 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면서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0년 10월 18일 제17기 5중 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었습니다. 이 지위를 손에 넣은 것으로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2

[공산당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승계]

중국공산당 제18기 1중 전회에서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하며 당과 군의 최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제18기 1중 전회에서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함께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하였습니다. 이로써 시진핑은 당과 군의 최고 지도자 지위에 올랐습니다.

2013

[반부패 사정 캠페인 시작]

취임 직후 '호랑이든 파리든 모두 때려 잡겠다'며 철저한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반부패 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정적 제거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시진핑은 2013년 취임 직후 '보시라이 사건', '링지화 사건' 등 최상층부에서 터진 부정부패 사건들을 배경으로, '호랑이(고위관료)든 파리(하급관료)든 모두 때려 잡겠다'며 철저한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당내 부패 정치인을 처단하는 동시에 정적 제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왕치산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이 작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및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선출]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며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지도자로 등극했습니다. 취임 연설에서 '중국몽'을 제창했습니다.

2013년 3월 14일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취임 연설과 다름없는 전인대 폐막 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제창하고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민족 진흥, 국가 부강, 인민 행복의 '중국몽'을 말하였습니다.

2014

[대한민국 방문 및 판다 기증]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중 관계 증진을 위해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를 기증했습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은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방문에서 양국 관계 강화의 상징으로 판다인 러바오와 아이바오를 대한민국에 기증했습니다. 이후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2015

[역사적인 양안정상회담 개최]

싱가포르에서 마잉주 당시 중화민국 총통과 역사적인 양안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양안 관계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5년 시진핑은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으로 양안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중국과 대만의 최고지도자가 만난 첫 사례로, 양안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나, 중화민국 독립파인 차이잉원 집권 이후 양안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유치 성공]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총회에서 베이징시가 2022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세계 최초로 하계-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2015년 IOC 총회에서 베이징시가 2022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로써 베이징은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는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7

[시진핑 사상 당헌 추가]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처음 거론하고 중국공산당 당헌에 지도적 사상으로 추가했습니다.

시진핑은 2017년에 열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을 처음 거론했고 중국공산당도 당헌 개정 과정에서 시진핑 사상을 지도적 사상에 추가시켰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관련 발언 논란]

미중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고 언급하여 한국에서 공분을 샀습니다.

2017년 4월 8일 미중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했다고 말해 한국에서 공분을 샀습니다. 이 발언은 양국 관계에 민감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8

[국가주석 재선 성공]

중국공산당의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하며 10년간의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습니다.

2018년 3월, 중국공산당의 전국대표인민회의에서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10년간의 장기 집권의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는 헌법 개정으로 인한 종신 집권 가능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가주석직 연임 제한 조항 삭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헌법의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하여 시 주석의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해졌습니다. 9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습니다.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중국 헌법에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하여 시 주석의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전인대는 2964표 가운데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9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습니다. 개헌 전 중국 지도자의 임기는 10년으로 제한됐으나, 개헌 후에는 원칙적으로 '종신집권'도 가능할 수 있게 됩니다.

2019

[코로나19 발병 및 대응 시작]

우한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가 발병했으며, 시진핑은 리커창 총리에게 영도소조 수장을 맡겼으나 전 세계적인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2019년 11월, 우한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가 발병했습니다. 시진핑은 곧바로 영도소조를 세우고 수장을 리커창 총리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이후 코로나19 대유행이 심해지면서 대한민국, 중화민국, 일본, 미국, 영국, 인도 등 전 세계에서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시 주석은 강경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2020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 및 국가보안법 시행]

홍콩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사실상 '일국양제'를 붕괴시키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하여 시위가 끝났습니다.

시진핑은 홍콩 민주화 운동에 간섭하여 사실상 '일국양제'를 어기고 시위를 탄압했습니다. 결국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일국양제는 붕괴되었고, 대규모 시위는 끝났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리커창 총리의 빈곤 문제 지적]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커창 총리가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샤오캉 사회' 건설이 미흡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습니다.

2020년 5월 28일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 리커창 총리가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은 월수입이 1천 위안(약 17만 원)에 불과하다'며 시 주석이 제창한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이 미흡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발언은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에 막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차단되었으나 해외 SNS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2021

['공동 부유' 정책 제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공동 부유'라는 정치적 과제를 제기하며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평등을 강조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부터 시진핑은 '공동 부유'의 정치적 과제를 제기하면서 이를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부의 불균형 해소와 사회적 평등 증진을 목표로 하는 정책입니다.

2022

[공산당 총서기 3연임 성공]

중국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다시 압도적으로 3연임에 성공하며 마오쩌둥 이래 최초로 장기 집권의 길을 확고히 했습니다.

2022년 10월 16일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시진핑은 다시 압도적으로 3연임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시진핑은 마오쩌둥 이래 최초로 국가주석직 3연임을 넘어선 장기 집권의 길을 사실상 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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