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매리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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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야구단, 스포츠팀, 메이저리그 + 카테고리

시애틀 매리너스는 1977년 창단된 메이저 리그 야구팀으로, 워싱턴주 시애틀을 연고지로 합니다. T-모바일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1995, 1997, 2001년 세 차례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2001년에는 아메리칸 리그 역대 최다승인 116승을 기록하며 단일 시즌 팀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MLB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월드 시리즈 진출 경험이 없는 팀이기도 합니다. 켄 그리피 주니어, 에드가 마르티네즈와 같은 레전드 선수들을 배출했으며, 한국인 선수 추신수와 이대호도 이 팀을 거쳐갔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70

[파일럿츠의 연고 이전]

시애틀 최초의 메이저리그 구단이었던 파일럿츠가 단 한 시즌 만에 밀워키로 떠났습니다. 이로 인해 시애틀시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없는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시애틀 파일럿츠는 재정적 난항과 경기장 문제로 인해 밀워키로 연고를 이전하며 '밀워키 브루어스'가 되었습니다. 시애틀 지역 야구팬들은 큰 실망감을 느꼈으며, 시 당국은 이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은 훗날 시애틀 매리너스가 창단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1972

[아메리칸 리그와의 소송]

시애틀시와 킹 카운티는 파일럿츠의 연고 이전에 반발하여 아메리칸 리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은 시애틀에 새로운 팀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인 조치였습니다.

시애틀 당국은 리그가 연고 이전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법적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소송이 길어지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시애틀에 새로운 확장 구단을 창단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제안했습니다. 이 법적 승리는 시애틀에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1976

[구단 명칭 확정]

공모를 통해 시애틀의 새로운 야구팀 이름을 '매리너스(Mariners)'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항구 도시인 시애틀의 정체성을 반영한 이름으로 팬들의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약 15,000건 이상의 응모작 중에서 '매리너스'라는 이름이 시애틀의 해양 문화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구단 로고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팀의 시각적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이로써 새로운 구단은 본격적인 창단 절차와 선수 수급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1977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

시애틀 매리너스가 킹돔에서 캘리포니아 엔젤스를 상대로 구단 역사상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시애틀 야구의 부활을 알리는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개막전 투수 디에고 세구가 마운드에 올랐으며, 5만 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하여 매리너스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경기 결과는 7대 0 패배였으나, 시애틀 시민들은 다시 메이저리그를 가졌다는 사실에 열광했습니다. 이날의 경기는 매리너스가 메이저리그의 일원으로서 걸어갈 기나긴 여정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1979

[시애틀 올스타 게임 개최]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인 킹돔에서 제50회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이 열렸습니다. 신생 구단으로서 리그 최고의 축제를 주최하며 구단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내셔널 리그가 아메리칸 리그를 7대 6으로 꺾었으며, 킹돔의 폐쇄된 환경에서의 첫 올스타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매리너스의 주전 타자 브루스 보크가 팀의 대표로 올스타 무대에 섰습니다.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시애틀이 메이저리그 도시로서 완벽하게 안착했음을 입증했습니다.

1981

[조지 아기로스의 구단 인수]

부동산 거물 조지 아기로스가 창단 구단주 그룹으로부터 팀을 인수하여 새로운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구단의 재정 안정과 전력 보강을 위한 새로운 경영 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아기로스 구단주는 팀의 승리보다는 비즈니스적 효율성을 강조하며 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팀은 여러 차례의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전력을 재편했습니다. 비록 성적 면에서는 큰 도약이 없었으나, 구단의 초기 운영 기틀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84

[최초의 신인왕 배출]

내야수 앨빈 데이비스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매리너스 역사상 최초로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팀의 유망주 육성 시스템이 결실을 본 첫 번째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데이비스는 데뷔 시즌에 27홈런과 116타점을 기록하며 리그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미스터 매리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팬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습니다. 데이비스의 활약은 하위권에 머물던 팀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1987

[켄 그리피 주니어 드래프트]

시애틀 매리너스가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전설의 시작인 켄 그리피 주니어를 지명했습니다. 이 지명은 시애틀 구단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은 가장 완벽한 선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리피 주니어는 천부적인 야구 재능과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마이너리그를 초고속으로 통과하며 시애틀 팬들이 기다려온 영웅의 등장을 예고했습니다. 그리피 주니어의 영입은 매리너스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1989

[켄 그리피 주니어의 데뷔]

만 19세의 나이로 켄 그리피 주니어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그의 등장은 시애틀 야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모았습니다.

데뷔전 첫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곧바로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습니다. 아름다운 스윙과 환상적인 수비는 전미 야구팬들의 시선을 시애틀로 집중시켰습니다. 그리피 주니어는 이후 팀의 황금기를 이끄는 아이콘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게 됩니다.

[랜디 존슨의 영입]

몬트리올 엑스포스로부터 좌완 강속구 투수 랜디 존슨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습니다. '빅 유닛'이라는 별명의 그가 시애틀의 마운드를 책임지는 에이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크 랭스턴을 내주는 대형 트레이드였으며, 결과적으로 매리너스 역사상 최고의 영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존슨은 시애틀에서 제구력을 가다듬으며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삼진 머신으로 거듭났습니다. 그의 합류로 시애틀은 강력한 원투펀치를 갖춘 위협적인 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

[그리피 부자의 동반 출전]

켄 그리피 시니어와 주니어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같은 팀에서 동시에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선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두 선수는 경기에서 백투백 홈런(연속 타자 홈런)을 기록하며 야구사에 남을 신화를 썼습니다. 이 드라마 같은 장면은 전 세계 야구 팬들에게 엄청난 감동과 화제를 선사했습니다. 매리너스 구단은 이 사건을 통해 단순한 야구팀을 넘어 가족과 전통의 가치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1991

[구단 최초 5할 승률 달성]

창단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 시즌 패배보다 승리가 많은 83승 79패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만년 하위권 팀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강팀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짐 르페브르 감독의 지휘 아래 켄 그리피 주니어와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타선을 이끌었습니다.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승리하는 문화가 팀 내에 정착되기 시작한 해였습니다. 이 성적은 매리너스가 향후 90년대 중반에 맞이할 전성기를 향한 예고편과 같았습니다.

1992

[닌텐도 및 야마우치 인수]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회장이 이끄는 투자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며 연고지 이전 위기를 막아냈습니다. 시애틀 지역 사회와 일본 자본의 결합을 통해 매리너스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팀이 플로리다로 매각될 위기에서 야마우치 회장이 시애틀 지역 야구 보존을 위해 사재를 털어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일본인 구단주 탄생으로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야마우치 구단주는 팀 운영을 지역 경영진에게 맡기면서도 든든한 재정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3

[루 피넬라 감독 취임]

카리스마 넘치는 명장 루 피넬라가 시애틀의 제11대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전술로 매리너스를 리그 최고의 강팀으로 변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피넬라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팀에 승부욕을 심어주었으며 선수들의 잠재력을 폭발시켰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매리너스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영광의 시대로 기억됩니다. 피넬라는 특유의 열정적인 항의 모습으로도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시애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랜디 존슨 최초의 사이영 상]

랜디 존슨이 300개가 넘는 탈삼진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매리너스 소속 투수로서 최초의 수상이자 리그 최고의 에이스임을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존슨은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들을 압살하며 '빅 유닛'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쳤습니다. 이 수상은 시애틀 마운드의 자존심을 세웠으며 팀 성적 향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시애틀에서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며 명예의 전당급 커리어를 쌓아나갔습니다.

1995

[거절할 수 없는 승리 캠페인]

시즌 중반 하위권에 머물던 시애틀이 'Refuse to Lose'라는 슬로건 아래 기적 같은 반격에 나섰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연승을 거듭하며 선두 자리를 맹추격했습니다.

팬들은 파란색 사인보드를 들고 경기장을 메웠으며 시애틀 도시 전체가 야구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꾼 이 캠페인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응원 열기는 매리너스가 시애틀에 계속 남을 수 있게 한 시민들의 강력한 의지 표현이었습니다.

[지구 우승 결정전 승리]

캘리포니아 엔젤스와의 타이브레이커 단판 승부에서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첫 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랜디 존슨의 완투 활약으로 시애틀 매리너스가 마침내 가을 야구의 문을 열었습니다.

시즌 마지막까지 이어진 치열한 경쟁 끝에 거둔 우승이라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킹돔을 가득 메운 팬들은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선수들과 함께 축제 분위기를 즐겼습니다. 이 경기는 시애틀 야구 역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전설의 '더 더블(The Double)']

뉴욕 양키스와의 ALDS 5차전에서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끝내기 2루타를 터뜨리며 팀을 챔피언십 시리즈로 이끌었습니다. 켄 그리피 주니어가 홈으로 슬라이딩하는 모습은 시애틀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입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거둔 승리로, 시애틀 야구 팀의 해체 위기를 막아낸 전설적인 경기였습니다. 이 안타 한 방으로 시애틀시는 새로운 야구 전용 경기장 건설을 전격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매리너스 팬들에게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이날 이후 영원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96

[알렉스 로드리게스 전성기]

초신성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데뷔 첫 풀시즌을 치르며 타격왕과 실버슬러거를 석권했습니다. 메이저리그를 평정할 새로운 천재 타자의 등장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20세의 나이로 3할 5푼 8리의 타율과 36홈런을 기록하며 리그 최정상급 타자로 우뚝 섰습니다. 그리피 주니어와 함께 매리너스의 공포의 타선을 구축하며 팀의 전성기를 뒷받침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활약은 훗날 대형 계약을 통한 이적으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97

[두 번째 지구 우승]

매리너스가 다시 한번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정상에 오르며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리그 최강의 화력을 앞세워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켄 그리피 주니어가 56홈런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고, 랜디 존슨이 마운드를 지배했습니다. 시애틀의 공격 야구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손꼽혔습니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는 못했으나 시애틀 야구의 황금기는 정점에 달해 있었습니다.

1998

[랜디 존슨과의 작별]

재정적 이유와 계약 문제로 팀의 상징이었던 에이스 랜디 존슨을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팬들은 큰 슬픔에 잠겼으며 팀의 전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존슨은 시애틀에서 보낸 10년 동안 수많은 탈삼진 기록과 사이영 상을 남긴 전설이었습니다. 그의 이적은 매리너스의 1차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시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구단은 존슨을 대신할 새로운 주축 선수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전력 보강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1999

[세이프코 필드 공식 개장]

시애틀 야구의 새로운 요람인 야구 전용 경기장 세이프코 필드(Safeco Field)가 개장했습니다. 지붕이 열리고 닫히는 개폐식 돔구장으로서 최첨단 시설을 자랑했습니다.

개장 첫 경기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역사적인 첫 공이 던져졌습니다. 킹돔의 답답한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 채광 아래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매리너스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이자 시애틀의 건축적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2000

[켄 그리피 주니어 트레이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스타 켄 그리피 주니어가 고향 팀인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습니다. 시애틀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와의 가슴 아픈 이별이었습니다.

그리피는 시애틀 야구 그 자체였으며, 그의 번호 24번은 팬들에게 성역과 같았습니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매리너스는 미래를 위한 여러 유망주를 확보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스타의 부재라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구단은 이듬해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추신수 선수 입단 계약]

한국의 고교 유망주였던 추신수가 아마추어 자유계약 선수 신분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습니다.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한국 야구 천재의 원대한 포부가 시작된 해였습니다.

계약금 135만 달러라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태평양을 건너 시애틀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에 합류했습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특유의 성실함으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추신수의 입단은 시애틀 매리너스가 한국 야구 팬들에게 친숙한 팀으로 각인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1

[이치로 스즈키의 영입]

일본 프로야구의 천재 타자 이치로 스즈키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시애틀에 합류했습니다. 아시아 출신 야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치로는 데뷔전부터 정교한 안무 같은 타격 기술과 보살 수비로 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시애틀의 리드오프로서 팀의 공격 물꼬를 트는 독보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치로의 입단은 매리너스가 전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단 중 하나로 발돋움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116승 달성]

시애틀 매리너스가 단일 시즌 116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 세계 야구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매리너스 최고의 황금기였습니다.

이치로, 에드가 마르티네즈, 존 올루드 등 완벽한 조화를 이룬 타선과 철벽 마운드가 일궈낸 성과입니다. 정규 시즌을 지배하며 시애틀 도시 전체를 야구의 축제로 몰아넣었습니다. 비록 월드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치로 MVP 및 신인왕 석권]

데뷔 시즌을 마친 이치로 스즈키가 아메리칸 리그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달성된 대기록이며 아시아 선수의 위상을 드높인 사건이었습니다.

242안타와 56도루를 기록하며 타격왕과 도루왕을 휩쓴 이치로의 활약은 압도적이었습니다. 그의 성실한 자기 관리와 정교한 타격 폼은 수많은 야구 유망주들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치로는 명실상부한 매리너스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며 장기 계약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2004

[이치로 시즌 최다 안타 기록]

이치로 스즈키가 시즌 262번째 안타를 터뜨리며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84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조지 시슬러의 기록을 넘어선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시애틀 홈 팬들의 기립 박수 속에서 이치로는 안타 기계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현대 야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경이로운 수치로 평가받습니다. 매리너스 구단은 이 기록을 기념하기 위해 경기장에 특별 전시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2005

[추신수 메이저리그 데뷔]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낸 추신수가 마침내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한국인 타자로서 시애틀 매리너스 역사에 이름을 올린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대수비와 대타로 출전하며 경험을 쌓기 시작했으나, 쟁쟁한 주전 경쟁 속에서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비록 시애틀에서의 활약 기간은 짧았지만, 그의 잠재력은 이미 메이저리그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추신수의 데뷔는 한국 야구 유망주들에게 시애틀이라는 팀이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게 했습니다.

[펠릭스 에르난데스 데뷔]

만 19세의 어린 나이로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시애틀 마운드의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질 차세대 에이스의 탄생이었습니다.

강속구와 예리한 변화구를 앞세워 데뷔 첫 경기부터 강렬한 탈삼진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팬들은 그를 '킹'이라 부르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고 세이프코 필드에는 '킹스 코트' 응원석이 만들어졌습니다. 펠릭스는 이후 팀의 암흑기 속에서도 묵묵히 마운드를 지키는 고독한 에이스로 성장했습니다.

2010

[펠릭스의 사이영 상 수상]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승수보다는 투구 내용의 압도함을 인정받아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현대 야구에서 승리 투수 기록의 중요성을 재정의한 혁신적인 수상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그는 단 13승에 그쳤으나 평균자책점과 이닝 소화력에서 리그 압도적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데이터 야구)의 가치가 시상식에 반영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시애틀 구단은 펠릭스라는 위대한 에이스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자랑했습니다.

2012

[펠릭스의 퍼펙트 게임]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23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대기록이자 그의 커리어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단 한 명의 타자도 루상에 내보내지 않은 완벽한 피칭으로 세이프코 필드를 전율케 했습니다. 경기 종료 직후 그는 환호하며 동료들과 포옹했고, 팬들은 영원한 에이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기록은 매리너스 구단의 가장 찬란한 개인적 성취 중 하나로 영구히 보존될 것입니다.

2016

[이대호 선수 입단 계약]

한국의 거포 이대호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로 합류했습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꿈을 위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인의 도전이었습니다.

이대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하며 '빅보이'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특유의 몰아치기 타격과 영리한 주루 플레이로 시애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활약은 팀 타선에 무게감을 더했으며 한국 야구 팬들에게 다시 한번 매리너스를 응원하게 했습니다.

[이대호의 끝내기 홈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이대호 선수가 대타로 나와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시애틀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환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팀의 긴 연패를 끊어내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고령 신인 끝내기 홈런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경기 후 동료들에게 물세례를 받으며 환하게 웃는 이대호의 모습은 한국 팬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활약으로 그는 구단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플래툰 시스템의 핵심으로 활약했습니다.

2019

[이치로 스즈키의 은퇴]

일본 도쿄 돔에서 열린 오프닝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전설적인 타자 이치로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전 세계 야구계가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아티스트의 퇴장을 함께 축복했습니다.

수많은 일본 팬과 동료들의 박수 속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와 작별했습니다. 이치로는 은퇴 후에도 매리너스 구단의 특별 보좌역으로 활동하며 팀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그의 등번호 51번은 매리너스에서 비공식 영구결번으로 취급될 만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2022

[2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칼 롤리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시애틀 매리너스가 마침내 가을 야구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북미 4대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길었던 21년의 잔혹한 잔혹사가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시애틀 도시는 마치 우승한 것 같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으며 팬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랜 암흑기를 견뎌온 매리너스가 다시 강팀으로 부활했음을 전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이 승리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 훌리오 로드리게스를 중심으로 한 리빌딩의 성공을 의미했습니다.

[와일드카드 시리즈 대역전승]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ALWC 2차전에서 7점 차의 열세를 뒤집고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점수 차 역전극을 쓰며 시리즈를 스윕했습니다.

매리너스 선수들의 끈질긴 집중력은 원정 경기장을 침묵에 빠뜨렸으며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이 승리로 매리너스는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며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팬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매리너스 정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명경기였습니다.

[훌리오 로드리게스 신인왕]

팀의 새로운 혜성 훌리오 로드리게스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이치로 이후 21년 만에 시애틀이 배출한 영예로운 수상자였습니다.

훌리오는 데뷔 시즌에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5툴 플레이어의 정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활기찬 에너지와 리더십은 팀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구단은 그와 장기 계약을 맺으며 매리너스의 미래를 책임질 중추로 낙점했습니다.

2023

[두 번째 홈 올스타전 개최]

T-모바일 파크(구 세이프코 필드)에서 22년 만에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이 다시 개최되었습니다. 최첨단 시설로 단장한 경기장에서 전 세계 야구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시애틀의 상징인 에메랄드 시티 분위기에 맞춰 화려한 행사들이 이어졌습니다. 매리너스 출신 전설들이 대거 참석하여 팬들과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시애틀이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야구 도시 중 하나임을 확인시켜준 행사였습니다.

2024

[젊은 마운드의 활약]

리그 최상위권의 선발 로테이션을 앞세워 매리너스가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로건 길버트, 조지 커비 등 젊은 에이스들이 팀의 중심축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 타격 위주의 팀 컬러에서 벗어나 탄탄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하는 이기는 야구를 정립했습니다. 정교한 투구 디자인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타자들을 압도하는 피칭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이 강력한 투수진이 팀을 월드시리즈 진출로 이끌어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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