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포이티어
연표
1927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났으며, 부모의 모국인 바하마에서 자랐습니다.
1944
[뉴욕으로 이주 및 연기 훈련 시작]
17세에 뉴욕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니그로 시어터에서 연기 훈련을 받으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7살 때 뉴욕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니그로 시어터(American Negro Theater)에서 연기 훈련을 하였다.
1949
1949년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2022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1950
[영화 《노웨이 아웃》 출연]
미국의 인종 갈등을 그린 영화 《노웨이 아웃》에 출연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미국의 인종 갈등을 그린 영화 《노웨이 아웃》에 출연했다.
1958
[영화 《흑과 백》으로 국제적 명성 획득]
영화 《흑과 백》으로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남우주연상과 베를린 국제 영화제 연기부문 은곰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58년작 《흑과 백》으로 BAFTA 남우주연상과 베를린 국제 영화제 연기부문 은곰상을 받는 등 활약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4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영화 《릴리 꽃의 밭》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1964년에 《릴리 꽃의 밭》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67
[세 편의 주요 작품으로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
《언제나 마음은 태양》, 《저녁 초대》, 《밤의 열기 속으로》 등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1967년 《언제나 마음은 태양》, 《저녁 초대》, 《밤의 열기 속으로》 등 주요 작품에 출연하여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71
그의 감독 작품으로는 《버크와 설교자》(1971) 등이 있다.
1974
[대영 제국 훈장 2등급 수훈]
대영 제국 훈장 2등급(KBE)을 수훈하며 영국 연방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바하마 시민권자였기에 정식 훈장으로 인정되었습니다.
1974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KBE, 작위급 훈장)을 수훈했다. 수훈 당시 그는 영국 연방에 속하는 바하마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으므로, 명예 훈장이 아닌 정식 훈장으로 문제 없이 인정되는 경우이다.
1997
[주일본 바하마 대사로 활동 시작]
배우 활동을 넘어 외교관으로서 1997년부터 주일본 바하마 대사를 역임하며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주일본 바하마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2009
2009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훈했다.
2022
2022년 1월 6일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