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원더
- 스티비 원더는 1950년생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사회운동가입니다. - 유아기에 시력을 잃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11세에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며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 그는 9개의 빌보드 차트 1위 곡과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25회 이상의 그래미상과 아카데미상 등 수많은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습니다. - 피아노 하모니카 드럼 등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멀티 악기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 2008년 빌보드 선정 가장 성공적인 차트 기록 음악가 5위에 오르는 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연표
1950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
스티븐 하더웨이 모리스라는 이름으로 미시간주 새기노에서 태어났습니다.조산아였던 그는 인큐베이터의 산소 과다 공급으로 망막이 손상되어 시력을 잃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습니다.
1954
[음악적 재능의 싹]
4살 때 어머니와 함께 디트로이트로 이사하며 어머니의 성을 따라 '모리스'를 법적 성으로 사용하게 됩니다.이른 나이부터 피아노, 하모니카,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습니다.
1961
[모타운의 최연소 스타]
11살의 어린 나이에 '리틀 스티비 원더'라는 이름으로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이는 그의 음악 경력에 있어 역사적인 첫걸음이었습니다.
1963
[빌보드 첫 1위 곡 탄생]
12세에 첫 음반 '리틀 스티비 원더'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같은 해, 그의 노래 'Fingertips'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첫 1위를 차지하며 음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어린 나이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1969
[소울 클래식 'My Cherie Amour']
1966년에 녹음되어 1969년에 리믹스 발매된 소울 클래식 싱글 'My Cherie Amour'가 빌보드 팝 및 R&B 싱글 차트 4위를 기록했습니다.이 곡은 스티비 원더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아 더욱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1970
[첫 결혼]
싱어송라이터 시리타 라이트와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하지만 2년 뒤인 1972년에 이혼하며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1972
[세계적인 히트곡 'Superstition']
22세의 나이에 작사, 작곡, 편곡, 노래까지 직접 해낸 'Superstition'을 발표했습니다.이 곡은 앨범 'Talking Book'에 수록되어 이듬해 1973년 2월 미국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그의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각인시켰습니다.
이 곡은 원래 제프 벡을 위해 작곡되었으나, 스티비 원더의 매니저가 그가 직접 녹음할 것을 주장하여 스티비 원더 버전이 먼저 발매되었습니다.
1976
[딸에게 바치는 'Isn't She Lovely']
명반 'Songs in the Key of Life'에 수록된 'Isn't She Lovely'를 발표했습니다.이 곡은 사랑하는 딸 아이샤 모리스를 위해 만든 곡으로, 시작 부분에 아기 울음소리가 삽입되어 있어 더욱 특별함을 더합니다.
1977
[생애 최대 히트곡 'Sir Duke']
존경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에게 헌정하는 곡 'Sir Duke'를 싱글로 발표했습니다.이 곡은 빌보드 핫 100과 블랙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영국 싱글 차트 2위를 차지하며 그의 생애 최대 히트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스티비 원더는 이 곡을 통해 너무 빨리 잊혀지는 위대한 뮤지션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는 처음부터 이 곡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남긴 뮤지션들에 관한 것이 되기를 원했다. 너무 빨리 그들은 잊혀져 간다.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라고 언급하며, 밥 말리를 기린 'Master Blaster'와 마틴 루터 킹을 기린 'Happy Birthday' 같은 헌정곡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80
[명곡 'Lately' 발표]
앨범 'Hotter than July'에 수록된 발라드 곡 'Lately'를 발표했습니다.이 곡은 영국 차트 3위, 빌보드 팝 싱글 차트 64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여러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1982
[감성 발라드 'Ribbon in the Sky']
그의 그레이티스트 히트 음반 '오리지널 뮤지쿠어리움'의 첫 곡인 감성 발라드 'Ribbon in the Sky'를 발표했습니다.이 곡은 팝 차트 54위, R&B 차트 10위를 기록하며 많은 리스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84
[오스카를 거머쥔 히트곡]
코미디 영화 '우먼 인 레드'에 수록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발표했습니다.이 곡은 영국 차트와 R&B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이 곡으로 골든 글로브상과 아카데미상까지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1989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그의 음악적 업적과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99
[폴라음악상 수상]
스웨덴 왕실이 수여하는 권위 있는 음악상인 폴라음악상을 수상하며, 그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개안 수술 루머의 시작]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빛 감지 기술 테스트에 스티비 원더가 참여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해당 기술은 시세포가 살아있는 각막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하는 방식이었으나, 스티비 원더의 시세포는 이미 파괴되어 시술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2001
[두 번째 결혼]
카이 밀라드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두 사람은 2012년에 이혼하며 11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2005
[눈 수술 루머 직접 해명]
새 앨범 발매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한 기자회견에서 눈 수술 루머에 대해 직접 해명했습니다.그는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의사들을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아서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오랜 루머를 불식시켰습니다.
2008
[빌보드 역사상 위대한 아티스트 5위]
빌보드지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빌보드 싱글차트 50년간 가장 성공적인 기록을 올린 음악가 순위'에서 쟁쟁한 음악가들을 제치고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이는 그의 변치 않는 영향력을 입증합니다.
2009
[UN 평화대사 임명]
유엔 평화대사로 임명되며, 음악을 통한 사회적 메시지 전달과 인권 신장에 대한 그의 오랜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상 수상]
몬트리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서 재즈에 대한 공로로 마일스 데이비스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음악적 깊이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