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num_of_likes 116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스탕달
작가, 소설가, 수필가 문학가(시인/소설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벨리슴이라는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창조한 작가. 사랑과 예술을 평생 추구했지만 불우한 유년 시절과 생전의 저평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적과 흑≫ ≪파르므의 승원≫ 등 불멸의 걸작을 남겨 19세기 프랑스 최고 작가로 우뚝 섰다. 자신을 밀라노인이라 칭할 만큼 이탈리아를 사랑했던 그의 열정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783

[작가 스탕달 탄생]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마리 앙리 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훗날 '스탕달'이라는 필명으로 불리며 프랑스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을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다.

1790

[불우했던 유년 시절]

겨우 7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애정 없는 아버지와 엄격한 친척들 밑에서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796

[첫 학교 입학]

그르노블의 대안학교인 에럴 센트롤에 입학하며 새로운 배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99

[최고 명문대 진학 시도]

프랑스의 최고 명문 공과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닉에 입학했으나, 그를 억압했던 그르노블을 떠나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다.

결국 수학 대신 파리를 향한 꿈을 쫓아 파리로 향한다.

1800

[나폴레옹 군대 입대]

나폴레옹 군대에 입대하며 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며 이탈리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데, 이는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14

[군인 생활 종료]

나폴레옹이 추방되자 군대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소설과 평론, 여행기를 쓰며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1821

[이탈리아를 떠나 파리로]

사랑했던 이탈리아를 뒤로하고 파리로 돌아와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준비한다.

1822

[사랑을 탐구한 ≪연애론≫]

자신만의 독특한 연애관을 담은 저서 ≪연애론≫을 출간하며 세상에 스탕달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의 복잡한 연애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1823

[문학 논쟁에 불을 지피다]

≪라신느와 셰익스피어≫를 통해 프랑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문학적 논쟁에 불을 지피며 자신의 비평적 시각을 드러냈다.

1827

[첫 소설 ≪아르망스≫]

최초의 소설 ≪아르망스≫를 발표했지만, 당시 문단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의 독특한 연애관을 엿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1829

[매혹적인 ≪로마 산책≫]

여행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로마 산책≫을 출간하며 이탈리아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눈에 비친 로마의 아름다움과 풍물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1830

[불멸의 명작 ≪적과 흑≫]

세계 최초의 사실주의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적과 흑≫을 출간하며 문단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왕정복고기의 특권계급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한 젊은이의 야망과 몰락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쥘리앵 소렐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스탕달을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 반열에 올렸다.

[다시 이탈리아로]

≪적과 흑≫ 출간 직후,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이탈리아로 다시 떠나게 된다.

그의 삶에 이탈리아는 영원한 안식처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1831

[영사로서의 삶 시작]

오스트리아 트리에스테의 프랑스 영사로 부임하며 외교관으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행정 업무보다는 글쓰기와 사색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835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으며 국가적으로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은 여전히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자서전 집필 시작]

스탕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서전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그의 내면과 사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839

[고향으로의 귀환]

오랜 타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의 말년은 건강 악화와 함께 창작열을 불태우는 시기였다.

[또 하나의 걸작, ≪파르므의 승원≫]

≪라 세르투즈 드 파르메≫(≪파르므의 승원≫)를 출간하며 비평적,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전제군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낭만적인 모험담을 선보여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이 소설은 단 18개월 만에 1,200부가 판매되는 등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며 스탕달의 문학적 명성을 확고히 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정점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치비타베키아로 복귀]

건강 문제로 잠시 고향에 머물렀다가 다시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로 돌아와 영사 업무에 복귀했다.

그의 마음은 늘 이탈리아에 있었다.

[새로운 연대기 집필]

≪라베스 데 카스트로≫를 포함한 세 권의 연대기를 집필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문학적 열정은 말년에도 식지 않았다.

1840

[건강 악화의 시작]

갑작스러운 실신으로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알렸다.

이후 그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1841

[두 번째 뇌졸중 발병]

또 한 번 뇌졸중을 앓으며 그의 건강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휴양을 위해 파리로]

건강 회복을 위해 다시 파리로 돌아와 요양에 들어갔다.

그의 마지막 여정은 고향 프랑스에서 마무리될 운명이었다.

1842

[스탕달의 마지막 여정]

파리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사랑했던 이탈리아를 '제2의 고향'이라 불렀으며, 자신의 묘비명에 '밀라노인'이라고 새기길 바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영혼은 영원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넘나들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스탕달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