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연표
1783
[작가 스탕달 탄생]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마리 앙리 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훗날 '스탕달'이라는 필명으로 불리며 프랑스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을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다.
1790
[불우했던 유년 시절]
겨우 7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애정 없는 아버지와 엄격한 친척들 밑에서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796
1799
[최고 명문대 진학 시도]
프랑스의 최고 명문 공과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닉에 입학했으나, 그를 억압했던 그르노블을 떠나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다.
결국 수학 대신 파리를 향한 꿈을 쫓아 파리로 향한다.
1800
[나폴레옹 군대 입대]
나폴레옹 군대에 입대하며 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며 이탈리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데, 이는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14
1821
1822
[사랑을 탐구한 ≪연애론≫]
자신만의 독특한 연애관을 담은 저서 ≪연애론≫을 출간하며 세상에 스탕달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의 복잡한 연애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1823
[문학 논쟁에 불을 지피다]
≪라신느와 셰익스피어≫를 통해 프랑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문학적 논쟁에 불을 지피며 자신의 비평적 시각을 드러냈다.
1827
[첫 소설 ≪아르망스≫]
최초의 소설 ≪아르망스≫를 발표했지만, 당시 문단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의 독특한 연애관을 엿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1829
[매혹적인 ≪로마 산책≫]
여행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로마 산책≫을 출간하며 이탈리아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눈에 비친 로마의 아름다움과 풍물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1830
[불멸의 명작 ≪적과 흑≫]
세계 최초의 사실주의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적과 흑≫을 출간하며 문단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왕정복고기의 특권계급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한 젊은이의 야망과 몰락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쥘리앵 소렐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스탕달을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 반열에 올렸다.
[다시 이탈리아로]
≪적과 흑≫ 출간 직후,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이탈리아로 다시 떠나게 된다.
그의 삶에 이탈리아는 영원한 안식처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1831
[영사로서의 삶 시작]
오스트리아 트리에스테의 프랑스 영사로 부임하며 외교관으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행정 업무보다는 글쓰기와 사색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835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으며 국가적으로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은 여전히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자서전 집필 시작]
스탕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서전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그의 내면과 사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839
[고향으로의 귀환]
오랜 타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의 말년은 건강 악화와 함께 창작열을 불태우는 시기였다.
[또 하나의 걸작, ≪파르므의 승원≫]
≪라 세르투즈 드 파르메≫(≪파르므의 승원≫)를 출간하며 비평적,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전제군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낭만적인 모험담을 선보여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이 소설은 단 18개월 만에 1,200부가 판매되는 등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며 스탕달의 문학적 명성을 확고히 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정점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치비타베키아로 복귀]
건강 문제로 잠시 고향에 머물렀다가 다시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로 돌아와 영사 업무에 복귀했다.
그의 마음은 늘 이탈리아에 있었다.
[새로운 연대기 집필]
≪라베스 데 카스트로≫를 포함한 세 권의 연대기를 집필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문학적 열정은 말년에도 식지 않았다.
1840
1841
[두 번째 뇌졸중 발병]
또 한 번 뇌졸중을 앓으며 그의 건강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휴양을 위해 파리로]
건강 회복을 위해 다시 파리로 돌아와 요양에 들어갔다.
그의 마지막 여정은 고향 프랑스에서 마무리될 운명이었다.
1842
[스탕달의 마지막 여정]
파리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사랑했던 이탈리아를 '제2의 고향'이라 불렀으며, 자신의 묘비명에 '밀라노인'이라고 새기길 바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영혼은 영원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넘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