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KT 소닉붐
연표
1997
[광주 나산 플라망스 창단 및 첫 시즌 6강 플레이오프 진출]
중소기업은행 농구단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로 구성되어 광주 나산 플라망스가 창단되었습니다. 초대 황유하 감독 체제에서 첫 시즌에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대구 오리온스에게 패배하며 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습니다.
1997년, 프로농구 불참을 선언한 중소기업은행 농구단 선수 12명과 외국인 선수 에릭 이버츠, 에릭 텔리 등 총 14명으로 선수단을 구성하며 광주 나산 플라망스가 창단되었습니다. 현대산업개발 여자 농구단 감독을 역임했던 황유하가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염주종합체육관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첫 시즌, 에릭 이버츠의 골밑 장악과 김상식의 3점포, 이민형, 김현국 등 토종 포워드들의 끈끈한 수비를 앞세워 8승 13패로 5위를 기록하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준 플레이오프에서 대구 오리온스에게 1승 4패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시기 황유하 감독과의 불화로 김남기 코치가 시즌 중 해임되기도 했습니다.
1998
[모기업 나산그룹 부도 및 재정난 심화]
이듬해 시즌을 앞두고 NBA 출신 아도니스 조던 등을 영입했으나, 모기업 나산그룹의 부도로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했습니다. 이로 인해 연습 경기장 매각과 주포 김상식의 트레이드 등 어려움을 겪으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7-1998 시즌을 앞두고 새 코치 김태영을 영입하고 에릭 이버츠와의 재계약을 포기했습니다. NBA 출신 아도니스 조던과 브라이언 부루소를 영입했으나, 부루소의 공격력 부진과 조던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모기업 나산그룹이 최종 부도처리되며 팀은 재정난에 시달렸고, 연습 경기장을 매각하고 주포 김상식을 SBS 스타즈에 트레이드하는 등 선수단 운영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국 21승 24패로 7위에 머물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8-1999 시즌에는 시설이 좋지 않던 염주종합체육관 대신 군산 월명 체육관으로 홈 경기장을 옮겼으나, 연고지 광주는 명목상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1999
[골드뱅크로 구단 매각 및 여수 연고지 이전]
나산그룹의 부도 여파로 구단은 벤처기업 골드뱅크에 매각되며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팀명을 변경했습니다. 이와 함께 연고지를 전라남도 여수시로 완전히 이전하며 광주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1999년, 모기업 나산의 부도로 인해 구단은 벤처기업 골드뱅크에 매각되었습니다. 팀명은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변경되었으며, 연고지도 전라남도 여수시로 완전히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광주광역시에서는 남자 프로농구를 볼 수 없게 되었고, 팀은 군산 월명 체육관과 여수 흥국 체육관에서 임시 홈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2000
[여수 진남 체육관으로 홈 경기장 이전]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는 여수 진남 체육공원 내의 진남 체육관으로 홈 경기장을 옮기며 여수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2000년,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는 전라남도 여수시 진남 체육공원 내에 위치한 진남 체육관으로 홈 경기장을 이전하며 연고지 여수에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2001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팀명 변경]
구단은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팀명을 다시 변경했습니다. 이후 자금난 속에서도 감독대행 체제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2001년, 팀은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팀명을 변경했습니다. 2002-03 시즌에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진효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고 이상윤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이끌었습니다. 외국인 선수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로 팀을 운영했으나, 팀 운영 자금이 부족하여 전형수를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 트레이드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숙소와 전용 연습 시설조차 없이 고등학교 체육관과 동네 헬스장을 이용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규리그 4위를 차지하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6강에서 서장훈이 이끄는 서울 삼성 썬더스를 꺾고 4강에 진출했지만,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03
[부산으로 연고지 이전 및 추일승 감독 부임]
시민 구단으로의 전환이 무산된 후, 구단은 여수를 떠나 부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했습니다. 이상윤 감독대행이 팀을 떠나고 추일승 감독이 새로 부임하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2003년 시즌 후 시민 구단으로 재탄생하려 했으나 여수시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 기아자동차 농구단이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변경되며 부산에서 울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수를 떠나 부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겨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윤 감독대행은 서울 SK 나이츠 감독으로 선임되어 팀을 떠났고, 2003-04 시즌 전 상무 농구단 감독이었던 추일승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이라는 팀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2004
[KTF에 인수되어 부산 KTF 매직윙스로 재창단]
코리아텐더는 KTF에 인수되며 '부산 KTF 매직윙스'로 공식 재창단되었습니다. 이는 팀 역사상 또 한 번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새로운 모기업과 함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2004년 1월 18일, 코리아텐더는 KTF에 공식 인수되었고, 팀명은 '부산 KTF 매직윙스'로 변경되었습니다. 첫 시즌에는 정규리그 8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04-05 시즌에는 애런 맥기와 게이브 미나케 등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으로 KTF 창단 후 처음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서울 삼성 썬더스에 패배하며 4강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05
[세대교체 및 선수단 대규모 변화]
현주엽 선수가 FA로 창원 LG로 이적하고, 원주 동부에서 신기성이 FA로 영입되는 등 대규모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시즌 중에도 황진원, 조상현 선수 영입과 방성윤 선수 트레이드 등 활발한 선수단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5-06 시즌은 팀의 대규모 세대교체 시점이었습니다. 현주엽 선수가 FA 자격으로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했으며,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는 신기성 선수가 FA로 영입되었습니다. 현주엽의 보상선수로 송영진 선수를 데려왔습니다. 시즌 중에는 서울 SK 나이츠에서 황진원, 조상현 선수를 영입하고 김기만, 정락영, 방성윤 선수를 트레이드했습니다. 마크 셀리어스의 대체 용병으로 나이젤 딕슨을 영입하며 팀은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으나, 딕슨의 부상으로 퇴출되는 악재를 겪었습니다. 결국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전주 KCC 이지스에게 패배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06
[홈 구장 사직실내체육관 이전 및 숙소 부산으로 이전]
2006-07 시즌을 앞두고 금정체육관에서 사직실내체육관으로 홈 구장을 이전하며 팬들과의 접점을 넓혔습니다. 또한 숙소도 부산으로 옮겨 연고지 정착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2006-07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팀은 금정체육관에서 부산의 상징적인 스포츠 시설인 사직실내체육관으로 홈 구장을 이전했습니다. 선수단 숙소 역시 부산으로 옮기면서 연고지 정착 노력을 강화했습니다. 조상현 선수가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고, 필립 리치 선수를 영입하는 등 선수단 변화도 있었습니다.
2007
[창단 첫 챔피언 결정전 진출 및 준우승 기록]
2006-07 시즌, 팀은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며 3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창단 이래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승리, 4강,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6-07 시즌, 팀은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며 3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이 시즌은 KTF 창단 후 최고의 시즌으로 평가받는데, 플레이오프에서 창단 첫 승리를 거두고 첫 4강 진출, 나아가 첫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게 우승을 넘겨주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전문가들이 꼴찌 후보로 예상했던 팀이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우승 후보로 점쳐졌으나 줄부상으로 암흑기 진입]
양희승 선수 영입 및 조동현, 김영환 등 주요 선수들의 합류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2007-08 시즌 8위, 2008-09 시즌에는 팀 사상 첫 꼴찌를 기록하며 암흑기에 빠져들었습니다.
2007년,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양희승 선수를 영입하고 황진원, 옥범준 선수를 트레이드했습니다. 조동현, 최민규, 진경석 선수의 제대와 박세원, 김영환, 박상오, 허효진 선수 등을 영입하며 전력이 강화되어 2007-08 시즌에는 우승 후보로 손꼽혔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의 줄부상이 이어지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정규리그 8위로 떨어졌습니다. 2008-09 시즌에도 부상 악재가 계속되면서 팀 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성적을 기록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2009
[전창진 감독 부임 및 부산 KT 소닉붐으로 팀명 변경]
추일승 감독이 계약 만료로 물러난 후, 원주 동부의 전창진 감독이 부임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KTF와 KT의 합병으로 팀명 또한 '부산 KT 소닉붐'으로 변경되어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2009년, 추일승 감독이 계약 만료로 물러나고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계약이 만료된 전창진 감독이 새롭게 부임했습니다. 상무 농구단에서 조성민 선수와 김도수 선수가 제대하여 팀에 합류했습니다. 같은 해, 모기업 KTF와 KT의 합병으로 인해 팀명도 '부산 KT 소닉붐'으로 변경되며 새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전창진 감독의 지휘 아래 2009-10 시즌에 40승 14패를 기록하며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득실차로 밀려 아쉽게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나산의 프로 진출 이후 여러 차례 팀명이 바뀐 끝에 창단 첫 정규리그 최고 성적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4강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게 패배하며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11
[창단 첫 KBL 정규리그 우승 달성]
2010-11 시즌, 에이스 제스퍼 존슨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조직력으로 1위를 지켜왔습니다.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전신 광주 나산 플라망스 창단 이래 처음으로 KBL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2010-11 시즌을 앞두고 신기성 선수가 FA로 이적했지만, 표명일과 박성운 선수를 영입하고 제스퍼 존슨과 재계약하며 전력을 다졌습니다. 10개 구단 중 평균 신장이 가장 작았고, 2011년 2월 27일 에이스 제스퍼 존슨이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두권을 지켰습니다. 2011년 3월 13일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경기에서 87-67로 승리하며, 전신 광주 나산 플라망스 창단 이래 처음으로 KBL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는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스포츠팀 중 14년 만에 나온 우승이었습니다. 이후 3월 20일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80대 65로 승리하며 41승 13패로 대한민국 프로농구 역대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박상오 선수는 정규리그 MVP와 베스트5를, 전창진 감독은 2년 연속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조성민 선수도 베스트5에 선정되었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는 원주 동부 프로미에게 1승 3패로 패배하여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2012
[서장훈 영입 등 선수단 개편, 그러나 최악의 시즌]
포인트가드 보강을 위한 트레이드와 국보센터 서장훈 선수 영입, 드래프트 1순위 장재석 선수 지명 등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으로 인해 창단 최초로 정규리그 9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12-13 시즌을 앞두고 포인트가드 보강을 위해 창원 LG 세이커스와 김현중, 오용준 선수와 양우섭, 김영환 선수를 맞교환하는 2:2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또한 국보센터 서장훈 선수를 영입하고, 박상오 선수를 서울 SK 나이츠로 보내는 대신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얻어 1라운드 1순위로 장재석 선수를 신인으로 맞이하는 등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박상오, 김영환, 양우섭, 찰스 로드 등 주축 선수들의 공백과 부상이 겹치면서 창단 이래 처음으로 정규리그 9위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13
[고양 오리온스와 4:4 대형 트레이드]
2013-14 시즌 중 고양 오리온스와 장재석, 임종일, 김도수, 앤서니 리처드슨 선수와 전태풍, 김승원, 김종범, 랜스 골번 선수를 맞교환하는 4:4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2013-14 시즌 중 팀은 고양 오리온스와 대규모 4:4 트레이드를 실시했습니다. 장재석, 임종일, 김도수, 앤서니 리처드슨 선수를 보내고 전태풍, 김승원, 김종범, 랜스 골번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도수 선수의 약물복용 혐의로 9경기 출장정지 처분이 내려져 오리온스에서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즌, 2014년 1월 29일 전주 KCC 이지스전에서 조성민 선수가 자유투 연속 성공 56개라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정규리그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6강에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꺾었으나 4강에서 창원 LG 세이커스에게 패배하며 플레이오프 징크스를 깨지 못했습니다. 시즌 막바지에는 랜스 골번 선수 대신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뛰었던 후안 파틸로 선수를 영입했지만, 그의 개인플레이로 팀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15
[전창진 감독 시대 마감 및 조동현 감독 부임]
2014-15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후,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전창진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팀을 떠났습니다. 이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였던 조동현이 팀 창단 첫 선수 출신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2014-15 시즌에서 7위로 2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자, KT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주역이었던 전창진 감독과 김승기 수석코치, 손규완 코치가 6년 만에 팀을 떠났습니다. 송영진 선수는 은퇴 후 수석코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2015년 5월,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코치였던 조동현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이는 KT 창단 이래 처음으로 팀 선수 출신이 지휘봉을 잡게 된 사례입니다. 조동현 감독 체제하의 2015-16 시즌에는 7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2016
[전력 약화 및 2년 연속 12연패 암흑기]
전력 보강 실패와 주축 선수들의 누적된 부상으로 팀은 2년 연속 12연패를 기록하는 등 기약 없는 암흑기에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이적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전임 전창진 감독 시절 말부터 이어진 전력 보강 실패와 주축 선수들의 누적된 부상으로 인해 팀은 2년 연속 12연패를 당하는 심각한 침체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016-17 시즌에는 김영환 선수와의 2017 KBL 드래프트 1순위 맞교환을 통해 11년간 팀의 프랜차이즈 슈터였던 조성민 선수를 내보내는 아쉬운 결정을 했습니다.
2017
[허훈, 양홍석 동시 지명 및 조동현 감독 사퇴]
2017 KBL 드래프트에서 1순위와 2순위 지명권을 모두 확보하여 유망주 허훈과 양홍석 선수를 동시에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최저 성적을 기록하며 조동현 감독이 쓸쓸히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송영진 수석코치도 팀을 떠났습니다.
2017년, 팀은 2017 KBL 드래프트에서 1순위와 2순위 지명권을 모두 얻게 되어 유망주 허훈 선수와 양홍석 선수를 동시에 지명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문제로 인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였던 이재도 선수마저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2017-18 시즌에는 창단 최저 성적인 10승 44패를 기록하며 부진이 이어졌고, 결국 조동현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오랜 시간 팀과 함께했던 송영진 수석코치도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KBL 연고지 정착 정책 발표 및 수원 이전 논의 시작]
KBL이 연고지에서 훈련과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연고지 정착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KT는 스포츠단 숙소가 있는 경기도 수원시로 연고지 이전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3월 9일, KBL은 모든 프로농구단이 연고지에서 훈련과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연고지 정착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KT는 기존 클럽하우스 및 스포츠단 숙소가 위치한 경기도 수원시로 연고지 이전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홈 구장은 아마추어 및 여자농구 경기 이력이 있던 수원KT소닉붐아레나(서수원칠보체육관)으로 옮기는 방안이 논의되었습니다.
2018
[서동철 감독 부임 및 젊은 선수단 성장]
WKBL KB 스타즈 감독을 역임했던 서동철 감독이 새로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김영환을 중심으로 허훈, 양홍석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목표로 로스터를 개편하며 침체기에서 벗어나 3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18년, WKBL KB 스타즈를 결승에 올리고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서동철 감독이 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많았던 팀 로스터를 김영환 선수를 중심으로 허훈, 양홍석 선수의 성장을 목표로 대폭 개편했습니다. 준수한 외국인 선수 영입과 팀 포지션 밸런스를 맞추면서 팀은 침체기에서 벗어나 2018-19, 2019-20, 2020-21 시즌 3년 연속 정규리그 6위를 기록했고, 두 번의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2019-20 시즌 농구영신 게임에서는 부산 사직체육관에 많은 관중을 유치하며 승리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2021
[부산 사직 시대 마감, 수원으로 연고지 이전 단행]
2020-21 시즌을 끝으로 구단은 부산 사직 시대를 마무리하고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충격적인 결정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대관료 문제와 수원 클럽하우스 및 야구팀 kt 위즈와의 연계 문제를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2020-21 시즌 종료 후, 구단은 부산 사직체육관 대관료 문제와 수원에 위치한 클럽하우스인 kt 빅토리움, 그리고 형제 야구팀인 kt 위즈와의 연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을 떠나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은 농구 팬들에게 큰 충격과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일부 부산 농구 팬들은 불매 운동을 벌이거나 다른 팀을 응원하는 등 팬덤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홈 구장은 수원KT소닉붐아레나(서수원칠보체육관)으로 옮겨졌으며, 사직실내체육관은 WKBL 부산 BNK 썸의 홈 구장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22
[수원 이전 첫해 정규리그 2위 및 KBL 컵대회 우승]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첫 시즌인 2021-22 시즌 정규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연착륙했습니다. 또한, 2022년 KBL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연고지에서의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첫 시즌인 2021-22 시즌, 팀은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며 새로운 연고지에서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KBL 리그 최고 인기스타인 허훈 선수와 양홍석 선수의 팬덤은 여전했으며, 수원에서도 많은 농구 팬들이 경기를 찾아 응원했습니다. 또한, 2022년에는 KBL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수원에서의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2022-23 시즌에는 허훈 선수의 상무 입대 공백과 외국인 선수 문제로 인해 6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습니다.
2023
[서동철 감독과의 동행 종료 및 송영진 감독 승격]
5년간 팀을 이끌었던 서동철 감독과의 동행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팀의 프랜차이즈 출신이자 수석코치였던 송영진이 감독으로 승격되며 새로운 리더십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2022-23 시즌 6강 플레이오프 탈락 후, 팀은 서동철 감독과의 5년 동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어서 팀의 프랜차이즈 출신이자 수석코치였던 송영진이 감독으로 승격되며 새로운 리더십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2024
[KBL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
2023-24 시즌 KBL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리그 최정상급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2023-24 시즌, 수원 KT 소닉붐은 KBL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최종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준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강한 전력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