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헌 (1872년)
연표
1872
1872년 음력 10월 29일(양력 11월 29일), 훗날 대한제국 관료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송지헌이 태어났다. 그의 호는 회당이며, 본관은 은진 송씨로 송시열의 후손이다.
1902
1902년 대한제국의 관료로 내부 주사 직책을 맡았다.
1906
1906년 대한제국 내부 참서관 직책을 수행했다.
1907
[일본 내무성 시찰 및 내부 서기관 승진]
일본 내무성을 시찰하고 같은 해 대한제국 내부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이는 개화파적 성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찍이 일본과의 교류를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1907년 일본의 내무성을 사무시찰했으며, 같은 해 대한제국 내부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1908
[친일 성향 발언으로 논란]
문관전고소 위원을 역임했으며, 의병장 민긍호가 일본군에 살해당했을 때 일본인 앞에서 이를 축하하는 발언을 하여 친일 성향을 드러냈다.
1908년 문관전고소 위원을 역임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같은 해 의병장 민긍호가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자 일본인 앞에서 이를 축하하는 발언을 하는 등 일찍이 친일 성향을 보였다. 송지헌은 남보다 먼저 머리를 깎았다가 부인에게 외면당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개화파에 속하는 관료였다.
1910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1910년,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통치 자문기관으로 설치한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되었다.
1912
한일 병합 직후인 1912년, 송지헌은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4
1914년 중추원 일본시찰단에 포함되어 일본을 다녀왔다.
1915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 참가]
한일 병합 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에 부회원으로 참여하고 10원을 기부했다.
1915년 한일 병합 5주년을 기념해 열린 시정5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에 부회원으로 참가하여 10원을 기부했다.
1916
[반도사편찬사업 조사주임 임명]
조선총독부의 반도사편찬사업 조사주임에 임명되어, 일본과 조선이 한 뿌리임을 보이고 일본과의 합병으로 조선인이 행복을 얻었다는 식민사관 연구를 보조했다.
중추원 부찬의로 근무 중이던 1916년, 조선총독부의 반도사편찬사업에 다른 중추원 임원들과 함께 조사주임에 임명되어 일본인 학자들의 연구를 보조했다. 이 연구는 식민지 경영에서 물질적 경영뿐 아니라 정신적 교화도 필요하다는 취지로, 일본인과 조선인이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이고 일본과의 합병에 이르러 비로소 조선인이 행복을 얻었음을 서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1919
1919년 유교 계열의 친일단체인 대동사문회에 발기인 및 임원으로 참가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20
1920년 중추원 일본시찰단에 포함되어 일본을 다시 다녀왔다.
1921
[조선총독부 중추원 주임대우 참의 재임]
중추원 편제가 개편될 때 주임대우 참의가 되어 사망할 때까지 약 13년간 재임하며 중추원에서 총 약 24년간 활동했다.
1921년 중추원 편제가 개편될 때 주임대우 참의가 되어 1934년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중추원에 재직한 총 기간은 약 24년에 이른다.
1926
1926년 한일 양국의 유력 인사들이 모여 결성한 또 다른 친일단체인 동민회에도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1926년 2월 18일, 이완용 후작 장례식 장의역원을 정할 때, 장의위원회 회장자접시원의 한 사람으로 진행에 참여했다.
1928
1928년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기념대례장을 수여받았다.
1931
1931년 조선유림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되며 유교 계열의 유력 인물로 인정받았다.
1932
1932년 조선유교회 명리원 법정에 임명되었다.
1934
1934년 11월 26일,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재임 중 사망했다.
2002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7
[친일반민족행위자 공식 선정]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선정되어 공식적으로 규명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선정되었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