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정치인)
연표
1963
[출생]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이며, 본인은 음력 생일로 실제로는 1963년 4월 14일에 태어났다고 주장합니다.
송영길은 1963년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에서 출생했습니다. 주민등록에 신고된 생년월일은 1963년 3월 21일이나, 송영길 자신은 이는 음력 생일로 실제로는 1963년 4월 14일에 태어났다고 주장합니다.
1984
[연세대학교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 선출]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총학생회장을 학생들이 직선으로 선출하도록 바꾸는 운동을 주도하여 연세대학교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송영길은 1984년 고려대 김영춘, 서울대 이정우 등과 함께 학도호국단을 해체한 후 총학생회장을 학생들이 직선으로 선출하도록 고치는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어 반군사독재학생운동을 이끌었습니다.
1985
1985년 송영길은 연세대학교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서 반군사독재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구속, 수감되었고, 학교에서 제적되었습니다. 같은 해 서울역과 종로 등에서의 반정부 시위와 민정당사 점거 농성 사건에 관련되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노동운동 시작]
석방된 후 인천 부평에 있는 대우자동차 르망공장 건설현장에서 배관용접공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로 활동했습니다.
1985년에 석방된 송영길은 인천 부평에 있는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르망공장 건설현장에서 배관용접공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외에도 장갑 공장, 가구 공장 등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1987
[6월 항쟁으로 사면 복권 및 학위 취득]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사면 복권되었고,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업을 마무리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송영길은 사면 복권되었고, 대학교에서도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 개소]
독일의 인권재단 도움으로 인천 부평에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를 열어 노동자들의 인권탄압 관련 법률 상담, 구제 활동, 노동조합 관련 교육 및 법적 지원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1987년에 독일의 인권재단의 도움으로 인천 부평에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를 열었습니다. 그는 이 연구소에서 노동자들의 인권탄압관련 법률상담, 구제활동과 노동조합 관련 교육, 법적지원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택시노동조합 운동 시작]
운수노조 노보 상담실장을 맡아 택시노동조합 운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운수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들을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1987년부터는 운수노조 노보 상담실장을 하며 택시노동조합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택시, 버스, 화물자동차 운전기사 등 운수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활동들을 전개했습니다.
1991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습니다.
[동유럽 배낭여행 및 사상적 변화]
한 달간 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공산주의 진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인천지역 노동운동가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1991년 동유럽으로 한 달 간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송영길은 공산주의 진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인천지역 노동운동가들과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1992
가족과 아내의 권유로 1992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택시노련에서는 송영길의 결심에 대한 찬반표결을 결정할 정도로 그의 당시 영향력은 컸다고 전해집니다.
1994
송영길은 2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한 끝에 1994년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97
[인천에서 변호사 활동 시작]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인천으로 내려가 변호사로서 지역 운동에 투신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1997년에는 다시 인천으로 내려가 변호사로서 지역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했고, 전국민주택시노련 고문변호사, 인천 계양구 건축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1998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및 정치 활동 시작]
새정치국민회의 인천시지부 정책실장 겸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며 제도권 정치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1998년부터는 새정치국민회의 인천시지부 정책실장 겸 고문변호사가 되어 제도권 정치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199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 및 낙선]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1999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인천 계양강화갑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습니다.
1999년 6월 3일 국민회의 후보로 1999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인천 계양강화갑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의 안상수(전 인천시장)에 밀려 낙선했습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1억원 수수]
재보궐선거 출마 당시 대우자동차판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사장 전 모씨를 통해 후원금으로 1억원 수수했으나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은 혐의로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1999년 6월 3일 보궐선거 출마 당시 대우자동차판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사장 전 모씨를 통해 후원금으로 1억원 수수했으나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은 혐의가 있었습니다. 자금 수수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제16대 총선 전 유권자에게 향응 제공]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생고기집에서 녹색어머니회원 12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유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했습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99년 12월 27일 송영길은 생고기집에서 녹색어머니회원 12명에게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유권자에게 63만원 상당의 축구공, 10여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선거구민에게 금품을 제공했습니다.
2000
[제16대 총선 전 사전선거운동]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학부모 34명에게 선거 공약을 발표하고 명함 20장을 배포하여 사전선거운동을 했습니다.
2000년 2월 16일에서 18일에는 학부모 34명에게 선거 공약을 발표하며 명함 20장을 배포하며 사전선거운동을 하였습니다.
[제16대 국회의원 당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인천 계양구, 새천년민주당)
송영길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돼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인천 계양구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습니다.
[5·18 전야제 술파티 파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 전야에 광주광역시의 한 유흥업소 술자리에 참석하여 논란이 일었습니다.
2000년 5·18 전야제 술파티 파문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 전야에 이른바 대한민국의 386 세대 유력 정치인들이 광주광역시 내 유흥업소 '새천년NHK' 가라오케의 술좌석에 참석하여 논란이 된 사건입니다. 이날 술자리에는 김민석, 김태홍, 정범구, 송영길, 장성민, 김성호, 이종걸 등 386 의원 및 당선자를 비롯, 당시 당내 총무 경선에 나섰던 이상수 의원, 우상호 지구당위원장, 노동시인 박노해 등 10여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01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대응]
국회 차원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시정대책특위 활동에 참여하여 일본 정부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대처를 요구했으며,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에 참석하여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을 강조했습니다.
송영길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 사과하지 않고, 왜곡된 역사 교과서 편찬과 독도 망언을 하자 국회차원의 일본교과서왜곡시정대책특위 활동을 통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식민지잔재 청산문제에 대해 동료의원들과 함께 결의안을 내고, 정부의 즉각적인 대처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특위를 통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과 군대 위안부 만행, 역사 왜곡 문제를 폭로하는 내용이 담긴 CD를 해외 600여 곳에 발송하여 일본이 한국 및 과거 역사의 아픔을 겪었던 기타 국가에 대한 반성과 전 세계적 동참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는 일본의 과거사 반성 이외에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에 참석하여 향후 한일간 새로운 동반자로서 문화를 비롯한 다방면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제안하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을 함께 강조하였습니다.
`아시아 역사법정' 설립을 제안하며 역사적 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02
[김우중 1억원 수수 혐의 발표]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특별수사본부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의 1억원 수수 혐의를 발표했습니다.
2002년 4월 9일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특별수사본부는 송영길의 자금 수수 혐의를 발표했습니다.
[유권자 향응 및 사전선거운동으로 벌금형]
유권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2002년 6월 24일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벌금형 확정]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파기환송심에서 유권자 향응 제공 및 사전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2002년 12월 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송영길의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2003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및 추징금 선고]
김우중 1억원 수수 사건과 관련하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에서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2003년 1월 14일 서울지방법원 형사단독 11부는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송영길에게 벌금 1천만 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이라크 전쟁 반대 성명서 및 결의안 작성]
부시 미행정부의 대이라크 전쟁 반대 성명서 및 결의안을 작성하여 국내외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부시 미행정부의 대이라크 전쟁 반대 성명서 및 결의안을 작성하여 국내․외 동참을 호소하였습니다.
정부가 한미동맹을 고려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독자적인 의원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라크 현황에 대한 파악을 시작으로 부시 미행정부의 대이라크 전쟁 반대성명서 및 결의안을 작성하여 국내․외 동참을 호소하였습니다. 그 후 송영길 의원이 단장을 맡은 국회 이라크 현지조사단원을 꾸려 이라크 방문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를 비롯한 조사단원들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없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전하였습니다.
첫 저서인 《그래 황소처럼 이 길을 가는거야》를 다인아트에서 출간했습니다.
송영길 의원이 단장을 맡은 국회 이라크 현지조사단원을 꾸려 이라크 방문을 결정하였습니다.
2004
[제17대 국회의원 당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인천 계양구 을, 열린우리당)
2004년 17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구 을 지역구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당선되며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총선시민연대는 송영길을 공천반대자 명단에 넣고 낙선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7대 총선 전 사전선거운동으로 벌금형]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인천지방법원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송영길은 자신이 낙천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 부당하다며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지지하거나 추천하는 내용이 기재된 의정보고서 10만부를 배부해 선거 전 사전선거운동하였습니다. 2004년 11월 19일 인천지방법원 형사합의 3부는 송영길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하였습니다.
2006
2006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열린정책연구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했습니다.
[17대 총선 전 사전선거운동 벌금형 확정]
대법원에서 17대 총선 전 사전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벌금 70만원이 확정되었습니다.
2006년 11월 23일 대법원 1부는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으로 송영길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였습니다.
2007
2007년 2월 16일부터 2007년 7월 16일까지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을 역임했습니다.
[버마 민주화운동 지지]
80년대 독재정권 시절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했던 동료 의원 13명과 함께 버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고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2007년, 그는 80년대 독재정권 시절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했던 동료의원들 13명과 함께 버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내용의 결의안 공동 발의하고, 성금을 모아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에 전달했습니다.
2008
송영길은 2007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을 맡아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고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 차세대를 이끌 '386 리더'로 입지를 굳혔으며, 민주당 내 소장 개혁파 의원들의 모임인 '개혁과 미래'를 이끌었습니다.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통합민주당 소속)
2008년 18대 총선에서 386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하는 상황에서도 인천 계양을에서 3선에 성공했습니다.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아웅산 수지 가택연금 해제 촉구]
민주당을 중심으로 군사정권에 의해 연금 상황에 처해있던 버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 해제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습니다.
2008년 10월, 민주당을 중심으로 군사정권에 의해 13년째 연금 상황에 처해있는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해제 촉구와 불의에 굴하지 않고 투쟁하는 버마 민주시민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국회의원 35명의 명의로 반기문 UN사무총장과 버마 군사정부에게 민주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 버마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전했습니다.
2009
2009년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5등급) 훈장을 수훈했습니다.
[18대 총선 전과 누락 혐의 기소]
18대 총선 홍보책자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경력만 적고, 절도와 공문서변조 전과를 뺀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2009년 1월 6일 18대 송영길은 제18대 총선에서 홍보책자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경력만 적고, 절도와 공문서변조 전과를 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송영길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시절 현상수배가 되었을 때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친구한테서 형의 주민등록증을 받아 내 사진을 붙이고 다니다가 안기부에 체포된 뒤 '내가 친구 형 주민등록증을 가져온 것'이라고 진술해 절도죄 등이 된 것'이라며 "선거 전에 경찰서에서 전과조회를 해보니 집회시위법 위반 혐의만 나왔고, 선관위에서도 조회결과만 신고하면 된다고 유권해석했던 사안"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용산참사 대책위원장 활동]
용산참사 관련 민주당 대책위원장을 맡아 장례 절차 및 유가족 보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09년에 발생한 용산참사 관련 민주당 대책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서울시를 상대로 오랜시간 지연된 장례절차 및 유가족 보상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최우수상 수상]
시장경제와사회안전망포럼 공동대표로서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2009년 시장경제와사회안전망포럼(대표의원 민주당 송영길, 한나라당 임태희)에서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 박연차 게이트 비판 발언]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 친형의 뇌물 수수 및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대해 대가성 여부 명백히 가려야 한다며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이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과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대해서 송영길은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이때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송영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연유로 돈을 받았는지, 대가성 여부가 명백히 가려야 한다. 검찰은 편파적으로 수사해선 안 되며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하다."라며 주장했습니다.
[18대 총선 전과 누락 혐의 항소심 선고유예]
18대 총선 홍보책자 전과 누락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50만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1심에서 송영길은 벌금 50만 원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재판부는 송영길이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악의로 누락한 것이 아니라 경찰 공무원의 착오로 관련 기록이 잘못 교부된 점과 16ㆍ17대 총선에서 해당 전과에 대해 이미 공개 및 해명이 이뤄진 점 등을 참작해 벌금 50만 원의 형을 선고유예했습니다.
저서 《벽을 문으로 - 송영길 새로운 도전과 비전》을 중앙북스에서 출간했습니다.
2010
2010년 4월 12일 인천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승리하기 위해 출마했다며 출마동기를 밝혔습니다. 수도권 3곳 중 서울, 경기지역의 민주당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천에서부터 확실한 승리의 바람을 일으켜 서울과 경기의 승리를 이끌고 나아가 정권교체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출마를 선언하면서 중소기업육성 및 구도심과 도심의 균형발전을 통한 일자리 창출, 복지서비스 확충, 교육경쟁력 강화와 친환경무상급식실시 등 대한민국 경제수도 인천을 만들기 위한 인천시장으로서의 포부도 밝혔습니다.
2010년 6월 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에 8.3% 앞서 인천시장에 당선되었습니다.
민선 5기 인천광역시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대북지원사업 물꼬]
남북평화재단과의 협약을 통해 북한 평양산원의 산모 및 영유아들에게 물품을 지원하며 천안함 사태 이후 단절되었던 대북지원사업의 물꼬를 텄습니다.
2010년 인천시장으로 당선된 후 남북화해와 교류, 평화와 통일의 전진기지 역할을 자임해온 송영길시장은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서해5도의 평화가 보장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남북평화재단과의 협약을 통해 북한 평양산원의 산모, 영유아들에게 물품을 지원함으로써 천안함 사태이후 단절된 대북지원사업의 물꼬를 텄습니다.
[연평도 포격 폭탄주 발언 논란]
폐허가 된 연평도 민간인 가게 앞에서 북한 포격으로 그을린 소주병을 들고 '어!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송영길은 폐허가 된 연평도의 한 민간인 가게 앞에서 북한의 포격으로 그을음을 뒤집어 쓴 소주병을 들며 '어!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연평도 학생 기부금 사용 논란]
연평도 학생 107명에게 백화점에서 옷과 신발 등을 사주면서 기부자 이름을 밝히지 않아 자신이 사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기부금 사용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2010년 12월 2일 조선일보는 송영길이 "연평도 학생 107명에게 백화점에서 옷과 신발등을 사주면서 기부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이 연평도 학생들에게 옷가지를 사준 것처럼 기부금을 사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11
[삼성바이오 합작사 인천 송도 유치]
삼성그룹의 바이오신약 개발 목표에 맞춰 인천 송도에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전담하는 삼성바이오 합작사를 유치했습니다. 삼성은 송도에 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2011년 2월 인천에 삼성바이오 합작사를 유치했습니다.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바이오신약 개발 목표를 세운 삼성그룹이 인천 송도에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전담하는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플랜트 건설에 1조원, 바이오시밀러 개발사업에 1조원 등 모두 2조원을 인천 송도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당초 삼성측은 “송도로 갈 가능성은 1% 정도”라고 밝혔으나, 송 시장은 송도가 바이오테크놀로지(BT)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청사진과 기반시설 등을 가지고 삼성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결국 유치를 이뤄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규모 축소]
인천 아시안게임의 대회 규모를 대폭 축소(6358억원 감축)하여 재정난 극복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재정난의 주요원인이 되었던 아시안게임의 대회규모를 대폭 축소(6358억원 감축)하였습니다.
[베트남 성접대 의혹 관련 백석두에 징역형 선고]
백석두가 제기한 '송영길 시장 베트남 성접대 의혹'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인천지법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011년 5월 13일 인천지법은 백석두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GCF 대한민국 유치 제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GCF(녹색기후기금) 설계위원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여하여 대한민국이 GCF를 유치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하며 유치전의 물꼬를 텄습니다.
2011년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GCF 설계위원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여하던 최강해 기획재정부 대외협력관이 "대한민국이 GCF를 유치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하고 재정부 장차관들은 곧바로 호응했습니다. 국내 후보지로는 서울과 인천이 꼽혔습니다.
[연평도 학생 기부금 사용 논란 해명]
연평도 학생 기부금 사용 논란에 대해 민간인 기부자가 대금을 지급한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2011년 10월 29일 송영길은 "민간인 기부자가 연평도 학생들이 구매한 신발 등의 대금을 지급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서, 송 시장은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 자치단체장으로서 연평도 학생들을 지원 격려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 연평도 학생들에게 옷가지를 사 주었을 뿐, 기부자가 기부금을 낸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연수신문 '베트남 성접대 의혹' 정정보도]
연수신문은 백석두 후보가 제기했던 '송영길 베트남 성접대 의혹' 기사에 대해 어떠한 증거도 사실로 확인된 바 없다며 정정보도를 했습니다.
2심 판결 이후인 2011년 11월 1일 연수신문은 "위 내용에 관하여 어떠한 증거가 나온 사실이나 그 어떤 부분도 사실로 확인된 바 없는 것으로 밝혀져 본사는 향후 다시는 이러한 정정보도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임을 시민들에게 약속한다"라고 정정보도했습니다.
2012
[인천시 FDI 유치 실적 전국 2위 달성]
인천시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실적이 전국 2위를 기록하며 인천시 역사상 사상 최대 투자유치액인 34억 3천만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인천시 외국인 직접투자유치(FDI) 확대 성과를 거뒀습니다. 2012년 인천시는 경기도를 앞질러 외국인 투자유치 실적 전국 2위를 차지했고 2013년 1분기에는 14억6900만달러로 전국 1위를 기록했습니다. 송영길 인천시장 취임전인 2009년 인천시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수치는 신고액 기준 9억2천만불로 전국시도 중 4위 수준이었으나 2012년 인천시 역사상 사상최대 투자유치액을 기록(34억3천만불)한 이후부터는 전국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인천시의 실질적인 부채가 11조 7,300억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공무원 수당을 삭감하는 등 자구책 노력에 나섰습니다.
[세계최초 GCF 사무국 인천 송도 유치]
치열한 국제 경쟁 끝에 독일 본을 제치고 인천 송도가 GCF(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연간 3천8백억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추정했습니다.
결국 결선투표에서 독일의 본 대신 송도가 GCF 사무국을 유치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국제기구 불모지인 한국이 독일 등 강대국과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 승리자가 됐습니다. 이 때문에 2012년 국제기구 유치전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주재원 500명을 기준으로 연간 3천800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2013
[한국인 최초 러시아 오르지나 드루쥐비 훈장 수훈]
한러 친선 증진 공로로 러시아 오르지나 드루쥐비 훈장(러시아에서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격의 훈장)을 한국인 최초로 수훈했습니다.
2013년 러시아 오르지나 드루쥐비 훈장(러시아에서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격의 훈장)을 한국인 최초로 수훈했습니다.
[인천시 재정 정상화 및 흑자 전환]
인천시의 부채를 4,506억 원 감소시키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800억 원 흑자로 전환시키는 등 재정 정상화에 성공했습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3년에 4,506억 원 부채를 감소하고, 인천시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부채가 줄고 800억 흑자로 전환됐었습니다. 인천시는 구조조정이 시행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인천시의 부채가 21조에 달했을 것으로 밝혔습니다.
재정난 해소를 위해 인천터미널 부지를 9천 억원에 매각하기도 하였습니다.
[대법원, '성접대 의혹' 허위사실 판결]
대법원은 백석두가 제기한 '성접대 의혹'이 허위사실이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3년 4월 11일 대법원은 백석두가 제기한 ‘성접대 의혹’이 허위사실이라고 판결내렸습니다. 법원은 "증인 진술과 검사 제출 증거들을 종합하여 보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이 사건 성매매사실이 허위라고 인정할 수 있는 증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은 "성매매 사실의 존재는 그 신빙성이 충분히 탄핵되었다고 할 것이고, 백씨는 구체성 있는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원심은 의혹을 제기한 백씨가 제출한 소명자료가 성매매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자료인지 살펴보지 아니한 채 무죄로 판단한 위법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국 최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인천시는 2015년까지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1131명의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히며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습니다.
전국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습니다. 2013년 5월 인천시는 오는 2015년까지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1131명의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4월 1일에는 인천교통공사가 전국 공기업 중 최초로 민간위탁용역 근로자 265명을 기간제 근로자로 전환한 바 있으며, 이들은 2015년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습니다.
[외국인 투자유치 전국 1위 달성]
2013년 1분기에 14억 6900만 달러의 외국인 투자유치 실적을 기록하며 전국 1위에 올랐습니다.
2013년 1분기에는 14억6900만달러로 전국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13년 하반기에는 정규직 전환대상자 1522명 중 919명의 정규직 전환을 완료했습니다.
[세계은행 한국사무소 인천 송도 유치]
세계은행 한국사무소를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울시와의 경쟁 끝에 인천 송도가 다시 국제기구 유치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세계은행과 한국사무소 설치를 합의했는데, 후보지로는 서울과 인천이 다시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송영길은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면담을 통해 물꼬를 튼 후 세계은행의 4차례 송도 실사를 거치며 자존심 회복을 노린 서울시와의 경쟁에서 다시 승리했습니다.
저서 《룰을 지배하라 - 생존경쟁시대에 대처하는 송영길의 경영전략》을 중앙북스에서 출간했습니다.
2014
[인천시장 낙선 및 중국 칭화대 유학]
제6회 인천광역시장 지방선거에서 유정복 후보에게 1.75% 차이로 낙선한 후, 중국 칭화대로 1년간 유학을 떠났습니다.
2014년 제6회 인천광역시장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유정복 후보에 1.75%차로 낙선한 후, 중국 칭화대로 1년간 유학을 떠났습니다.
저서 《경제수도 인천 미래보고서》를 시륜에서 출간했습니다.
제5대 인천광역시장 임기를 마쳤습니다.
2015
1년 후인 2015년 귀국했습니다.
['먹고사는문제 연구소' 개소]
여의도에 '먹고사는문제 연구소'를 개소하고 민생 정책 개발과 정치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0월에는 여의도에 '먹고사는문제 연구소'를 개소해 중국 유학기간 동안 구상한 민생 정책 개발과 함께 정치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거·복지·일자리 정책을 비롯해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저서 《송영길의 누구나 집 프로젝트》 출간]
저서 《송영길의 누구나 집 프로젝트 - 깨어 있는 미래 함께하는 공유경제》를 출간했습니다.
저서 《송영길의 누구나 집 프로젝트 - 깨어 있는 미래 함께하는 공유경제》를 미래플러스미디어에서 출간했습니다.
2016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출마 선언]
자신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출마를 선언하며, 총선 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도전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2016년 3월 1일 자신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험지 출마를 고려하였으나, 송영길 의원의 만류에도 최원식 의원이 탈당하자 계양을 지역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출마선언에서 총선 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도전할 것을 천명하고, 인천 전체 선거에 무한책임을 지며, 인천 정치를 복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대 총선 중 금지 장소 선거운동]
20대 총선 예비후보 신분으로 인천도시철도 1호선 경인교대입구역 개찰구 앞 등 금지된 장소에서 명함을 배포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20대 총선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송 의원은 20대 총선 예비후보 신분이던 2016년 3월 3일 선거사무소 자원봉사자 등과 함께 인천도시철도 1호선 경인교대입구역 개찰구 앞 등지에서 자신의 명함 605장을 유권자들에게 나눠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명함배포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지하철 역사 내부와 중앙선관위 규칙으로 정한 병원, 종교시설, 극장 등지에서의 명함 배포 및 지지 호소는 할 수 없습니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및 국회 복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당선되며 4선 국회의원이자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했습니다.
2016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 계양을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윤형선 후보를 12%차로 누르고 승리했습니다. 이로서 2010년 인천시장 출마이후 6년만에 국회에 복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 출마 선언]
"강한 야당을 만들어 정권교체에 헌신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2016년 7월 24일 "강한야당을 만들어 정권교체에 헌신하겠다"며 당대표 경선 출마선언을 했습니다.
당초 유력 후보로 분류되었으나, 예비 경선에서 탈락 했습니다. 범주류 후보로 선두그룹으로 분류되던 송영길 후보의 예비경선 탈락은 이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당내에서는 송 후보의 컷오프 이유로 크게 친노(친노무현) 표 분산과 비주류 대표주자를 자처한 이종걸 의원의 막판 출마로 인한 비노(비노무현) 진영 결집, 역선택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20대 총선 선거법 위반 벌금형 선고]
20대 총선 금지 장소 선거운동 혐의로 1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20대 총선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벌금 90만원에 처해졌습니다.
2017
2017년 2월 8일 문재인 대선 경선후보의 경선사령탑인 총괄선대본부장에 임명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삼고초려를 통해 송영길 의원을 영입했다고 알려졌으며, 송 의원은 "경선출마 여부도 고민했지만 문 후보를 통해 정권교체의 희망을 이루는데 협력하기로 결정했다"며 "문 후보를 도와 대한민국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특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초대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취임]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북방경제협력을 추진했습니다.
2017년 8월 25일부터 2018년 7월 24일까지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2018
2018년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2020
[한국지엠 트레일블레이저 구입]
21대 총선을 앞두고 인천 지역 경제 활성화 일환으로 한국지엠에서 출시된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1대를 구입했습니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1월에 한국지엠에서 소형 SUV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의 출시 및 부평공장 생산을 확정짓자, 인천 지역 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1대를 구입하여 화제가 됐습니다.
저서 《송영길의 지구본 외교, 둥근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를 메디치에서 출간했습니다.
[제21대 국회의원 당선 (5선) 및 인천 지역구 최다선 기록]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당선되며 5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1981년 인천 직할시 승격 이후 한 지역구에서 5선 이상 성공한 유일한 기록입니다.
송영길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득표율 51,821표(58.67%)를 기록했으며, 미래통합당 윤형선 후보를 18,000표 차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송영길은 1981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된 후 한 지역구에서 5선 이상 성공한 유일한 의원이 되었습니다. 인천지역 정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인천에서 5선 이상 당선된 의원은 6선의 김은하 전 국회부의장과 5선의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 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황우여는 전국구 의원으로 의정 생활을 시작했고 인천 지역구에서 당선된 것은 16~19대까지 4번입니다.
[동성 성추행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논란]
뉴질랜드 주재 고위 외교관의 동성 성추행 의혹에 대해 '남자끼리 엉덩이를 툭툭 친 수준'이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일었습니다.
2020년 8월경 불거진 뉴질랜드 주재 고위 외교관의 동성 성추행 의혹에 대하여 “남자끼리 엉덩이를 툭툭 친 수준”이라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발언하여 류호정 정의당 의원 등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송영길 의원은 발언과 관련해 SNS에 사과문을 게시해 '발언의 의도는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성추행 문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였으나 예시가 부적절했다는 측면에서 사과드린다.'고 하며 '원칙 있는 문제 해결을 약속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021
2021년 5월 2일부터 2022년 3월 10일까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어린이날 아동복지센터 방문 및 발언]
99회 어린이날을 맞아 아동복지센터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출생률 및 아이들 양육 문제에 대한 발언을 했습니다.
송영길은 99회 어린이날을 맞은 21년 5월 5일, 아동복지센터를 찾은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출생률이 최저라고 하는데, 나아준 아이들도 못 키우면 도리가 아니라고"발언, "부모의 심정으로 잘 돌봐주신 우리 아동복지센터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저희가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계속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광주 건물 붕괴 사고 관련 '엑셀 조금만 밟았어도' 발언 논란]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와 관련하여 '운전자의 본능적 감각으로 엑셀레이터만 조금 밟았더라도 살아날 수 있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2021년 6월 9일 광주광역시에서 재개발사업으로 철거 중이었던 건물이 붕괴되어 시내버스 한 대가 참사를 당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에 대해 송영길은 6월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운전자의 본능적 감각으로 뭐가 무너지면 액셀레이터만 조금 밟았더라도 사실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하필 버스정류장 앞에 이런 공사 현장이 돼 있었다”라는, 인명피해가 난 책임을 사고 시내버스 기사에게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대해 사고 시내버스 기사의 유가족들은 송영길의 발언에 분노가 치민다면서 "당대표 자리에 있는 만큼 부끄러움을 알라"고 하였고, 야당 국회의원 일부는 "책임을 버스 운전기사에게 전가하냐면서, 참사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2차 가해나 다름없는 망언"이라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송영길 측에서는 악의적 언론참사라면서, "버스 정류장을 철거현장에 그냥 방치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버스 운전기사 개인을 탓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해명하였습니다.
[윤석열 후보 돌상 '엔화' 허위사실 유포 논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어린 시절 돌잔치 때 엔화가 올라왔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았으며, 이에 대해 실수를 인정하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어린 시절 돌잔치 때 엔화가 올라왔다면서, 윤석열 후보가 상대적으로 부유층이며 일본과 가까운 가정에서 자랐다고 주장하고자 하였으나, 해당 화폐가 엔화가 아니라 예전 대한민국 화폐였던 "대한민국 환" 이었던 것이 드러나 송영길은 허위사실을 유포한 셈이 되었습니다. 결국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되었고, 이에 대해 송영길은 “실수를 인정하고 유감을 표했다.” 윤석열을 ‘친일’ 프레임을 씌우려다 스텝이 꼬였으며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한·일전’ 프레임으로 효과를 본 뒤 한 번 더 야당을 ‘친일’로 몰아세우려다가 되레 반격의 빌미를 준것입니다.
2022
[한국 정치인 최초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2번째 수훈]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4등급) 훈장을 수훈하며 한국 정치인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2번째 수상했습니다.
2022년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을 수훈하며 한국 정치인 최초이자 레지옹 도뇌르 2번째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오피시에는 4등급)
부친 송병수 씨가 별세했습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시당의 요청과 명예 부산시민 이력 및 평소 부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인사들과 교류하여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고려했으나 서울특별시장 출마로 선회하여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습니다.
2023
2023년 4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습니다.
저서 《송영길의 선전포고》를 출간했습니다.
[민주당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영장 청구]
'민주당 돈봉투 의혹'과 관련하여 검찰에 의해 정당법·정치자금법·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2023년 12월 13일 검찰은 정당법·정치자금법·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2024
2024년 3월 소나무당을 옥중 창당하고 당대표로 취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