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템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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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가수, 댄서, 사업가, 외교관, 공직자, 아역 배우 영화/드라마 배우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전설적인 아역 배우입니다. 어린 나이에 영화계 정상에 올랐으며, 연예계 은퇴 후에는 외교관으로 변신하여 가나와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를 역임하며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유방암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사회에 용기와 희망을 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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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28

[셜리 템플 출생]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유복한 가정에서 셜리 템플이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셜리 템플은 1928년 4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유복하고 원만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춤에 특별한 재능과 흥미를 보였습니다.

1931

[무용학교 입학]

세 살이 되던 해,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딸의 재능을 알아본 모친의 권유로 무용학교에 입학하며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세 살이 되던 해, 셜리 템플의 모친은 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무용학교(Meglin's Dance School)에 입학시켰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춤과 연기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1932

[배우 활동 시작]

본격적으로 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과 매력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1932년부터 배우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그녀는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33

[폭스 필름과 계약]

20세기 폭스의 전신인 폭스 필름 관계자의 눈에 띄어 7년 계약을 맺으며, 영화 배우로서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세기 폭스의 전신인 폭스 필름의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7년 전속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스타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4

[영화 데뷔 및 슈퍼스타 등극]

영화 《Stand Up and Cheer!》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이어서 출연한 《Little Miss Marker》를 통해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며 1930년대 가장 유명한 아역 배우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공황으로 침체된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34년 4월 19일, 영화 《Stand Up and Cheer!》로 공식 데뷔했습니다. 이후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Little Miss Marker》에 출연하여 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여덟 살이 될 무렵에는 1년에 5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대공황 시기 미국인들의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1935

[아카데미 아역상 수상 및 박스오피스 챔피언]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상 아역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클라크 게이블, 로버트 테일러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을 제치고 3년 연속 박스 오피스 챔피언에 오르는 등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일곱 살이던 1935년에 아카데미상 아역상(Academy Juvenile Award)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재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클라크 게이블,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등 당대 유명 배우들을 모두 제치고 3년 연속 박스 오피스 챔피언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최고 스타임을 입증했습니다.

1936

[셜리 템플 칵테일 탄생]

1930년대 하와이 와이키키의 로열 하와이안 호텔을 자주 방문했을 때, 나이가 어려 술을 마실 수 없던 그녀를 위해 석류 시럽과 탄산음료를 섞어 만든 칵테일에 '셜리 템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셜리 템플이 1930년대 하와이 와이키키의 로열 하와이안 호텔을 방문했을 당시의 일화입니다. 당시 그녀는 어린 나이로 인해 술을 마실 수 없었고, 바텐더는 그녀를 위해 석류 시럽과 탄산음료를 섞은 무알코올 칵테일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칵테일은 이후 그녀의 이름을 따 '셜리 템플'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45

[잭 애거와 결혼]

17세의 나이에 잭 애거와 결혼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7세가 되던 해인 1945년에 배우 잭 애거(Jack Agar)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그녀의 어린 시절 스타 이미지를 벗어나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49

[연예계 은퇴 선언]

21세의 나이에 아역 배우의 대명사였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며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역 배우로서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21세가 되던 해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오랜 배우 생활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1965

[배우 활동 공식 종료]

아역 배우로서 시작했던 배우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1932년부터 시작되었던 그녀의 배우로서의 활동이 1965년에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녀는 이후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67

[공직자 변신 및 외교관 활동]

연예계를 떠나 정계에 입문하며 공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후 가나 주재 미국 대사와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하며 성공적인 외교관으로 활약했습니다.

1967년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하며 배우가 아닌 외교관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나 주재 미국 대사와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미국 대사직을 역임하며 뛰어난 외교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1972

[유방암 투병 사실 공개]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음을 밝히며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고백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음을 공개석상에서 직접 밝히며, 투병 중인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받았으며, 유방암 인식 개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2

[공직 활동 공식 종료]

1967년부터 시작된 공직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외교관으로서의 긴 여정을 마친 해입니다.

1967년부터 시작된 그녀의 공직자로서의 활동이 1992년에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성공적인 외교관 경력을 마치게 됩니다.

2006

[미국배우협회 평생공로상 수상]

미국배우협회 시상식에서 배우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며 오랜 연기 생활에 대한 경의를 표했습니다.

2006년 미국배우협회 시상식에서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오랜 연기 경력과 미국 문화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을 기리는 의미 있는 상이었습니다.

2014

[셜리 템플 사망]

향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많은 이들의 추모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아역 스타, 배우, 외교관 등 다채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2014년 2월 10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에 보도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희망을 주었던 아역 스타이자 성공적인 외교관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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