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 쇼나곤
연표
964
세이 쇼나곤은 고호 3년(964년) 혹은 966년경 일본 헤이안쿄에서 기요하라노 모토스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기요하라 나기코라는 설도 있으나 정설은 아니다. 그녀는 후에 일본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974
[아버지 부임에 동행]
아버지 기요하라노 모토스케가 스오노카미로 부임하자, 세이 쇼나곤은 아버지를 따라 스오 지방으로 떠나 4년간 그곳에서 생활했다.
덴엔 2년(974년), 세이 쇼나곤은 아버지 모토스케가 스오노카미(周防守)로 부임함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동행하여 4년을 「비(鄙)」에서 보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녀가 수필 《마쿠라노소시》에 묘사한 항해 여정의 박진감 넘치는 모습에 영향을 주었으며, 쿄(京)에 대한 동경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981
덴겐 4년(981년) 무렵, 세이 쇼나곤은 무쓰노카미(陸奥守)였던 다치바나노 노리미쓰(橘則光)와 결혼했다. 이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이혼하게 된다.
982
[아들 출산과 첫 이혼]
남편 다치바나노 노리미쓰와의 사이에 아들 노리나가를 낳았으나, 곧 무골(武骨)한 성격의 남편과 반목하여 이혼했다.
결혼 이듬해인 982년, 세이 쇼나곤은 다치바나노 노리미쓰와의 사이에서 아들 노리나가(則長)를 얻었다. 하지만 무골했던 남편과의 반목으로 인해 곧 이혼하게 되었지만, 이후로도 두 사람의 교류는 계속 유지되었다고 전해진다.
990
다치바나노 노리미쓰와 이혼한 뒤, 세이 쇼나곤은 셋쓰노카미(摂津守) 후지와라노 무네요(藤原棟世)와 재혼했다. 이 결혼을 통해 딸 고바노 묘부(小馬命婦)를 얻게 된다.
993
[중궁 데이시 출사]
이치조 천황의 중궁 데이시를 보필하는 개인 뇨보(女房)의 자격으로 궁정에 출사하여 그녀의 주군 데이시의 총애를 받았다.
쇼랴쿠 4년(993년) 겨울 무렵, 세이 쇼나곤은 이치조 천황의 중궁인 후지와라노 데이시(定子)의 개인 뇨보(궁정 시녀)로 출사했다. 학문과 재치가 뛰어났던 그녀는 데이시의 총애를 받았으며, 당시 궁정 사회에서 여러 구교(公卿)나 덴조비토(殿上人)들과의 기지 넘치는 응수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000
조호 2년(1000년), 세이 쇼나곤의 주군이었던 중궁 데이시가 사망했다. 데이시의 죽음은 세이 쇼나곤의 궁정 생활에 큰 전환점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1001
[수필 《마쿠라노소시》 초고 완성]
중궁 데이시가 사망한 이듬해, 세이 쇼나곤이 헤이안 시대 궁정 생활을 기록한 수필 《마쿠라노소시》의 초고가 완성되었다.
세이 쇼나곤의 이름을 오늘날까지 널리 알리게 된 수필 《마쿠라노소시》의 초고가 중궁 데이시 사망 이듬해인 1001년에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는 시의 소재가 된 명소, 뛰어난 문구, 일상 관찰, 개인적인 회상 등 10세기 헤이안 궁정의 모든 흥미로운 기록이 담겨 있다.
중궁 데이시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 쇼나곤은 궁정에서의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의 그녀의 인생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재혼한 남편 후지와라노 무네요와 함께 남편의 부임지인 셋쓰(摂津)로 낙향하여 딸 고마노 묘부(小馬命婦)를 낳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025
만쥬 2년(1025년)경, 세이 쇼나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만년에는 비구니로서 출가하여 죽은 아버지 모토스케의 산장이 있던 히가시야마 게쓰륜 근처에서 살았으며, 옛 궁정 관인들과 교류하며 여생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