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
연표
1940
[스탠다드 게임스 설립]
미국의 사업가 마틴 브롬리, 아빙 브롬버그, 제임스 험퍼트 세 명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스탠다드 게임스'를 설립했다.제2차 세계 대전 중 군사 기지에 동전 작동식 오락 기계를 제작·공급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1946
1952
[일본 지사 설립]
미국 주정부가 자국 영토 내 슬롯 머신 운영을 불법으로 지정하자, 마틴 브롬리가 직원들을 도쿄에 보내 일본 지사 '서비스 게임스 오브 재팬'을 설립하고 일본 내 미군 진지에 슬롯 머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54
['세가' 이름 첫 등장]
서비스 게임스의 줄임말이자 현재 사명인 '세가(Sega)'라는 이름이 '다이아몬드 스타'라는 슬롯 머신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960
[세가 주식회사 설립]
마틴 브롬리가 서비스 게임스의 사업을 계승할 '일본 오락물산'과 '일본 기계제조'를 설립했다.이 중 기계제조는 '세가'라는 이름으로 슬롯 머신 제작에 집중했고, 이 날이 현재 '세가'의 창립일로 기록된다.
1965
[세가 엔터프라이즈 개명]
일본 오락물산이 아케이드 게임 수입사 '로젠 엔터프라이즈'를 매입하고, 회사명을 '세가 엔터프라이즈'로 변경했다.이를 계기로 세가는 군사 기지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동전 작동식 오락 기계를 주력사업으로 전환했다.
1966
[《페리스코프》 출시 (최초)]
세가가 자체 제작한 첫 아케이드 게임 《페리스코프》를 출시했다.혁신적인 광효과와 음향으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유럽과 미국에도 수출되어 '한 판에 25센트' 가격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며 아케이드 산업의 "기술적 르네상스"를 촉발했다.
1969
[걸프 앤드 웨스턴에 매각]
세가가 미국의 복합기업 '걸프 앤드 웨스턴 인터스트리스'에 매각되었다.데이비드 로젠은 CEO 자리를 유지했다.
1970
1973
1979
[《헤드 온》 출시 (최초)]
세가의 게임 《헤드 온》이 '점먹기식 게임플레이'를 최초로 선보이며 이후 남코의 《팩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0
[미국 5대 아케이드 제조사]
1980년대 초 아케이드 사업 호황으로 회사 총수익이 2.14억 달러를 기록하며, 당시 미국의 5대 아케이드 게임 제조사 중 하나로 등극했다.
1981
1982
1983
[가정용 게임 시장 진입]
아케이드 사업 하락세에 대응하여 가정용 시장 진입을 결정, 컴퓨터 SC-3000과 함께 회사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 플랫폼 SG-1000을 동시에 출범했다.SG-1000은 첫 해 16만 대 판매로 예상치를 뛰어넘었으나,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에 밀렸다.
[북미 아케이드 사업부 매각]
아케이드 산업 침체기로 인해 걸프 앤드 웨스턴은 북미 아케이드 게임 제조부 및 관련 판권을 볼리 매뉴팩처링에 매각했다.
1984
[일본 세가 지사 인수]
걸프 앤드 웨스턴 창업자 사망 후 매각이 시작되자, 나카야마와 로젠이 CSK 코퍼레이션의 지원 하에 세가 일본 지사를 3800만 달러에 인수했다.나카야마는 CEO로, CSK 대표 오카와 이사오는 의장으로 취임했다.
1985
[《행온》 성공 및 UFO 캐처]
아케이드 게임 《행온》이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엄청난 수요를 창출했다.또한 인형뽑기 게임 'UFO 캐처' 시리즈 제작을 시작, 2005년 일본 최다 설치 기계가 되었다.
[마크 III 제작 및 북미 재진입]
SG-1000의 개선형 제품 '마크 III' 제작에 착수하고, 볼리와의 협상으로 '세가 엔터프라이즈 USA'를 설립하며 북미 아케이드 산업에 재진입했다.
1986
[세가 오브 아메리카 설립]
북미 소비자 제품 판매를 위해 '세가 오브 아메리카'를 설립했다.아케이드 게임 《아웃런》 캐비넷은 198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세가 아케이드 기기가 되었다.
1988
[메가 드라이브 일본 출시]
마스터 시스템의 후속기기 '메가 드라이브'를 일본에서 출시했으나, 닌텐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에 밀려 첫 해 40만 대 판매에 그쳤다.
1989
[세가 제네시스 북미 출시]
'세가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메가 드라이브를 뉴욕시와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식 발매하며 북미 시장에 진출했다.
1990
[게임 기어 출시]
닌텐도 게임보이에 대항하기 위해 컬러 화면을 갖춘 휴대용 게임기 '게임 기어'를 출시했으나, 짧은 배터리 수명 등으로 1100만 대 판매에 그치며 성공하지 못했다.
1991
[《소닉》 출시, 콘솔 시장 역전]
닌텐도 마리오 시리즈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세가의 대표 캐릭터 '소닉 더 헤지혹'의 첫 게임이 출시됐다.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1991년 휴가철 미국 시장에서 메가 드라이브가 슈퍼 패미컴 판매량을 앞지르는 쾌거를 달성했다.'소닉'은 역사상 최고 규모의 비디오 게임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메가 CD 일본 출시]
CD-ROM 기술을 이용한 메가 드라이브 주변기기 '메가 CD'를 일본에서 49,800엔에 출시했으나, 첫 해 판매량이 10만 대에 그치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1992
1993
[《버추어 파이터》 출시 (최초)]
새로운 아케이드 기판 세가 모델 1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 3D 격투 게임 《버추어 파이터》가 등장, 3D 폴리곤 그래픽 유행을 선도했다.《버추어 레이싱》도 함께 출시되며 아케이드 산업에서 성공을 이어갔다.
[VRC 등급제 도입 (최초)]
《나이트 트랩》, 《모탈 컴뱃》 등 비디오 게임의 고연령 대상 내용이 논란이 되자, 세가는 미국 최초의 비디오 게임 등급심의제 '비디오게임 레이팅 카운슬(VRC)'을 자사 플랫폼에 적용했다.
[버추어랜드 해외 개장]
일본에서의 성공을 본보기삼아 해외에도 럭소 라스베이거스의 세가 버추어랜드와 같은 대형 오락시설을 건축했다.
1994
[세가 모델 2 개발 및 출시]
제너럴 일렉트릭과의 협력으로 3D 기술을 전면 도입한 '세가 모델 2' 아케이드 기판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한 아케이드 히트작 《데이토나 USA》를 출시했다.
[조이폴리스 등 테마파크 건설]
세가는 일본 각지에 실내 놀이시설 '어뮤즈먼트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대표 건축물로 요코하마와 오다이바 등 도쿄 도심에 세운 '조이폴리스'가 있었다.
[ESRB 설립에 공헌]
비디오 게임 폭력에 대한 의회 청문회 후, 세가는 VRC를 게임계 전체에 확대하기를 제안했다.이는 1994년 '오락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ESRB)'가 설립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슈퍼 32X 북미 발매]
32비트 콘솔 시대를 대비해 메가 드라이브의 주변기기로 장착할 수 있는 '슈퍼 32X'를 북미 지역에 처음 발매했다.새턴 게임과는 호환되지 않으며, 휴가철 이후 수요가 급감했다.
[세가 새턴 일본 출시]
세가 새턴을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출시했다.출시 당일 아케이드 이식작 《버추어 파이터》의 인기에 힘입어 20만 대가 판매되며 초기 성공을 거두었다.
1995
['프리쿠라' 제조 시작 (최초)]
아틀러스와 협력하여 셀프 카메라 사진을 인쇄하는 아케이드 포토 스티커 기계 '프리쿠라(프린트 클럽)'를 제조하기 시작했다.이 기기는 동아시아 유년층에게 큰 인기를 끌며 현대 셀프카메라 문화의 기반을 다졌다.1997년까지 4만 7천 대가 판매되어 250억 엔의 수익을 벌었다.
[세가 새턴 급작스런 북미 발매]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개최된 E3에서 세가 오브 아메리카 CEO 톰 칼린스키가 세가 새턴의 소비자가격을 공지하며, 미국의 주요 소매점에 이미 새턴 3만 대를 보급했다고 밝혔다.이는 일부 소매점들의 반발을 샀다.
1996
[세가 오브 아메리카 경영진 교체]
세가는 톰 칼린스키가 세가를 떠나고 이리마지리 쇼이치로를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이사장 겸 CEO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버니 스톨러도 이사 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1997
[반다이 합병 무산]
세가는 반다이와 주식스왑을 통해 '유한회사 세가 반다이'를 설립하려 했으나, 5월 반다이 측의 반대로 합병 계획이 취소되었습니다.
[게임웍스 및 세가 월드 개장]
드림웍스 SKG와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합작 투자하여 도심 오락시설 체인 '게임웍스'를 열었다.또한 '세가 월드 시드니'도 개장했다.
1998
[나카야마 사임, 이리마지리 취임]
세가의 재정 악화와 반다이 합병 실패로 인해 나카야마가 세가 사장직을 사임하고 이리마지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버니 스톨러는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CEO 겸 사장이 되었다.
[첫 재정 손실, 새턴 지원 중단]
1988년 도쿄 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처음으로 재정 손실이 발생했다.이에 북미 지역에서 세가 새턴 지원을 중지하고 드림캐스트 발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세가 새턴은 판매량 926만 대로 상업적 실패로 기록되었다.
[드림캐스트 일본 출시]
세가의 새 콘솔 '드림캐스트'가 일본에서 출시되었다.판매 개시 하루 만에 15만 대의 재고가 모두 소진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으나, 초기 판매량은 예상치를 하회했다.
1999
[PS2 공개, 콘솔 경쟁 심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 2'를 공개하며 드림캐스트와의 경쟁이 심화될 것을 예고했다.닌텐도와 마이크로소프트도 차세대 기종 개발을 발표하며 콘솔 시장의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스톨러 경질, 피터 무어 취임]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버니 스톨러가 경질되고, 피터 무어가 차기 사장 및 드림캐스트 북미 출시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드림캐스트 북미 출시 (기록)]
드림캐스트가 북미에서 18개의 게임과 함께 공식 발매되었다.출시 24시간 만에 22만 5132대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량과 984만 달러 수익을 창출하며 '오락 소매 역사상 가장 대단한 24시간'이라는 평을 얻었다.
[드림캐스트 유럽 출시]
드림캐스트가 유럽에서 발매되었다.성탄절까지 50만 대가 판매되었으나, 이후 기세가 꺾이며 2000년 10월까지 100만 대 판매에 그쳤다.
2000
[3년 연속 적자 기록]
428억 8800만 엔의 연결총손실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총수익에서 손해를 보았다.낮은 수익률로 일본 오락실 246개를 폐장하는 등 아케이드 사업도 타격을 입었다.
[이리마지리 사임, 오카와 취임]
이리마지리가 세가 사장 자리에서 내려오고, CSK 대표이자 세가의 콘솔 사업 중단을 주장했던 오카와 이사오가 차기 사장으로 선정되었다.
['세가 코퍼레이션'으로 사명 변경]
사명을 '유한회사 세가'에서 '세가 코퍼레이션(Sega Corporation)'으로 변경하며, 차후 회사가 "네트워크 오락 사업"에 치중할 것임을 밝혔다.
2001
[콘솔 사업 철수, 서드파티 전환]
세가가 3월 31일 이후 드림캐스트 지원을 중단하고 다중 플랫폼 서드파티 개발사로 전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약 93만 대의 미판매 드림캐스트 재고 처리를 위해 영구적으로 콘솔 가격을 인하했다.
[오카와 사장 사망, 막대한 유산 기부]
오카와 이사오 사장이 사망했다.그는 사망 직전 세가에게 빌려준 채무를 면제하고 6억 9500만 달러에 달하는 세가 및 CSK 주식을 반납하여 세가가 서드파티 전환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03
[피터 무어 사장 퇴사]
피터 무어 세가 오브 아메리카 사장이 본사의 보수적인 게임 개발 정책과 산업 유행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퇴사했다.
[사토 사임, 오구치 취임]
사토 히데키 사장과 COO 카마야 테츠가 모두 사임했으며, 세가 개발사 히트메이커의 대표 오구치 히사오가 사토를 대신할 인물로 임명되었다.
[사미 합병 발표 및 취소]
세가가 파칭코 및 파치슬롯 제조사 사미 코퍼레이션과의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그러나 다른 거래 상대인 남코의 합병 제안과 사미 이사진의 분노로 인해 합병 계획이 취소되었다.
2004
[세가 사미 홀딩스 설립]
사미가 세가를 완전히 인수하며, 양사를 자회사로 둔 엔터테인먼트 기업체 '세가 사미 홀딩스'가 설립되었다.세가는 약 10년간의 손실을 겪었고 사미는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던 중이었다.세가의 부가가치는 14.5억에서 18억 달러 사이로 평가되었다.
[ALL.Net 네트워크 출시]
아케이드 게임 전용 네트워크 시스템 'ALL.Net'을 출시하며 아케이드 게임 온라인 연결 기능을 도입했다.
2005
[서양 경영진 교체, 홈스타 출시]
서양 시장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세가 오브 아메리카 COO 겸 사장에 사이먼 제프리, 세가 유럽 COO 겸 사장에 마이크 헤이즈가 임명되었다.또한 일본의 발명가 오히라 타카유키가 개발한 가정용 천체투영관 '홈스타'가 처음 출시되었다.
2008
[모바일 게임 시장 진출 (최초)]
아이튠즈 스토어에 《슈퍼 몽키 볼》 모바일판을 발매하며 세가 최초로 모바일 시장에 발을 들였다.
2009
[세가 웨스트 사장 취임]
사이먼 제프리가 퇴사하자, 마이크 헤이즈는 세가 오브 아메리카와 세가 유럽을 아우르는 기업체 '세가 웨스트'의 사장이 되었다.같은 해 두바이에 실내 놀이시설 '세가 리퍼블릭'이 개장되었다.
2011
2012
[세가 사업부서 신설]
회사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모바일 게임을 관리하는 자회사 '세가 네트웍스'와 오락시설 사업을 위한 '세가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유럽/호주 사무실 폐쇄]
국제적으로 패키지 게임 산업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세가는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5개의 사무실을 구조조정하여 폐쇄했다.이는 PC와 모바일 기기를 위한 디지털 게임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2013
[인덱스 인수, 아틀러스 독립]
세가 사미 홀딩스는 파산을 선언한 '인덱스 코퍼레이션'을 인수했다.이후 인덱스의 게임 자산은 세가의 자회사 브랜드 '아틀러스'로 독립하며, 아틀러스는 세가의 주요 개발사 중 하나가 되었다.
2015
[세가 그룹 재편, 사토미 하루키 취임]
세가 코퍼레이션은 '세가 그룹'으로 재편성되어 세가 사미 홀딩스가 소유한 세 개의 그룹 중 하나가 되었고, 네 개의 사업부를 거느린 '유한회사 세가 홀딩스'가 설립되었다.같은 달, 사토미 하지메의 아들 사토미 하루키가 새 CEO 및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북미 본사 이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본사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틀러스 USA'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으며, 그 해 말 이사가 완료되었다.
2016
[테크노소프트 IP 획득]
도쿄 게임쇼에서 세가는 테크노소프트가 소유한 모든 지적 자산 및 소유 게임 개발 권리를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2017
[조이폴리스 지분 매각]
세가의 테마파크 산업 지분 85.1%를 차이너 애니메이션즈 캐릭터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 거래를 통해 세가 라이브 크리에이션은 'CA 세가 조이폴리스'로 개명했다.
[본사 및 사무소 통합 이전]
세가 사미 홀딩스는 본사 및 일본 수도권의 국내 자회사 사무소들을 2018년 1월까지 시나가와구로 통합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이는 뿔뿔이 흩어진 각지 사업부들의 통합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2018
[세가 유럽 사장 교체 (개리 데일)]
전 록스타 게임스 및 테이크투 인터랙티브 출신 개리 데일이 크리스 버그스트레서를 대신해 세가 유럽의 사장 COO를 맡게 되었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 사장 교체]
전 THQ 및 어클레임 엔터테인먼트 이사 이안 커런이 존 쳉에 이어 세가 오브 아메리카 사장 및 COO를 맡게 되었다.
2019
[기존 IP 투자 및 패키지 게임 강화]
2018년 회계연도에 디지털 게임 시장 부진으로 수익이 70% 감소하자, 세가는 기존 지적 자산에 투자하고 해외 패키지 게임 성장을 목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손실의 원인은 시장조사 오류와 지나치게 많은 게임 개발로 분석되었다.
2020
[세가 게임스/인터랙티브 합병]
연구개발 유동성 향상을 위해 세가 인터랙티브와 세가 게임스가 합병하여 '세가 코퍼레이션'으로 변경되었다.유한회사 세가 홀딩스는 '세가 그룹 코퍼레이션'으로 변경되었다.
[60주년 기념 제품 및 플랫폼 발표]
회사 브랜드 60주년 기념으로 마이크로콘솔 '게임 기어 마이크로'의 10월 6일 발매를 발표했다.또한 일본 아케이드 기계의 남는 전력을 활용해 클라우드 게임 앱을 구동하는 '포그 게이밍' 플랫폼을 발표했다.
[아케이드 사업부 지분 매각]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한 오락시설 사업 악재로, 세가 사미는 아케이드 사업부의 주식 85.1%를 겐다에 매각했다.세가 브랜드와 세가가 제작한 아케이드 기계는 계속 유지된다.
2021
[메타크리틱 2020년 최고 배급사 선정]
메타크리틱이 세가를 2020년 최고의 배급사로 선정했다.출시된 28개 게임 중 95%가 '좋은 평가'를, 특히 《페르소나 5 로열》과 《용과 같이 0: 맹세의 장소》는 '굉장한 평가'를 받았다.세가의 2020년 평균 메타크리틱 점수는 81.6%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