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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문관, 학자, 동오의 신하 + 카테고리
설종은 맹상군의 후예로 전란을 피해 남방으로 이주한 뒤, 당대 최고의 학식과 탁월한 행정 능력을 바탕으로 삼국시대 동오 정권의 핵심으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척박한 교주 일대의 반란을 평정하고 영토를 굳건히 하는 데 앞장섰으며, 중앙 정계로 진출한 뒤에는 손려와 태자의 스승을 연이어 역임하며 군주 손권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습니다. 지방관의 실무부터 국가의 핵심 인사권, 그리고 촌철살인의 문장력까지 두루 갖춘 그는 동오의 찬란한 지성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210

[오관중랑장 징소]

사섭이 동오에 귀순하자 군주의 부름을 받아 중앙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첫 관직으로 오관중랑장에 임명되며 본격적인 관료 생활의 닻을 올렸습니다. 이는 그가 훗날 동오의 핵심 인재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건안 15년(210년), 보즐이 교주 자사로 부임하고 사섭이 동오에 귀순하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손권은 설종의 뛰어난 학식과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징소하여 오관중랑장(五官中郎將)이라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합포 태수 부임]

중랑장에 이어 지방 행정을 직접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에 올랐습니다. 합포 지역의 태수로 부임하여 척박한 변방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든든한 정치적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관중랑장으로 임명된 후, 곧이어 합포(合浦) 태수 직을 부여받아 지방관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하기 시작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변방의 안정과 행정을 거뜬히 책임지며 훌륭한 관리로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교지 태수 역임]

합포에 이어 또 다른 핵심 요충지의 지방관직을 연이어 맡게 되었습니다. 교지 지역의 태수로 부임하여 탁월한 행정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를 통해 낯설고 혼란한 남방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합포 태수에 이어 동오의 핵심 남방 거점인 교지(交趾) 태수를 연이어 역임하며 통치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손권의 굳건한 신임을 바탕으로 변방의 방어선과 행정망을 촘촘히 구축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20

[반란군 토벌 참전]

새로운 자사가 부임하자 그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여 군사 작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지역 내에서 작란을 일으킨 여러 도적 무리들을 진압하는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문관 출신임에도 무력을 직접 통솔하는 굳센 군사적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연강 원년(220년), 여대가 보즐을 대신해 새로운 교주 자사로 부임하자 설종은 그를 보좌하며 작란을 일으킨 여러 적군 병단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했습니다. 전장에서 훌륭한 통솔력을 보여주며 문무를 두루 겸비한 인재임을 증명했습니다.

[교주 평정과 구진 진격]

적의 무리를 성공적으로 소탕하며 마침내 지역 전체의 확고한 평화를 이룩했습니다. 여세를 몰아 더욱 남쪽으로 군대를 진격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성공적인 원정으로 국가의 남방 영토 지배력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성공적인 토벌 작전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교주 전역을 완벽하게 평정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구진(九真) 지역까지 공격해 들어가며 동오의 남방 국경을 단단히 안정화하고 통제력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알자복야 임명]

성공적인 군사 원정을 마친 후 그 탁월한 공로를 국가로부터 깊이 인정받았습니다. 전쟁 종결과 함께 새로운 관직에 오르며 조정 내 입지를 한층 넓혔습니다. 변방에서의 군사적 성과가 정치적 쾌거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교주 평정과 구진 공격이라는 훌륭한 군사적 성과를 거두고 전역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조정으로부터 그 헌신을 치하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알자복야(謁者僕射)로 임명되며 관리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31

[진군장사 발탁]

황제의 혈육을 곁에서 보좌하는 중책을 맡아 외곽 지역에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주둔군의 제반 업무를 총괄하며 막대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학식을 살려 상급자에게 글을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까지 겸비했습니다.
황룡 3년(231년), 손권이 건창후 손려를 진군대장군으로 삼아 반주에 주둔하게 하면서 설종을 진군장사(鎮軍長史)로 전격 임명했습니다. 밖으로는 군중의 일을 모두 도맡고, 안으로는 서책으로 손려를 가르치며 굳건한 신뢰를 받았습니다.

232

[적조상서 전임]

자신이 정성껏 보좌하고 가르치던 상관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후 조정의 부름을 다시 받아 핵심 관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방의 군무를 성공적으로 갈무리하고 중앙 정계의 주요 보직으로 안착했습니다.
가화 원년(232년), 설종이 보좌하던 진군대장군 손려가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그는 조정의 명을 받아 적조상서(賊曹尚書)로 전임되며, 형벌과 도적을 다스리는 중앙의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상서복야 승진]

중앙 정계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정 실무 능력을 완벽히 입증해 냈습니다. 한층 더 격상된 관료의 자리에 오르며 조정의 핵심 권력층으로 부상했습니다. 오랜 실무 경험과 학식이 어우러져 맺은 값진 성과였습니다.
적조상서로 임명된 직후,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을 널리 인정받아 상서복야(尚書僕射)로 승진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국가의 중추적인 의사 결정에 굵직하게 참여하는 지위로, 당대 동오 조정에서 그의 드높아진 위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40

[선조상서 취임]

국가의 인사와 관원 선발을 전면에서 책임지는 막강한 직책을 새로이 부여받았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발탁하며 나라의 내실을 굳건히 다지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군주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임이 바탕이 된 명예로운 인사 발령이었습니다.
적오 3년(240년), 인재 등용과 관리의 선발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인 선조상서(選曹尚書)로 전임되었습니다. 행정과 군사를 아우른 그의 혜안을 바탕으로, 동오를 이끌어갈 국가의 동량들을 발굴하고 길러내는 중임을 완벽히 소화해냈습니다.

242

[태자소부 겸임]

차기 황위 계승자를 학문으로 인도하는 지고한 임무를 추가로 부여받았습니다. 기존의 인사 담당 직위를 유지한 채 태자의 스승이 되는 파격적인 대우를 누렸습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깊이와 인품에 대한 국가 차원의 최고 예우였습니다.
적오 5년(242년), 선조상서 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태자소부(太子少傅)에 추가로 임명되는 극진한 우대를 받았습니다. 국가의 인사권을 쥔 채 차기 황제의 스승까지 겸임한 것은 손권이 그에게 얼마나 막대한 권한과 애정을 부여했는지를 명확히 증명합니다.

243

[생애의 마감]

태자의 스승이자 조정의 핵심 관료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던 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뛰어난 통찰력과 기지로 동오를 든든히 뒷받침했던 위대한 삶이 막을 내렸습니다. 숱한 업적을 남긴 그의 죽음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학문적, 정치적 상실이었습니다.
영예로운 태자소부에 임명된 이듬해인 243년, 동오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설종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으나, 장남 설후와 차남 설영이 그 뒤를 이어 훌륭히 관직에 오르며 그의 가문은 동오를 대표하는 명문가 중 하나로 후대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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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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