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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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교육자, 친일 논란 인물 + 카테고리

서정주는 탁월한 시적 재능과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한국 문학사에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시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삶은 해방 전후 친일 행적과 군사 독재 찬양 등 논란으로 점철되어 복합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토속적 불교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탐미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며 민족어의 가능성을 확장했지만 일제강점기 친일 활동과 신군부 찬양은 그의 문학적 위상과 별개로 역사적 오점을 남겼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15

[시인 서정주 탄생]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성장했으며, 훗날 한국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시인이자 교육자로 활동하게 될 서정주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그의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습니다.

1929

[서울 상경 및 학업 시작]

14세가 된 서정주는 서울로 상경하여 중앙보통학교에 다니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이는 그의 성장 과정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33

[불교 수학 시작]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으로부터 불교를 수학하며 그의 사상적 기반과 문학적 영감의 중요한 뿌리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1936

[문단 데뷔 및 《시인부락》 창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한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 당선되며 마침내 문단에 데뷔했습니다.같은 해 김광균, 김동리 등 당대 대표 문인들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하며 한국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1943

[친일 행위 시작]

일제강점기 말기 전시 체제 속에서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하고, 태평양 전쟁과 카미카제를 찬양하며 조선인의 참전을 독려하는 시와 글을 발표하는 친일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훗날 그는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사회적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1945

[해방 후 우익 문학 활동]

해방 후 서정주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익 계열 문학에 반대하며, '순수 문학'의 가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새로운 문학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1971

[동국대 명예 학사 취득]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과 명예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이는 그의 오랜 학문적, 사상적 배경과 연결되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1980

[군부 독재 지지 연설]

1980년대 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 선거에서 전두환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며 군부 독재 정권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1987

[전두환 찬양시 발표]

전두환 대통령의 56회 생일을 맞아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발표했습니다.이 시는 노골적으로 군사 독재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그의 친일 행적과 더불어 시인으로서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습니다.

송시에는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와 같은 노골적인 찬양 구절이 담겨 있어 사회적으로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2000

[86세 일기로 별세]

86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과 동시에 깊은 논란을 남긴 길고 복잡했던 한 시인의 생애가 막을 내렸습니다.

2002

[친일 명단에 이름 오르다]

김재용 교수의 연구를 통해 '친일파 708인 명단'과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르고, 11편의 친일 작품이 공개되며 그의 친일 행적이 공식적으로 다시 조명되었습니다.

2008

[친일인명사전 등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705인 명단에도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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