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아즈나부르
연표
1924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 샤를 아즈나부르가 1924년 5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훗날 가수, 작사가, 외교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1946
샤를 아즈나부르는 미셸린 루겔과 결혼했지만, 이들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1952년에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1956
샤를 아즈나부르는 에블린 플레시스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 또한 1960년에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
1967
샤를 아즈나부르는 울라 토셀과 세 번째 결혼을 하며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다. 울라 토셀은 그의 남은 생애를 함께한 배우자이다.
1988
[아르메니아 지진 피해 돕기]
아르메니아 지진 발생 후 친구 레본 사얀과 함께 자선단체 '아즈나부르 포 아르메니아'를 조직하여 구호 활동에 참여했다.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이 발생하자, 샤를 아즈나부르는 고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평생의 친구 레본 사얀과 함께 '아즈나부르 포 아르메니아(Aznavour for Armenia)'라는 자선단체를 조직했다. 그는 이 단체를 통해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인도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1998
[세기의 연예인 선정]
CNN과 타임 온라인의 전 세계인 투표에서 18%의 득표율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밥 딜런을 제치고 '세기의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그의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1998년 CNN과 타임 온라인이 기획한 전 세계인 투표에서 샤를 아즈나부르는 약 1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엘비스 프레슬리, 밥 딜런과 같은 전설적인 음악인들을 제치고 '세기의 연예인(Entertainer of the Century)'으로 선정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전 세계적인 인기와 대중문화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상징한다.
2009
[아르메니아 외교관으로 활동 시작]
고국 아르메니아를 대표하여 스위스 대사 및 국제연합 영구대표자로 임명되며 외교관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샤를 아즈나부르는 고국 아르메니아의 스위스 대사로 피임되었으며, 국제연합에 대한 아르메니아의 영구대표자로도 임명되었다. 그는 음악 활동 외에 외교관으로서 활약하며 아르메니아를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014
수십 년간 이어진 화려한 가수 경력의 마침표를 찍듯, 2014년 샤를 아즈나부르는 자신의 인생 마지막 순회공연을 개최하며 전 세계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2017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 헌액]
전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2,618번째 별에 이름을 올렸다.
2017년 8월 24일, 샤를 아즈나부르는 전 세계 대중음악에 기여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2,618번째 별에 이름을 새기는 영광을 안았다. 이는 그의 국제적인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라울 발렌베리상 수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은신을 도운 공로로 여형제와 함께 '라울 발렌베리상'을 수상하며 인도주의적 업적을 다시 한번 조명받았다.
2017년 말, 샤를 아즈나부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들을 은신시켜 도왔던 인도주의적 공로로 여형제와 함께 '라울 발렌베리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그의 음악적 업적뿐만 아니라 도덕적 용기와 인류애를 기리는 의미 있는 수상이었다.
2018
[프랑스 무라에에서 영면]
프랑스 무라에에서 94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는 70년에 걸친 활동으로 1억 8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아치운 전설적인 아티스트였다.
2018년 10월 1일, 샤를 아즈나부르는 프랑스 무라에에서 94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는 70년에 걸친 활동 기간 동안 1,200여 곡을 녹음하고 1억 8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며 전 세계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아티스트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