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란 혁명
연표
2007
[유류값 인상에 시위 시작]
미얀마 군부가 예고 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5배, 휘발유/경유 가격을 최대 2배 인상하자, 이에 반발한 일반 주민과 학생들이 양곤과 만달레이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사프란 혁명'의 불씨가 됩니다.
[승려-군인 무력 충돌]
미얀마 북부 파코쿠에서 시위에 참여한 승려들과 군인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 승려 4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승려들은 이들의 석방과 공식 사과를 요구했으나 군부가 거부하며 갈등이 심화됩니다.
[군부, 야간 통금령 발령]
군부는 시위 확산에 대응하여 옛 수도 양곤과 만달레이에 60일간 야간 통행 금지 및 5인 이상 집회 금지령을 발령했습니다.
이는 시위를 억압하려는 군부의 초기 강경 대응이었습니다.
[불교 승려 시위 전면 가담]
군부의 승려 체포에 대한 사과 거부 이후, 불교 승려들이 대규모로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사프란색 가사를 입고 평화적으로 행진하며 시위를 주도, 이때부터 '사프란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수치 여사, 시위대 환영]
시위를 주도하던 승려와 시위대 약 2,000여 명이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수치 여사는 현관에 나와 이들을 환영하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습니다.
[부시 대통령, 군부 규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미얀마 군사독재정권의 19년간 '공포 통치'를 강하게 비판하며 국제사회의 주목과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야당원 사망, 유엔 안보리 우려]
야당 당원 1명이 군부 조사를 받다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었습니다.
같은 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은 비상 회의를 소집하여 군부의 강제 진압에 우려를 표명하고 자제를 요청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 일본 기자 사망]
새벽, 군부가 불교 사원 두 곳을 급습하여 실탄을 발사하고 시위를 주도하던 승려 100여 명을 체포했습니다.
또한,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일본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가 군인 총격에 의해 사망하며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미얀마 군부의 폭력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
체포된 승려들은 양곤 시내의 기술대학 및 사용하지 않는 경마시설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가이 겐지 기자는 AFP 통신 계약 기자로, 최후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습니다. 일본 외무상은 미얀마에 강력히 항의했고, 미얀마 외무장관은 유감 표명 및 사과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아세안, 군부 폭력 중단 촉구]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0개국 외무장관들은 자동 소총이 사용된 진압 소식에 경악하며 미얀마 군정에 무력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는 내부 문제에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던 아세안의 이례적인 성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시위 잠잠, 유엔 특사 도착]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는 점차 잠잠해졌습니다.
한편,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특사가 미얀마에 도착하여 군부 지도자 및 아웅산 수치 여사 등 반정부 인사들을 만나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적인 '침묵 시위' 전개]
미얀마 주민들은 오후 8시부터 15분간 TV를 끄고 소등하는 '침묵 시위'를 벌이며, 군부 지도자들의 소식을 전하는 시간대에 저항의 뜻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군부 규탄]
유엔 인권이사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특별 회의를 개최, 미얀마 군부의 시위 무력 진압을 강하게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며 국제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인터넷 재개통, 통금 완화]
양곤 시내의 야간 통행 금지가 완화되고, 시위 상황 중계를 막기 위해 차단되었던 인터넷 접속도 재개되었습니다.
이는 군부의 강경 대응이 다소 누그러지는 신호로 해석되었습니다.
2008
[헌법 개정 국민투표 강행]
미얀마 군사정권은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이 개정안은 외국인과 결혼했거나 군 출신이 아닌 인물의 대통령 출마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어, 아웅산 수치 여사의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었습니다.
사이클론 피해 지역에 한해 5월 24일로 투표가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이 헌법은 2010년 미얀마 대통령 선거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출마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군사 정권의 지속적인 유지를 목적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