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도미닉
연표
1984
[부산에서의 탄생]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서 본명 정기석으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일찍이 리듬감 있는 소리에 반응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습니다. 이 탄생은 훗날 대한민국 힙합 씬을 뒤흔들 거물급 래퍼의 시작이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낸 정기석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투박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락과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취향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부산에서의 경험은 훗날 그의 가사 속 사투리 랩과 정서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97
[힙합 음악과의 조우]
중학생 시절 당시 유행하던 힙합 음악들을 접하며 랩이라는 장르에 깊이 매료됩니다. 가사를 직접 써보거나 좋아하는 래퍼들의 랩을 따라 하며 무대 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취미로 시작했던 랩은 곧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당시 대한민국에 불기 시작한 힙합 붐을 타고 '지누션', '드렁큰 타이거' 등의 음악을 들으며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교내 축제나 소규모 모임에서 랩을 선보이며 무대 경험을 쌓기 시작했고, 주변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글을 쓰고 리듬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며 전문적인 음악 교육 없이 독학으로 기초를 다졌습니다.
1998
[남산고등학교 입학]
부산 남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업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학교 내에서도 랩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자신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의 인연은 그가 음악을 포기하지 않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학업 성적보다는 음악 창작 활동에 더 비중을 두었으며,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마다 비트를 만들고 가사를 썼습니다. 부산의 힙합 동호회나 언더그라운드 모임에 참여하며 현역 래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쓴 수많은 가사들은 훗날 그가 프로 무대에 데뷔했을 때 귀중한 소재로 활용되었습니다.
2002
[경주대학교 입학]
경주대학교 호텔경영학과에 입학하여 대학 생활을 시작하지만 마음은 늘 음악을 향해 있었습니다. 전공 공부보다는 캠퍼스 내 공연 활동과 곡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습니다. 결국 대학 생활은 그에게 음악에 전념해야겠다는 확신을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호텔경영이라는 전공은 그의 적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으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은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학가 공연을 통해 무대 매너를 익혔고, 부산과 경주를 오가며 언더그라운드 래퍼로서의 인지도를 높여갔습니다. 이후 정식 데뷔를 위해 학업을 잠시 내려두고 음악 작업에 올인하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2005
[예명 사이먼 도미닉 확정]
영화 '데몰리션 맨'의 악역 사이먼 피닉스와 자신의 세례명 도미니코를 결합하여 활동명을 정합니다. 강렬함과 성스러움을 동시에 담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반영된 독특한 예명이 탄생했습니다. 이 이름은 곧 대한민국 힙합을 상징하는 고유 명사로 자리 잡게 됩니다.
사이먼 피닉스의 파괴적인 이미지와 가톨릭 성인의 이름인 도미니코가 결합된 이 이름은 그의 양면적인 매력을 잘 나타냅니다. 활동 초기에는 '사이먼 D'라는 약칭으로도 자주 불리며 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습니다. 예명을 확정 지으며 언더그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첫 데뷔 앨범 참여]
그룹 'Addicted 2'의 멤버로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비록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으나 레코딩 기술과 앨범 제작 과정을 몸소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첫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을 쌓아오던 그에게 정식 앨범 작업은 큰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였습니다. 이 시기에 동료 래퍼들과 협업하며 힙합 씬의 내부 사정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팀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사이먼 도미닉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소중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2007
[지기 펠라즈 크루 합류]
당대 최고의 힙합 크루 중 하나인 '지기 펠라즈(Jiggy Fellaz)'에 합류하여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전국 각지의 실력파 래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루키로서의 명성을 전국적으로 확대했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플로우와 딜리버리는 크루 내에서도 독보적이었습니다.
지기 펠라즈의 단체 앨범에 참여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팬덤을 빠르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크루 활동을 통해 인맥을 넓히고, 훗날 슈프림팀을 결성하게 되는 이센스와의 유대도 깊어지게 됩니다. 전국 투어 공연과 라디오 출연 등을 통해 언더그라운드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센스와의 운명적 만남]
실력파 래퍼 이센스(E-Sens)를 만나 서로의 음악적 시너지를 확인하고 팀 결성을 논의합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대한민국 힙합 역사상 가장 완벽한 듀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매력의 두 래퍼는 힙합 팬들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부산 출신의 사이먼 도미닉과 경산 출신의 이센스는 영남권 힙합의 자존심으로 통하며 완벽한 호흡을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공연장에서 즉흥 랩 대결을 펼치며 서로의 실력을 인정한 뒤 함께 팀을 이루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만남은 슈프림팀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힙합의 전설적인 챕터의 서막이었습니다.
2008
[일레스트 컨퓨전 리더 활동]
자신이 리더로 있는 크루 '일레스트 컨퓨전(Illest Konfusion)'을 이끌며 수많은 후배 래퍼들을 양성합니다. 비프리, 스윙스 등 현재의 거물급 래퍼들이 거쳐 간 이 크루는 한국 힙합의 사관학교와 같았습니다.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경영적 마인드를 처음으로 경험한 시기입니다.
멤버들의 작업을 직접 코칭하고 공연 기획을 주도하며 크루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래퍼들이 모여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했고, 이는 한국 힙합의 다양성에 기여했습니다. 사이먼 도미닉은 이 시기에 보여준 리더십 덕분에 힙합 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9
[슈프림팀 정식 데뷔]
이센스와 함께 결성한 '슈프림팀'의 첫 미니 앨범 'Supreme Team Guide To Excellent Adventure'를 발표합니다. 타이틀곡 'Supermagic'은 신선한 충격을 주며 단숨에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스타가 오버그라운드까지 접수한 역사적인 데뷔였습니다.
아메바컬쳐와 계약 후 처음 내놓은 이 앨범은 평단과 대중의 고른 찬사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현란한 랩 주고받기는 이전의 힙합 듀오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슈프림팀은 그해 연말 시상식의 가장 강력한 신인상 후보로 부상했습니다.
[MAMA 신인상 수상]
2009 Mnet Asian Music Awards(MAMA)에서 남자 신인상을 수상하며 그해 최고의 루키임을 입증합니다. 아이돌 그룹들이 강세인 가요계에서 힙합 듀오로서 거둔 값진 성과였습니다. 이 수상은 슈프림팀이 메이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상징합니다.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그는 부산 사투리로 감격 어린 소감을 전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신인상 수상 이후 슈프림팀의 행사 몸값과 섭외 순위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팬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고생하던 그들의 성공에 뜨거운 축하를 보냈습니다.
2010
[싱글 '그땐 그땐 그땐' 대히트]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영준과 협업한 싱글 '그땐 그땐 그땐'이 음원 차트 1위를 휩씁니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애절한 가사로 힙합을 넘어 발라드 감성까지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슈프림팀의 대중적 인지도가 전 연령층으로 확산된 결정적 곡입니다.
당시 음원 서비스 사이트에서 장기 집권을 하며 '연금곡' 수준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사투리를 쓰는 거친 래퍼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섬세한 감수성을 발견하게 한 작품입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슈프림팀은 각종 예능과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습니다.
[예능 '뜨거운 형제들' 활약]
MBC 예능 프로그램 '뜨거운 형제들'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인으로서의 재능을 꽃피웁니다. 능글맞은 부산 사투리와 허를 찌르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이 활동으로 그는 '능구렁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적 친근함을 확보했습니다.
아바타 조종사 등 기상천외한 컨셉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미친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박명수, 탁재훈 등 쟁쟁한 예능 선배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는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가수로서의 카리스마와는 정반대되는 인간적인 모습은 그의 팬덤을 더욱 두텁게 만들었습니다.
[첫 정규 앨범 Supremier 발매]
슈프림팀의 첫 번째 정규 앨범 'Supremier'를 발표하며 음악적 역량을 과시합니다. 대중적인 팝 스타일과 정통 힙합의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수록곡 대부분이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타이틀곡 'Step Up'은 중독성 있는 훅과 자신감 넘치는 가사로 클럽과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멤버들 각자의 솔로 곡들도 수록되어 개인의 음악적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슈프림팀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선 대세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1
[이센스의 활동 중단과 위기]
팀 동료 이센스가 건강 및 개인적 사유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슈프림팀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맞이한 공백은 그에게 큰 심리적 압박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동료의 빈자리를 지키며 홀로 팀의 이름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정된 행사와 방송을 혼자 소화하며 팀의 존속을 위해 분투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동료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작업은 쉬지 않고 지속하며 재기를 노렸습니다.
[첫 솔로 정규 앨범 'SNL LEAGUE' 발매]
오랜 준비 끝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솔로 정규 앨범 'Simon Dominic Present: SNL LEAGUE BEGINS'를 발표합니다. 타이틀곡 '짠해'는 그의 개성이 가득 담긴 세련된 힙합 곡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슈프림팀의 그늘을 벗어나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홀로서기를 선언한 작품입니다.
앨범 전반에 걸쳐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했습니다. 화려한 피처링진 대신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한 구성으로 진정성을 전달했습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그는 그룹 멤버가 아닌 독보적인 솔로 래퍼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2013
[컨트롤 디스전의 소용돌이]
한국 힙합 씬을 강타한 '컨트롤(Control) 디스전'의 한복판에서 곡을 발표하며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수많은 래퍼들이 얽힌 갈등 속에서 그는 침착하지만 날카로운 랩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했습니다. 힙합 씬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사건의 주역이었습니다.
동료들에 대한 비판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밤새워 가사를 쓰고 녹음했습니다. 이 디스전은 대중에게 힙합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음악적으로 한층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졌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슈프림팀 공식 해체]
동료 이센스가 아메바컬쳐와 계약을 종료하면서 슈프림팀은 4년간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합니다. 대한민국 힙합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듀오의 작별에 팬들은 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동료의 앞날을 축복하며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해체 소식은 힙합 커뮤니티와 연예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한동안 음악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휴식과 작업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작별은 훗날 그가 AOMG라는 새로운 둥지에서 리더로 거듭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2014
[AOMG 공동 대표 취임]
박재범이 설립한 힙합 레이블 AOMG의 공동 대표(Co-CEO)로 합류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에 경영자로서의 책임감까지 더해진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AOMG를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레이블로 키워내기 위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의 합류로 AOMG는 단순한 아이돌 출신 레이블에서 정통 힙합을 아우르는 거물급 레이블로 격상되었습니다. 그는 영입하고 싶은 아티스트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레이블의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대표 취임 이후 내놓은 작업물들은 트렌디하면서도 탄탄한 힙합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2015
[맥시 싱글 '사이먼 도미닉' 발매]
자신의 이름을 딴 맥시 싱글 '사이먼 도미닉'을 발표하며 음원 차트 정상에 오릅니다. 중독성 있는 훅과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가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AOMG 합류 이후 본격적인 활동 재개를 알린 성공적인 신호탄이었습니다.
타이틀곡 '사이먼 도미닉'은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달성하며 '쌈디 열풍'을 다시 불러왔습니다. 특히 도입부의 'Simon, Simon Dominic~'이라는 멜로디는 국민적인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그는 자신이 여전히 힙합 씬의 최정상에 있음을 완벽히 증명했습니다.
2016
[쇼미더머니 5 프로듀서 참여]
Mnet 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5'에 그레이와 함께 팀 프로듀서로 참여합니다. 참가자들에게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팀원들을 성장시켰습니다.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으로 최종 우승자를 배출하며 레이블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참가자 비와이와의 협업은 한국 힙합 역사에 남을 명곡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는 무대 연출부터 가사 검토까지 세심하게 챙기며 프로듀서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 그는 래퍼로서의 실력뿐만 아니라 조력자로서의 역량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2018
[나 혼자 산다 고정 출연]
MBC '나 혼자 산다'에 무지개 회원으로 합류하여 소탈한 자취 생활을 공개합니다. 앨범 작업 이후 기력이 쇠한 모습으로 '기석사'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톱 래퍼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모습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조카 채채와의 에피소드는 '조카 바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멤버들과의 케미스트리를 통해 예능 폼을 다시 끌어올렸고, 대중적 인기를 공고히 했습니다. 이 방송 활동은 그가 우울감을 극복하고 밝은 에너지를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크 룸(DARKROOM) 앨범 발표]
오랜 고뇌 끝에 정규 2집 'DARKROOM'을 기습 발표하며 음악적 성찰을 담아냅니다. 이전의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 대신 우울과 어둠, 솔직한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아티스트로서 가장 진솔하고 처절한 기록이 담긴 수작입니다.
앨범 발매 당일 그는 SNS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담담하게 고백하며 팬들의 걱정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운드와 분위기는 그가 겪어온 창작의 고통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평단은 이 앨범을 사이먼 도미닉의 가장 완성도 높은 예술적 결과물 중 하나로 꼽습니다.
[AOMG 대표직 사임]
곡 'Me No Jay Park'을 발표하며 AOMG의 공동 대표직에서 전격 사임할 것을 선언합니다. 경영자라는 자리가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래퍼 정기석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박재범과의 파트너십은 유지하되 아티스트로서의 본질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사임 발표는 힙합 씬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용기 있는 결단에 응원이 쏟아졌습니다. 대표직 사임 이후 그는 더욱 공격적이고 활발한 음악 작업을 이어가며 에너지를 되찾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자신의 커리어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2019
[EP '화기엄금' 발표]
기존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트렌디하고 강력한 비트가 돋보이는 EP '화기엄금'을 발표합니다. 구스범스와의 협업을 통해 감각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에너지를 회복한 그의 폭발적인 랩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앨범입니다.
수록곡 'DAX4' 등은 세련된 영상미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비트 위에서도 최상의 랩을 뱉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활동 중단 위기를 겪고 돌아온 그의 건재함을 알린 귀중한 작업물이었습니다.
2020
[다양한 브랜드 광고 모델 발탁]
음악과 예능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식품,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광고 모델로 발탁됩니다. 세련된 이미지와 친근한 예능감이 결합되어 광고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래퍼 중 한 명으로 꼽혔습니다. 그의 대중적 영향력이 산업 전반으로 확장된 결과입니다.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서 그만의 힙한 감각을 뽐냈으며, 식품 광고에서는 유머러스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광고 출연 수익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며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주는 훈훈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연예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2021
[티빙 '환승연애' 패널 출연]
화제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여 몰입도 높은 리액션을 보여줍니다. 출연자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등 진솔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솔직한 평가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배가시켰습니다.
단순한 패널을 넘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공감 요정으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시즌 2에도 연이어 출연하며 '환승연애'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방송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유연한 활동은 대중들에게 큰 호감을 주었습니다.
[MSG 워너비 멤버 발탁]
MBC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MSG 워너비'의 최종 멤버로 선발됩니다. 래퍼임에도 불구하고 감미로운 보컬 실력을 뽐내며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정기석'이라는 본명으로 다시 한번 신드롬을 일으킵니다.
유닛 '정상동기'의 멤버로서 발표한 '나를 아는 사람'은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의 매력적인 중저음 보컬은 발라드 장르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MSG 워너비 활동은 그에게 새로운 음악적 즐거움과 거대한 팬덤을 안겨주었습니다.
2022
[국가 재난 극복 기부 행보]
태풍 피해 및 산불 등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기부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실천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사회로 환원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부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기부 문화 확산에 앞장섰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행보는 많은 팬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팬들의 기부 릴레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침묵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의 자세는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2023
[AOMG 소속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로꼬, 우원재, 쿠기 등 레이블 동료들의 곡에 적극적으로 피처링 참여하며 시너지를 냅니다. 대표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레이블의 맏형으로서 후배들의 성장을 돕고 음악적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그가 참여한 피처링 곡들은 매번 화제가 되며 차트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특유의 쫄깃한 랩과 독보적인 목소리로 곡의 퀄리티를 한 단계 높였습니다. 공연 무대에서도 동료들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관객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러한 꾸준한 작업량은 그가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2024
[AOMG 전격 계약 종료]
오랜 시간 함께해온 AOMG와의 전속 계약을 종료하고 홀로서기에 나섭니다. 레이블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의 이적 소식은 가요계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10년간 정들었던 둥지를 떠나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시작하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동료들과는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팬들은 그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큰 기대를 보였습니다. 이 사건은 사이먼 도미닉의 커리어에서 제3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독립적인 창작 환경 구축]
대형 레이블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립적인 창작 크루 및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곡을 쓰고 발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주체성을 극대화하여 더욱 깊이 있는 음악을 예고했습니다.
소규모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매일 출근하며 작업에 몰입하는 성실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통해 초심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의 독립적인 행보는 기성 래퍼들에게 새로운 활동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데뷔 20주년 준비]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지 20여 년을 맞이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합니다. 오랜 시간 자신을 지켜준 팬들을 위한 특별한 앨범과 공연을 준비하며 초심을 되새겼습니다. 힙합의 역사와 함께해온 그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챕터로 향합니다.
과거의 히트곡들을 재해석하거나 미공개 곡들을 정리하며 창작 에너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수많은 풍파를 겪고도 정상을 지킨 그의 끈기와 열정은 후배 래퍼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그는 여전히 매일 밤 비트 위에서 가사를 쓰며 가장 '정기석'다운 음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