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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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군인, 위나라의 충신, 서진의 황족, 사마의의 동생 + 카테고리
사마부는 조위(曹魏)와 서진(西晉) 시대를 관통하며 살았던 인물로, 사마의의 셋째 동생입니다. 그는 사마씨 일가가 위나라의 권력을 찬탈하여 황제에 오르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으나, 자신만은 죽는 순간까지 '위나라의 신하'로 남기를 고집했던 독특한 처세의 소유자입니다. 형인 사마의를 도와 고평릉 사변 등 주요 정변에 참여하여 가문의 영광을 도왔으면서도, 조씨 황제들이 폐위되거나 시해될 때마다 유일하게 통곡하며 충절을 지켰습니다. 93세라는 장수를 누리며 영욕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냈으며, 그의 삶은 난세 속에서 가문의 이익과 개인의 명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던 처세의 달인이자 마지막 충신이라는 이중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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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0

[사마부의 탄생]

하내군 온현에서 사마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자는 숙달(叔達)이며, 훗날 위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사마의의 친동생입니다. 온화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사람들과 원한을 맺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형 사마의와 달리 처음부터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조조의 눈에 띄었으며, 난세의 시작점에서 사마씨 가문의 일원으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준비를 마칩니다.

210

[조조의 부름과 관직 생활 시작]

위왕 조조에 의해 문학연(이후 태자중서자)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합니다. 조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곁에서 보좌하며 행정 능력과 정치적 감각을 키웠습니다.
특히 조조의 후계자인 조비와도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사마부는 조비의 측근으로서 그가 태자의 지위를 굳히고 훗날 황제에 오르는 데 있어 실무적인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20

[조조의 죽음과 혼란 수습]

조조가 낙양에서 사망하자 조정이 혼란에 빠지고 군사들이 동요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때 사마부는 조비에게 '상복을 입고 슬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직언하며 신속히 질서를 잡을 것을 건의합니다.
그는 조비를 대신해 장례 절차와 군사 배치를 완벽하게 지휘했습니다. 밤낮으로 신하들을 통솔하고 궁궐의 경비를 강화하여 권력 이양기에 발생할 수 있는 반란이나 소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27

[조예 즉위와 재정 개혁]

명제 조예가 즉위한 후, 사마부는 탁지상서 등으로 승진하여 국가의 재정과 보급을 총괄하게 됩니다. 당시 비어있던 국고를 채우고 물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위나라의 경제적 기반을 다집니다.
그는 사치를 배격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조예가 그를 신임하여 국가의 중대사를 맡겼으며, 이는 훗날 촉나라 제갈량이나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위나라가 장기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34

[오장원 전투의 후방 지원]

촉나라의 제갈량이 북벌을 감행하여 오장원에서 형 사마의와 대치할 때, 사마부는 한중으로 향하는 보급로를 책임집니다. 전방의 군사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식량 운송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형인 사마의가 전선에서 마음 놓고 지구전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동생 사마부의 빈틈없는 행정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험준한 지형을 극복하고 물자를 조달하며 제갈량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숨은 공로를 세웠습니다.

249

[고평릉 사변과 둔기교위]

형 사마의가 조상을 제거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 때(고평릉 사변), 사마부는 이에 동참하여 군사적 요충지인 둔기(屯騎)를 장악합니다. 사마의의 명령에 따라 태후를 호위하고 수도의 치안을 확보하여 거사의 성공을 돕습니다.
비록 위나라의 충신을 자처했으나, 가문의 존망이 걸린 권력 투쟁 앞에서는 형의 편에 섰습니다. 그는 조상 일파를 처단하는 데 일조함으로써 사마씨 가문이 위나라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253

[합비신성 전투의 승리]

오나라의 실권자 제갈각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합비신성을 포위 공격하자, 74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사마부가 진동장군이 되어 구원군을 이끌고 출정합니다. 그는 정면승부 대신 심리전을 활용하여 적을 퇴각시킵니다.
사마부는 '적을 급하게 공격하기보다 우리 군의 위용을 보여주며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오나라 군대는 전염병과 사기 저하로 인해 스스로 물러났으며, 이 승리로 그는 위나라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냈다는 명성을 얻습니다.

254

[조방 폐위와 홀로 흘린 눈물]

사마사(사마의의 아들)가 황제 조방을 폐위시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조정의 모든 신하가 두려움에 떨며 침묵하거나 동조할 때, 사마부는 홀로 폐위되는 황제 앞에서 통곡하며 슬픔을 감추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의 조카인 사마사가 주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신하로서의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신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폐위를 막지는 못하고 단지 슬퍼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그의 처세술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255

[사마사의 죽음과 후계 안정]

사마사가 관구검의 난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중 사망하자, 사마부는 사마소(사마사의 동생)가 권력을 순조롭게 이어받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군사적 공백을 메우고 반대파의 준동을 막으며 가문의 권력 승계를 뒷받침합니다.
사마부는 사마소가 낙양으로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군대를 이끌고 후방을 방어했습니다. 가문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조카들을 도와 사마씨 정권을 굳건히 하는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260

[조모 시해 사건과 시신 수습]

황제 조모가 사마소의 전횡에 반발하여 거사했다가 시해당하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소식을 들은 사마부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황제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고 '폐하께서 돌아가신 것은 신의 죄입니다'라고 외치며 오열합니다.
사마소의 부하들이 서슬 퍼렇게 감시하는 와중에도 그는 황제의 장례를 왕의 예우로 치를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이는 사마씨 일가 중 유일하게 위나라 황실에 대한 예의와 충성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사건으로, 그의 기행이자 진심이 드러난 가장 유명한 일화입니다.

265

[서진 건국과 안평왕 책봉]

조카손자인 사마염이 위나라 원제 조환에게 선양을 받아 서진(西晉)을 건국하고 황제에 오릅니다. 사마부는 황족의 최고 어른으로서 안평왕에 책봉되고 막대한 식읍을 하사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황제 즉위식에서 만세를 부르지 않았으며, 폐위된 조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신은 죽는 날까지 위나라의 순수한 신하로 남겠습니다'라고 맹세했습니다. 사마염은 감히 그를 벌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충심을 높이 샀습니다.

267

[황제의 극진한 예우]

진 무제 사마염은 사마부를 아버지처럼 공경하여 파격적인 특권을 부여합니다. 사마부가 궁궐에 들어올 때 수레를 타고 올 수 있게 허락했으며, 황제가 직접 마중을 나가고 자리를 권하는 등 황족 중 최고의 대우를 받습니다.
사마부는 이러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늘 자신을 '위나라의 신하'라고 칭했습니다. 그는 화려한 생활을 멀리하고 검소하게 지냈으며, 권력의 정점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아 가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272

[사마부의 죽음과 유언]

향년 93세를 일기로 사마부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장례를 화려하게 치르지 말고 평상복을 입혀서 매장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이는 끝까지 위나라의 신하로 남겠다는 그의 마지막 의지 표현이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위나라의 고(故) 태재 사마부'라는 문구가 새겨지길 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마염은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사흘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최고의 예우로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사후 '헌(獻)'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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