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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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
음악 그룹, 팝 음악, 솔 음악, 디스코, 록 음악, 싱어송라이터 + 카테고리

비지스는 깁 삼형제가 결성한 전설적인 음악 그룹입니다.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70년대 중후반 디스코로 전향하며 세계적인 디스코 그룹이 되었습니다. 독특한 삼부 성조 합창과 배리 깁의 리듬 앤 블루스 가성이 특징입니다. 직접 작곡, 연주, 노래하며 전 세계 2억 장 이상 음반을 판매하여 가장 성공한 트리오로 평가됩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및 다수의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형제들의 사망으로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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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5

[비지스의 전신, 래틀스네이크스 결성]

배리, 로빈, 모리스 깁 삼형제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래틀스네이크스'라는 스키플/로큰롤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이후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비지스의 전신이 됩니다.

1955년, 깁 형제는 아버지 휴 깁의 고향인 영국 맨체스터의 콜턴에서 '래틀스네이크스'를 결성했습니다. 배리가 기타와 보컬을 맡고, 로빈과 모리스가 보컬을, 친구인 폴 프로스트가 드럼을, 케니 호록스가 워시텁 베이스를 맡아 스키플과 로큰롤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57

[래틀스네이크스, 우연한 첫 라이브 공연]

맨체스터의 한 지역 영화관에서 래틀스네이크스가 첫 라이브 공연을 펼쳤습니다. 원래는 립싱크를 하려 했지만 레코드가 깨져 즉흥 라이브를 선보였고,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1957년 12월, 래틀스네이크스는 맨체스터의 지역 영화관에서 첫 라이브 공연을 가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준비한 음반을 틀고 립싱크를 하려 했으나, 극장으로 가는 도중 레코드 디스크가 깨지는 바람에 라이브로 노래를 해야 했습니다. 아직 아마추어였던 이들의 라이브 공연이 청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형제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58

[깁 가족,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

깁 가족은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 주의 레드클리프로 이주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형제는 용돈벌이 공연을 시작하며 훗날 '비지스'가 될 활동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58년 8월, 깁 형제의 누이 레슬리와 그해 3월에 태어난 앤디를 포함한 깁 가족 전체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여 퀸즈랜드 주의 레드클리프에 자리잡았습니다. 형제는 이곳에서 용돈벌이를 위해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래틀스네이크스 해체와 새 밴드 결성]

래틀스네이크스의 다른 멤버들이 팀을 떠나 해체된 후, 깁 형제는 '위 조니 헤이스 앤드 블루 캣츠'를 결성하며 밴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비지스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 전의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줍니다.

1958년 5월, 래틀스네이크스의 멤버였던 폴 프로스트와 케니 호록스가 팀을 떠나면서 밴드는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깁 형제는 '위 조니 헤이스 앤드 블루 캣츠'를 결성하며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1960

['비지스' 그룹명 탄생]

레드클리프의 스피드웨이 경기장에서 공연하던 중, 홍보 담당 빌 구드와 라디오 진행자 빌 게이츠의 제안으로 그룹 이름이 '비지스(Bee Gees)'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깁 형제(Brothers Gibb)'의 약자라는 오해와 달리, 배리 깁과 빌 구드의 이니셜 B와 G를 따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1960년, 레드클리프의 스피드웨이 경기장에서 막간 공연을 하던 깁 형제는 홍보 담당 빌 구드와 브리즈번 라디오 진행자 빌 게이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게이츠는 형제들의 맏이 배리의 'B'와 빌 구드의 'G'를 따서 'BGs'라고 그룹을 소개했고, 이것이 훗날 '비지스(Bee Gees)'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62

[시드니 스타디움 콘서트 참여]

비지스는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명 가수 처비 체커의 콘서트에 초대 가수로 참여하며 오스트레일리아 내에서 점차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1962년, 비지스는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처비 체커의 콘서트에 초대 가수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퀸즈랜드 해안의 리조트를 돌며 활동하던 비지스가 더 큰 무대에 서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3

[린던 레코즈와 음반 계약]

오스트레일리아의 록 가수 콜 조이의 주선으로 비지스는 페스티벌 레코즈의 자회사인 린던 레코즈와 계약을 맺고 정식 음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1963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록 가수였던 콜 조이는 배리 깁의 뛰어난 작곡 실력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비지스가 페스티벌 레코즈의 자회사인 린던 레코즈와 계약을 맺도록 주선하며 이들의 음악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1965

[첫 앨범 제작 및 인기 확보]

비지스는 싱글 'Wine and Women'으로 인기를 얻고 첫 LP 앨범인 《The Bee Gees Sing and Play 14 Barry Gibb Songs》를 제작했습니다.

1965년, 비지스는 'Wine and Women'을 발표하여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으며, 이에 힘입어 첫 LP 앨범인 《The Bee Gees Sing and Play 14 Barry Gibb Songs》를 제작했습니다.

1966

['Spicks and Specks' 녹음 및 기술 향상]

스핀 레코즈 이적 후, 오시 바이른 스튜디오에서 무제한으로 녹음하며 기술을 향상시켰고, 첫 대규모 히트작 'Spicks and Specks'를 녹음했습니다.

1966년 중반 무렵, 냇 키프너의 주선으로 비지스는 시드니 교외에서 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던 오시 바이른을 만났습니다. 바이른은 비지스에게 자신의 스튜디오를 언제든 무제한 쓸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비지스는 이러한 도움을 통해 스스로의 녹음 기술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비지스의 첫 대규모 히트작 'Spicks and Specks'이 녹음되었습니다.

[스핀 레코즈 이적 및 매니저 영입]

상업적 성공 부족으로 린던 레코즈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했으나, 미국 출신 프로듀서 냇 키프너를 만나 스핀 레코즈로 이적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키프너는 비지스의 매니저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1966년, 린던 레코즈는 비지스의 상업적 성공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자신들의 가수 목록에서 제외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형제는 새로운 독립 레이블인 스핀 레코즈의 A&R 매니저로 임명된 미국 출신 프로듀서 냇 키프너를 만났습니다. 키프너는 비지스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이들을 스핀 레코즈로 이적시켰고, 페스티벌 레코즈에게 비지스 음반의 오스트레일리아 배포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다쉬 다쉬 테스트]

1967

[미국 히트곡 'Holiday' 발매]

미국에서 'Holiday' 싱글이 발매되어 최고 16위를 기록하며 비지스의 미국 내 인기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이 곡은 그들의 초기 히트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미국에서 발매된 또 다른 싱글 'Holiday'는 빌보드 차트에서 최고 16위를 기록하며 비지스의 인기를 이어나갔습니다.

[《톱 오브 더 팝스》 첫 출연]

영국의 인기 텔레비전 쇼 《톱 오브 더 팝스》에 처음으로 출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인기를 더욱 높였습니다.

1967년, 비지스는 영국의 인기 텔레비전 쇼 《톱 오브 더 팝스》에 처음으로 출연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첫 텔레비전 출연이었으며, 이들의 인기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새 멤버 콜린 피터슨, 빈스 멜러니 합류]

첫 국제 앨범 제작 중, 콜린 피터슨과 빈스 멜러니가 새로운 멤버로 비지스에 합류했습니다. 이는 밴드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로버트 스티그우드와의 계약 후 첫 국제 앨범을 제작하면서 비지스는 콜린 피터슨과 빈스 멜러니를 새 멤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의 합류로 밴드는 더욱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스티그우드와 국제 음반 계약]

비틀즈의 매니저 역할을 하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통해 로버트 스티그우드가 비지스의 오디션을 보았고, 5년 간의 음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영국 판권은 폴리도르 레코드, 미국은 앳코 레코드가 맡게 됩니다.

깁 형제의 아버지 휴 깁은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비틀즈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영국 음반 판매사인 NEMS의 이사로 있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비지스의 녹음 데모를 보냈습니다. 엡스타인은 이것을 최근 NEMS에 합류한 로버트 스티그우드에게 전달하였고, 1967년 2월 스티그우드는 비지스의 오디션을 보고 5년 계약을 결정했습니다. 영국의 판권은 폴리도르 레코드가, 미국은 앳코 레코드가 가졌습니다.

['Spicks and Specks' 올해의 싱글 선정 소식]

영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비지스는 'Spicks and Specks'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올해 최고의 싱글'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는 영국에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습니다.

1967년 1월, 바다에 있는 동안 깁 형제들은 'Spicks and Specks'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올해 최고의 싱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국제적인 성공 가능성을 엿보게 했습니다.

[영국으로의 여정 시작]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성공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깁 형제는 오시 바이른과 함께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국제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삶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깁 형제는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1967년 1월 4일 오시 바이른과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초기 국제 히트곡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 성공]

로버트 스티그우드의 기발한 홍보 전략(비틀즈 신곡으로 위장) 덕분에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이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상위 20위 안에 드는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국제적 성공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발매된 싱글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제작한 'Spicks and Specks'였고, 두 번째 싱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이 스티그우드의 지휘 아래 영국에서 녹음되었습니다. 스티그우드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흰색 빈 레이블에 노래 제목만 나열된 음반을 라디오 방송국에 배포하였고, 일부 디스크 자키들은 이것을 비틀즈의 새 싱글로 착각하여 집중적으로 편성했습니다. 이 전략으로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는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상위 20위 안에 들었습니다.

['To Love Somebody' 발매 및 발라드 명곡 등극]

원래 오티스 레딩을 위해 작곡된 곡 'To Love Somebody'를 배리 깁이 부르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이 곡은 많은 음악가들에게 솔 발라드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인기 가도에 오른 비지스는 다음 싱글인 'To Love Somebody'를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원래 오티스 레딩을 위해 작곡되었으나 배리 깁이 부르게 되었고, 이후 많은 음악가들에게 솔 발라드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첫 국제 앨범 《Bee Gees 1st》 발표]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만든 첫 앨범인 《Bee Gees 1st》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7위, 영국 8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습니다.

비지스는 이미 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었지만 국제적 활동을 하며 만든 앨범을 첫 앨범이라는 의미로 《Bee Gees 1st》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빌보드 차트 7위, 영국 음반 차트 8위를 기록하며 비지스의 국제적 성공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크리스마스 특집 생방송 공연]

리버풀 대성당에서 크리스마스 특집 텔레비전 생방송 'How On Earth?'에 출연하여 특별히 작곡한 'Thank You For Christmas'와 캐럴들을 공연했습니다.

1967년 12월 21일, 리버풀 대성당에서 'How On Earth?'라는 크리스마스 특집 텔레비전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비지스는 이 날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Thank You For Christmas'를 공연하였고, 이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 'Mary's Boy Child'와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습니다. 이 공연의 녹음은 2008년 재발매되기도 했습니다.

1968

[프로콜 하럼과 합동 공연]

독일 투어 중 유명 밴드 프로콜 하럼과 함께 공연했습니다. 이는 당시 비지스의 위상을 짐작케 하는 부분입니다.

1968년 3월, 독일 투어 중이던 비지스는 프로콜 하럼과 함께 공연을 가졌습니다. 모리스 깁은 스위스 투어를 회상하며 당시 유럽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Massachusetts' 영국 싱글 1위 기록]

앨범 《Horizontal》의 수록곡 'Massachusetts'가 처음으로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World'는 영국 싱글 7위에 오르며 비지스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1968년 2월, 앨범 《Horizontal》에 수록된 싱글 'Massachusetts'가 처음으로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미국에서도 11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World'는 영국 싱글 7위에 오르며 비지스의 음악적 영향력을 확고히 했습니다.

[뜨거운 인기로 미국 투어 시작]

미국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비틀즈 방문 때와 같은 소동을 예상하고 특별 보안 조치를 내릴 정도로 비지스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1968년 1월, 비지스는 미국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비틀즈의 방문 때 있었던 소동을 예상하고 특별 보안 조치를 내릴 정도로 비지스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히트곡 'Words' 및 양면 싱글 발표]

발라드 'Words'가 영국 8위, 미국 15위를 기록하며 히트했습니다. 또한 'Jumbo'와 'The Singer Sang His Song'을 수록한 양면 싱글을 발표했습니다(

1968년 초, 비지스는 발라드인 'Words'를 발표하여 영국 8위, 미국 15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어서 'Jumbo'와 'The Singer Sang His Song'을 수록한 양면 싱글을 발표했으며, 'Jumbo'는 영국 25위, 미국 57위에 그쳤지만 'The Singer Sang His Song'은 네덜란드에서 3위에 오르는 인기를 얻었습니다.

[두 번째 국제 앨범 《Horizontal》 발표]

두 번째 국제 앨범 《Horizontal》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이전보다 록적인 요소를 강조했으며, 미국 12위, 영국 16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1968년 2월 1일 발표한 앨범 《Horizontal》은 이전보다 더 '록'의 요소가 강조되었지만 'And the Sun Will Shine', 'Really and Sincerely'와 같은 발라드도 두드러졌습니다. 앨범 판매는 미국 12위, 영국 16위를 기록하며 비지스의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독일 투어 시작 및 오케스트라 협연]

매사추세츠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뮤지크할러 함부르크에서 콘서트를 열며 독일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유럽 전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1968년 2월 27일, 비지스는 17명으로 구성된 매사추세츠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뮤지크할러 함부르크에서 콘서트를 갖고 독일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지스가 유럽 본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드 설리번 쇼》 출연 및 'Words' 공연]

미국의 유명 버라이어티 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Words'를 공연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비지스의 미국 대중 인지도 향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68년 3월 17일, 비지스는 미국의 인기 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Words'를 공연했습니다. 이 날 공연에는 루실 볼, 조지 해밀턴 등 다른 유명인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런던 로열 앨버트 홀 공연]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이는 영국 음악계에서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1968년 3월 27일, 비지스는 런던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는 그들의 성공적인 영국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무대였습니다.

[로빈 깁 건강 악화로 미국 투어 중단]

로빈 깁이 신경과민으로 쓰러져 런던 요양원에 입원했습니다. 1968년 8월 2일부터 7주간 진행될 예정이었던 미국 투어가 로빈 깁의 건강 악화(신경과민 및 의식 불명)로 인해 중단되었습니다.

[앨범 《Idea》 발표]

앨범 《Idea》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멤버 로빈 깁의 건강 문제 속에서도 비지스의 음악적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68년 9월 1일, 비지스는 앨범 《Idea》를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는 로빈 깁의 건강 문제로 미국 투어가 중단되는 등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통해 지속적인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69

[로빈 깁, 비지스 탈퇴]

로빈 깁은 자신보다 배리 깁을 프론트맨으로 선호하는 스티그우드의 방식에 불만을 느껴 그룹을 탈퇴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첫 번째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1969년, 로빈 깁은 매니저 로버트 스티그우드가 자신보다 배리 깁을 프론트맨으로 선호한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69년 초 《톱 오브 더 팝스》와 《더 톰 존스 쇼》에 출연한 것을 끝으로 로빈은 그룹을 그만두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명반 《Odessa》 발표 및 'First of May' 히트]

1969년 3월 30일, 당초 《Masterpeace》라는 제목의 컨셉 앨범으로 기획되었던 더블 앨범 《Odessa》를 발표하였습니다. 수록곡 'First of May'는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타이틀 트랙인 프로그레시브 록 느낌의 'Odessa (City on the Black Sea)'와 함께 컨트리 풍의 'Marley Purt Drive', 'Give Your Best', 그리고 발라드 곡인 'Melody Fair', 'First of May' 등이 수록되며 비지스의 1960년대 최고 앨범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First of May'는 영국 싱글 차트 6위를 기록했습니다. 로빈은 음반의 B면에 수록된 'Lamplight'가 A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대한 갈등으로 1969년 중반 그룹을 떠나 솔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로빈 깁 솔로곡 'Saved by the Bell' 대히트]

로빈 깁의 솔로 앨범 《Robin's Reign》에 수록된 'Saved by the Bell'은 영국 히트곡 2위에 오르며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형제들의 솔로 활동 중 가장 빛나는 성과였습니다.

비지스 해체 후, 로빈 깁은 솔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앨범 《Robin's Reign》에 수록된 'Saved by the Bell'은 영국 히트곡 2위에 오르면서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로빈의 솔로 가수로서의 역량을 입증했습니다.

1970

[모리스 깁 솔로 활동 시작]

모리스 깁은 솔로 앨범 《The Loner》를 녹음했으나 발매되지 않았고, 싱글 'Railroad'를 발표하며 뮤지컬에 출연하는 등 솔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비지스가 잠정 해체된 후 모리스 깁은 솔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앨범 《The Loner》의 녹음을 시작했으나 발매되지는 않았고, 싱글 'Railroad'를 발표하며 웨스트엔드 뮤지컬 《Sing a Rude Song》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내리막길과 잠정 해체]

앨범 발매 이후 싱글 'Don't Forget to Remember'는 영국에서 2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으나, 뒤이은 싱글들은 큰 반향을 얻지 못하며 비지스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1970년 초 앨범 《Cucumber Castle》이 발매된 이후 비지스는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싱글 'Don't Forget to Remember'는 영국에서 2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미국에서는 73위에 그쳤습니다. 뒤를 이은 싱글 'IOIO'와 'If I Only Had My Mind on Something Else'는 간신히 차트에 진입했을 뿐이었고, 비지스는 결국 모두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배리 깁 솔로 활동, 큰 관심 못 받아]

배리 깁은 솔로 앨범을 녹음했지만 정식 발매되지 못했고, 싱글 'I'll Kiss Your Memory'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로빈 깁의 솔로 성공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비지스 해체 후 배리 깁은 1970년 2월 솔로 앨범을 녹음했지만 정식 발매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싱글 'I'll Kiss Your Memory'는 《This Time》의 뒷 면에 수록되었으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로빈 없는 앨범 《Cucumber Castle》 발표]

로빈 깁이 없는 상태에서 배리, 모리스, 피터슨이 녹음한 앨범 《Cucumber Castle》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런던 공연과 깁 형제의 여동생 리즐리의 영입 등 로빈 부재 속의 노력을 담았습니다.

1970년 4월 1일, 로빈 깁이 솔로 활동을 계속하는 동안 배리, 모리스, 피터슨은 계속 활동하며 다음 앨범인 《Cucumber Castle》을 녹음하였습니다. 비지스는 런던에서 로빈이 없는 상태로 공연하였고, 깁 형제의 여동생 리즐리를 그룹의 새 멤버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피터슨은 앨범 녹음에서 드럼을 연주했지만 앨범 제작 이후 해고되었고, 이 앨범을 주제로 한 영화 제작에는 테리 콕스가 드럼을 맡았습니다.

[비지스 극적인 재결합 선언]

배리 깁과 로빈 깁의 연락으로 비지스는 재결합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 여름, 비지스는 재결합 하였습니다. 배리 깁은 휴가 중에 로빈 깁으로부터 '다시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8월 21일 재결합을 발표하며 비지스는 다시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공언했습니다.

[재결합 후 첫 앨범 《2 Years On》 발표]

재결합 후 첫 앨범인 《2 Years On》을 출시했습니다. 앨범의 리드 싱글 'Lonely Days'는 미국 빌보드 차트 3위에 오르며 성공적인 재기를 알렸습니다.

재결합 후 제작한 앨범 《2 Years On》은 미국에서 10월, 영국에서 11월에 출시되었습니다. 앨범의 리드 싱글 'Lonely Days'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3위에 오르며 비지스의 성공적인 재기를 알렸습니다.

1971

[새 드러머 조프 브리지퍼드 영입]

재결합 후 비지스는 조프 브리지퍼드를 새로운 드럼 연주자로 영입했습니다. 이는 밴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멤버 구성 변화였습니다.

비지스가 재결합한 후, 조프 브리지퍼드를 새 드럼 연주자로 영입하며 새로운 음악 활동을 위한 라인업을 보강했습니다.

[영화 《작은 사랑의 멜로디》 사운드 트랙 참여]

비지스의 노래들이 영화 《작은 사랑의 멜로디》의 사운드 트랙에 포함되어 영화의 흥행과 함께 그룹의 인지도도 상승했습니다.

1971년 말, 비지스의 노래들이 영화 《작은 사랑의 멜로디》의 사운드 트랙에 포함되면서 영화의 인기와 함께 그룹의 음악이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첫 미국 차트 1위곡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탄생]

9집 앨범 《Trafalgar》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의 싱글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는 비지스 최초로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래미상 후보에 지명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1971년 후반 발매된 9집 앨범 《Trafalgar》에 수록된 싱글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는 비지스 최초로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그래미 어워드 후보로 지명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72

[히트 싱글 'My World'와 'Run to Me' 발표]

싱글 'My World'가 미국 차트 16위를 기록했고, 'Run to Me'는 3년 만에 영국 차트 10위 안에 들며 꾸준한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1972년, 비지스의 싱글 'My World'가 미국 차트 16위를 기록하였고, 'Run to Me'는 3년 만에 영국 차트 10위 안에 들면서 비지스의 음악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앨범 《To Whom It May Concern》 발표]

앨범 《To Whom It May Concern》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비지스의 지속적인 음악 활동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그룹은 다시 부진을 겪기 시작합니다.

1972년 10월 1일, 비지스는 앨범 《To Whom It May Concern》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 조프 브리지퍼드가 그룹을 떠나자 비지스는 새 드럼 연주자를 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후 비지스는 배리, 로빈, 모리스 세 형제만으로 구성되어 활동했습니다.

1973

[앨범 《Life in a Tin Can》 발표 및 부진]

앨범 《Life in a Tin Can》을 발표했으나, 이 시기 비지스는 다시 부진을 겪으며 인기가 침체되었습니다.

1973년 1월 19일, 비지스는 앨범 《Life in a Tin Can》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비지스는 다시 부진을 겪기 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소규모 클럽에서 연주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1974

[미국 및 캐나다 투어, 인기 침체기]

미국과 캐나다 투어를 진행했으나, 소규모 클럽에서 연주하게 되는 등 그룹의 인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74년의 미국과 캐나다 투어 이후 비지스는 소규모 클럽에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배리 깁은 '잉글랜드에 있는 버틀리의 버라이어티 클럽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할 정도로 그룹의 인기가 하락한 시기였습니다.

[리듬 앤 블루스 전환 시도한 앨범 《Mr. Natural》 발표]

앨범 《Mr. Natural》을 발표하며 발라드 위주에서 리듬 앤 블루스로의 전환을 시도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1974년 6월 15일, 비지스는 앨범 《Mr. Natural》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 비지스는 발라드를 줄이고 리듬 앤 블루스로의 전환을 시도하였으나,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1975

[마이애미 이주 및 디스코 음악으로 전향]

에릭 클랩튼의 제안으로 마이애미의 크리테리아 스튜디오로 이사하고 디스코 음악으로 전향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음악적 전환점이자 제2의 전성기를 여는 계기가 됩니다.

1975년 초, 비지스 형제는 에릭 클랩튼의 제안에 따라 크리테리아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에서 비지스는 디스코 음악으로의 전환을 결정하며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게 됩니다.

[디스코 전향 후 첫 성공 앨범 《Main Course》 발표]

디스코 전향 후 제작된 음반 《Main Course》를 발표했습니다. 'Jive Talkin''이 미국 차트 1위, 'Nights on Broadway'가 미국 7위를 차지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배리 깁의 독특한 가성이 비지스의 새로운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5년 6월 1일, 디스코로 전환하여 제작된 음반 《Main Course》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Jive Talkin''이 미국 차트 1위, 'Nights on Broadway'가 미국 7위를 차지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이 앨범에서 배리 깁은 이후 비지스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특유의 가성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76

[디스코 음반 《Children of the World》 발매]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배리 깁의 가성이 특징인 디스코 음반 《Children of the World》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8위까지 오르며 비지스를 미국에서 열렬한 인기를 누리는 그룹으로 만들었습니다.

1976년 9월 1일 발매된 앨범 《Children of the World》는 신디사이저 소리와 배리 깁의 가성이 가득한 디스코 음반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빌보드 차트 8위까지 올랐으며, 비지스는 미국에서 열렬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만, 예전의 팬들 중 일부는 그들의 디스코 전향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1977

['Night Fever' 미국/영국 동시 1위]

사운드 트랙 《Saturday Night Fever》의 'Night Fever'가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며 비지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Night Fever'는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며 비지스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절정으로 이끌었습니다.

['How Deep Is Your Love' 전 세계 히트]

사운드 트랙 《Saturday Night Fever》의 수록곡 'How Deep Is Your Love'가 미국 1위, 영국 3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How Deep Is Your Love'는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영국 싱글 차트 3위를 차지하며 비지스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Stayin' Alive' 디스코 열풍의 상징]

사운드 트랙 《Saturday Night Fever》의 또 다른 히트곡 'Stayin' Alive'가 미국 1위, 영국 4위를 기록하며 디스코 열풍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Stayin' Alive'는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영국 싱글 차트 4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를 휩쓸었고, 디스코 전성 시대를 알리는 대표적인 곡이 되었습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트랙 참여 및 발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 트랙 작업에 참여하여 디스코 음반 《Saturday Night Fever》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비지스 활동의 정점이자 전 세계적인 디스코 전성 시대를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1977년, 앨범의 성공 이후 비지스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 트랙 작업에 참여했고, 이렇게 하여 나온 디스코 음반 《Saturday Night Fever》는 비지스 전체 활동 가운데 정점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영화와 사운드 트랙 모두 대서양의 양쪽 모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라이브 음반 《Here at Last... Bee Gees... Live》 발표]

라이브 음반 《Here at Last... Bee Gees... Live》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비지스의 뛰어난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며 미국 차트 8위에 올랐습니다.

1977년 비지스는 라이브 음반 《Here at Last... Bee Gees... Live》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비지스의 강력한 라이브 무대를 담아냈으며,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8위를 기록했습니다.

1978

[빌보드 차트 역사적인 기록 달성]

'Night Fever'와 'Stayin' Alive'가 빌보드 차트 2위를 차지하는 등, 빌보드 핫 100 상위 10곡 중 5곡이 깁 형제 작곡인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1964년 비틀즈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1978년 3월, 비지스는 'Night Fever'와 'Stayin' Alive'로 미국 빌보드 차트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때 빌보드 핫 100의 상위 10곡 가운데 5곡이 깁 형제가 작곡한 것이었는데, 이 정도의 영향력은 1964년 비틀즈 이후 없었던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특히 배리 깁은 4회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기록을 무너뜨렸습니다.

[영화 《그리스》 타이틀 곡 작곡]

배리 깁은 프랭키 밸리가 공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스》의 영화 버전 타이틀 곡을 작곡하여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비지스 외적인 작곡 능력도 인정받은 사례입니다.

이 시기에 배리 깁은 프랭키 밸리가 공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스》의 영화 버전 타이틀 곡도 작곡하였고, 이 곡도 1위를 기록하며 그의 뛰어난 작곡 실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Saturday Night Fever》로 5개 그래미상 수상]

비지스는 《Saturday Night Fever》 사운드 트랙으로 2년에 걸쳐 5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룹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1978년, 비지스는 영화 《Saturday Night Fever》의 사운드트랙으로 2년에 걸쳐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5개 부문에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업적이었습니다.

1979

[베스트 앨범 《Bee Gees Greatest》 발표]

컴필레이션 앨범 《Bee Gees Greatest》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차트 1위,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하며 비지스의 위대한 히트곡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1979년 비지스는 컴필레이션 앨범 《Bee Gees Greatest》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차트 1위,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하며 비지스의 과거 히트곡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디스코 인기 하락과 함께 비지스 인기 쇠퇴]

디스코의 인기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비지스 또한 인기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압도적인 성공이 디스코와 함께 흥망성쇠를 같이 했음을 보여줍니다.

1979년 말, 디스코의 인기가 급격히 하락하자 비지스 역시 인기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압도적인 성공이 디스코 열풍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었습니다.

[앨범 《Spirits Having Flown》 미국/영국 1위]

앨범 《Spirits Having Flown》을 발표하여 미국과 영국 차트 모두 1위를 기록하며 여전한 인기를 보여주었습니다.

1979년 2월 5일, 비지스는 앨범 《Spirits Having Flown》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 차트 모두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1980

[로빈 깁, 지미 러핀 앨범 공동 제작]

로빈 깁이 지미 러핀의 앨범 《Sunrise》를 공동 제작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깁 형제가 작곡한 'Hold On To My Love' 등이 수록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깁 형제는 각기 다른 그룹의 음반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빈 깁은 1980년 5월 발매된 지미 러핀의 앨범 《Sunrise》를 공동 제작했으며, 여기에는 깁 형제가 작곡한 'Hold On To My Love'와 같은 노래가 포함되었습니다.

[배리 깁,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앨범 《Guilty》 작업]

배리 깁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앨범 《Guilty》를 작업했습니다. 이 앨범의 모든 곡 제작에 배리가 참여했으며 일부는 로빈, 모리스도 작사에 참여했습니다.

1980년 3월, 배리 깁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앨범 《Guilty》를 작업했습니다. 이 앨범의 모든 곡 제작에 배리가 참여하였으며 일부는 로빈, 모리스도 작사를 하면서 깁 형제들의 작곡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81

[부진했던 앨범 《Living Eyes》 발표]

RSO 레코드를 통해 CD 음반 《Living Eyes》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디스코에 대한 반발로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40위권에도 들지 못하며 부진을 겪었습니다.

1981년 10월 1일, 비지스는 RSO 레코드를 통해 CD 음반 《Living Eyes》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디스코에 대한 여전한 반발로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40위권에도 들지 못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982

[디온 워릭 'Heartbreaker' 작곡, 영국 2위]

디온 워릭의 'Heartbreaker'를 작곡하여 영국 차트 2위를 기록했습니다. 비지스는 다른 가수를 위한 작곡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 비지스는 디온 워릭의 히트곡 'Heartbreaker'를 작곡하여 영국 차트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비지스는 이 시기에 자신들의 앨범보다는 다른 가수를 위한 작곡에서 더 나은 성적을 보였습니다.

1983

[배리 깁, MCA 레코즈와 솔로 계약]

배리 깁이 MCA 레코즈와 솔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형제들이 각자의 솔로 활동에 집중하는 시기였습니다.

1983년 8월, 배리 깁은 MCA 레코즈와 솔로 계약을 체결하며 솔로 활동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 시기 로빈 깁도 세 개의 솔로 싱글을 발표했고, 모리스 깁도 솔로 싱글 'Hold Her in Your Hand'를 발표하는 등 형제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영화 《스테잉 얼라이브》 사운드트랙 히트]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속편 《스테잉 얼라이브》의 사운드트랙이 미국 30위권에 진입하며 히트했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열풍은 아니었습니다.

1983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속편 격으로 제작된 영화 《스테잉 얼라이브》의 사운드트랙은 다시 히트하여 미국 30위권에 진입하였지만, 예전과 같은 열풍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돌리 파튼/케니 로저스 'Island in the Stream' 작곡]

돌리 파튼과 케니 로저스의 듀엣곡 'Island in the Stream'을 작곡하여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1위, 영국 10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곡은 컨트리 음악의 전설적인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1983년, 돌리 파튼과 케니 로저스는 비지스가 작곡한 트랙 'Island in the Stream'으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위를 기록하였고 영국에서도 10위권에 진입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How Deep Is Your Love' 표절 시비 무죄 판결]

'How Deep Is Your Love'의 표절 시비에 휘말렸으나, 몇 달 뒤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음악적 독창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3년 이 시기 비지스는 표절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시카고의 작곡가 로널드 셀이 'How Deep Is Your Love'의 일부가 자신의 노래 'Let It End'에서 멜로디를 훔쳤다고 주장했지만, 소송은 비지스에게 불리하게 시작되었으나 몇 달 뒤에 뒤집혀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85

[다이애나 로스 'Chain Reaction' 작곡, 영국/오스트레일리아 1위]

비지스가 작곡하고 마이클 잭슨이 참여한 다이애나 로스의 앨범 《Eaten Alive》 수록곡 'Chain Reaction'이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작곡 능력이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85년 비지스가 작곡하고 마이클 잭슨이 참여한 다이애나 로스의 앨범 《Eaten Alive》에 수록된 'Chain Reaction'이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위를 차지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비지스가 다른 아티스트를 위한 곡 작업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음을 보여줍니다.

1987

['You Win Again' 영국 1위 및 아이버 노벨로 어워드 수상]

앨범 《E.S.P.》의 싱글 'You Win Again'이 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1위에 올랐으며, 영국 아이버 노벨로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1987년 앨범 《E.S.P.》에 수록된 싱글 'You Win Again'은 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1위에 올랐지만, 미국에서는 75위의 실망스러운 기록을 보였습니다. 비지스는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유럽의 히트 싱글을 방영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영국 아이버 노벨로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워너 레코드 첫 앨범 《E.S.P.》 발표 및 인기 회복]

워너 레코드에서 제작한 첫 앨범 《E.S.P.》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2백만 부 이상 팔리며 비지스에게 다시 한번 인기를 안겨주었습니다.

1987년 9월 1일 발표한 앨범 《E.S.P.》가 2백만 부 이상 팔리며 비지스는 다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앨범은 6년 만에 나온 앨범이자 워너 레코드에서 제작한 첫 앨범이었습니다.

1988

[동생 앤디 깁 30세 나이로 사망]

깁 형제의 동생이자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앤디 깁이 30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이는 비지스 형제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1988년 3월 10일,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던 깁 형제의 동생 앤디 깁이 30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1989

[10년 만의 세계 투어 시작]

앨범 《One》 발매 이후 10년 만에 세계 투어에 나섰습니다. 이는 비지스가 다시 한번 세계적인 팬들과 만나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1989년 앨범 《One》 발매 이후 비지스는 10년 만에 세계 투어에 나섰습니다. 이는 그룹의 건재함을 알리고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중요한 무대였습니다.

[앤디 깁 헌정 앨범 《One》 발표]

동생 앤디 깁에게 헌정한 노래 'Wish You Were Here'가 수록된 앨범 《One》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형제들의 슬픔과 음악적 헌사를 담고 있습니다.

1989년 4월 17일, 비지스는 동생 앤디 깁에게 헌정한 노래 'Wish You Were Here'가 수록된 앨범 《One》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형제들의 개인적인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1991

[앨범 《High Civilization》 발매 및 멤버들의 건강 문제]

앨범 《High Civilization》을 발매했습니다. 이 시기 배리 깁은 관절염과 허리 통증을, 모리스 깁은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1년 3월 25일, 비지스는 앨범 《High Civilization》을 발매했습니다. 이 무렵 배리 깁은 심각한 관절염과 함께 허리 통증을 앓았고 더 이상 연주가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모리스 깁 역시 알코올 중독을 인정하고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93

[앨범 《Size Doesn't Everything》 발표]

앨범 《Size Doesn't Everything》을 발매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빌보드 핫 100 74위에 그쳤습니다.

1993년 9월 13일, 비지스는 앨범 《Size Doesn't Everything》을 발매했습니다. 유럽에서의 여전한 인기와 달리 이 앨범 역시 미국에서는 빌보드 핫 100의 74위에 그치며 미국 시장에서의 부진을 이어갔습니다.

1997

[브릿 어워드 수상]

브릿 어워드를 수상하며 영국 음악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룹의 활동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97년 비지스는 브릿 어워드를 수상하며 오랜 음악 활동에 대한 영국 음악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앨범 《Still Waters》 발표 및 성공적인 부활]

앨범 《Still Waters》를 발표하여 영국 2위, 미국 11위를 기록하며 1979년 이후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97년 3월 10일 발표한 앨범 《Still Waters》는 영국 차트 2위와 미국 빌보드 차트 11위를 기록하며 1979년 RSO 이후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판매 기록을 보였습니다. 이 앨범은 비지스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라스베가스 'One Night Only' 라이브 공연]

라스베가스에서 'One Night Only'라는 이름으로 라이브 공연을 했습니다. 배리 깁의 건강 문제로 투어가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이 공연은 이후 성공적인 세계 투어로 이어졌습니다.

1997년 11월 14일, 비지스는 배리 깁의 건강 문제로 더 이상 투어가 어렵다고 보고 라스베가스에서 'One Night Only'라는 이름으로 라이브 공연을 하였습니다. 이 공연은 런던 5만 6천 명, 시드니 7만 2천 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공연을 하는 등 이후 같은 이름의 세계 투어로 이어지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98

[《토요일 밤의 열기》 뮤지컬 공연 및 신곡 작곡]

《토요일 밤의 열기》가 런던 웨스트앤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공연되었고, 비지스는 옛 사운드트랙 외에 뮤지컬을 위한 신곡 3곡을 작곡했습니다.

1998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런던의 웨스트앤드와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공연되었습니다. 비지스는 옛 사운드트랙 외에 뮤지컬을 위해 새로 3곡을 작곡하며 뮤지컬 성공에도 기여했습니다.

[라이브 음반 《One Night Only》 발표]

라이브 음반 《One Night Only》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성공적인 라이브 공연을 담아냈으며, 영국 차트 4위, 미국 차트 72위를 기록했습니다.

1998년 비지스는 라이브 음반 《One Night Only》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라스베가스 라이브 공연의 열기를 담아냈으며, 영국 차트 4위, 미국 차트 72위를 기록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비지스의 라이브 앨범 《One Night Only》는 유럽에서 1998년 9월 7일에 발매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98년 11월 3일에 발매되었습니다.이 앨범은 1997년 11월 14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을 담고 있습니다.

2001

[마지막 정규 앨범 《This Is Where I Came In》 발매]

신곡이 담긴 마지막 정규 앨범 《This Is Where I Came In》을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영국 탑 10, 미국 탑 20에 진입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2001년 4월 24일, 비지스는 신곡이 담긴 것으로는 마지막 앨범인 《This Is Where I Came In》을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영국 탑 10, 미국 탑 20에 진입하며 여전히 건재한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2002

[깁 삼형제, 대영 제국 훈장(CBE) 서훈 명단에 올라]

깁 삼형제 전원이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 서훈 명단에 올랐습니다. 이는 영국 왕실로부터 받은 음악적 공로를 인정하는 영예로운 훈장이었습니다.

2002년 깁 삼형제 전원이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 서훈 명단에 올랐습니다. 실제 서훈은 모리스 깁 사후 시점인 2004년 5월 27일에 이루어졌지만, 이는 이들의 음악적 업적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2003

[로빈 깁 솔로 앨범 《Magnet》 그래미상 선정]

모리스 깁 사망 시기에 로빈 깁의 솔로 앨범 《Magnet》이 발매되었고, 그래미상 후보에 선정되었습니다. 배리와 로빈은 모리스의 아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상을 받았습니다.

모리스 깁이 사망한 시기 로빈 깁의 솔로 앨범 《Magnet》가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그래미상에 선정되었고 배리와 로빈은 모리스의 아들 아담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슬픔 속에서도 음악적 성과를 이룬 순간이었습니다.

[모리스 깁 사망 및 비지스 활동 중단]

모리스 깁이 53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남은 형제들은 그룹 활동을 중단하고 비지스라는 이름을 세 형제가 모두 모인 이름으로 남겨두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03년 1월 12일, 모리스 깁이 53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남은 형제들은 처음에는 비지스를 계속할 것이라 말했지만, 이후 비지스라는 이름을 세 형제가 모두 모인 이름으로 남겨두겠다고 발표하며 그룹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2004

[배리 깁, 클리프 리처드와 협업]

배리 깁이 클리프 리처드와 'I Cannot Give You My Love'를 녹음하여 영국 차트 20위권에 들었습니다.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04년 배리 깁은 클리프 리처드와 함께 'I Cannot Give You My Love'를 녹음하여 영국 차트 20위권 히트 싱글이 되었습니다. 이는 비지스 활동 중단 후 배리 깁의 활발한 음악 활동을 보여줍니다.

[로빈 깁 솔로 투어 시작]

로빈 깁이 독일, 러시아, 아시아에서 솔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지스 활동 중단 후 각자의 길을 걷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004년 말, 로빈 깁은 독일, 러시아, 아시아에서 솔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지스 활동 중단 후 로빈이 개인적인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중요한 행보였습니다.

[모리스 깁, 대영 제국 훈장 사후 서훈]

2002년 대영 제국 훈장 명단에 올랐던 모리스 깁의 훈장이 사후 실제 서훈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공로가 뒤늦게나마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2002년 연초 정기서훈명단에 올랐던 모리스 깁의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이 그의 사망 이후인 2004년 5월 27일에 실제 서훈되었습니다. 사망 이전에 이미 명단에 오른 서훈이었으므로, 모리스 깁의 서훈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2006

[모리스 사망 후 첫 공개 합동 공연]

배리 깁과 로빈 깁이 당뇨병 연구소를 위한 마이애미 자선 콘서트 무대에서 함께 공연했습니다. 이는 모리스 깁 사망 이후 첫 공개 공연으로,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06년 2월, 배리 깁과 로빈 깁은 당뇨병 연구소를 위한 마이애미 자선 콘서트 무대에서 함께 공연했습니다. 이는 모리스 깁 사망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함께 공연한 것으로,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프린스 트러스트 콘서트 합동 공연]

영국에서 열린 제30회 프린스 트러스트 콘서트에서도 배리 깁과 로빈 깁이 함께 공연하며 형제간의 음악적 유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2006년 5월 20일, 영국에서 열린 제30회 프린스 트러스트 콘서트에서도 배리 깁과 로빈 깁이 함께 공연했습니다. 이는 자선 활동에 동참하며 음악적 활동을 이어가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09

[비지스 재결성 공식 발표]

배리 깁과 로빈 깁이 다시 비지스의 이름으로 활동하기로 공식 발표하며 그룹 재결성을 알렸습니다. 팬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2009년 9월 8일, 배리 깁과 로빈 깁이 다시 비지스의 이름으로 활동하기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는 모리스 깁 사망 이후 활동 중단을 선언했던 그룹이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오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BBC 《스트릭틀리 컴 댄싱》 출연]

배리 깁과 로빈 깁이 BBC의 《스트릭틀리 컴 댄싱》에 출연하여 공연했습니다. 이는 재결성 후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중요한 무대 중 하나였습니다.

2009년 10월 31일, 배리 깁과 로빈 깁은 BBC의 인기 프로그램 《스트릭틀리 컴 댄싱》에서 공연하며 재결성 후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습니다.

[ABC-TV 《댄싱 위드 더 스타》 출연]

ABC-TV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하여 공연했습니다. 미국 방송 출연으로 재결성 소식을 더욱 널리 알렸습니다.

2009년 11월 17일, 배리 깁과 로빈 깁은 ABC-TV의 인기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하여 공연했습니다. 이는 미국 대중에게 비지스의 재결성 소식을 알리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2011

[로빈 깁 간암 진단 발표]

로빈 깁이 몇 달 전 간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건강 악화로 이어져 활동에 제약이 생기게 됩니다.

2011년 11월 20일, 61세의 로빈 깁이 몇 달 전 간암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통증으로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2012

[로빈 깁 마지막 공연]

로빈 깁이 런던에서 열린 상의군인 자선 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공연에 합류했습니다. 건강 악화로 힘든 상황에서도 무대에 서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2012년 2월 13일, 로빈 깁은 런던에서 열린 상의군인 자선 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공연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건강 악화로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지만, 마지막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빈 깁 사망]

로빈 깁이 6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이로써 배리 깁만이 유일한 생존 멤버가 되었고, 비지스의 활동은 사실상 종료되었습니다.

2012년 5월 20일, 로빈 깁이 6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배리 깁만이 유일한 생존 멤버로 남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비지스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3

[배리 깁, 형제들 추모 투어 진행]

홀로 남은 배리 깁이 '형제들과 함께한 평생의 음악'을 기리는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이는 세상을 떠난 형제들을 추모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2013년 9월에서 10월 사이, 홀로 남은 배리 깁은 '형제들과 함께한 평생의 음악'을 기리는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이 투어를 통해 그는 세상을 떠난 형제들과 비지스의 음악을 기리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14

[BBC Four 비지스 다큐멘터리 방영]

BBC Four에서 비지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이는 그룹의 역사와 음악적 업적을 다시 한번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19일, BBC Four가 비지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비지스의 오랜 음악 여정과 형제들의 삶을 심층적으로 다루며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2016

[비지스 판권 유니버설 뮤직 그룹으로 이전]

캐피틀 레코드와 새로운 배포 계약을 체결하고 비지스의 판권이 유니버설 뮤직 그룹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는 비지스 음악의 새로운 유통망 확보를 의미합니다.

2016년에 캐피틀 레코드는 새로운 배포 계약을 채결하고 비지스의 판권을 유니버설 뮤직 그룹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는 비지스 카탈로그의 '재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중요한 계약이었습니다.

2020

[HBO 다큐멘터리 애미상 수상]

HBO의 다큐멘터리 《비지스: 무너진 가슴은 어떻게 고칠 수 있나》가 공개되어 애미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비지스의 음악과 삶을 다시 한번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년 말 공개된 HBO의 다큐멘터리 《비지스: 무너진 가슴은 어떻게 고칠 수 있나》는 애미상을 수상하며 비지스의 음악적 유산과 그들의 삶을 성공적으로 조명했습니다.

2021

[배리 깁 솔로 앨범 《Greenfields》 대성공]

배리 깁이 세 번째 솔로 정규 앨범 《Greenfields》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돌리 파튼, 키스 어번 등 유명 음악가들과 함께 비지스 노래들을 어쿠스틱 스타일로 재편곡한 것으로,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위, 미국에서 2위를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21년 1월 8일, 배리 깁의 세 번째 솔로 정규 앨범 《Greenfields》가 발매되었습니다. 돌리 파튼, 키스 어번, 미란다 램버트와 같은 음악가들이 함께 한 이 앨범은 비지스의 노래들을 어쿠스틱 스타일로 다시 편곡하여 구성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모두 1위로 데뷔했으며, 배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음반 산업 협회 차트 1위를 차지한 최고령 아티스트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에서도 빌보드 200에서 2위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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