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언 리
연표
1913
1913년 11월 5일, 훗날 세계적인 배우가 될 비비언 메리 하틀리(비비언 리)가 영국령 인도 제국 웨스트벵골 주 다르질링에서 태어났습니다.
1932
비비언 리는 1932년 허버트 리 홀먼과 결혼했습니다.
1935
비비언 리는 1935년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1967년까지 약 30년간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약했습니다.
193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아카데미 수상]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릿 오하라 역을 맡아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으며,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1939년 비비언 리는 기념비적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전형적인 남부 여인 스칼릿 오하라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이 역할로 그녀는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40
1940년 비비언 리는 허버트 리 홀먼과 이혼하고, 같은 해 로런스 올리비에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배우 커플로 주목받았습니다.
1945
1940년대 중반에 비비언 리의 만성 결핵이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이후 반복되는 발작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동시에 조울증(양극성 장애) 또한 그녀를 괴롭혀 함께 일하기 어려운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1951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두 번째 아카데미 수상]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슈 뒤부아 역을 맡아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51년 비비언 리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복잡하고 불안정한 블랑슈 뒤부아 역을 열연하여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명배우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960
[로런스 올리비에와 이혼]
남편 로런스 올리비에와 20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했습니다. 이후 존 메리베일과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1960년, 비비언 리는 오랜 남편이자 동료 배우였던 로런스 올리비에와 이혼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존 메리베일과 동거하며 말년을 보냈습니다.
1967
1967년 7월 8일, 비비언 리는 만성 결핵의 악화로 잉글랜드 런던에서 53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남긴 연기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