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램 스토커
연표
1847
1847년 11월 8일 아일랜드 더블린 북부 지방인 클론타프 마리노 크레센트에서 일곱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에이브럼 스토커, 어머니는 샬럿 머틸다 블레이크 손리였습니다.
1854
[어린 시절의 병약과 학업 시작]
일곱 살까지 병약하여 걷지 못했지만, 이후 건강을 회복하고 사립 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스토커는 일곱 살까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병약했으나, 이 시기에 깊은 생각을 하며 정신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후에는 윌리엄 우즈 목사가 운영하는 사립 학교에 입학하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1870
1864년부터 1870년까지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 재학하며 뛰어난 운동 선수이자 학자로 성장했습니다. 수학 우등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칼리지 역사 협회의 청강생이자 유니버시티 철학 협회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첫 논문 "소설과 사회의 선정주의"를 발표했습니다.
[연극 비평가 데뷔]
학창 시절 친구 마운셀 교수를 통해 연극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더블린 이브닝 메일》의 연극 비평가로 활동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스토커는 학창 시절 동안 친구 마운셀 교수를 통해 연극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고딕 소설 작가 조셉 셰리든 르 파뉴가 공동 소유했던 《더블린 이브닝 메일》의 연극 비평가로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연극 비평에 대한 평가는 낮은 편이었지만, 수준 높은 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1874
스토커는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874년 더블린 스케칭 클럽을 창설하기도 하였습니다.
1876
[헨리 어빙과의 운명적 만남]
유명 배우 헨리 어빙의 연극 <햄릿>을 호평한 후, 어빙과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며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1876년 12월, 스토커는 더블린의 로열 극장에서 공연한 헨리 어빙의 <햄릿>을 호평하였습니다. 어빙은 이에 보답하고자 스토커를 자신이 머물던 셀번 호텔로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고, 서로 절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만남은 스토커의 후기 경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878
[결혼과 런던 이주]
아름다운 플로렌스 발콤브와 결혼하고, 헨리 어빙의 비서이자 라이시엄 극장의 사무 책임자로 일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습니다.
1878년 스토커는 제임스 발콤브 중령의 딸이자 오스카 와일드가 청혼했던 미인 플로렌스 발콤브와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런던으로 이주하여 헨리 어빙의 비서이자, 어빙의 라이시엄 극장의 사무 책임자로 27년 동안 일하며 런던 상류 사회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79
1879년 12월 31일, 브램 스토커와 플로렌스 스토커는 외동 아들 어빙 노엘 손리 스토커를 낳았습니다.
1890
[첫 소설 출판과 《드라큘라》 영감]
첫 소설 《뱀 길》을 출판하고, 헝가리 교수를 만나 동유럽 흡혈귀 설화를 듣고 《드라큘라》에 대한 착상을 얻었습니다.
스토커는 어빙의 비서, 라이시엄 극장의 책임자로 일하면서도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890년 첫 소설 《뱀 길》을 펴냈습니다. 같은 해, 민속학에 정통했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학의 교수 아르미니우스 뱀버리를 만나 동유럽의 흡혈귀 설화에 대해 듣고 자신의 대표작 《드라큘라》에 대한 착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몇 년간 도서관에서 블라드 체페슈를 비롯한 흡혈귀 관련 설화와 전설을 조사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1897
[불멸의 명작 《드라큘라》 발표]
수년간의 연구 끝에 고딕 소설의 고전이자 그의 대표작이 된 《드라큘라》를 발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수년간의 도서관 조사를 거쳐 1897년에 출간된 《드라큘라》는 현실적인 가상의 글을 모아 놓은 형태의 서간체 소설로, 그가 신문 작가로 일하면서 쌓은 실력을 토대로 구성한 일기, 전보, 편지, 항해 일지, 신문 스크랩 등이 소설의 세부적인 현실성의 수준을 더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고딕 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며 스토커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6
[헨리 어빙 전기 출판]
헨리 어빙 사망 후, 그를 숭배한다고 표현할 만큼 존경했던 어빙의 전기를 출판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06년, 스토커는 자신이 헌신했던 배우 헨리 어빙이 죽은 뒤 그의 전기를 출판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빙에 대한 그의 깊은 존경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1909
스토커는 《드라큘라》 이후에도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으며, 1909년 공포 소설 《수의를 입은 부인》을 출판했습니다.
1911
1911년, 스토커는 《드라큘라》 이후의 또 다른 공포 소설인 《흰 벌레의 소굴》을 출판했습니다.
1912
[런던에서 사망]
잦은 뇌졸중 증세를 겪다가 런던에서 6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골더스 그린 화장장에 안치되었습니다.
잦은 뇌졸중 증세를 겪던 스토커는 1912년 4월 20일, 성 조지 광장 26호에서 사망했습니다. 일부 전기 작가들은 그의 사망 원인이 제3기 매독 또는 과로사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죽은 뒤에는 화장하였으며, 유해는 단지에 담겨 골더스 그린 화장장에 안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