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밴드)
연표
1984
[디 엔드의 시작]
기타리스트 김태원과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디 엔드(The End)'를 결성하며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태윤이 보컬까지 겸하며 음악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85
['부활'로의 개명]
김태원이 보컬 김종서 영입 후 밴드 이름을 '디 엔드'에서 '부활'로 변경했습니다.
이 이름으로 정식 음반이 나온 것은 이승철 합류 이후입니다.
[시나위와 록 대결]
1985년, 부활은 신대철이 이끄는 시나위와 같은 무대에서 음악적 대결을 펼쳤습니다.
각기 다른 록 스타일을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부활은 악기 수준과 퍼포먼스 면에서 시나위에 큰 패배감을 느끼며 음악적 변화를 모색하게 됩니다.
[이승철, 부활에 합류]
김종서 탈퇴 후 보컬을 찾던 부활에 이승철이 합류하며, 1985년 7월 3일 정식으로 '부활' 밴드를 결성합니다.
곱상한 외모로 멤버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김태원이 그의 뛰어난 바이브레이션을 높이 평가해 영입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1986
[1집 앨범 대성공]
부활은 1집 앨범 'Rock Will Never Die'를 발매하며 대중에게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30만 장 이상 판매되며 부드러운 발라드 록으로 큰 인기를 끌며 밴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1987
[2집 활동 실패 및 이승철 탈퇴]
1987년 2집 'Remember'가 큰 판매량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의 대마초 사건이 터지면서 앨범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태원은 자만심을 고백했으며, 결국 보컬 이승철도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부활을 떠나게 됩니다.
1993
[故 김재기 영입과 비극]
보컬이 공석이던 부활에 김태원이 '최고의 보컬리스트'라 극찬한 천재 김재기가 합류합니다.
그는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사랑할수록'을 완성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3집 앨범 녹음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3집, 100만장 판매 대기록]
故 김재기의 유작이 된 <사랑할수록>이 수록된 부활 3집 '기억상실'은 발매 후 1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기적 같은 기록을 세우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는 부활에게 또 다른 전성기를 안겨주며 대한민국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1997
[박완규 보컬 5집 발매]
박완규가 보컬로 참여한 부활 5집 '불의 발견'이 발매되었고, 타이틀곡 <론리 나이트>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성공을 마지막으로 부활은 다시금 침체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2000
[7집 대규모 멤버 교체]
부활 7집 'Color' 발매 시기에는 리더 김태원을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대대적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는 부활의 음악적 스펙트럼과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2
[이승철과 기적의 재결합]
2001년 이승철의 제의로 김태원은 14년 만에 이승철과 재회합니다.
2002년 8집 '새, 벽'의 타이틀곡 <네버 엔딩 스토리>는 다시 한번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부활에게 화려한 부활을 선사했습니다.
김태원은 이 곡으로 KBS 가요대상 작사·작곡상을 수상하며 명예를 얻었습니다.
2003
['네버 엔딩 스토리' 차트 석권]
2003년 1월,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는 KMTV '쇼 뮤직탱크'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최강자'에 등극했습니다.
이는 부활의 압도적인 대중적 인기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기록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009
[MAMA 록 음악상 수상]
2009년, 부활은 Mnet Asian Music Awards에서 록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록 음악계에서의 부활의 변함없는 위상과 음악적 업적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