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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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단, 프로 스포츠 구단 축구 구단

부산 아이파크는 1979년 새한자동차 축구단으로 창단되어 K리그 초기부터 명문으로 자리 잡은 한국 프로축구의 역사적인 팀입니다. 한국 최초의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비롯해 K리그 다회 우승, 최초의 리그 3관왕 등 수많은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대우그룹 시절 전성기를 누렸으나, 현대산업개발 인수 후 부침을 겪으며 기업 구단 최초 강등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승격과 강등을 오가며 현재 K리그2에서 다시 재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79

[새한자동차 축구단 창단]

대우그룹 산하의 새한자동차 실업축구단으로 창단되었습니다. 해체된 한국산업은행 축구단 선수들을 주축으로 21명의 선수단을 꾸렸으며, 이종환 감독이 초대 사령탑을 맡았습니다.

부산 아이파크의 모태인 새한자동차 실업축구단이 대우그룹 산하에서 창단되었습니다. 당시 해체된 한국산업은행 축구단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21명의 선수단이 구성되었고, 이종환 감독이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이 팀은 1980년 실업축구 대회에 참가하며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1980

[대우 축구단으로 명칭 변경]

새한자동차 축구단이 '대우 축구단'으로 구단 명칭을 변경하며 실업축구 대회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80년 10월, 새한자동차 축구단은 구단 명칭을 '대우 축구단'으로 변경하고 실업축구 대회에 계속해서 참가했습니다. 이는 프로화 전 대우그룹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첫 단계였습니다.

1981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준우승]

대우 축구단이 제29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우 축구단은 이듬해인 1981년, 국내 주요 축구 대회 중 하나인 제29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기록하며 팀의 저력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프로 전환 전 실업축구단으로서 거둔 주요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1982

[국내 최초 해외 전지훈련 실시]

대우 축구단이 국내 축구단 최초로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하며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약 43일간 훈련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대우 축구단은 1982년, 국내 축구단으로서는 최초로 해외 전지훈련을 단행했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43일간의 훈련을 통해 선진 축구를 경험하고 기량을 연마하며 팀의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3

[대우 로얄즈 프로축구단 공식 전환]

대우 축구단은 국내 프로축구단 제3호인 '대우 로얄즈' 축구단으로 공식 전환하며 실업축구단에서 프로축구 시대를 열었습니다. K리그 원년부터 강호의 모습을 보여주며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K리그 원년이었던 1983년, 대우그룹의 김우중 총수 의지에 따라 대우 축구단은 12월 3일 국내 프로축구단 제3호인 '대우 로얄즈' 축구단으로 공식 전환했습니다. 실업축구단 자격으로 수퍼리그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외국인 코치 선임과 클럽 시스템 도입 등 선진적인 운영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대우그룹은 홈경기마다 자동차, VTR 등 경품을 내걸어 뜨거운 관중 동원을 이끌었습니다.

1984

[K리그 첫 우승 달성]

프로 전환 후 첫 시즌인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서 8승 4무 2패를 기록하며 창단 첫 K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K리그 최초로 그 다음 해에 우승한 구단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4년, 프로로 전환한 대우 로얄즈는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 참가하여 8승 4무 2패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창단 첫 K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프로화 이후 최초로 다음 해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구단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명문 구단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1986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한국 최초)]

AFC 챔피언스 클럽 챔피언십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여 결승에서 알 아흘리를 꺾고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클럽팀이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국내리그 최초로 대륙 클럽 대항전 전승무패 우승입니다.

1986년, 14년 만에 재개된 제5회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한국 대표로 대우 로얄즈가 출전했습니다.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를 3-1로 꺾고 한국 축구 클럽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는 국내 리그 팀 최초의 대륙 클럽 대항전 전승무패 우승 기록입니다.

1987

[K리그 두 번째 우승]

16승 14무 2패의 기록으로 K리그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구단의 최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K리그 최초로 통산 2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7년, 대우 로얄즈는 K리그에서 16승 14무 2패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구단 통산 두 번째 K리그 우승이자, K리그 최초로 통산 2회 우승을 달성한 기록으로, 명실상부한 강팀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팀 자격으로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출전하여 모로코의 FAR 라바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통틀어 최강의 클럽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팀 자격으로 1987년 2월,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참가했습니다. 모로코 육군팀으로 알려진 FAR 라바트를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최강의 축구 클럽으로 등극했습니다. 이로써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1986년에 클럽 대항전 더블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1988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인한 부진]

서울 올림픽 대표팀에 주전 선수들이 대거 차출되면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주전 선수들이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팀 전력에 큰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대우 로얄즈는 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잠시 주춤했습니다.

1989

[국내 최초 연간회원제 도입]

국내 프로구단 중 최초로 연간회원제를 도입하여 팬들에게 새로운 관람 문화를 제공했습니다.

대우 로얄즈는 1989년 국내 프로구단 최초로 연간회원제를 도입하여 팬들에게 경기 관람의 편의성과 특별한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당시 팬 서비스 측면에서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습니다.

[K리그 최초 외국인 감독 선임]

이차만 감독이 국가대표 코치로 임명되자, 동독 출신 프랑크 엥겔을 감독대행으로 선임하여 K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 영입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9년 12월 21일, 이차만 감독이 국가대표 코치로 떠나자 대우 로얄즈는 동독 출신인 프랑크 엥겔을 감독 대행으로 선임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1990

[두 번째 외국인 감독 영입]

프랑크 엥겔 감독과의 재계약 실패 후, 헝가리 국가대표 출신 비츠케이 베르탈란을 새로운 외국인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프랑크 엥겔 감독과의 재계약이 불발된 후, 대우 로얄즈는 1990년 11월 6일 헝가리 국가대표팀 출신의 비츠케이 베르탈란을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이는 팀의 국제적인 면모를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1991

[K리그 세 번째 우승 및 연속 무패 기록]

비츠케이 감독의 지휘 아래 17승 18무 5패를 기록하며 K리그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K리그 최초로 21경기 연속 무패와 프로 통산 100승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1991년, 비츠케이 베르탈란 감독의 지휘 아래 대우 로얄즈는 17승 18무 5패의 성적으로 K리그 통산 세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시즌 동안 K리그 최초로 21경기 연속 무패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프로 통산 100승도 달성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K리그 최초로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6

[부산 대우 로얄즈로 구단명 개명]

K리그에 완전지역연고제가 도입되면서 기존 부산 연고지를 유지하고 구단 공식 명칭을 '부산 대우 로얄즈'로 변경했습니다.

1996년 1월, K리그에 완전지역연고제가 도입됨에 따라 대우 로얄즈는 기존의 부산 연고지를 그대로 유지하며 구단 명칭을 '부산 대우 로얄즈'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지역 연고를 더욱 강화하고 팬들과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997

[K리그 최초 시즌 3관왕 달성]

리그 우승과 함께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우승을 거머쥐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시즌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또한, 프로축구 최초의 리그 4회 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7 시즌, 부산 대우 로얄즈는 K리그 우승은 물론, 컵 대회인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까지 석권하며 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모든 대회를 우승하는 전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상 최초의 시즌 3관왕이며, 프로축구 최초 리그 4회 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부산 최초로 팬클럽을 창설하고,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전무후무한 전방위 베스트11을 배출하는 등 기록적인 해를 보냈습니다.

1999

[대우그룹 재정난으로 인한 구단 매각]

대한민국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모기업 대우그룹이 재정난에 처하면서, 부산 대우 로얄즈도 매각 대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1999년, IMF 구제금융 여파로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산 대우 로얄즈 또한 매각 대상이 되면서 구단의 미래가 불투명해졌습니다.

2000

[현대산업개발, 구단 인수]

현대산업개발이 부산 대우 로얄즈 축구단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99년 대우그룹의 재정난으로 매각 대상이 된 부산 대우 로얄즈 축구단은 2000년 2월 10일 현대산업개발에 의해 인수되었습니다. 롯데, CJ 등 여러 기업이 인수 물망에 올랐으나 최종적으로 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확정하며 구단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부산 아이콘스 공식 출범]

현대산업개발 인수 후 구단 명칭을 '부산 아이콘스'로 개명하고 재창단식을 거행하며 공식 출범했습니다. 팀 컬러도 기존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경했습니다.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된 후, 2000년 3월 7일 구단은 '부산 아이콘스'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고 재창단식을 개최하며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팀의 상징색도 기존의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대폭 변경되었으나, 모기업 변경의 진통으로 인해 첫 시즌은 6위로 마무리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01

[국내 최초 코칭스쿨 개설]

국내 프로구단 중 최초로 코칭스쿨을 개설하여 축구 꿈나무 육성과 저변 확대에 기여했습니다.

2001년, 부산 아이콘스는 국내 프로구단 최초로 코칭스쿨을 개설하는 선진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이는 어린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축구 저변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02

[구단 영문명 변경]

구단 명칭의 영문 철자를 'Pusan i.cons'에서 'Busan I'Cons'로 변경하여 국제적인 표기법에 맞추었습니다.

2002년 7월, 부산 아이콘스는 구단 명칭의 영문 철자를 'Pusan i.cons'에서 'Busan I'Cons'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국제적인 도시 표기법과 일치시키고 구단의 이미지를 현대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2004

[구단 최초 FA컵 우승]

아이콘스 시절, 구단 역사상 최초로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침체기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2004년, 부산 아이콘스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잠시나마 중흥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대우 시절의 유산이 남아있던 2000년대 초중반의 중요한 성과로 기록되었습니다.

[서울 연고지 이전 추진 및 철회]

갑작스러운 서울 연고지 이전 선언으로 팬들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결국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이전하면서 부산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초, 부산 아이콘스는 돌연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에 팬들은 큰 분노와 배신감을 표출하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여론 악화와 결정적으로 안양 LG 치타스가 FC 서울로 구단명을 바꾸고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되면서, 부산 아이콘스는 서울 이전을 철회하고 부산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2005

[K리그 전기 리그 우승]

구단명 변경 첫 시즌이었던 K리그 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부산 아이파크로 구단명을 변경한 첫 해인 2005년, 팀은 K리그 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부산 아이파크로 구단명 변경]

통영컵부터 구단 명칭을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로 변경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2005년 2월 21일, 부산 아이콘스는 통영컵 대회부터 구단 명칭을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로 변경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이는 현대산업개발의 주력 브랜드인 아이파크를 활용하여 구단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2007

[창단 후 첫 두 자릿수 순위 기록]

K리그에서 창단 후 최초로 두 자릿수 순위인 13위로 내려앉으며 암흑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렸습니다.

2007 시즌 K리그에서 부산 아이파크는 창단 후 최초로 리그 두 자릿수 순위인 1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팀의 암흑기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해였습니다.

[박성화 감독 초고속 사퇴 논란]

앤디 에글리 감독이 돌연 사퇴한 후, 박성화 감독이 후임으로 취임했으나 17일 만에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2007년 7월, 스위스 출신 앤디 에글리 감독이 갑작스럽게 사퇴하자 7월 18일 박성화 감독이 후임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박 감독은 불과 17일 만인 8월 3일 대한민국 U-23 올림픽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어 사퇴를 발표했고, 이 사태는 서포터즈와 붉은악마의 비난 성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황선홍 감독 선임]

K리그 2007 시즌 종료 후, 황선홍 전 전남 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며 팀 재건을 모색했습니다.

K리그 2007 시즌을 13위로 마친 후, 부산 아이파크는 2007년 12월 4일 황선홍 전 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이는 침체된 팀 분위기를 쇄신하고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2008

[K리그 최초 가변좌석 설치]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의 넓은 경기장 간격을 보완하기 위해 K리그 최초로 육상 트랙 위에 가변좌석을 설치하여 팬들의 관람 편의를 높였습니다.

2008 시즌부터 부산 아이파크는 홈경기장인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K리그 최초로 동쪽과 북쪽 스탠드 방향 육상 트랙 위에 가변좌석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관중석과 피치 사이의 간격을 좁혀 팬들이 더욱 생동감 있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습니다.

[안정환 영입]

과거 부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공격수 안정환을 영입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2008년 1월 20일, 부산 아이파크는 과거 대우 로얄즈 시절 팀의 간판 공격수였던 안정환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이는 침체된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팬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2009

[피스컵 코리아 준우승]

K리그에서 12위에 머물렀지만, 피스컵 코리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컵 대회에서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K리그 2009 시즌 리그에서는 12위를 기록했지만, 피스컵 코리아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하여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리그에서의 부진 속에서도 컵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0

[FA컵 준우승]

FA컵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수원 삼성에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10년, 부산 아이파크는 FA컵에서 결승까지 진출하여 우승과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놓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격돌했습니다. 아쉽게도 수원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팀의 저력을 보여준 대회였습니다.

[안익수 감독 선임]

계약 기간이 만료된 황선홍 감독과의 재계약 없이, FC 서울의 안익수 수석코치를 후임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2010년 12월 15일, 황선홍 감독이 계약 만료로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자 부산 아이파크는 FC 서울의 안익수 수석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새로운 감독 체제에서 팀의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

[K리그 챔피언십 진출]

승부조작 여파로 주축 수비수들이 이탈하는 악재 속에서도 K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하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2011 시즌은 승부조작 여파로 주축 수비수들이 팀을 이탈하는 악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산 아이파크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K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기여]

김창수, 박종우, 이범영 세 선수가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팀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부산 아이파크 소속의 김창수, 박종우, 이범영 세 선수가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어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팀의 위상을 높이고 여성 팬들의 유입을 늘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와이 국제축구대회 우승]

하와이 국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대회에서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부산 아이파크는 2012년 하와이 국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해외 친선 대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엠블럼 및 구단 영문명 변경]

엠블럼이 소폭 변경되고 구단 명칭의 영문 철자도 'I'Park'에서 'IPark'로 변경되었습니다.

2012년 2월 7일, 부산 아이파크는 엠블럼을 소폭 수정하고 구단 명칭의 영문 철자를 'I'Park'에서 'IPark'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시각적 정체성을 개선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윤성효 감독 부임]

안익수 감독이 성남으로 떠나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을 역임했던 윤성효 감독이 팀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K리그 2012 시즌 종료 후 안익수 감독이 성남으로 이적하자, 2012년 12월 18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직을 맡았던 윤성효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2013

[K리그 클래식 상위 스플릿 진출]

윤성효 감독 지휘 아래 K리그 클래식에서 극적으로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윤성효 감독의 지휘 아래 치러진 첫 시즌인 K리그 클래식 2013 시즌, 부산 아이파크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극적으로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강팀들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 중위권에 안착했습니다.

[구정컵 및 창 촌부리 인비테이션 우승]

구정컵과 창 촌부리 인비테이션 대회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하며 두 개의 국제 친선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2013년 부산 아이파크는 구정컵과 창 촌부리 인비테이션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친선 대회에서 강세를 보였습니다.

2015

[기업 구단 최초 K리그2 강등]

수원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기업 구단 최초로 K리그2(2부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는 리그 우승팀의 첫 강등이라는 불명예 기록이었습니다.

2015 시즌을 끝으로 부산 아이파크는 수원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 합계 0-3으로 완패하여 K리그2로 강등되었습니다. 이는 K리그 기업 구단 최초의 2부 리그 강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었으며, 과거 리그 우승팀이 강등된 첫 사례였습니다. 시즌 종료 후 최영준 감독은 2017년 K리그 클래식 복귀를 목표로 리빌딩 의지를 밝혔습니다.

[윤성효 감독 사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윤성효 감독이 사임하고 데니스 코치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이어갔습니다.

2015년 7월 13일, K리그 클래식에서 성적 부진을 면치 못하자 윤성효 감독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이후 데니스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최영준 감독 선임]

시즌 막바지에 최영준 감독이 팀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남은 시즌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2015년 10월 7일, 시즌 막바지에 최영준 감독이 팀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영준 감독 체제에서도 남은 시즌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팀의 부진은 계속되었습니다.

2016

[고경민 K리그 챌린지 최단시간 해트트릭]

고경민 선수가 K리그 챌린지 역대 최단 시간인 10분 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6 시즌, 부산 아이파크 소속의 고경민 선수는 K리그 챌린지 경기에서 역대 최단 시간인 10분 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K리그1 승격 실패]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강원 FC에 1-0으로 패배하며 K리그1 승격에 실패했습니다. 최영준 감독과 변명기 사장이 이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2016년 11월 2일, K리그 챌린지에서 5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승격 플레이오프 단판 경기에서 강원 FC에 1-0으로 패배하여 K리그1 승격이 좌절되었습니다. 승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영준 감독과 변명기 사장이 사임했습니다.

[조진호 감독 취임]

상주 상무를 상위 스플릿 A에 진출시켰던 조진호 감독이 20대 감독으로 취임하며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2016년 12월 5일, 상주 상무를 구단 사상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 A에 진출시켰던 조진호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의 20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새로운 감독과 함께 K리그1 복귀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2017

[승격 및 FA컵 우승 실패]

상주 상무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와 FA컵 결승에서 모두 패배하며 승격과 우승 기회를 아쉽게 놓쳤습니다.

2017 시즌, K리그2에서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상주 상무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K리그1 승격에 실패했습니다. 이어진 FA컵에서도 준우승에 머물며 더블 준우승의 아쉬움을 맛보았습니다.

[부산 최초 실내 풋살구장 개장]

부산 지역 최초로 실내 풋살구장을 개장하며 지역 축구 인프라 확충에 기여했습니다.

2017년, 부산 아이파크는 부산 지역 최초로 실내 풋살구장을 개장했습니다. 이는 지역 주민과 팬들에게 새로운 스포츠 시설을 제공하고 축구 활동을 장려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17 시즌 개막전 승리]

성남 FC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고, 이정협 선수가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2017년 3월 4일, 부산 아이파크는 성남 FC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시즌을 상쾌하게 출발했습니다. 이정협 선수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팀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이정협, K리그 개막 후 최다 연속골 기록 경신]

이정협 선수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기록하며 K리그 개막 후 최다 연속골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정협 선수는 2017년 4월 22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기록하며 K리그 개막 후 최다 연속골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는 카를루스 아드리아누 지 소우사 크루스가 세운 기록을 넘어선 새로운 기록이었습니다.

[조진호 감독 별세]

조진호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45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별세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2017년 10월 10일, 팀의 상승세를 이끌던 조진호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인해 45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별세했습니다. 이는 구단과 팬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K리그2 팀 최초 FA컵 결승 진출]

수원 삼성과의 FA컵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K리그2 팀 최초로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2017년 10월 25일, 조진호 감독 별세 후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도 부산 아이파크는 수원 삼성과의 FA컵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혈투 끝에 승리했습니다. 이는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 소속 팀으로서 최초로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기록이었습니다.

[최윤겸 감독 선임]

최윤겸 전 대전 시티즌, 강원 FC 감독을 21대 감독으로 선임하며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2017년 12월 11일, 부산 아이파크는 최윤겸 전 대전 시티즌, 강원 FC 감독을 21대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새로운 사령탑과 함께 K리그1 승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2018

[고경민, K리그 최초 3년 연속 해트트릭]

고경민 선수가 K리그1,2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18년 K리그2에서 고경민 선수는 K리그1,2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득점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만희 대표이사 및 최윤겸 감독 사임]

K리그1 승격 실패의 책임을 지고 최만희 대표이사와 최윤겸 감독이 모두 사임했습니다.

2018년 K리그1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FC 서울에 패배하며 승격에 실패하자, 최만희 대표이사와 최윤겸 감독이 책임을 통감하고 12월 12일 모두 사임했습니다. 이는 다시 한번 팀의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조덕제 감독 선임]

전 수원 FC 감독이었던 조덕제를 후임 감독으로 선임하고, 이기형 수석코치와 노상래 코치를 영입하며 코칭스태프를 보강했습니다.

최만희 대표이사와 최윤겸 감독의 사임 후, 2018년 12월 20일 전 수원 FC 감독이었던 조덕제 감독이 후임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기형 수석코치와 노상래 코치도 영입하여 코칭스태프를 강화했습니다.

2019

[호물로, K리그 최초 PK 해트트릭]

호물로 선수가 K리그 최초로 페널티킥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2019년, 부산 아이파크의 호물로 선수가 K리그 역사상 최초로 페널티킥만으로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독특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의 침착함과 정확성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구단 첫 K리그1 승격]

K리그2 2위를 기록한 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지역 라이벌 경남 FC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K리그1 승격에 성공했습니다.

2019년 K리그2에서 2위를 차지한 부산 아이파크는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지역 라이벌인 경남 FC를 상대로 1차전 무승부 후 2차전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K리그1 승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는 2015년 강등 이후 4년 만의 복귀였습니다.

[권혁규, K리그 최초 준프로계약]

구단의 유망주인 권혁규 선수가 K리그 최초로 준프로계약을 맺으며 유소년 시스템의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2019년, 부산 아이파크의 유망주 권혁규 선수가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준프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습니다.

2020

[K리그1에서 다시 강등]

K리그1 승격 한 시즌 만에 파이널 B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와 성남 FC에 연패하며 두 번째 강등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K리그1 승격 후 2020 시즌, 부산 아이파크는 파이널 B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와 성남 FC에 연달아 패배하며 한 시즌 만에 다시 K리그2로 다이렉트 강등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특히 이 시즌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관중 경기와 리그 축소 등 여러 악재가 겹쳤습니다.

[조덕제 감독 사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조덕제 감독이 사임했고, 이기형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이끌었습니다.

K리그1에서 강등이 확정되자, 2020년 9월 29일 조덕제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이기형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2021

[K리그 최초 공동주장 선임]

K리그 역사상 최초로 공동주장 체제를 선임하여 팀 내 리더십 강화와 선수단 화합을 도모했습니다.

2021년, 부산 아이파크는 K리그 최초로 공동주장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팀 내 여러 리더의 역할을 강조하고 선수단 전체의 화합과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2022

[창단 최악 성적 기록]

K리그2에서 창단 후 최악의 성적인 10위를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2022 시즌, 부산 아이파크는 K리그2에서 10위를 기록하며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이는 팀의 깊은 침체기를 보여주는 결과였습니다.

[카를로스 페레즈 감독 경질]

성적 부진으로 카를로스 페레즈 감독이 경질되었습니다.

2022년 5월 31일, 계속되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카를로스 페레즈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팀의 반등을 위한 변화의 시도였습니다.

[박진섭 감독 선임]

팀의 수석코치였던 박진섭 전 광주 FC-FC 서울 감독을 선임하며 리빌딩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카를로스 페레즈 감독 경질 후, 2022년 6월 3일 팀의 수석코치였던 박진섭 전 광주 FC-FC 서울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구단은 박진섭 감독 체제 아래 리빌딩을 통해 반등을 꾀했습니다.

2023

[부산아이파크 퓨처스 창단]

2군팀이자 B팀인 '부산아이파크 퓨처스'를 창단하여 유망주 육성 및 선수단 강화에 나섰습니다.

2023년, 부산 아이파크는 2군팀인 '부산아이파크 퓨처스'를 창단했습니다. 이는 젊은 선수들의 경기 경험을 늘리고, 유망주를 발굴 및 육성하여 장기적인 팀 전력 강화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구덕운동장 홈경기 재개]

개보수 공사가 완료된 구덕운동장에서 홈경기를 다시 개최하며 팬들과 만났습니다.

2023년 5월 말경, 개보수 공사를 마친 구덕운동장에서 다시 홈경기가 개최되었습니다. 팬들은 익숙한 홈 경기장에서 팀을 응원하며 열기를 더했습니다.

2024

[구덕운동장으로 임시 홈경기장 이동]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의 개보수로 인해 성남전부터 구덕운동장에서 남은 시즌 홈경기를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2024년 6월 29일 성남전을 시작으로 부산 아이파크는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의 트랙 공사 및 내년 전국체육대회를 위한 개보수 실시로 인해 구덕운동장에서 남은 시즌 홈경기들을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박진섭 감독 사임]

창단 45주년 시즌 도중 박진섭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고 유경렬 감독대행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2024년 창단 45주년 시즌 도중, 박진섭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7월 8일 사임했습니다. 이후 유경렬 감독이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임시로 이끌었습니다.

[조성환 감독 선임]

구단이 조성환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다시 한번 팀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박진섭 감독 사임 후, 2024년 7월 14일 구단은 조성환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팀의 재도약을 이끌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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