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연표
1990
[영화제 개최 움직임]
1990년대 초,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려는 열정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경성대 이용관 교수, 부산예술문화대 김지석 교수, 영화평론가 전양준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고자 했습니다.이들의 노력은 곧 현실이 됩니다.
1995
[김동호 위원장 수락]
부산 국제영화제 기획자 3인이 영화진흥공사 사장 출신의 김동호를 찾아가 집행위원장직을 요청했고, 그는 이들의 계획적인 의지를 높이 평가해 위원장직을 수락하며 영화제 초석을 다졌습니다.
1996
[조직위원회 설립]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정식 설립되었습니다.초대 위원장은 문정수 부산시장이 맡아 영화제 출범의 공식적인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개최 계획 첫 발표]
부산국제영화제의 개최 계획이 처음으로 발표되었습니다.'뉴 커런츠', '아시아 영화의 창' 등 현재까지 이어지는 핵심 섹션들이 이때부터 기획되었고, 국제영화제로는 드물게 야외상영도 로카르노 영화제 설비를 대여해 진행하기로 결정되며 큰 기대감을 모았습니다.
[사무국 공식 출범]
부산 요트경기장에 위치한 조직위원회 사무국이 공식 출범하며 아시아 영화 및 젊은 감독들의 창작 지원을 본격적으로 알렸습니다.
[제1회 영화제 개막]
영화 "비밀과 거짓말" 개막작과 함께 대망의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었습니다.31개국 169편의 작품이 상영되었고, 18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9월 13일부터 9월 21일까지 개최되었으며, 개막작은 '비밀과 거짓말', 폐막작은 '무산의 비구름'이었습니다. 총 31개국 169편의 작품이 상영되었고 184,071명의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1997
[부산 프로모션 플랜 도입]
제2회 영화제부터 '부산 프로모션 플랜(현 아시아 프로젝트 마켓)'이 도입되어 아시아 영화 제작 지원 시스템의 중요한 시작을 알렸습니다.이는 아시아 영화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됩니다.
1998
[위원장 체제 안정화]
초창기 김동호 집행위원장 체제에 대한 반발이 있었으나,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면서 영화제 운영에 대한 신뢰가 확고해졌습니다.
2004
[역대 최대 규모 개최]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63개국 262편의 상영작으로 당시 기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으며, 총 16만 6164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시아 최고 영화제의 위상을 굳건히 했습니다.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63개국 262편의 상영작으로 개최되어 기존 대비 역대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고, 관객은 총 16만 6164명을 기록했습니다.
2007
[김동호-이용관 공동위원장]
영화학자 이용관 교수가 김동호 위원장과 함께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를 맡게 되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새로운 리더십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2009
[김동호 위원장 사임 발표]
김동호 위원장이 사임을 정식 발표했습니다.주변의 만류로 1년을 더 연임한 뒤 2010년에 물러나게 되며, 오랜 기간 영화제를 이끌었던 한 시대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섰습니다.
2010
[김동호 명예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를 15년간 이끌며 한국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김동호 위원장이 명예 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이는 그의 업적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2011
[영문 명칭 BIFF 변경]
부산국제영화제의 영문 표기가 기존 PIFF에서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로 변경되었습니다.이는 개정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는 동시에 새로운 도약을 상징합니다.
[영화의전당 개관]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전당'이 센텀시티에 웅장한 모습으로 개관했습니다.이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의 위상에 걸맞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영화제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이용관 단독 위원장]
이용관 영화학자가 제16회 영화제부터 단독 집행위원장직에 오르며, 김동호 위원장 이후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2014
[부산시 감사 시작]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대한 감사를 벌였습니다.이는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불거진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되며, 영화계의 우려를 샀습니다.
[다이빙벨 상영 논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제기하며 상영 취소를 요청했지만, 조직위는 예정대로 상영을 강행했습니다.이 사건은 영화제 독립성 논란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역대 최대 관객수 달성]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79개국 312편의 영화를 선보이며 총 226,473명의 역대 최대 관객수를 기록했습니다.'다이빙벨' 논란 속에서도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영화제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79개국 312편을 상영하고 226,473명이라는 역대 최대 관객수를 기록했습니다.
2015
[위원장 사퇴 압박]
부산시 고위 관계자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프로그램 선정 관련 규정 위반 등을 지적하며 우회적으로 사퇴를 요구했습니다.영화계는 이를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받아들였습니다.
[영화계 보이콧 선언]
부산시의 압력에 반발하며 영화계가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로테르담, 베를린 등 해외 영화제들도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지하며 연대를 표명했습니다.
[강수연 공동 위원장 위촉]
2015년 임시총회를 통해 배우 강수연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되었습니다.그녀는 영화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인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2016
[보이콧 여파 관객 급감]
영화계 보이콧의 여파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65,149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크게 감소했습니다.이는 독립성 훼손 논란이 영화제에 미친 심각한 영향을 보여줍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69개국 299편을 상영했으며, 관객수는 165,149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17
['지석상' 신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큰 족적을 남긴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를 기리기 위해 '지석상'이 신설되었습니다.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서 뛰어난 두 작품에 상금을 수여하며 그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블랙리스트 수사 착수]
박영수 특검팀이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관련하여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지시 정황을 수사하기 시작했습니다.이는 '다이빙벨' 논란이 정부 차원의 압력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2018
[영화계 보이콧 철회]
2015년부터 이어진 영화계의 부산국제영화제 보이콧이 마침내 철회되었습니다.영화제의 독립성 회복에 대한 기대와 함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19
[아시아콘텐츠어워즈 신설]
2019년부터 글로벌 콘텐츠 시장 트렌드를 반영하여 '아시아콘텐츠어워즈 & 글로벌OTT어워즈'가 신설되었습니다.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를 넘어 영상 콘텐츠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
[코로나19로 규모 축소]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68개국 192편 상영, 2만여 명의 관객을 기록했습니다.사상 초유의 위기 속에서도 영화제의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범유행의 여파로 68개국 192편 상영, 20,135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축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코로나19 추가 지원 요청]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한 재정 악화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부산시에 13억 원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이는 영화제 운영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2021
[전양준 위원장 사퇴]
1996년 원년 멤버이자 25년간 영화제에 기여한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사퇴했습니다.이는 영화제 역사상 중요한 인물의 퇴장이었습니다.
[허문영 신임 위원장 위촉]
평론가이자 영화의전당 프로그래밍을 맡았던 허문영이 신임 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되었습니다.새로운 리더십 하에 영화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됩니다.
2022
[영화제 정상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71개국 353편의 작품을 선보이며 코로나19 범유행 이전 수준으로 영화제가 정상화되었습니다.팬데믹의 그늘에서 벗어나 다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71개국 353편의 상영작으로 개최되어 코로나19 범유행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