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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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룹, 걸 그룹, K-POP, 댄스, R&B + 카테고리

베이비복스는 1997년 데뷔한 대한민국 5인조 걸 그룹으로, 초기 멤버 교체와 부진을 딛고 2집 '야야야'와 3집 'Get Up!', 'Killer'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최정상 걸 그룹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여성 그룹 최초로 섹시 콘셉트와 랩을 도입하며 K-POP 걸 그룹의 지평을 넓혔고,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한류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멤버 간 열애설 및 이로 인한 극성 팬들의 위협, 그리고 동료 가수와의 법정 다툼 등 수많은 논란과 역경을 겪었으며, 2006년 잠정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2024년 14년 만에 완전체로 재결합하여 현재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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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96

[베이비복스 결성 계획 및 초기 멤버 캐스팅]

DR뮤직 윤등룡 대표가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를 표방하는 걸그룹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부산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정시운과 정현전, 캘리포니아 출신 차유미, 경희대학교 무용과 재학 중이던 김이지, 그리고 로드 캐스팅된 이희진을 캐스팅하여 5인조 라인업을 완성했습니다.

국내 가수들의 공연 기획을 담당하던 등룡 기획(현 DR뮤직)의 대표 윤등룡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스파이스 걸스를 표방하는 걸그룹을 기획했습니다. 부산 모델 정시운과 정현전, 작곡가 신성호의 친척인 차유미, 길거리 캐스팅된 김이지와 이희진이 합류하여 다섯 명의 라인업을 완성했습니다. 이들은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으며 데뷔를 준비했습니다.

1997

[리드 보컬 차유미의 탈퇴]

1집 활동을 이어가던 중 리드 보컬 차유미가 갑자기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팀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에 소속사는 급히 방송 스케줄을 취소하고 새 멤버를 영입했습니다.

1집 타이틀곡을 '머리하는 날'로 교체하고 활동을 이어가던 10월 중순, 리드 보컬 차유미가 갑자기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베이비복스는 활동에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정 출연하던 SBS '기쁜 우리 좋은날'을 제외한 모든 방송 스케줄이 취소되었습니다.

[간미연 합류 및 활동 재개]

1집 '머리하는 날'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캐스팅된 간미연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며 베이비복스는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멤버 교체 후 여성들을 대변하는 이미지에서 틴팝 스타일로 콘셉트를 변경하고 외적인 부분으로 어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유미의 갑작스러운 탈퇴 이후, 9월경 '머리하는 날'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캐스팅된 간미연이 대타 멤버로 영입되었습니다. 두 달간의 연습 기간을 거쳐 11월부터 멤버 교체 소식을 알리고 활동을 재개했으며, 애초 기획하던 여성들을 대변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틴팝 스타일의 스키복을 입고 등장했습니다. 안무적으로도 이희진과 간미연의 커플 댄스 등 많은 변화를 주었으나, 잦은 사건 등으로 인해 홍보 부재를 겪으며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정현전, 정시운 탈퇴]

1집 활동 종료 후 정현전과 정시운이 탈퇴하였으며, 빈자리는 심은진과 이가이로 채워졌습니다.

1집 활동 종료 후 정현전과 정시운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면서 베이비복스의 멤버 구성에 다시 변화가 생겼습니다.

[1집 'Equalize Her' 발매 및 데뷔]

베이비복스가 1집 'Equalize Her'를 발표하고 타이틀곡 '남자에게 (민주주의)'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선정적인 의상 등으로 인해 방송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저조한 판매고를 기록하며 초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약 1년여간의 준비 끝에 베이비복스가 1집 'Equalize Her'로 데뷔했습니다. 타이틀곡은 '남자에게 (민주주의)'였지만, 열악한 소속사 환경, 여성 그룹에 대한 당시 대중의 생소함, 그리고 사회 질책성 가사에 대한 항의 등으로 방송 스케줄을 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뮤직비디오도 방송 전파를 타지 못했으며, 공중파 방송 출연 시 선정적 의상과 가사로 대중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리드 보컬 김이지는 가족 몰래 활동을 준비했기에 '비밀' 한 곡에만 참여했습니다.

[공중파 방송 데뷔 무대에서의 논란]

KBS 예능 오락방송 '토요일 전원출발'에 출연했으나, 무대에서 선보인 선정적인 의상과 사회 부정적 가사 등이 논란이 되어 시청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데뷔 한 달 뒤 KBS의 예능 오락방송 '토요일 전원출발'에 출연하여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무대에서 선보인 선정적인 의상과 사회 부정적 가사 등을 문제 삼아 베이비복스를 크게 비난했습니다. 여성이 랩을 하는 모습 또한 당시 대중에게 위화감을 주었습니다.

1998

[심은진, 이가이 합류]

심은진과 이가이가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특히 이가이는 1988년 걸그룹 '세또래' 출신으로 가수 경험이 있었으나, 다른 멤버들과의 나이 차이로 인해 나이를 10살 낮추고 데뷔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1집 활동을 마친 후 정현전과 정시운이 탈퇴하면서 심은진과 이가이가 합류했습니다. 심은진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춤 연습을 소화하며 열정을 보였고, 이가이는 과거 걸그룹 '세또래' 출신으로 가수 경험이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소속사 대표는 2집 앨범 컨셉을 걸 밴드로 구상하며 키보드와 보컬을 맡을 이가이를 영입했으나, 그녀의 실제 나이가 30세였음에도 다른 멤버들과의 나이 차이를 고려해 10살 낮춰 데뷔하기로 했습니다.

[2집 앨범 녹음 작업 완료 (초기 컨셉 수정)]

심은진과 이가이가 합류한 후, 베이비복스는 멤버별로 악기 연습에 매진하고 2집 앨범의 녹음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당시 음악 시장의 흐름에 맞춰 컨셉을 수정하고 재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새 멤버들과 함께 베이비복스는 키보드, 기타 등 악기 다루는 연습에 몰두하고 2집 앨범의 녹음 작업을 3월에 마쳤습니다. 하지만 당시 S.E.S.와 핑클 등 틴팝 걸그룹이 대세였던 점을 고려하여, 소속사는 귀여운 댄스와 아기자기한 가사, 멜로디가 대중에게 더 잘 다가갈 것이라고 판단, 앨범 계획을 수정하고 재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야야야' SBS 인기가요 3위 기록]

2집 타이틀곡 '야야야'가 SBS 인기가요에서 3위까지 랭크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베이비복스는 인기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2집 타이틀곡 '야야야'는 1998년 11월 첫째 주 SBS 인기가요에서 3위까지 랭크되는 등 높은 인기를 기록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베이비복스가 국내 가요 시장에서 주목받는 그룹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연말 가요시상식 신인상, 인기상 수상]

SBS 가요대전에서 신인상을, 서울가요대상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며 2집 활동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알렸습니다. 이는 베이비복스의 대중적 인기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성공적인 2집 활동을 마감하며 베이비복스는 SBS 가요대전에서 신인상을 수상했고, 서울가요대상에서는 인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룹의 성장과 대중적 인기를 입증하는 중요한 성과로 기록되었습니다.

[2집 타이틀곡 '야야야' 첫 무대]

SBS 인기가요를 통해 2집 타이틀곡 '야야야'를 처음 선보이며 컴백했습니다. 멤버들은 하루 8시간의 격렬한 안무 연습과 택견 수련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1집 실패를 만회하고자 했습니다.

1집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멤버들은 하루 8시간에 버금가는 격렬한 안무 연습과 3개월간의 전통 무예 택견 수련을 병행하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SBS 인기가요를 통해 타이틀곡 '야야야'를 선보이며 컴백했습니다. 10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가사말과 '안녕 춤' 등의 댄스가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어필되기 시작했습니다.

[2집 'BABY VOX II' 발매 및 인기 상승]

2집 앨범 'BABY VOX II'를 발매했습니다. 타이틀곡 '야야야'는 발매 한 달도 되지 않아 가요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큰 인기몰이를 했고, 후속곡 'Change' 역시 10위권에 들며 베이비복스를 대중적인 인기 그룹으로 만들었습니다.

2집 앨범 'BABY VOX II'가 발매되었고, 타이틀곡 '야야야'는 방송 한 달도 지나지 않아 MBC 음악캠프 10위권, KBS 뮤직뱅크 13위, SBS 인기가요 11위 등 놀라운 속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유승준 등을 지도한 이영환이 만든 '안녕 춤'이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후속곡 'Change' 또한 가요차트 10위권에 들면서 인기를 누렸고, 이 시기에 공식 팬클럽 '베이비 엔젤스'가 창설되며 인기에 가속을 붙였습니다.

1999

[간미연 열애설 및 안티 팬 테러 사건]

간미연과 H.O.T. 문희준의 열애설로 인해 간미연에게 피 묻은 협박 편지와 면도날이 동봉되는 '살해 협박'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멤버들은 팬사인회에서 오물 세례를 받기도 하는 등 극심한 안티 팬들의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3집 후속곡 'Killer' 활동을 준비하던 중 멤버 간미연과 H.O.T. 문희준의 열애설이 불거졌습니다. 이로 인해 간미연에게 '죽여버리겠다'는 내용과 피 묻은 편지, 면도날 8개가 동봉된 협박 우편물이 발송되었고, 팬 사인회에서는 오물 세례를 받는 등 극성 팬들의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간미연은 휘두른 면도날에 손을 다치기도 했으며, 이 사건은 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소속사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 사건은 베이비복스에게 막대한 정신적 피해와 활동의 어려움을 초래했습니다.

[윤은혜 영입 및 5인조 완전체 결성]

이가이의 빈자리를 메울 새 멤버를 뽑는 공개 오디션이 개최되었고,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윤은혜가 캐스팅되어 베이비복스의 최종 5인조 완전체 라인업이 완성되었습니다.

1999년 4월, 이가이의 빈자리를 메울 새 멤버를 뽑기 위한 공개 오디션이 열렸습니다. 이 오디션을 통해 당시 용강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윤은혜가 캐스팅되었고, 이로써 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 윤은혜로 이어지는 베이비복스의 최종 5인조 완전체 라인업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베이비복스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가이 나이 관련 구설수 및 탈퇴]

2집 활동 종료 직후, 멤버 이가이의 실제 나이가 주간지 '스포츠 서울'을 통해 폭로되면서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DR뮤직은 사과문과 함께 이가이의 팀 탈퇴를 공식화했습니다.

2집 활동이 종료된 직후인 1999년 1월, 주간지 '스포츠 서울'을 중심으로 멤버 이가이의 실제 나이가 폭로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가이는 데뷔 당시 나이를 10살이나 낮춘 것으로 밝혀졌고, 이에 DR뮤직은 천리안 PC통신에 장문의 사과문을 올리며 이가이의 팀 탈퇴를 공식화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베이비복스는 다시 한번 멤버 변동을 겪게 되었습니다.

[3집 'Get Up!' 히트 및 최정상 걸그룹 등극]

3집 앨범 'Come Come Come Baby'의 싱글 'Get Up!'으로 컴백했습니다. 이 곡은 당시 여성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섹시하고 파워풀한 이미지를 어필하며 음반 발매 3주도 채 되지 않아 KBS 뮤직뱅크에서 데뷔 2년 만에 첫 1위를 차지했습니다.

윤은혜가 합류한 베이비복스는 1999년 7월, 3집 앨범 'Come Come Come Baby'의 싱글 'Get Up!'으로 컴백했습니다. 박진영이 작사하고 김형석이 작곡한 이 펑키 댄스곡은 당시 여성 그룹 최초로 섹시하고 파워풀한 이미지를 어필하며 김이지의 선정적인 의상과 다리를 쓸어내리는 안무 등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중독성 있는 가사와 쉬운 멜로디가 대중에게 크게 어필되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음반 발매 3주도 채 되지 않아 KBS 뮤직뱅크에서 데뷔 2년 만에 처음으로 1위를 수상하며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이 앨범의 수록곡 'Killer'와 'Missing You'도 트리플 성공을 거두며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그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 진출 선언]

3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베이비복스는 중국 진출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해외 활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3집 'Come Come Come Baby'의 성공적인 활동을 마무리한 베이비복스는 1999년 12월, 중국 진출을 선언하며 국내 활동을 넘어 해외 시장으로의 확장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베이비복스가 최초의 한류 걸그룹으로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열애설 여파로 방송 무대에서 H.O.T. 팬들의 냉대]

MBC '음악캠프'와 SBS '인기가요'에서 베이비복스가 무대에 오르자 H.O.T. 팬들이 팔짱을 낀 채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냉대를 보냈습니다. 이로 인해 베이비복스와 박지윤 같은 다른 여자 가수들이 열애설로 인한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1999년 10월 9일 서울 여의도 MBC 공개홀의 '음악캠프'와 10월 10일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 열린 '인기가요'에서 베이비복스와 박지윤이 무대에 오르자, 구름처럼 몰려든 H.O.T. 팬들은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길을 보내며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이들은 H.O.T.가 나올 때만 열광적으로 풍선을 흔들었으며, 문희준과 간미연, 강타와 박지윤의 열애설 때문에 여자 가수들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근거 없는 소문에 애꿎은 여자 가수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Get Up!' KBS 뮤직뱅크 첫 1위 수상]

3집 앨범 'Come Come Come Baby'의 타이틀곡 'Get Up!'이 음반 발매 3주도 채 되지 않아 KBS 뮤직뱅크에서 데뷔 2년 만에 처음으로 1위를 수상하며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1999년 7월에 발표된 3집 앨범의 싱글 'Get Up!'은 중독성 있는 가사와 쉽게 귀에 익는 멜로디 등으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었습니다. 이 곡은 1999년 8월 3일, 음반이 발매된 지 3주도 채 되지 않아 KBS 뮤직뱅크에서 데뷔 2년 만에 처음으로 1위를 수상하며 베이비복스를 최정상급 걸그룹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간미연, 팬 사인회 면도칼 테러 시도]

간미연이 팬 사인회에서 한 여중생에게 면도칼로 손을 베이려 하는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간미연은 1cm 정도의 상처를 입었으며, 소속사 측은 경호 인력을 늘려 신변 보호 비상대책을 세웠습니다.

1999년 8월 13일, 서울 면목동의 한 레코드점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서 간미연이 한 여중생 팬으로부터 면도칼로 오른손 검지를 베이려 하는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깊지 않은 1cm 정도의 상처로 위기를 넘겼지만, 이 사건으로 소속사 측은 간미연의 곁에 2명의 매니저를 전담 보디가드로 기용하는 등 신변 보호 비상대책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H.O.T. 멤버 문희준과의 열애설로 인한 극성 팬들의 위협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대구 팬사인회에서의 극성 팬 소동]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서 H.O.T. 극성팬들이 조직적으로 공격한다는 소문에 가방 검사까지 했음에도, 한 여학생 팬이 간미연의 사인대 앞에서 문희준의 브로마이드를 꺼내놓고 사인하라고 윽박지르는 소동이 발생했습니다.

1999년 8월 20일, 대구 동성로의 한 대형 레코드 매장에서 열린 베이비복스 팬 사인회에서 H.O.T. 극성 팬들이 결사대를 조직해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에 소속사 측은 청소년 팬들의 가방 검사까지 했으나, 한 여학생 팬이 간미연의 사인대 앞에서 H.O.T. 문희준의 브로마이드를 꺼내놓고 사인하라고 윽박지르는 소동이 일어났고, 매니저들이 긴급히 끌어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간미연을 향한 극성 팬들의 조직적인 위협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간미연 살해 협박 사건 경찰 수사 의뢰]

간미연 살해 협박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 강남경찰서는 베이비복스 사무실에 또 다시 면도칼과 협박편지가 우송됐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H.O.T. 팬클럽에 대한 정식 조사를 검토하는 등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간미연 살해 협박 사건이 발생하자, 서울 강남경찰서는 1999년 9월 15일 베이비복스 사무실에 또 다시 면도칼과 협박편지가 우송됐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이를 수거하여 지문 감식을 의뢰하고, 이번 사건이 H.O.T. 팬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팬클럽에 대한 정식 조사를 검토하는 등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당시 H.O.T. 팬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등 터무니없는 루머를 재생산하여 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습니다.

2000

[4집 'Why' 발매 및 국내 컴백]

4집 앨범 'Why'로 국내 무대에 컴백했습니다. 이 앨범은 디자이너 이상봉이 의상에 참여하고 일본의 유명 안무가가 지도하는 등 아시아권 진출을 위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며, 발매 보름 만에 1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3집의 성공적인 활동 이후 중국 진출을 꾀했던 베이비복스는 아시아권으로 진출하기 위해 후속 앨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작곡가 김형석을 주축으로 음악 작업을 진행하고, 일본 유명 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안무가였던 '사쿠마 히로유키'를 섭외하여 안무를 지도받았으며, 디자이너 이상봉이 무대 의상에 참여했습니다. 뮤직비디오 역시 중국 계림에서 해외 촬영을 마쳤습니다. 2000년 5월, 4집 'Why'로 국내 무대에 컴백하여 발매 보름 만에 15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4집 활동 종료 및 중국 계림시 홍보대사 위촉]

4집 활동을 종료한 베이비복스는 중국 청도 '세계 맥주 대축제'에 참가하여 비 지스, 우타다 히카루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합동 공연을 펼쳤고, 중국 계림시의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해외에서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2000년 10월, 4집 활동을 종료한 베이비복스는 중국 청도에서 열린 '세계 맥주 대축제' 행사에 참가하여 비 지스, 우타다 히카루, 코코 리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합동 공연을 펼쳤습니다. 또한, 중국 계림시의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해외에서의 인기를 증명했으며, 이 시기부터 해외 활동이 더욱 잦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연말에는 클론, 이정현과 함께 중국에서 합동 콘서트를 가졌으나 공연 사기를 당해 체류비 문제로 발이 묶일 뻔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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