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스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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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연표
1923
[월스트리트의 새 출발]
세 명의 창립자가 모여 소규모 자본으로 주식 거래소를 설립하며 금융업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창립 초기에는 파트너들 사이의 내부적 긴장과 갈등이 공개적인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시작을 겪었습니다.조셉 에인슬리 베어, 로버트 B. 스턴스, 해럴드 C. 마이어가 50만 달러(현재 가치 약 94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세웠습니다. 초기의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곧 안정을 찾으며 월스트리트에서의 기반을 다져나갔습니다.
1929
[대공황의 파도를 넘다]
미국 경제를 휩쓴 사상 최악의 주가 대폭락 사태 속에서도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고 위기를 버텨냈습니다. 이는 회사의 튼튼한 위험 관리 능력과 직원들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가 되었습니다.당시 수많은 금융사가 파산하고 대량 해고가 일어났으나, 회사는 내부 결속력을 바탕으로 이 시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대공황의 생존은 훗날 이들이 대형 투자은행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1933
[첫 지점의 개설]
뉴욕을 넘어 타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처음으로 외부 지점을 개설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전국적인 증권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회사의 첫 지점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문을 열었습니다. 중서부 금융의 중심지인 시카고 진출은 투자자 및 고객층을 다변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1949
[새로운 경영 체제 구축]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며 새로운 파트너가 회사의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회사는 기관 투자자들을 위한 더욱 폭넓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살림 L. 루이스가 매니징 파트너(최고경영자 역할)를 맡아 약 3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회사의 규모와 수익 구조가 한층 탄탄해졌습니다.
1955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해외 자본 시장의 잠재력을 포착하고 유럽에 첫 국제 사무소를 개소하며 글로벌 금융사로 첫걸음을 뗐습니다. 국내 고객뿐만 아니라 해외 정부 및 기업들을 상대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첫 국제 사무소의 위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 이후 런던, 베이징, 홍콩, 도쿄 등 전 세계 주요 금융 허브로 뻗어 나가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78
[전설적인 경영자의 등장]
특유의 공격적이고 독창적인 경영 철학을 지닌 인물이 새롭게 최고 경영자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회사는 공격적인 트레이딩 부문을 강화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거대 기관으로 변모했습니다.앨런 C. 그린버그가 매니징 파트너로 취임하여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사풍을 극도로 경쟁적이고 실력 위주의 트레이딩 문화를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켰습니다.
1985
[주식 시장 상장]
파트너십 형태의 소유 구조를 벗어나 기업 공개를 단행하며 상장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대규모 외부 자본을 조달하게 되면서 투자은행, 글로벌 청산 서비스, 자산 관리 등 다양한 사업 분야로 팽창했습니다.상장을 통해 조달된 자금은 파생상품 및 외환 거래, 채권 판매 부문을 크게 확장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베어스턴스 시큐리티스 코퍼레이션'을 통해 전 세계 브로커 딜러들에게 글로벌 청산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1993
[제임스 케인 체제의 출범]
새로운 최고 경영자가 취임하며 회사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주택 시장의 호황을 타고 모기지 담보부 증권(MBS) 시장에 집중적으로 뛰어들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제임스 케인이 앨런 그린버그의 뒤를 이어 CEO직을 맡았습니다. 이 시기 회사는 '모기지 증권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이스 라니에리가 개척한 자산 유동화 증권을 대량으로 발행하며 급성장했습니다.
2005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영예]
유력 경제 잡지가 선정한 설문조사에서 증권사 부문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뛰어난 인재 관리와 혁신적인 비즈니스 역량을 인정받으며 업계 내 위상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포춘(Fortune)지가 주관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설문에서 거둔 성과로, 3년 동안 두 번이나 이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리스크 관리와 비즈니스 혁신 부문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6
[거대 증권사로의 도약]
회사의 총자산과 자본금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투자은행 반열에 확고히 올랐습니다. 파생상품 계약 규모 역시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나며 호황을 누렸습니다.당시 총자본은 약 667억 달러, 총자산은 3,504억 달러에 달했으며 자본 규모 기준 미국 7대 증권사로 평가되었습니다. 13조 4천억 달러 규모의 파생상품 계약을 맺는 등 거대한 덩치를 자랑했습니다.
2007
[위험한 레버리지와 시한폭탄]
전 세계 1만 5천 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리며 번영하는 듯 보였으나, 장부 이면에는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고위험 자산이 자본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위험한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시작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관련 자산의 투자를 늘리는 치명적인 오판을 내렸습니다.당시 회사는 단 111억 달러의 순자산으로 무려 3,950억 달러의 자산을 굴려 레버리지 비율이 35.6대 1에 육박했습니다. 특히 쉽게 현금화하기 힘든 '레벨 3' 자산을 280억 달러 이상 떠안고 있어 위기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부실 펀드 구제를 위한 자금 수혈]
자사가 운용하던 헤지펀드들이 부실한 담보부채무증권(CDO) 투자로 인해 위기에 처하자 대규모 긴급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경영진은 회사의 평판이 실추될 것을 두려워하여 막대한 대출을 감행했지만, 이는 시장의 붕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회사는 최대 32억 달러 규모의 담보 대출을 투입해 '하이그레이드 구조화 신용 펀드'를 구제하려 했습니다. 경쟁사인 메릴린치가 담보로 잡고 있던 8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압류했으나 경매에서 겨우 1억 달러어치만 처분되는 굴욕을 겪으며 전염의 공포가 시장에 확산되었습니다.
[헤지펀드 책임자의 문책성 교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영진은 문제가 된 헤지펀드들을 총괄하던 고위 임원을 즉각 경질했습니다. 후임으로는 경쟁사 출신의 인사를 급히 영입하여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습니다.두 서브프라임 헤지펀드를 책임지던 고위 임원 리처드 A. 마린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자리는 리먼 브라더스의 전 부회장이었던 제프리 B. 레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서브프라임 펀드의 전면적 붕괴]
시장에 돌던 불길한 소문은 현실이 되었고, 자사가 운용하던 두 개의 핵심 서브프라임 헤지펀드가 사실상 모든 가치를 잃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급격한 하락세가 회사의 존립을 위협하는 거대한 쓰나미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이 발표는 회사의 신뢰도를 크게 추락시켰으며, 월스트리트 전체에 모기지 부실에 대한 강력한 경고등을 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당 펀드에 물려있던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이 기정사실화되었습니다.
[분노한 투자자들의 첫 법적 대응]
엄청난 손실을 떠안게 된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회사의 최고 경영진과 리스크 관리 담당자들을 상대로 전면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회사가 펀드의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투자자들을 기만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제이크 자만스키 앤 어소시에이츠 등 로펌들이 전국증권업협회(NASD)에 중재안을 접수했습니다. 이는 서브프라임 사태와 관련하여 회사를 상대로 제기된 첫 번째 공식적인 법적 조치였습니다.
[공동 사장의 강제 사임]
헤지펀드 붕괴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최고위층으로 번지면서 공동 사장 중 한 명이 사임 압력을 받고 불명예스럽게 회사를 떠났습니다. 내부적인 혼란이 가중되며 경영진의 위기관리 능력에 큰 의문 부호가 붙기 시작했습니다.물러난 워런 스펙터 공동 사장은 모기지 시장 투자 확대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인물로 지목되었습니다. 그의 사임은 꼬리 자르기식 처방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급전직하하는 수익]
분기 실적 발표 결과, 헤지펀드 손실의 여파로 순이익이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치는 최악의 성적표를 내놓았습니다. 이는 회사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습니다.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모기지 부실 문제로 인해 회사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무려 61%나 폭락했습니다. 월가는 이때부터 회사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83년 만의 첫 적자와 신용등급 강등]
모기지 관련 증권에서 천문학적인 추가 상각이 발생하면서 창사 이래 최초로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이에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는 회사의 신용등급을 즉각 하향 조정하며 경고음을 울렸습니다.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사무엘 몰리나로는 12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 자산 손실을 추가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회사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강등시켰습니다.
2008
[마지막 구원 투수 등판]
끝없이 추락하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전임자의 뒤를 이어 새로운 최고 경영자가 긴급히 경영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제임스 케인의 뒤를 이어 앨런 슈워츠가 CEO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투자자들과 자본 확충을 논의했지만, 이미 곪아 터진 부실을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습니다.
[유동성 고갈의 징후]
시장 내에 회사의 현금이 말라가고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거래 상대방들이 거래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넉넉했던 유동성 풀이 순식간에 줄어드는 뱅크런(대규모 자금 이탈)의 조짐이 현실화되었습니다.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록에 따르면, 이 시점까지만 해도 회사의 유동성 풀은 181억 달러 규모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보를 제공하더라도 단기 자금을 빌려주려는 기관들이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단 3일 만의 현금 증발]
시장의 공포가 자기 실현적 예언으로 작용하며, 거래 파트너들의 자금 회수 러시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수백억 달러의 현금이 바닥나며 사실상 파산 직전에 내몰렸습니다.SEC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는 181억 달러였던 회사의 유동성 풀이 단 3일 만에 20억 달러로 폭락했다고 밝혔습니다. 자본 부족이 아닌 시장의 '신뢰 상실'이 회사를 파멸로 이끈 핵심 원인이었습니다.
[무산된 긴급 구제금융]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우량 자산을 담보로 천문학적인 긴급 대출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희망적인 조치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연준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며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초기에는 시장이 제공하지 않는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28일짜리 250억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이 승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준은 곧바로 마음을 바꿔 회사 측에 이 대출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하며 상황을 절망으로 빠뜨렸습니다.
[충격적인 헐값 매각 합의]
연방준비제도의 강력한 압박과 개입 아래, 결국 거대 경쟁 은행에 굴욕적인 조건으로 회사를 넘기는 매각 합의안에 서명하며 독립 기업으로서의 수명을 다했습니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던 주식 가치는 껌값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하며 전 세계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뉴욕 연방준비은행은 300억 달러 규모의 부실 자산을 떠안는 특수목적법인(메이든 레인 LLC)을 설립하여 매각을 지원했습니다. JP모건 체이스는 주당 단 2달러라는 충격적인 가격(이틀 전 시가총액의 7% 미만)에 회사를 인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당국의 사태 원인 규명]
미국 금융 당국의 수장이 공식 석상에서 회사의 몰락 원인이 자본 건전성이 아닌 시장의 급격한 신뢰 상실에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유동성 위기 소문이 실제로 거대한 공황을 불러일으켰음을 공식 인정한 것입니다.크리스토퍼 콕스 SEC 의장은 회사가 담보로 제공할 우량 자산이 있었음에도 거래 상대방들이 자금 조달을 거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회사의 파산을 방치했다면 미국 경제 전체에 재앙적인 연쇄 붕괴가 왔을 것이라며 구제 개입을 정당화했습니다.
[주주들의 집단 소송과 매각가 수정]
휴지 조각이 된 주식에 격분한 주주들이 불공정한 합의라며 거센 반발과 함께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인수합병 계약서상의 허점을 우려한 인수 은행 측은 결국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매각 대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는 재협상에 나섰습니다.주주들을 대변하는 집단 소송이 제기된 당일, JP모건 체이스는 주당 인수 가격을 기존 2달러에서 10달러(총액 12억 달러)로 다섯 배 인상하는 새로운 수정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급하게 작성된 초기 합의서에 남아있던 보증 관련 법적 허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구제 금융에 대한 권위자의 비판]
전직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중앙은행의 이번 구제 개입이 법적 권한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극단적인 조치였다고 날 선 비판을 가했습니다. 특정 사기업을 살리기 위해 중앙은행이 혈세를 동원한 것에 대한 거센 논란이 확산되었습니다.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뉴욕 경제 클럽 연설에서 연준이 "법적, 암묵적 권한의 맨 끝자락까지 확대된"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사건은 향후 금융위기 속에서 정부의 '대마불사' 구제 정책에 대한 심각한 딜레마를 남겼습니다.
[매각의 최종 승인]
주주 총회에서 수정된 가격의 인수합병안이 최종 통과되며 85년 역사를 자랑하던 위대한 투자은행의 간판이 공식적으로 내려갔습니다. 한때 주당 170달러를 넘나들던 회사는 초라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주주들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주당 10달러에 JP모건 체이스로의 매각을 눈물을 머금고 승인했습니다. 직원들과 투자자들은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으며 수많은 인력이 월가에서 자리를 잃었습니다.
[부실 주범들의 체포와 기소]
회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문제의 서브프라임 헤지펀드 매니저 두 명이 자택에서 전격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투자자들을 의도적으로 기만하고 부실을 감춘 혐의로 형사 재판에 넘겨졌습니다.체포된 매튜 태닌과 랄프 R. 치오피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가치를 부풀려 알린 혐의를 받았습니다. 또한, 바클레이스 은행 등 거액을 물린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대규모 민사 소송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2009
[최악의 책임자로 지목된 전 CEO]
유력 시사 주간지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주범들을 선정하며, 회사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던 전 최고경영자를 가장 책임이 큰 인물 중 한 명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빠진 순간에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타임지는 월스트리트를 망친 CEO들 중 제임스 케인을 언급하며, 그 누구보다 스위치 작동(위기 대처)에 졸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의 방만한 레버리지 경영이 회사의 몰락을 앞당겼다는 세간의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2010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이름]
인수 은행이 그동안 유지해 오던 회사의 기존 브랜드를 폐기하고 완전히 자사 시스템으로 흡수 통합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로써 월스트리트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맹수 같은 이름은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JP모건 체이스는 인수한 지 약 2년 만에 베어스턴스라는 명칭의 사용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거대한 본사 건물과 시스템, 살아남은 조직원들은 모두 JP모건이라는 새로운 우산 아래로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