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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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시인, 연출가, 사회주의자 + 카테고리

독일의 대표적인 극작가, 시인, 연출가입니다. 사회주의 사상과 '낯설게 하기' 연극 기법을 통해 20세기 연극사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를 담은 작품들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나치와 매카시즘을 피해 망명 생활 중에도 활발히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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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98

[베르톨트 브레히트 출생]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지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898년 2월 10일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지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동안은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잠시 일했다.

1918

[첫 희곡 《바르》 발표]

첫 희곡 《바르》를 발표하며 극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뮌헨에서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출발하여 첫 희곡 《바르》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19

[클라이스트 상 수상]

희곡 《밤의 북[鼓]》으로 클라이스트 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다.

1919년 제2작 《밤의 북[鼓]》으로 클라이스트 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도시의 정글 속에서》(1923)를 발표하는 등 초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28

[《서푼짜리 오페라》 대성공]

대표작 《서푼짜리 오페라》가 베를린에서 100회 이상 공연되며 극단 내 지위를 굳히다.

《서푼짜리 오페라》(1928)는 베를린에서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며 브레히트의 극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전쟁 경험을 통해 점차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 시기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 《서푼짜리 소설》을 집필하며 좌파작가로 활동했다.

1933

[나치 탄압 피해 미국 망명]

나치 집권과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의 집권과 나치가 좌파탄압을 위해 날조한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인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기간 동안 그는 《제3제국의 공포와 비참》, 《갈릴레이의 일생》(1938),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39), 《코카서스의 백묵원》(1944) 등의 여러 걸작을 집필하며 새로운 연극의 길을 제시했다.

1939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집필]

망명 중 걸작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집필하며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다.

1939년 망명 중 브레히트는 전쟁의 비극과 인간의 생존 본능을 다룬 걸작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그의 서사극 이론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에 반전 메시지를 전달했다.

1947

[매카시즘 피해 동독 이주]

미국의 매카시즘을 피해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으로 이주하다.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서도 1947년 12월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이 불어 닥치자 브레히트는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으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많은 동료 좌파작가들이 서독을 택했지만, 그는 동독을 택했다. 그러나 동독 공산당 간부들의 관료주의에 만족하지 못하여 풍자시를 쓰거나 1953년 동독 노동자 봉기 진압을 비판하기도 했다.

1956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망]

지병인 심장병으로 베를린에서 58세의 나이로 사망하다.

1956년 8월 14일,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지병인 심장병으로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가족으로는 1929년 결혼한 아내 헬레네 바이겔과 두 자녀(슈테판, 바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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