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승려)
연표
1932
[출생]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에서 속명 박재철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목포상업중학교와 전남대 상대에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법정은 1932년 11월 5일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문내면)에서 박재철이라는 속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제였던 목포상업중학교에 진학했으며, 이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3년을 수료했습니다.
1954
[출가 결심 및 행자 생활 시작]
대학교 3학년 중퇴 후 출가를 결심하고 오대산으로 향하려 하였으나 눈길로 인해 서울 안국동에서 효봉 스님을 만나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졌던 법정은 대학교 3학년 중퇴를 하던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합니다.
1955
[사미계 수계 및 수행 정진]
행자 생활을 시작한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그는 지리산 쌍계사에서 본격적인 수행에 매진하며 승려의 길을 걸었습니다.
1955년, 법정은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수행에 정진했습니다.
1959
1959년 3월, 법정은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1959년 4월, 법정은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습니다.
1969
[베트남 파병 반대 및 승적 박탈]
베트남 전쟁 파병에 대한 국가적 여론이 들끓던 시기에 과감하게 '월남 파병 반대' 목소리를 높여 불교 교단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하는 멸빈조치를 받았습니다.
1960년대 말, 법정 스님은 베트남 파병에 대한 국가여론 합일이 한창일 때 과감하게 '월남 파병 반대'라는 목소리를 높여 불교 교단으로부터 승적을 박탈하는 멸빈조치를 받았습니다.
1979
[불일암 건립]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짓고 거주하며, 이곳에서 '무소유'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삶과 사색을 이어갔습니다. 불일암은 그의 상징적인 수행처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법정 스님은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습니다.
1997
[길상사 개원법회와 김수환 추기경 참석]
서울 성북동 길상사 개원법회에 한국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며 종교 간 화합의 의미 있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1997년 12월 14일,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한국 천주교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습니다.
1998
[명동 성당 특별 강연]
길상사 개원법회 참석에 대한 답례로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졌습니다. 이는 불교와 천주교 간의 깊은 교감과 종교 화합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1997년 길상사 개원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한 것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에 법정 스님은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졌습니다. 이는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됩니다.
2010
[입적]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했습니다. 그의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2010년 3월 11일, 법정 스님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했습니다. 그의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로 지냅니다.
[저서 완전 절판 및 수거]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라,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들이 합의하여 그의 모든 저서를 완전히 절판하고 수거했습니다. 이로써 그의 '무소유' 정신이 마지막까지 실천되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자, 2010년 3월 22일 출판사들은 유언을 존중하여 모든 책을 절판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후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 측은 2010년 7월 30일까지 저서를 서점에 보급하고, 같은 해 12월 31일까지만 판매한 후 모두 수거하여 완전히 절판시키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