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펄로 세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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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펄로 세이버스
아이스하키 구단, NHL 팀, 프로 스포츠 팀 + 카테고리

버펄로 세이버스는 1970년 NHL 확장기에 탄생하여 뉴욕주 버펄로의 겨울을 뜨겁게 달궈온 명문 아이스하키 팀입니다. 창단 초기 '프렌치 커넥션' 라인의 화려한 공격 농구로 팬들을 매료시켰고, 1990년대에는 '도미네이터' 도미닉 하섹의 전설적인 활약을 앞세워 리그 최정상급 수비력을 과시했습니다. 두 차례의 스탠리 컵 결승 진출과 2007년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 등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1999년의 '노 골' 논란과 같은 역사적 아픔을 딛고 현재는 젊은 유망주들을 주축으로 명가 재건을 향한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70

[프랜차이즈 권리 획득]

시모어 녹스와 노스럽 녹스 형제가 버펄로에 NHL 확장 팀을 창단할 수 있는 권리를 공식 획득했습니다. 이는 버펄로에 메이저 프로 아이스하키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팀 이름은 공모를 통해 날카롭고 공격적인 이미지를 담은 '세이버스'로 결정되었습니다.

녹스 형제는 버펄로 지역에 대한 강한 애착을 바탕으로 팀 창단을 주도했습니다. 팀명인 세이버스(Sabres)는 칼의 한 종류로, 공격과 수비에 모두 능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버펄로는 밴쿠버 캐넉스와 함께 1970-71 시즌부터 NHL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길버트 페로 지명]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전설적인 센터 길버트 페로를 지명했습니다. 드래프트 순번을 정하기 위한 룰렛 돌리기에서 밴쿠버를 제치고 얻어낸 천운의 기회였습니다. 페로는 이후 세이버스의 심장이자 상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길버트 페로는 데뷔 첫해에 38골을 기록하며 신인상인 칼더 트로피를 수상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스케이팅 능력과 화려한 드리블로 NHL 역사상 가장 우아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페로의 지명은 세이버스가 창단 초기부터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NHL 첫 경기]

피츠버그 펭귄스를 상대로 구단 역사상 첫 공식 정규 시즌 경기를 치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원정 경기에서 거둔 2-1 승리는 신생 팀 세이버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짐 왓슨이 구단 역사상 첫 번째 득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첫 경기 승리는 신생 구단이 리그에 연착륙하는 데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길버트 페로는 자신의 데뷔 첫 골을 기록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버펄로 팬들은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전해진 첫 승 소식에 열광하며 팀을 환영했습니다.

[첫 홈 경기 개최]

버펄로 메모리얼 오디토리움에서 몬트리올 캔디언스를 상대로 첫 홈 경기를 열었습니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버펄로 팬들에게 직접 NHL의 속도감을 선보인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이날 이후 '더 오드(The Aud)'는 세이버스 팬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당시 경기장은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지역 사회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습니다. 비록 강호 몬트리올에 3-0으로 패했지만 팬들은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세이버스는 버펄로 지역의 겨울 스포츠를 대표하는 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71

[릭 마틴 드래프트 지명]

신인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갖춘 윙어 릭 마틴을 지명했습니다. 마틴은 데뷔 첫 시즌에 신인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우며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이 지명으로 세이버스는 강력한 공격 라인을 구축할 두 번째 조각을 찾았습니다.

릭 마틴은 데뷔 시즌 44골을 몰아넣으며 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길버트 페로와 함께 팀의 공격을 주도하며 세이버스의 인기를 견인했습니다. 마틴의 합류는 세이버스가 신생 팀의 틀을 벗고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1972

[프렌치 커넥션 라인 결성]

피츠버그에서 르네 로버트를 영입하며 길버트 페로, 릭 마틴과 함께하는 '프렌치 커넥션' 라인을 완성했습니다. 세 선수 모두 퀘벡 출신으로 불어권을 공유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이 라인은 1970년대 NHL에서 가장 두려운 공격 조합으로 군림했습니다.

세 선수의 완벽한 호흡은 세이버스를 리그 최고의 공격형 팀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들은 수년 동안 팀 득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프렌치 커넥션은 현재까지도 세이버스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트리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73

[첫 플레이오프 진출]

창단 3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정규 시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신생 팀들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비록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강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강호 몬트리올 캔디언스를 상대로 시리즈를 6차전까지 끌고 가는 끈질긴 승부를 펼쳤습니다. 팬들은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버펄로 시 전역을 팀 컬러인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였습니다. 이 경험은 선수들에게 큰 자산이 되었으며 다음 시즌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1974

[가상 선수 타로 쓰지모토 지명]

드래프트 11라운드에서 일본인 선수 '타로 쓰지모토'를 지명했으나, 이는 펀치 임락 단장의 장난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루한 드래프트 과정에 지친 임락 단장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낸 사건이었습니다. 이 해프닝은 NHL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재미있는 일화로 남았습니다.

임락 단장은 가공의 인물을 만들기 위해 지역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NHL 사무국은 며칠이 지나서야 쓰지모토가 실존 인물이 아님을 깨닫고 지명을 무효화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세이버스 팬들은 팀이 크게 지고 있을 때 농담조로 쓰지모토의 이름을 연호하곤 합니다.

1975

[첫 스탠리 컵 결승 진출]

창단 5년 만에 동부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하고 스탠리 컵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를 상대로 치열한 우승 다툼을 벌였습니다. 비록 시리즈 전적 4-2로 패배했지만, 리그 최강팀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프렌치 커넥션 라인의 활약과 견고한 수비진이 조화를 이룬 최정점의 시즌이었습니다. 결승전 패배는 아쉬웠지만, 버펄로 시민들에게 아이스하키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완전히 각인시켰습니다. 이후 세이버스는 오랜 기간 동안 리그의 강자로 군림하며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안개 속의 경기(Fog Game)]

스탠리 컵 결승 3차전 중 경기장 내부에 짙은 안개가 발생하여 선수들이 앞을 보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에어컨 시설이 없던 경기장에 고온다습한 날씨가 겹치며 발생한 진귀한 현상이었습니다. 경기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선수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링크를 돌며 안개를 흩뜨리려 노력했습니다.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세이버스는 연장전 끝에 승리를 거두며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또한 경기 중 박쥐가 난입하여 선수의 스틱에 맞는 등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겹친 날로 유명합니다.

1978

[페로 통산 1000포인트 달성]

팀의 리더 길버트 페로가 구단 역사상 최초로 통산 1,000포인트를 달성했습니다. NHL 역사상 12번째로 이 기록에 도달한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홈 팬들은 링크에 꽃다발을 던지며 그들의 영웅을 축하했습니다.

페로는 한 팀에서만 뛰며 이 기록을 달성하여 충성심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세이버스 공격 하키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팀 동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명예의 전당 헌액을 향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1980

[첫 아담스 지구 우승]

정규 시즌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아담스 지구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강력한 수비력과 안정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거둔 성과였습니다. 세이버스는 이제 동부의 강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

시즌 내내 일관된 경기력을 유지하며 라이벌 팀들을 제압했습니다. 지구 우승은 플레이오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해주었으며 팀의 사기를 드높였습니다. 이 시기 세이버스는 북미 전체에서 가장 승률이 높은 프로 구단 중 하나였습니다.

1981

[단일 경기 14골 기록]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무려 14골을 몰아넣으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구단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공격 하키의 진수를 보여준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경기는 14-4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종료되었으며 수많은 공격 포인트가 쏟아졌습니다. 모든 라인이 득점에 가담하며 토론토의 수비진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이 승리는 세이버스 공격진의 파괴력을 리그 전체에 각인시킨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83

[톰 바라소 지명]

고등학생 골텐더였던 톰 바라소를 전체 5순위로 파격 지명했습니다. 드물게 고등학교에서 바로 NHL로 직행한 바라소는 데뷔 직후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세이버스의 골문을 지킬 새로운 수호신으로 낙점되었습니다.

바라소는 고졸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베테랑 같은 침착함으로 골문을 지켰습니다. 그의 빠른 반사 신경과 대담한 플레이 스타일은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지명은 세이버스가 수비 중심의 팀으로 체질 개선을 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984

[바라소 신인상 및 베지나상 수상]

톰 바라소가 데뷔 시즌에 신인상(칼더 트로피)과 최우수 골텐더상(베지나 트로피)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NHL 역사상 두 상을 한 시즌에 모두 받은 드문 기록이었습니다. 버펄로에 전설적인 수문장이 탄생했음을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리그 전체 실점률 1위를 기록하며 세이버스의 수비를 한 단계 격상시켰습니다. 10대의 나이에 거둔 이 성과는 리그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바라소의 성공은 이후 어린 골텐더들의 조기 등용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6

[길버트 페로의 은퇴]

구단의 초대 스타이자 영원한 캡틴 길버트 페로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7시즌 동안 세이버스의 유니폼만 입고 뛴 원클럽맨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의 은퇴와 함께 세이버스의 창단 초창기 황금기가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는 통산 1,191경기에 출전하여 1,326포인트를 기록한 채 빙판을 떠났습니다. 구단은 그의 번호인 11번을 즉시 영구 결번하며 최고의 예우를 갖췄습니다. 팬들은 더 이상 그의 화려한 드리블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1987

[피에르 터전 전체 1순위 지명]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하여 천재 센터 피에르 터전을 선발했습니다. 길버트 페로의 뒤를 이을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터전은 우아한 플레이 스타일로 페로를 연상시키며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습니다.

터전은 기대에 부응하며 데뷔 초기부터 높은 포인트 생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세이버스 공격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어 팀을 이끌었습니다. 이 지명은 페로 은퇴 이후 상실감에 빠져있던 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

1989

[알렉산더 모길니의 망명]

소련 국가대표였던 알렉산더 모길니가 세이버스에 합류하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냉전 시대 소련 선수가 NHL로 직접 탈출한 첫 번째 사례로,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모길니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세이버스의 공격력을 폭발시켰습니다.

망명 과정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박하고 위험했습니다. 그는 버펄로에서 번호 89번을 달고 뛰며 자유의 가치를 빙판 위에서 증명했습니다. 모길니의 성공은 이후 수많은 동유럽 선수들이 NHL로 진출하는 물꼬를 텄습니다.

1991

[라폰테인-터전 대형 트레이드]

아일랜더스의 스타 팻 라폰테인을 영입하기 위해 피에르 터전을 내주는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습니다. 공격의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단의 승부수였습니다. 라폰테인은 버펄로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라폰테인은 모길니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화력 좋은 듀오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한 시즌에 148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경이로운 득점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1990년대 초반 세이버스를 리그 최고의 흥행 팀으로 만들었습니다.

1992

[도미닉 하섹 영입]

시카고 블랙호크스로부터 무명의 백업 골텐더 도미닉 하섹을 영입했습니다.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트레이드였으나, 이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영입이 되었습니다. 하섹은 이후 '도미네이터'라 불리며 리그를 지배하게 됩니다.

하섹은 기존의 정석을 파괴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모든 퍽을 막아냈습니다. 그의 유연함과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은 상대 공격수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하섹의 영입으로 세이버스는 세계 최고의 골텐딩을 보유한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1993

[메이 데이(May Day) 골]

플레이오프에서 브래드 메이가 보스턴을 상대로 연장 결승골을 터뜨려 시리즈 스윕을 완성했습니다. 중계 캐스터 릭 제너렛의 열정적인 연호와 함께 세이버스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명장면이 탄생했습니다. 이 승리로 세이버스는 오랜만의 플레이오프 상위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브래드 메이는 화려한 드리블로 보스턴 수비진을 뚫고 기적 같은 골을 넣었습니다. 릭 제너렛의 "May Day! May Day!" 외침은 버펄로 하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멘트가 되었습니다. 이 골은 팀의 사기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린 결정적인 변곡점이었습니다.

1994

[하섹의 첫 베지나 트로피 수상]

도미닉 하섹이 리그 최우수 골텐더에게 주어지는 베지나 트로피를 처음으로 수상했습니다.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시즌이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이 상을 수차례 더 휩쓸며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하섹의 방어율과 세이브 성공률은 현대 아이스하키의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약팀으로 평가받던 세이버스를 혼자서 플레이오프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반복했습니다. 이 수상은 '하섹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96

[메모리얼 오디토리움 고별전]

26년 동안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버펄로 메모리얼 오디토리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수많은 영광과 좌절이 교차했던 정든 터전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팬들과 구단은 추억이 깃든 '더 오드'와 작별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고별전은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화려하게 치러졌습니다. 과거의 전설적인 선수들이 빙판 위에 다시 모여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후 구단은 더욱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새로운 경기장으로의 이전을 준비했습니다.

[마린 미들랜드 아레나 개장]

최첨단 시설을 갖춘 새로운 홈구장 마린 미들랜드 아레나(현 키뱅크 센터)를 개장했습니다. 대규모 관중 수용 능력과 쾌적한 관람 환경을 갖춘 현대식 경기장이었습니다. 이로써 세이버스는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대형 구단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개장 첫 경기는 만원 관중 속에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새로운 경기장은 버펄로 다운타운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팬들은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7

[린디 러프 감독 선임]

선수 출신의 린디 러프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러프는 강한 규율과 끈끈한 조직력을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팀을 재편했습니다. 그는 이후 15년 넘게 팀을 이끌며 세이버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러프 감독은 부임 첫해부터 팀의 수비력을 극대화하여 플레이오프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그는 선수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 형님 리더십으로 팀 분위기를 쇄신했습니다. 린디 러프 시대의 개막은 세이버스가 다시금 리그의 강자로 군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

[하섹의 하트 트로피 2연패]

도미닉 하섹이 리그 MVP인 하트 트로피를 2년 연속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골텐더가 이 상을 2회 이상 받은 것은 NHL 역사상 하섹이 유일합니다. 그는 명실상부한 지구상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공인받았습니다.

하섹의 활약은 팀 성적을 뛰어넘어 리그 전체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신들린 선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이 시기 하섹은 버펄로 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모든 어린이의 우상이었습니다.

1999

[노 골(No Goal) 논란]

댈러스 스타즈와의 스탠리 컵 결승 6차전 연장에서 상대 선수의 발이 크리즈 안에 들어간 상태에서 골이 인정되어 우승을 놓쳤습니다. 당시 규정상 명백한 무효였으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이는 하키 역사상 가장 큰 오심 논란으로 남았습니다. 버펄로 팬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한이 맺힌 순간입니다.

브렛 헐의 발이 골 크리즈 안에 먼저 들어가 있었음이 느린 화면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NHL은 크리즈 관련 규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세이버스 선수들은 눈앞에서 우승컵을 놓쳤지만, 당당히 싸운 영웅으로 대접받았습니다.

2001

[도미닉 하섹 트레이드]

팀의 전설 도미닉 하섹을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우승을 갈망하던 하섹의 요청과 팀의 리빌딩 계획이 맞물린 결정이었습니다. 이로써 90년대를 풍미했던 하섹의 버펄로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팬들은 아쉬워했지만 그동안 헌신해준 영웅의 앞날을 응원했습니다. 하섹은 디트로이트로 가서 결국 꿈에 그리던 스탠리 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세이버스는 하섹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골텐더 육성에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2002

[모회사 아델피아 파산 사태]

구단주 존 리가스가 운영하던 아델피아 통신이 회계 부정 사건으로 파산하며 구단 경영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NHL 사무국이 일시적으로 구단을 관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팀의 존폐 위기 속에서 팬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존 리가스는 법적 처벌을 받았고 구단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이 시기 세이버스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선수 보강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버펄로 지역 사회는 팀을 지키기 위해 하나로 뭉쳐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2003

[톰 골리사노 구단 인수]

억만장자 톰 골리사노가 위기에 빠진 세이버스를 인수하여 팀의 잔류를 확정 지었습니다. 그는 파산 위기의 구단을 정상화하고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버펄로 팬들은 팀을 지켜준 골리사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골리사노는 구단의 효율적인 운영을 강조하며 재정 건전성을 확보했습니다. 그의 인수 덕분에 세이버스는 타 지역으로의 연고지 이전 위기를 완벽히 벗어났습니다. 경영 안정은 곧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팀은 다시금 경쟁력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

[드루리-브리에 콤비의 활약]

크리스 드루리와 다니엘 브리에라는 두 명의 걸출한 센터를 중심으로 팀이 재편되었습니다. 락아웃 이후 바뀐 리그 규정에 최적화된 빠른 하키를 선보였습니다. 두 리더의 지휘 아래 세이버스는 다시 한 번 리그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습니다.

드루리는 투혼 넘치는 수비와 클러치 능력을, 브리에는 화려한 기술과 득점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선수의 리더십은 팀 전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습니다. 이 시기 세이버스는 리그에서 가장 재미있는 하키를 구사하는 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06

[동부 컨퍼런스 결승 진출]

플레이오프에서 파죽지세로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습니다.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이며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비록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세이버스의 부활을 선포한 시즌이었습니다.

주전 수비수들의 잇따른 부상 악재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라이언 밀러라는 새로운 스타 골텐더의 등장을 전 세계에 알린 무대였습니다. 팬들은 비록 패배했으나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을 공항까지 마중 나가 환영했습니다.

[슬러그(Slug) 로고 도입]

구단의 전통적인 로고 대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로고를 도입했으나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민달팽이를 닮았다는 이유로 '슬러그'라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스포츠 디자인 역사에서 팬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팬들은 온라인 청원을 통해 전통적인 '세이버 크로스' 로고로의 복귀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비록 디자인은 논란이었으나 이 유니폼을 입고 뛰던 시기 팀 성적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구단은 결국 몇 년 뒤 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다시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회귀했습니다.

2007

[첫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

정규 시즌 리그 전체 승률 1위를 달성하여 구단 역사상 최초로 프레지던츠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압도적인 공격력과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리그를 평정한 최고의 시즌이었습니다. 세이버스가 NHL의 최강자임을 증명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시즌 내내 기복 없는 경기력을 유지하며 최다 승점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모든 라인이 고른 득점력을 보여주며 상대 팀들을 압도했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력으로 평가받습니다.

[핵심 리더들의 동시 이탈]

팀의 중심이었던 크리스 드루리와 다니엘 브리에가 FA 시장에서 타 팀으로 떠났습니다. 구단의 재계약 협상 실패로 인한 뼈아픈 결과였습니다.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 직후 찾아온 이 이별은 팀 전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팬들은 팀의 기둥을 한꺼번에 잃은 것에 대해 구단 경영진에 큰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이후 세이버스는 한동안 리더십 공백을 메우지 못해 고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세이버스 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경영적 실책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08

[제1회 윈터 클래식 개최]

버펄로 빌스의 홈구장인 랄프 윌슨 스타디움에서 NHL 역사상 첫 번째 야외 경기인 윈터 클래식을 개최했습니다. 눈 내리는 야외 링크에서 피츠버그 펭귄스와 낭만적인 대결을 펼쳤습니다. 이 경기는 NHL의 연례 행사로 자리 잡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7만 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하여 야외 하키의 매력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시드니 크로스비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패했습니다. 하지만 눈보라 속에서 펼쳐진 이 경기의 영상은 하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2010

[노스이스트 지구 우승]

라이언 밀러의 신들린 선방을 앞세워 다시 한 번 지구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강력한 수비 위주의 전술로 실점을 최소화하며 거둔 성과였습니다. 세이버스는 다시 한 번 우승 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라이언 밀러는 이 시즌 베지나 트로피를 수상하며 하세의 뒤를 잇는 거장으로 공인받았습니다. 팀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끈질긴 승부를 펼치며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지구 우승을 통해 세이버스는 버펄로 지역의 하키 열기를 다시 한번 불지폈습니다.

2011

[테리 페굴라 구단 인수]

에너지 재벌 테리 페굴라가 세이버스를 인수하여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그는 '세이버스의 존재 이유는 스탠리 컵 우승'이라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히며 팬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페굴라 체제 하에서 구단 시설과 전력 보강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습니다.

페굴라는 인수 직후 선수들의 편의 시설을 최고급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그는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며 팬 친화적인 경영을 펼쳤습니다. 비록 성적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구단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13

[린디 러프 감독 경질]

16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던 최장수 감독 린디 러프를 경질했습니다. 계속된 성적 부진에 따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경영진의 판단이었습니다. 이로써 세이버스의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고 불확실한 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러프 감독은 세이버스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지도자로 남았습니다. 팬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며 고별 경기에서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의 경질 이후 세이버스는 수년 동안 감독 교체가 빈번한 혼란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2014

[라이언 밀러 트레이드]

팀의 프랜차이즈 골텐더였던 라이언 밀러를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본격적인 팀 재건(Rebuilding)을 위한 구단의 결단이었습니다. 하섹 이후 최고의 골텐더를 떠나보내며 팬들은 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밀러는 버펄로에서 보낸 시간 동안 지역 사회에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트레이드 발표 직후 팬들에게 감동적인 작별 인사를 남겼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세이버스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함을 상징했습니다.

2015

[잭 아이클 전체 2순위 지명]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대학 최고의 스타 잭 아이클을 지명했습니다. 팀을 재건할 차세대 슈퍼스타의 등장에 버펄로 전역이 들썩였습니다. 아이클은 뛰어난 실력으로 팀의 새로운 주장이자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데뷔 시즌부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아이클은 세이버스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팀의 얼굴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팀 성적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그에 대한 의존도와 압박감도 커져갔습니다.

2018

[라스무스 달린 전체 1순위 지명]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스웨덴의 천재 수비수 라스무스 달린을 선발했습니다. '하키계의 르브론 제임스'라 불릴 만큼 기대를 모았던 수비수의 합류였습니다. 달린은 세이버스 수비진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달린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경기 운영과 화려한 스케이팅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 가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 지명으로 세이버스는 아이클과 달린이라는 공수 양면의 기둥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2020

[로열 블루 컬러 복귀]

창단 초기 사용했던 밝은 파란색인 '로열 블루'를 팀의 메인 컬러로 다시 도입했습니다. 팬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전통적인 색상으로의 회귀였습니다. 구단은 이를 통해 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새로운 유니폼 디자인은 클래식함과 세련미를 동시에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색상 변경은 팀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팬들은 과거 황금기의 영광이 다시 재현되기를 바라며 새로운 유니폼을 반겼습니다.

2021

[잭 아이클 트레이드 및 결별]

부상 치료 방식을 둘러싼 갈등 끝에 주장 잭 아이클을 라스베이거스 골든 나이츠로 트레이드했습니다. 팀의 핵심 선수와의 고통스러운 이별이었으나, 구단은 미래를 위한 유망주와 지명권을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아이클 시대'가 논란 속에 마감되었습니다.

목 디스크 수술 방식을 두고 선수와 구단 간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트레이드 이후 세이버스는 알렉스 터컷 등 핵심 자원들을 받아와 팀을 재정비했습니다. 이 사건은 팀 내부 문화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2

[오웬 파워의 NHL 데뷔]

전체 1순위 지명자인 오웬 파워가 대학 시즌을 마치고 NHL 무대에 공식 데뷔했습니다. 라스무스 달린과 함께 강력한 수비 듀오를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파워는 첫 경기부터 침착한 플레이로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습니다.

큰 체격과 뛰어난 두뇌 회전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세이버스가 그리는 미래 수비진의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파워의 연착륙은 세이버스 리빌딩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23

[테이지 톰슨의 비상]

포워드 테이지 톰슨이 한 시즌 47골을 기록하며 리그 최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했습니다.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정교한 슛을 앞세워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켰습니다. 톰슨의 활약으로 세이버스는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력을 가진 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 경기 5골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득점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톰슨은 아이클이 떠난 빈자리를 완벽히 메우며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등극했습니다. 그의 성장은 세이버스가 다시 플레이오프 경쟁팀으로 올라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24

[린디 러프 감독의 복귀]

팀의 전설적인 감독이었던 린디 러프를 다시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오랜 플레이오프 가뭄을 끝내기 위한 구단의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팬들은 다시 돌아온 '버펄로의 아들' 러프 감독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러프 감독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을 지도할 최적임자로 꼽혔습니다. 그의 복귀는 구단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며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현재 세이버스는 러프 감독 체제 하에서 스탠리 컵 우승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다시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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