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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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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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배우, 예술인 영화/드라마 배우
백설희(본명 김희숙)는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여가수이자 배우입니다. 1943년 조선악극단에 입단하며 예술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전쟁의 아픔과 전후의 애환을 달래주는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봄날은 간다', '샌프란시스코' 등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국민 가요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명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박시춘과의 협업을 통해 영화배우로도 활동하며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고, 배우 황해와의 결혼을 통해 연예인 가문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들 전영록, 손녀 전보람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대중예술계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그녀의 음악 인생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하며 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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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27

[가수 백설희 탄생]

본명 김희숙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한 획을 그은 가수 백설희가 1927년 1월 29일 서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성장하였습니다.

1943

[조선악극단 입단 및 데뷔]

조선악극단 단원으로 연극배우와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43년 조선악극단에 입단하면서 공식적으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 시기에 연극 무대와 노래를 병행하며 본격적인 예술가로서의 이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53

[대표곡 '봄날은 간다' 발표]

백설희의 가장 유명한 대표곡 중 하나인 '봄날은 간다'를 발표했습니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이 곡은 한국 전쟁 이후 백성들의 허탈한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불멸의 고전입니다.

[곡 '샌프란시스코' 발표]

전후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를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노래로 대중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 곡의 대성공으로 백설희는 1950년대 최고의 여가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1954

[셋째 아들 전영록 출생]

남편 황해와의 사이에서 아들 전영록이 태어났습니다.
배우 황해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후, 1954년 셋째 아들 전영록을 얻었습니다. 전영록은 훗날 1980년대 최고의 스타 가수로 성장하여 가문의 영광을 이어갑니다.

[곡 '아메리카 차이나 타운' 발표]

박시춘이 작곡한 '아메리카 차이나 타운'을 발표했습니다.
박시춘과의 협업을 통해 발표된 이 곡 역시 큰 인기를 끌며 그녀의 대표곡 리스트에 추가되었습니다. 서구적인 멜로디와 백설희 특유의 창법이 잘 어우러진 곡으로 평가받습니다.

[곡 '물새 우는 강 언덕' 발표]

서정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물새 우는 강 언덕'을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대중들에게 깊은 서정성을 전달하며 백설희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주었습니다. 강가를 배경으로 한 애틋한 감성이 잘 녹아 있는 명곡 중 하나입니다.

1955

[곡 '칼멘 야곡' 발표]

강렬한 분위기의 곡인 '칼멘 야곡'을 대중들에게 선보였습니다.
기존의 청순하거나 애절한 이미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낸 작품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그녀의 가창력을 입증한 사례로 꼽힙니다.

1956

[영화배우로의 외연 확장]

기타리스트 박시춘이 감독한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음악가였던 박시춘이 연출과 음악을 맡은 영화에서 열연을 펼쳤습니다. 이를 통해 가수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의 재능도 대중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곡 '가거라 슬픔이여' 발표]

슬픔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가거라 슬픔이여'를 발표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시대에 대중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는 곡이었습니다. 백설희의 맑고 고운 음색이 곡의 주제와 잘 어우러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57

[곡 '하늘의 황금마차' 발표]

경쾌한 리듬의 '하늘의 황금마차'를 발표하여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1950년대 후반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의 곡입니다. 이 곡은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울려 퍼지며 그녀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959

[곡 '가는 봄 오는 봄' 발표]

세월의 흐름을 노래한 '가는 봄 오는 봄'을 발표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한 이 곡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1950년대를 마무리하며 그녀가 남긴 또 하나의 주요 히트작입니다.

1963

[넷째 아들 전진영 출생]

넷째 아들인 전진영을 출산하였습니다.
아들 전진영은 훗날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며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을 이어받았습니다. 가정적으로도 화목한 연예계 대표 부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86

[손녀 전보람 출생]

아들 전영록의 딸인 손녀 전보람이 태어났습니다.
전보람은 이후 아이돌 그룹 티아라의 멤버로 데뷔하여 3대째 연예인 가족의 명성을 잇게 됩니다. 백설희는 손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예술적 자양분을 물려주었습니다.

1987

[손녀 전우람 출생]

아들 전영록의 둘째 딸인 손녀 전우람이 태어났습니다.
전우람 역시 훗날 '디유닛'이라는 그룹의 가수로 데뷔하여 활동하게 됩니다. 이로써 백설희 가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 예술인 집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6

[KBS 가요대상 공로상 수상]

평생을 가요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KBS 가요대상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수십 년간 수많은 명곡으로 국민들을 위로한 공적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사례입니다. 원로 가수로서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2005

[남편 황해 별세]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동반자이자 배우인 남편 황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부 연예인으로서 한 시대를 함께 풍미했던 남편과의 이별은 그녀에게 큰 슬픔이었습니다. 이후 백설희는 남편을 기리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2009

[건강 악화와 투병 생활]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하여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 건강이 나빠지면서 팬들의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병상에 있는 동안에도 그녀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2010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생전 마지막으로 받은 권위 있는 상으로, 그녀의 예술적 성취를 기리는 의미가 컸습니다. 투병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업적은 끝까지 빛을 발했습니다.

[가수 백설희 별세]

고혈압 합병증으로 향년 83세의 나이에 별세하였습니다.
2010년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 한국 가요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그녀가 남긴 음악과 예술적 혼은 여전히 대중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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