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설
연표
1914
백년설은 1914년 1월 19일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에서 이창민(개명 전 이갑룡, 이갑용)이라는 본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으며,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연극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1934
1934년, 백년설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데뷔하게 되었으며, 이는 이후 가수로 활동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8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며 정식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이 곡의 가사는 1소절만 있었으나, 백년설은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여 즉석에서 가사를 완성하고 노래 연습을 마쳐 취입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데뷔는 그의 독보적인 가수 행보를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히트시켰습니다.
1939
1939년, 백년설의 주요 히트곡인 '두견화 사랑'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곡은 그의 초기 성공작 중 하나로, 대중에게 백년설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1940
['나그네 설움' 등 히트곡 발표 및 1940년대 대표 가수 활동]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산팔자 물팔자' 등 여러 애창곡을 발표하며 194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 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40년 이후 백년설은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수많은 애창곡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독특한 창법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194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 가수로 활약했습니다.
1941
[친일 가요 발표 논란 및 '대지의 항구' 발표]
1941년 지원병제 실시와 함께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 등 참전 독려 가요를 남인수, 박향림과 불렀습니다. 동년에 대표곡 〈대지의 항구〉를 발표하였으며, 이 경력으로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이 해에 대표곡 '대지의 항구'가 발표되었습니다. 다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심의에서는 기각되었으며, 같은 시기 '대지의 항구'를 발표하였습니다.
1942
1942년, 백년설의 서정적인 대표곡 '고향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곡은 전쟁 중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