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
연표
190
[서량의 맹장, 마등의 오른팔로 성장]
젊은 시절, 마등 휘하에서 강족과 저족을 진압하며 용맹을 떨쳐 교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무용은 일찍부터 마등 진영에서 최고로 인정받았습니다.
방덕은 젊어서부터 주의 종사로 일했으며, 초평 연간(189~194년) 마등의 지휘 아래 반목하는 강족과 저족을 여러 차례 진압하며 큰 공을 세워 교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용맹함은 이미 이때부터 명성을 떨쳤으며, 마등군 내에서 으뜸으로 손꼽혔습니다.
202
[곽원 토벌, 마초의 선봉에 서다!]
조조가 원담·원상 형제를 정벌할 때, 마초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평양현에서 곽원의 목을 베는 맹활약을 펼쳤고, 이 공으로 중랑장에 오르고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장백기 격파에도 참전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202년, 조조가 원담·원상 형제를 정벌하기 위해 북상하자, 마등은 아들 마초를 사례교위 종요에게 파견해 지원했습니다. 이때 방덕도 마초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평양현에서 앞장서 싸웠고, 상대편 장수 곽원의 목을 베는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종요의 생질이었던 곽원의 목을 바치자, 종요는 "나라의 적"이라며 방덕의 공을 치하했습니다. 이 활약으로 방덕은 중랑장이 되고 도정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홍농군에서 준동하던 장백기 격파전에도 종군하여 또다시 공을 세웠습니다.
208
208년, 마등이 조정으로 들어가 위위(衛尉)가 되자, 방덕은 관서에 남은 마초의 휘하 장수로 남게 됩니다. 이는 훗날 그의 운명을 크게 바꿀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211
211년, 마초군이 동관 전투에서 조조에게 크게 패배하며 본거지를 잃게 됩니다. 이는 마초와 그를 따르던 방덕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습니다.
212
212년 또는 213년, 기성 전투에서조차 패배한 마초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져 한중의 장로에게로 도주했고, 방덕도 그를 따라 장로의 휘하로 들어갔습니다.
214
214년, 마초는 장로를 떠나 촉의 유비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방덕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한중에 남아 마초와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결정은 그의 충성심과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15
[조조에게 귀순, 새로운 충성을 맹세하다]
조조가 한중을 정복하자, 방덕은 조조에게 귀순했습니다. 조조는 그의 용맹을 익히 들었기에 입의장군과 관문정후, 그리고 식읍 300호를 하사하며 크게 중용했습니다.
215년, 조조가 한중을 정복하자 방덕은 조조에게 귀순하기로 결심합니다. 조조는 방덕의 뛰어난 용맹을 이미 전해 들었던 터라, 그를 입의장군에 임명하고 관문정후의 작위와 함께 300호의 식읍을 하사하며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로써 방덕은 조조 휘하의 맹장으로 새롭게 활약하게 됩니다.
218
218년, 남양군 완현에서 후음과 위개가 반란을 일으키자, 방덕은 조인과 함께 토벌군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이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며 조조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19
219년, 후음과 위개의 반란을 처단한 방덕은 곧바로 번성으로 이동하여 관우를 막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사촌 형이 촉나라에 있었기에 의심하는 장수들도 있었지만, 방덕은 목숨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하며 전장에 나섰습니다. 이 전투는 그의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싸움이 될 것이었습니다.
[관우에게 일격을 가하다! '백마장군'의 위용]
번성 전투에서 관우와 직접 맞붙어 그의 이마에 화살을 명중시키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의 백마 덕분에 '백마장군'이라 불리며 관우군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219년 번성 전투 중, 방덕은 국가로부터 받은 은혜를 목숨 바쳐 갚겠다며 늘 소리쳤습니다. 그는 관우와 몸소 겨뤄 그의 이마에 화살을 명중시키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때 그가 백마를 타고 다녔기에 관우군에서는 그를 '백마장군'이라 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그의 용맹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수몰 위기 속에서도 빛난 불굴의 충성심]
한수가 범람하여 부대가 수몰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방덕은 항복하려는 병사들을 베어버리며 끝까지 결사 항전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번성 북쪽에 주둔하고 있던 방덕의 부대는 십여 일 계속된 비에 한수가 범람하여 물바다가 되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병사들과 함께 둑에 올라 물을 피했지만, 관우군이 큰 배를 타고 닥쳐와 사방에서 화살을 쏘아댔습니다. 방덕은 응사하며 빗나가는 화살이 없었지만, 동형과 동초 등 항복하려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며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는 "훌륭한 장수는 죽음을 겁내 구차하게 피하지 않으며 열사는 절개를 꺾어 목숨을 구하지 않는다.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다."라고 말하며 투지를 불태웠습니다.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마지막까지 빛난 충절]
치열한 전투 끝에 관우에게 붙잡혔으나,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적의 장수는 되지 않는다!"고 외치며 회유를 거부하고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여 자신의 충절을 지켰습니다.
물이 불어나고 장병들이 거의 투항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방덕은 작은 배로 조인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거친 물살에 배가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결국 관우에게 붙잡힌 그는 "경의 형이 한중에 있소. 내 경을 장수로 삼게 하려 했는데 왜 일찍 항복하지 않았소?"라는 관우의 회유에 꿇지 않고 꼿꼿이 선 채로 "애송이야! 위왕 조조는 백만 명을 거느리고 그 위엄이 천하에 진동하는데 용렬한 재주뿐인 유비가 어떻게 대적하겠느냐!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적의 장수는 되지 않는다!"고 욕하며 의연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조조마저 눈물 흘리게 할 정도로 비장했습니다.
220
[조비에게 '장후' 시호를 받다]
조조의 뒤를 이은 조비가 방덕에게 '장후'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아들 네 명을 관내후에 봉하며 충절을 기렸습니다.
220년, 위나라의 왕위를 이은 조비는 방덕의 뛰어난 충절과 용맹을 기리며 '장후(壯侯)'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 방회 등 네 명을 관내후에 봉하고 식읍 100호를 붙여주며 그의 가문에 대한 예우를 다했습니다. 조비는 "옛날에 선진과 왕촉이 자신을 희생하며 지조를 지킨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방덕은 역경을 딛고 명성을 떨쳤으며 그 절의까지 드높였다"라고 평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