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시거
밥 시거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출신의 전설적인 록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허스키하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를 통해 '하트랜드 록' 장르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0년대 디트로이트 지역 밴드 활동을 시작으로 1970년대 '실버 불릿 밴드'와 함께 전성기를 누렸으며, 'Night Moves', 'Turn the Page', 'Against the Wind'와 같은 수많은 클래식 록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그는 60년이 넘는 경력 동안 전 세계적으로 7,5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는 등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본 연혁은 그의 유년 시절부터 음악적 투쟁기, 전성기의 영광, 그리고 2019년 고별 투어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여정을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연표
1945
[밥 시거 출생]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헨리 포드 병원에서 로버트 클락 세이거(Robert Clark Seg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밥 시거는 포드 자동차 회사의 의료 기술자였던 스튜어트 세이거와 어머니 샬롯 세이거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음악가이기도 했기에, 밥 시거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적 환경에 노출되며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잦은 불화와 다툼을 목격하며 성장했으며, 이는 그의 초기 정서 형성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50
[미시간주 앤아버로 이주]
밥 시거가 5세가 되던 해에 그의 가족은 디트로이트를 떠나 인근의 앤아버(Ann Arbor)로 이사했습니다.
앤아버는 그가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곳으로, 훗날 그의 음악적 기반이 되는 미시간 지역 정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형 조지 세이거와 함께 성장하며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앤아버에서의 생활은 그가 지역 음악 씬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그의 사회적 배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1956
[아버지의 가출과 가정의 위기]
밥 시거가 10살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던 아버지가 떠나자 남겨진 가족들은 기존의 안락한 중산층 지위를 잃고 경제적인 고통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는 그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으며, 어머니와 함께 힘겨운 생활고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 시기의 가난과 투쟁의 경험은 훗날 그의 노래 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노동 계급의 정서와 블루칼라 테마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61
[첫 밴드 '데시벨(The Decibels)' 결성]
밥 시거는 앤아버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3인조 밴드인 데시벨을 결성하며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밴드에서 그는 기타와 피아노, 키보드를 연주하며 리드 보컬을 맡아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밴드 멤버들과 함께 델 샤논의 스튜디오에서 'The Lonely One'이라는 자작곡 데모를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앤아버 지역 라디오에서 한 번 방송되었는데, 이는 밥 시거의 음악이 처음으로 전파를 탄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63
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는 육상 선수로 활동하며 운동에도 소질을 보였던 다재다능한 학생이었습니다. 졸업을 전후하여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갔으며, 지역 밴드 씬에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업을 마친 그는 대학 진학보다는 본격적으로 프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위한 기반을 닦는 데 집중했습니다.
1965
[더그 브라운 앤 더 오멘스(Doug Brown & The Omens) 합류]
더욱 세련된 밴드였던 더 오멘스에 합류하여 리듬 앤 블루스 넘버들을 부르며 실력을 키웠습니다.
이 밴드 활동을 통해 그는 자신의 매니저가 될 에드워드 '펀치' 앤드루스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밴드의 리드 보컬인 더그 브라운과 함께 'Ballad of the Yellow Beret'라는 패러디 곡을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저작권 문제와 소송 위협으로 인해 발매 직후 회수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습니다.
1966
[밥 시거 앤 더 라스트 허드(The Last Heard) 결성 및 지역적 성공]
자신의 밴드인 더 라스트 허드를 결성하고 싱글 'East Side Story'를 발표하며 지역적인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East Side Story'는 디트로이트 지역에서만 5만 장 이상이 팔리며 큰 히트를 기록했고, 대형 레이블의 관심을 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카메오-파크웨이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여러 장의 싱글을 발표하며 활동 폭을 넓혔습니다. 이후 'Heavy Music' (1967)과 같은 곡들이 지역 차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1968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와 계약]
메이저 레이블인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며 전국적인 무대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모타운 레코드에서도 계약 제의가 왔으나, 그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캐피톨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거절했습니다. 레이블 측의 요청에 따라 밴드 이름을 '밥 시거 시스템(The Bob Seger System)'으로 변경하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계약은 그가 미시간 지역의 로컬 가수를 넘어 전국적인 아티스트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르네 안드리에티(Renee Andrietti)와 첫 번째 결혼]
밥 시거는 1968년 말 르네 안드리에티와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음악 활동으로 바쁜 시기에 이루어졌으나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듬해에 이혼으로 마무리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후 그는 한동안 음악 작업과 투어 활동에 더욱 매진하며 개인적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1969
[첫 전국구 히트곡 'Ramblin' Gamblin' Man' 발표]
밴드 밥 시거 시스템의 이름으로 발표한 'Ramblin' Gamblin' Man'이 빌보드 차트 17위에 오르며 첫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같은 제목의 앨범이 제작되었고, 밥 시거는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훗날 이글스의 멤버가 되는 글렌 프레이가 이 곡의 백보컬과 기타로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후 후속 앨범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면서 그는 잠시 음악계를 떠나 대학에 진학하려는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1971
[솔로 앨범 'Brand New Morning' 발표 및 부진]
밴드 해체 후 올 어쿠스틱 솔로 앨범인 'Brand New Morning'을 발표했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이 앨범은 캐피톨 레코드와의 계약이 잠시 종료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밥 시거에게는 음악적 위기의 시기였습니다. 그는 다시 밴드의 중요성을 깨닫고 새로운 동료들을 찾아 나서며 재기를 꿈꿨습니다. 이후 펀치 앤드루스가 설립한 팔라디움 레코드에서 'Smokin' O.P.'s' (1972) 등을 발표하며 다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72
[잔 딘스데일(Jan Dinsdale)과 장기 연애 시작]
밥 시거는 1972년부터 잔 딘스데일과 진지한 관계를 시작하여 약 11년간 동거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잔 딘스데일은 그의 가장 힘든 시기와 전성기 초반을 함께한 동반자로, 그의 음악 활동에 큰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83년까지 이어졌으며, 이 기간 동안 밥 시거는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관계는 그가 안정적인 사생활을 바탕으로 창작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1973
[앨범 'Back in '72' 발표 및 'Turn the Page' 수록]
머슬 숄즈 리듬 섹션과 협업하여 제작한 앨범 'Back in '72'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밥 시거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이자 투어 생활의 고단함을 노래한 'Turn the Page'의 스튜디오 버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밴 모리슨의 노래를 커버하거나 씬 리지가 리메이크한 'Rosalie' 등이 포함되어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비록 앨범 자체는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 못했지만, 훗날 그의 라이브 무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레퍼토리들을 남겼습니다.
1974
[실버 불릿 밴드(The Silver Bullet Band) 결성]
밥 시거는 자신의 영원한 파트너가 될 실버 불릿 밴드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전성기를 준비했습니다.
드류 애보트, 크리스 캠벨, 알토 리드 등의 멤버로 구성된 이 밴드는 밥 시거 특유의 역동적인 라이브 사운드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밴드와 함께 미시간 전역을 돌며 수백 차례의 공연을 소화하며 전설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를 다듬어 나갔습니다. 이 밴드의 결성은 밥 시거가 로컬 스타에서 전 세계적인 록 아이콘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76
[라이브 앨범 'Live Bullet'의 폭발적 성공]
디트로이트 코보 홀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Live Bullet' 앨범을 발표하며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 무려 168주 동안 머무는 기염을 토하며 라이브 앨범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특히 디트로이트 지역에서는 말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밥 시거를 지역 영웅으로 등극시켰습니다. 'Turn the Page'의 라이브 버전이 라디오에서 큰 인기를 끌며 앨범의 흥행을 견인했습니다.
[앨범 'Night Moves' 발표 및 슈퍼스타 등극]
스튜디오 앨범 'Night Moves'가 평단과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동명의 타이틀곡 'Night Moves'는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올랐으며, 그의 서정적인 작곡 능력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캐피톨 레코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멀티 플래티넘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Mainstreet'과 같은 곡들도 큰 인기를 끌며 밥 시거 특유의 향수 어린 록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1978
[앨범 'Stranger in Town' 발표]
전작의 성공을 이어가는 명반 'Stranger in Town'을 발표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Still the Same', 'Hollywood Nights', 'Old Time Rock and Roll' 등 라디오 시대를 상징하는 수많은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Old Time Rock and Roll'은 훗날 영화 '위험한 비즈니스'에 삽입되어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6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그의 커리어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79
[이글스의 히트곡 'Heartache Tonight' 공동 작곡]
친구인 글렌 프레이, 돈 헨리, J.D. 사우더와 함께 이글스의 1위 곡 'Heartache Tonight'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밥 시거는 작곡가로서의 역량 또한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글렌 프레이와의 오랜 우정은 이 곡을 통해 음악적 결실을 맺었으며,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앨범 작업 외에도 동료 아티스트들과 협력하며 70년대 록 씬의 중심에서 활약했습니다.
1980
[앨범 'Against the Wind'로 빌보드 1위 달성]
앨범 'Against the Wind'가 빌보드 200 차트에서 6주 동안 1위를 차지하며 상업적 정점에 올랐습니다.
이 앨범은 이글스의 'The Long Run'을 밀어내고 1위에 올랐으며, 그래미 어워드에서 두 개의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타이틀곡 'Against the Wind'와 'Fire Lake' 등이 싱글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밥 시거는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록 스타 중 한 명으로 공인받았습니다.
1981
[라이브 앨범 'Nine Tonight' 발표]
또 다른 전설적인 라이브 실황을 담은 'Nine Tonight'을 발표하며 라이브의 제왕임을 입증했습니다.
디트로이트와 보스턴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이 앨범은 전작 'Live Bullet'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앨범은 차트 3위에 올랐으며, 밥 시거와 실버 불릿 밴드의 최전성기 퍼포먼스를 기록한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대규모 아레나 투어를 이어가며 미국 전역의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1982
[앨범 'The Distance' 발표]
변화하는 음악 트렌드 속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앨범 'The Distance'를 발표했습니다.
로드니 크로웰의 곡을 커버한 'Shame on the Moon'이 차트 2위에 오르며 큰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 제작 기간이 길었으나, 밥 시거 특유의 서사적인 록 사운드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비록 앨범 판매량은 이전보다 조금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1987
[영화 주제가 'Shakedown'으로 빌보드 1위 달성]
영화 '비버리 힐즈 캅 2'의 삽입곡 'Shakedown'이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이 곡은 밥 시거의 커리어 중 유일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원래 글렌 프레이가 부를 예정이었으나 사정상 밥 시거가 맡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곡으로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며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성과를 냈습니다.
[아네트 싱클레어(Annette Sinclair)와 두 번째 결혼]
밥 시거는 배우 아네트 싱클레어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 생활 역시 길지 못했으며, 약 1년 후인 1988년에 이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스타로서의 삶 뒤에 가려진 개인적인 사생활의 부침을 겪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다시 음악 작업에 집중하며 1990년대 초반의 새로운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1991
[앨범 'The Fire Inside' 발표]
9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스튜디오 앨범 'The Fire Inside'를 발표했습니다.
타이틀곡 'The Fire Inside'와 'Real Love' 등이 인기를 끌었으며, 여전히 견고한 팬층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하고 깊이 있는 록 사운드를 탐구했습니다. 앨범은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플래티넘 판매고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1992
[장남 크리스토퍼 콜 세이거(Christopher Cole Seger) 탄생]
훗날 결혼하게 되는 후아니타 니아미에 사이에서 첫 아들인 크리스토퍼 콜을 얻었습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아버지가 된 그는 삶의 우선순위를 가족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탄생은 그에게 음악 외적으로 가장 큰 기쁨이었으며,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음악 활동의 속도를 조절하게 됩니다.
1993
[후아니타 니아미에(Juanita Niamier)와 세 번째 결혼]
밥 시거는 후아니타 니아미에와 세 번째 결혼을 하여 현재까지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시간주 블룸필드 힐스에서 열린 소규모 예식에서 서약을 나누며 부부가 되었습니다. 후아니타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반려자로, 그의 사생활에 큰 안정을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현재까지도 미시간 지역에서 거주하며 화목한 가정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994
['Greatest Hits' 앨범 발표 및 기록적 흥행]
커리어를 총망라한 'Greatest Hits' 앨범을 발표하여 미국 내에서만 1,0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앨범은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으며, 밥 시거의 음악이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신곡 'In Your Time' 등이 수록되어 팬들에게 새로운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그는 투어 활동 없이도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995
[장녀 사만다 차 세이거(Samantha Char Seger) 탄생]
부인 후아니타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이이자 딸인 사만다 차를 얻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밥 시거는 자녀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음악 활동을 대폭 축소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헌신은 그가 10년 가까이 음악적 휴식기를 갖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1997
[음악적 안식기(Sabbatical) 시작]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약 10년간 대규모 투어와 앨범 발표를 중단하는 안식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자녀들의 등하교를 돕고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삶에 집중했습니다. 대중의 시야에서는 잠시 벗어났으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 휴식기는 훗날 그가 2006년에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한 정신적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2001
[요트 대회 우승 및 취미 활동]
음악 활동 중단 기간 중 자신의 요트 'Lightning'호를 타고 포트휴런-맥키낙 요트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는 수준급의 요트 항해사로 활동하며 스포츠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2002년에도 같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실력을 입증하는 등 바다에서의 도전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취미 활동은 그가 음악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2004
[로컨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헌액]
밥 시거는 로컨롤 역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의 전당에 공식 헌액되었습니다.
미시간 출신의 후배 아티스트인 키드 록(Kid Rock)이 헌사 문을 낭독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미시간 주지사는 이 날을 '밥 시거의 날'로 선포하여 그의 수상을 축하했습니다. 이 헌액은 그가 미국 록 음악의 진정한 거장임을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006
[앨범 'Face the Promise'로 성공적 복귀]
11년 만의 신보인 'Face the Promise'를 발표하며 플래티넘 판매고와 함께 성공적으로 복귀했습니다.
이 앨범은 발매 직후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변함없는 가창력과 작곡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진행된 복귀 투어는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팬들이 그의 귀환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증명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노장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2011
[두 번째 '밥 시거의 날' 선포]
미시간 주지사는 밥 세이거의 50년 음악 인생을 기리며 2011년 5월 28일을 다시 한번 '밥 시거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고향인 미시간주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우였습니다. 그는 지역 사회와 팬들에게 꾸준히 음악적 즐거움을 선사한 공로를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이 시기 그는 컴필레이션 앨범 'Ultimate Hits'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투어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2012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Songwriters Hall of Fame) 헌액]
밥 시거는 뛰어난 작사·작곡 능력을 인정받아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수많은 클래식 명곡들을 만들어낸 창작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의 서사적인 가사와 멜로디는 미국 대중음악의 소중한 유산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 준 팬들과 동료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2014
[앨범 'Ride Out' 발표 및 빌보드 상위권 진입]
17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Ride Out'을 발표하여 빌보드 200 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차트 최상위권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앨범은 평단으로부터 밥 시거 특유의 뿌리 깊은 록 사운드를 잘 유지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후 대규모 투어를 통해 여전히 파워풀한 라이브 퍼포먼스를 팬들에게 선보였습니다.
2015
[빌보드 'Legend of Live' 상 수상]
수십 년간 이어진 전설적인 라이브 공연의 공로를 인정받아 빌보드로부터 'Legend of Live'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라이브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시상식은 뉴욕 루즈벨트 호텔에서 열렸으며, 그의 라이브 경력을 총망라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 상은 그가 단순히 음반 판매뿐만 아니라 실제 무대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예우였습니다.
2017
[앨범 'I Knew You When' 발표 및 글렌 프레이 추모]
친구 글렌 프레이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앨범 'I Knew You When'을 발표했습니다.
2016년에 세상을 떠난 오랜 친구 글렌 프레이에게 앨범을 헌정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차트 상위권에 올랐으며, 그의 커리어 후반기를 장식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글렌 프레이와의 추억이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했는지 회고했습니다.
2018
[고별 투어 'Travelin' Man' 시작]
60년 음악 인생을 마무리하는 공식 고별 투어인 'Travelin' Man: The Farewell Tour'를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도는 이 투어는 매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히트곡들을 팬들과 함께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그는 다시 일어나 투어를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2019
[공식 고별 투어 종료 및 은퇴]
필라델피아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화려했던 60년 음악 인생의 공식 투어를 마쳤습니다.
그는 마지막 무대에서 팬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며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투어 활동을 중단하고 은퇴 상태에 들어갔으나, 그의 음악은 여전히 전 세계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의 은퇴는 한 시대의 록 역사가 마무리되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23
그는 무대에 올라 'Heartache Tonight' 등을 함께 연주하며 팬들에게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정규 활동은 중단했지만, 동료들과의 음악적 유대는 여전함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팬들은 여전히 건강한 그의 모습에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