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동오)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반장(潘璋)은 중국 삼국시대 동오의 명장이자 충신으로, 자는 문규(文珪)입니다. 동군 발간현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술을 좋아하고 거친 성격이었으나, 손권에게 발탁된 이후 수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215년 합비 전투에서 아군의 패주를 막기 위해 도망병을 직접 베어 전선을 안정시킨 일화와 219년 관우를 추격하여 포획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릉 대전에서는 유비의 군대를 격파하며 위기에 빠진 오나라를 구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비록 성격이 탐욕스러워 부유한 부하를 죽여 재산을 빼앗는 등 법을 어기는 일이 잦았으나, 손권은 그의 탁월한 군사적 재능과 공로를 높이 사 죄를 묻지 않고 중용했습니다.
연표
200
반장은 원래 가난했으나 술을 좋아하고 외상으로 술을 마시는 등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손권은 그의 기질을 알아보고 모병 임무를 맡겼으며, 반장이 병사를 모아오자 수백 명의 지휘권을 주었습니다.
210
그는 시장의 관리(시장)를 거쳐 서신현, 건창현 등의 현장을 지냈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곳마다 도적들이 사라지고 상업이 번성하여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15
215.8
[합비 전투와 전선 사수]
합비 전투에서 위나라 장료의 기습을 받아 오나라 군대가 혼란에 빠졌을 때, 반장이 도망치는 병사를 베어 군기를 잡았습니다.당시 진무가 전사하고 서성, 송겸의 군대가 도망치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반장은 말에 올라 도주하는 아군 병사 두 명을 직접 참수하여 나머지 병사들이 다시 돌아와 싸우게 만들었고, 이 공로로 편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219
반장은 임저(臨沮) 지역에 매복하고 있다가 관우가 도망쳐오자 그를 급습했습니다. 반장의 부하 사마(司馬)인 마충(馬忠)이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 도독 조루를 사로잡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220
또한 본래 위나라 땅인 양양의 태수로 임명되었습니다. 비록 명목상의 직함이었으나, 이는 반장이 오나라 군부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222
반장의 부하들은 촉나라의 장수 풍습(馮習)을 죽이고 수많은 적군을 살상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오나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반장은 평북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223
위나라 군대가 부교를 통해 강을 건너며 끊임없이 공격해오자, 반장은 강 상류에서 갈대를 엮어 뗏목을 만들고 불을 붙여 떠내려보냈습니다. 이 화공으로 부교가 불타 위나라 군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29
이는 반장의 오랜 군사적 공로를 치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유한 관리나 병사를 살해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등 횡포를 부려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230
손권은 반장이 가진 맹장으로서의 능력과 과거의 공적을 아껴 그의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이는 반장이 손권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34
그러나 아들 반평 역시 품행이 바르지 못하여 결국 회계로 유배되었고 작위는 박탈되었습니다. 반장의 아내 또한 건업으로 거주지가 옮겨지며 가문은 몰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