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월 (작사가)
반야월은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까지 활동한 대중음악계의 전설적인 작사가이자 가수입니다. 본명 박창오로,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하며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의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이후 반야월이라는 예명으로 수많은 대중가요 노랫말을 창작하며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처녀' 등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들을 탄생시켰습니다. 한국 가요계 3대 보물로 불릴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일제강점기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표
1917
[전설적인 작사가 반야월, 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딛다]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마산부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박창오이며, 훗날 가수 '진방남'과 작사가 '반야월'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됩니다.
1917년 8월 1일, 경상남도 마산부(현 창원시 마산)에서 박창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충북 청주에서 양복일을 배우며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불렸습니다.
1937
[가수 진방남의 화려한 등장과 전 국민을 울린 명곡의 탄생]
청주 지역 콩쿠르를 휩쓴 뒤 전국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불효자는 웁니다', '잘 있거라 항구야', '마상일기' 등을 발표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청주에서 양복일을 하던 중,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지역 콩쿠르를 석권하고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 주최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1940년에 발표한 '불효자는 웁니다', '잘 있거라 항구야', '마상일기' 등이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1942년에는 '꽃마차'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940
[논란의 그림자: 일제 군국가요에 이름을 올리다]
일제강점기 말 '소년초', '조국의 아들' 등을 가창하고 '결전 태평양', '일억 총 진군' 등 군국가요를 작사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가수로 〈소년초〉, 〈조국의 아들〉 등을 불렀으며 〈결전 태평양〉, 〈일억 총 진군〉과 같은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했습니다. 가수로 〈소년초〉, 〈조국의 아들〉을 불렀으며 〈결전 태평양〉, 〈일억 총 진군〉 등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했습니다. 이 경력으로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1948
[작사가 반야월로 변신, 한국인의 애환을 노래하다]
'반야월'이라는 예명으로 작사가 활동을 시작하며 '울고 넘는 박달재'를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한국 대중가요의 고전으로 자리 잡으며 그의 작사가로서의 재능을 만방에 알렸습니다.
가수로 활동하던 '진방남'은 해방 후 '반야월'이라는 작사가 예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1948년,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명곡 '울고 넘는 박달재'를 작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는 그의 작사가로서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56
[전쟁의 상흔과 아픔을 노래한 시대의 목소리]
한국 전쟁 직후의 아픔을 담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비롯해 '산유화' 등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중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또한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작가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습니다.
1956년, 한국 전쟁의 비극과 실향민의 아픔을 절절히 담아낸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작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같은 해 '산유화'도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에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설립에도 적극 참여하며 한국 가요계 발전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57년 '산장의 여인', '열아홉 순정', 1958년 '무너진 사랑탑', '만리포 사랑' 등 수많은 명곡을 연이어 발표했습니다.
1991
[한국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 인정, 최고 훈장 수훈]
한국 대중가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사가로서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국민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를 작사하고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작사가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 가요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1991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습니다.
2008
이에 대해 그는 2010년 6월 "무슨 말을 해도 핑계다. 있었던 일은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며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2012
[한국 가요계의 거성, 영원한 안식에 들다]
오랜 세월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반야월 작사가가 향년 96세의 나이로 별세하며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2012년 3월 26일, 노환으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96세의 나이로, 한국 대중가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이 영원히 잠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