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순
연표
1956
1975
[연세대학교 입학 및 야구부 활동 시작]
연세대학교 법학과에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하여 야구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야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부산시 동광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박철순은 경남중학교와 배명고등학교를 거쳐, 1975년 1월 연세대학교 법학과에 체육 특기생으로 합격하며 연세대학교 야구부 소속이 되어 본격적으로 투수로서의 역량을 키웠습니다.
1978
[하를럼 야구 대회에서 쿠바전 승리]
네덜란드에서 열린 하를럼 야구 대회에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선발되어, 오스트레일리아와 강호 쿠바를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두며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1978년 7월 4일 세계 야구 파견 대표팀으로 선발된 박철순은 같은 해 8월 17일 호주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승리했고, 8월 21일에는 강호 쿠바와의 경기에서 구원으로 등판하여 승리를 기록하며 국제적인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1979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 계약 체결]
제2회 한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대한민국 야구 선수로는 두 번째로 미국 마이너리그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한국 야구 역사에 큰 이정표가 된 사건입니다.
1979년 참가한 한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박철순은 메이저리그 구단인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마이너리그에 진출하는 영광을 안았으며, 트리플 A 진출을 약속받을 정도로 유망한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
[최동원 선수 구타 사건 발생]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최동원 선수를 구타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당시 야구계의 악습이 만연했던 시기였음에도 도를 넘은 행위로 받아들여져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연세대학교 재학 당시 얼차려 명목으로 후배인 최동원 선수를 구타하여 병원 신세를 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최동원 선수가 학교와 갈등을 빚었고,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며 큰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박철순은 이로 인해 사실상 연세대에서 쫓겨나 미국 진출을 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구타 시점은 불확실하나, 1979년 4월 6일자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1981
[마이너리그 텍사스 리그 최다승 3위 달성]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스톡턴 포츠(싱글 A+)와 엘패소 디아블로스(더블 A) 소속으로 활약하며 텍사스 리그 최다승 부문 3위를 기록, 투수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박철순은 1980년부터 1981년까지 밀워키 브루어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뛰며 실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특히 1981년에는 싱글 A+ 스톡턴 포츠와 더블 A 엘패소 디아블로스에서 활약하며 텍사스 리그에서 최다승 부문 3위에 오르는 등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1982
[KBO 리그 OB 베어스 입단]
KBO 리그 출범 소식에 귀국하여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 최고 대우인 계약금 2,000만 원, 연봉 2,400만 원으로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82년 KBO 리그의 출범 소식을 듣고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활약 중이던 박철순은 귀국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서울 드래프트 1순위로 OB 베어스에 입단하며 당시 최고의 대우를 받아 한국 프로야구 원년의 핵심 선수로 주목받았습니다.
[KBO 리그 원년 MVP 및 팀 우승 견인]
KBO 리그 원년 시즌 동안 24승 4패 7세이브, 평균 자책점 1.84를 기록하며 다승왕, 승률왕, 평균 자책점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정규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1982년 KBO 리그 원년, 박철순은 '체인지업'과 '포크볼' 등 당시 생소한 구질을 앞세워 24승 4패 7세이브, 평균 자책점 1.84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다승, 승률, 평균 자책 부문 모두 1위를 석권했으며, OB 베어스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어 시즌 MVP를 수상하며 한국 프로야구 원년의 영웅으로 등극했습니다.
[KBO 리그 데뷔전 승리]
KBO 리그 개막전 다음 날, 동대문야구장에서 MBC 청룡을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1982년 KBO 리그 개막 경기 다음 날인 3월 28일, 박철순은 OB 베어스의 선발 투수로 나서 MBC 청룡을 상대했습니다. 그는 5회까지 단 2실점만을 허용하며 팀의 9대2 대승에 기여, KBO 리그 첫 승리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단일 시즌 22연승 세계 신기록 달성]
4월 10일 해태전 구원승부터 9월 18일 롯데전 완투승까지 KBO 리그 단일 시즌 22연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 기록은 한·미·일 프로야구를 통틀어 단일 시즌 최다 연승으로 남아있습니다.
1982년 시즌 동안 박철순은 4월 10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구원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9월 18일 롯데 자이언츠전 완투승까지 무려 22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기록은 한국, 미국,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그의 압도적인 기량을 증명했습니다.
1988
[CF 촬영 중 아킬레스건 부상]
CF 촬영 도중 과도한 점프로 인해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이는 그의 선수 생활에 큰 위기로 작용했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1988년, 박철순은 CF 촬영 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미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시달리던 그에게 아킬레스건 부상은 선수 생활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악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재활과 노력으로 다시 마운드에 서며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1996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 후 현역 은퇴]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을 세우며 현역 생활의 마지막 경기를 장식했습니다. 이 경기를 끝으로 13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96년 9월 4일, 박철순은 대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40세 5개월 23일의 나이로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 경기는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투구였으며, 시즌을 마친 후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불사조'의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1997
[은퇴식 마운드 키스로 화제]
은퇴식에서 마운드에 입맞춤하는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는 그의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회자됩니다.
1997년 OB 베어스의 은퇴식에서 박철순은 마운드에 직접 입맞춤을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 장면은 야구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사랑과 지난 선수 생활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것으로, 많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입건]
술을 마시고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어 100일간의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야구계와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1997년 7월 13일, 박철순은 술에 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로 다음 날 강남경찰서로부터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100일간의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당시 OB 베어스 투수코치였던 그의 명예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1998
[OB 베어스 코치직 사임 및 야구계 이탈]
구단과의 마찰로 OB 베어스 투수 코치직에서 사임하고 야구계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이는 그의 야구 인생에 있어 중요한 단절이었습니다.
1998년 7월 15일, 2군 훈련 도중 후배 선수 구타에 대한 구단의 문책에 반발하는 등 구단과의 지속적인 마찰 끝에 OB 베어스 투수 코치직을 사임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정들었던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게 되었고, 잠시 메이저리그 해설을 맡기도 했으나 이후 야구 관련 활동에서 멀어졌습니다.
2002
[등번호 21번 영구 결번 지정]
두산 베어스(옛 OB 베어스)는 박철순의 등번호였던 2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이는 구단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그의 뛰어난 업적과 공로를 기리는 최고의 예우였습니다.
2002년 4월 5일, 두산 베어스는 박철순이 현역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 21번을 구단의 첫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이는 KBO 리그 원년 22연승, MVP 수상, 그리고 '불사조'라는 별명처럼 끊임없이 재기에 성공하며 팀과 리그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이며, 선수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