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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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1942년)
정치인, 국회의원, 장관, 기업인 + 카테고리

대한민국의 5선 국회의원이자 기업인 출신 정치인. 김대중 정부 핵심 인물로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역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을 지내며 폭넓은 경력과 협상 능력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사의 주요 순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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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2

[박지원 출생]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목포에서 보내고 문태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태어나 지난날 한때 선친을 따라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 후 1961년 목포에서 문태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1970

[럭키금성상사 입사]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하여 기업가로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하여 근무했습니다.

1972

[동서양행 뉴욕지사장 임명]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에 임명되며 미국 사업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2년 11월 미국에 건너가 주식회사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에 임명되었고, 이후 사업을 크게 성공시켰습니다. 이 기간에 정치적 망명 인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활비를 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9

[수출유공 국무총리 표창]

미국 교포 자격으로 수출 유공자로 지정되어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미국 교포 자격으로서, 수출유공자로 지정되어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1984

[김대중 인권문제연구소 후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설립한 인권문제연구소의 후견인이 되어,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설립한 인권문제연구소 등의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1987

[김대중 정계 복귀 후 귀국]

6월 항쟁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되고 정계에 복귀하자, 미국 영주권을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되고 정계에 복귀하자, 미국 영주권을 정리하고 귀국하였습니다.

1992

[14대 국회의원 당선]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제14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1995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을 맡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를 대변했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을 거쳐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김문수에게 패하였습니다.

1997

[국민회의 총재특보 및 인수위원]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에 선출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김대중 정부 출범에 기여했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에 선출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98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 겸 대변인]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대통령의 입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1997년-1998년)을 거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1998년-1999년)을 지냈습니다.

1999

[제36대 문화관광부 장관 취임]

제36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문화 및 관광 정책을 이끌었습니다.

1999년 5월 23일 제36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2000년 9월 19일까지 역임했습니다. 1999년 6월 4일 장면 총리 서거 33주년 기념일에 김수환 추기경에게 장면 전 총리의 포천묘소를 국립묘지로 이장할 것을 제의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1999년 8월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산업진흥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2001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맡아 국정 운영의 핵심 정책을 기획하고 조율했습니다.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냈습니다.

2002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 취임]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취임하며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국정을 보좌했습니다.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취임했습니다.

2003

[대북송금 의혹으로 구속]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직전 불법 대북송금 의혹이 제기되어 특검팀에 의해 구속되며 정치적 시련을 겪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직전 불법 대북송금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송두환 특검팀에 의해 2003년 6월에 구속되었습니다.

2006

[대북송금 관련 징역 3년 선고]

대북 불법송금 관여(외국환거래법 위반, 직권남용)와 대기업 자금 수수(알선수재죄)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2006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대북 불법송금 관여(외국환거래법 위반, 직권남용)와 대기업 자금 1억 원 수수(알선수재죄)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7

[특별사면으로 형 집행 면제]

특별사면 조치로 형 집행이 면제되며 출소, 정치 활동 재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특별사면조치로 형 집행이 면제되었습니다.

[김대중 평화센터 비서실장]

석방 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에 선임되며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석방 이후 2007년 3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김대중의 비서실 실장에 선임되었습니다.

[특별 복권 조치]

노무현 정부 하에서 특별 복권되어 정치적 활동의 제약을 해소했습니다.

2007년 12월 복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복권을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복권을 시켜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2008

[18대 국회의원 당선 (재선)]

제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전남 목포시에 출마해 당선되며 12년 만에 원내로 복귀했습니다.

제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전남 목포시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12년만에 원내로 복귀하게 됩니다.

[민주당 복당]

국회의원 당선 후 민주당으로 복당하며 당내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2008년 8월 13일 민주당으로 복당하였습니다. 이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습니다.

2009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아 당의 정책 방향을 이끌었습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습니다.

[목포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령했습니다.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령했습니다.

2010

[민주당 원내대표 및 비대위원장]

민주당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며 당의 주요 현안을 책임지고 이끌었습니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습니다. 2010년 12월 한나라당의 2011년 예산안 강행 처리 이후 '국회를 짓밟고 바로 다음날 개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민주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내 친박(친박근혜)계도 무시하는 것으로, 정치적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개헌을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2012

[19대 국회의원 당선 (3선)]

제19대 총선에서 전남 목포시에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목포시에 당선되었습니다.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및 비대위원장]

민주통합당의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하며 당의 핵심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습니다.

2014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출마]

"강한 야당을 만들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지금은 특정 계파(친노)의 당으로 전락하느냐, 우리 모두가 주인인 당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이라며 “강한 야당을 만들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하며, 공식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였습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 문재인이 당 대표에 당선되었습니다.

2016

[20대 국회의원 당선 (4선)]

국민의당 후보로 목포시에 당선되며 호남 지역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이끌었고 4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안철수를 중심으로 동교동계 출신의 정치인이 합류하여 창당한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28석 가운데 23석을 차지하며 석권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국민의당 원내대표]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맡으며 야당의 주요 리더로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지냈습니다.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며 당의 위기 상황을 수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습니다.

2017

[국민의당 당대표]

국민의당 당대표에 선출되며 당의 전면에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국민의당 당대표를 지냈습니다.

2020

[21대 총선 낙선]

민생당 후보로 21대 총선 목포시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후보에 밀려 낙선하며 방송 패널로 활동했습니다.

민생당 후보로 전남 목포시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후보에 밀려 낙선하면서 방송 패널에 전념하였습니다.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임명]

모교인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에 임명되어 후배들에게 대북관계, 국제정세, 국내 정치 등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모교인 단국대학교 석좌 교수에 임명되면서 “후배 학생들에게 대북관계, 국제 정세, 국내 정치 문제를 강의하겠다. 대학 특강은 많이 했지만 교수는 처음이니 기쁘고 설렌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제35대 국가정보원장 지명]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중 제35대 국가정보원장에 지명되며 다시 한번 고위 공직자로 복귀했습니다.

2020년 7월 2일 오후 MBC TV 2시 뉴스외전 '박지원의 정치 전망대' 생방송에 출연해 진행자의 "다음주에 뵙겠습니다"라는 인사에 "MBC 대단히 감사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등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박지원은 7월 3일 제35대 국가정보원장에 지명되었습니다.

[제35대 국가정보원장 취임]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로 제35대 국가정보원장에 정식으로 취임하며 국정원 개혁과 남북 관계 개선에 역할을 했습니다.

2020년 7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지원의 국정원장 임명을 재가했으며, 7월 29일부터 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2022

[국가정보원장 임기 종료]

제35대 국가정보원장 임기를 마쳤습니다.

제35대 국가정보원장 임기를 2022년 5월 11일에 마쳤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복당 및 일반고문]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고 일반고문에 위촉되며 당내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2022년 12월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고 일반고문에 위촉되었습니다.

2024

[22대 국회의원 당선 (5선)]

제22대 총선에서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에 당선되며 5선 국회의원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에 당선되며 5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비상계엄 국정조사 특위 위원]

제22대 국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22대 국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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