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가수)
연표
1924
[박재홍 출생 및 은행원 활동]
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에는 잠시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박재홍은 1924년 4월 7일 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으며, 청년 시절에는 잠시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경험했습니다.
1947
[오케레코드 신인콩쿨 입상 및 데뷔]
해방 직후 오케레코드 신인 콩쿨에서 입상하며 가요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였고,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7년, 박재홍은 당시 오케레코드가 주최한 신인 콩쿨에서 입상하며 가수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1948
[<눈물의 오리정>, <불사른 일기장> 취입]
옥두옥과 듀엣으로 <눈물의 오리정>을 취입하고, 이어서 <불사른 일기장>도 발표하며 활발한 초기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48년 박재홍은 옥두옥(1927~)과 듀엣으로 <눈물의 오리정>을 취입했으며, 같은 해 <불사른 일기장>도 발표하며 초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49
[서울레코드 전속 및 신곡 발표]
서울레코드 창설과 함께 전속 가수가 되어 <자명고 사랑>, <제물포 아가씨>, <마음의 사랑> 등 여러 곡을 취입했습니다.
1949년 서울레코드가 창설되자 박재홍은 전속 가수로 활동하며 <자명고 사랑>, <제물포 아가씨>, <마음의 사랑> 등을 취입했습니다.
1950
[대표곡 <울고 넘는 박달재> 발표]
반야월이 창설한 '남대문악극단'에서 활약하던 중, 그의 대표곡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국민 애창곡 <울고 넘는 박달재>를 취입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50년, 박재홍은 반야월이 창설한 '남대문악극단'의 단원으로 활약하던 중, 반야월이 작사한 <울고 넘는 박달재>를 고려레코드에서 취입했습니다. 이 곡은 그의 대표곡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국민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6.25 전쟁 발발과 피난]
<울고 넘는 박달재> 취입 한 달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여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울고 넘는 박달재> 취입 약 한 달 만에 6.25 전쟁이 터졌고, 박재홍은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1951
[피난지 부산에서의 활발한 활동]
피난지 부산에서 쇼무대 활동을 이어가며 미도파레코드와 서라벌레코드에 전속되어 <경상도 아가씨>, <비 내리는 삼랑진> 등 여러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6.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한 박재홍은 그곳에서 쇼무대에 서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시기에 부산의 미도파레코드와 대구의 서라벌레코드에 전속되어 <경상도 아가씨>, <비 내리는 삼랑진>, <번지없는 항구> 등을 취입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1954
[도미도레코드 전속 및 히트곡 취입]
부산의 도미도레코드에 전속되어 <물방아 도는 내력>, <향수>, <슬픈 성벽> 등의 명곡을 취입하며 꾸준한 인기를 유지했습니다.
1954년 말, 박재홍은 부산의 도미도레코드에 전속되어 <물방아 도는 내력>, <향수>, <슬픈 성벽> 등 여러 곡을 취입하며 변함없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56
[신신 및 아세아레코드 전속 활동]
1956년경부터 신신레코드에서 활동했으며, 1959년 이후에는 아세아레코드 소속으로 꾸준히 곡을 발표하며 1960년대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습니다.
1956년경부터 박재홍은 신신레코드 전속으로 활동했으며, 1959년 이후에는 아세아레코드에서 활약하며 1960년대에도 꾸준히 곡을 취입했습니다.
1960
[오아시스쇼단 창설 및 단장 역임]
1960년대 초, 직접 오아시스쇼단을 창설하고 단장을 역임하며 가수 활동 외에 기획 및 공연 연출에도 참여했습니다.
1960년대 초, 박재홍은 직접 오아시스쇼단을 창설하여 단장을 역임하며 음악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1970
[극장 무대와 TV 방송 활동]
1970년대부터는 주로 극장 무대에서 활동했고, 1980년대 TV 시대가 열리면서 원로 가수로서 방송에 활발히 출연하며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박재홍은 주로 극장 무대에서 활동했으며, 1980년대 본격적인 TV쇼 시대가 열리면서 원로 가수로서 방송 출연도 활발히 했습니다.
1989
[지병으로 인한 타계]
오랜 지병으로 인해 66세의 나이로 타계하여 한국 가요계에 큰 아쉬움을 남기며 영원한 별이 되었습니다.
1989년 3월 21일, 박재홍은 오랜 지병으로 인하여 향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