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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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국회의원 + 카테고리

박재호는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상도동계 서석재 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비서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노무현 캠프에 합류하며 친노 인사로 분류되었고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여러 번의 낙선 끝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지역구 교통 인프라 개선에 힘썼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하며 영남권에서 중요한 민주당 인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0년 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 게시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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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9

[박재호 출생]

부산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성장하다.

1959년 2월 13일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연산동에서 태어났다.

1986

[신한민주당 서석재 의원 비서로 정계 입문]

상도동계 서석재 국회의원의 비서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다.

1986년 신한민주당 서석재 국회의원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며 상도동계 인맥을 형성했다.

1987

[민주쟁취 선거혁명추진 부산학생연합회 회장 활동]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쟁취 선거혁명추진 부산학생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1987년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민주쟁취 선거혁명추진 부산학생연합회 회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

1993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 역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으로 활동하며 국정 운영에 참여하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을 역임하며 정부 요직을 경험했다.

1999

[노무현 캠프 합류와 친노 전환]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 선거캠프에 합류하며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적하고 친노 인사로 분류되기 시작하다.

김영삼 대통령 퇴임 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1999년 귀국한 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노무현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며 3당 합당 후 9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적하여 친노 인사로 분류되었다.

2002

[노무현 후보 조직 특보 활동]

제16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노무현 후보의 조직 특별보좌역으로 활약하며 당선에 기여하다.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노무현 후보의 조직 특별보좌역으로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2003

[대통령 정무비서관 및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활동]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된 후 사임하고,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 및 이사장을 역임하며 공공기관 운영에 참여하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반년만에 사임하고, 2004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인 2005년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2004

[제17대 총선 첫 출마 및 낙선]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남구 을에 출마하여 첫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으나, 탄핵 역풍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낙선하다.

2004년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남구 을에 출마해 첫 선거를 치렀다. 같은 상도동계 출신인 한나라당 김무성 후보에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 역풍에 힘입어 크게 선전했으나 9.77% 차이로 석패하며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008

[제18대 총선 무소속 출마 및 낙선]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3위에 그치며 낙선하고 횟집을 운영하다.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16.5% 득표율을 기록하며 3위에 그쳤고 선거 비용 전액 보전에만 성공했다. 낙선 후 횟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0

[국민참여당 창당 주도]

이재정, 천호선 등과 더불어 국민참여당 창당을 주도하다.

18대 총선 낙선 후 횟집을 운영하다가 이재정, 천호선 등과 더불어 국민참여당 창당을 주도했다.

2012

[제19대 총선 재출마 및 낙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서용교 후보에게 밀려 다시 낙선하다.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서용교 후보와 맞붙어 7.92% 차이로 밀려 낙선하였다.

2015

[배우자 사별]

배우자와 사별하며 개인적인 아픔을 겪다.

2015년에 아내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2016

[오륙도선 및 우암선 유치 주도]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서 오륙도선 유치 및 우암선 계획 진전 등 지역구 교통대란 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서 신규아파트 이주와 오륙도 관광지화로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용호동 지역에 오륙도선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국방부와 포럼을 열어 우암선을 활용한 부산 도시철도 우암선 계획도 진전시켰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네 번째 국회의원 선거 도전 끝에 부산 남구 을 지역에서 서용교 후보를 꺾고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오랜 정치적 염원을 이루다.

2016년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선거구에 4번째로 출마해 새누리당 서용교 후보와 재대결하여 4.66% 차 신승을 거두며 4번째 도전 끝에 당선되었다.

2020

[제21대 국회의원 재선 성공]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언주 후보와의 접전 끝에 재선에 성공하며 영남권 비낙동강 벨트에서 유이하게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다.

2020년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남구 을에 단수공천을 받고 미래통합당 이언주 후보와 접전을 벌인 끝에 득표율 1.76% 차로 이언주 후보를 꺾고 지역구를 수성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울산광역시 북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상헌 의원과 더불어 유이하게 영남권 중 낙동강 벨트 이외 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한 민주 정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페이스북 성착취 동영상 게시 논란]

페이스북에 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을 게시하여 논란이 일자 보좌진의 실수라고 해명하다.

2020년 9월 6일 박재호 의원의 페이스북에 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이 게시되어 큰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해당 영상에는 말레이시아어로 '소녀는 계속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듣지 못했다'는 글도 쓰여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박재호 의원 측은 보좌진의 실수라고 해명하며 영상을 삭제했다.

2024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남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24년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남구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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