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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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야구 코치, 야구 감독 + 카테고리

박경완은 KBO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로, 국내 최초 4연타석 홈런, 포수 최초 40홈런-20-20클럽 가입 등 압도적인 공격력을 선보였다. 수비에서도 '포도대장'으로 불릴 만큼 뛰어났고,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국가대표 금메달을 이끌며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았다. 은퇴 후에는 코치와 감독 대행을 역임하며 지도자로도 활약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72

[박경완 탄생]

박경완 선수가 전북 군산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72년 7월 11일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0

[프로 입단]

원광대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1990년 12월 고졸 신고선수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습니다.

1991

[KBO 리그 첫 출장]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첫 출장을 기록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1991년 4월 14일, 전주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1992

[프로 첫 홈런]

OB 베어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1992년 5월 26일 OB 베어스전에서 상대 투수 장호연을 상대로 프로 첫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1994

[첫 3연타석 홈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개인 통산 첫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1994년 7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프로 생활 첫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1996

['포도대장' 별명과 첫 골든 글러브]

놀라운 도루 저지율 4할 7푼 5리를 기록하며 '포도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생애 첫 KBO 골든 글러브 포수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1996년 4할 7푼 5리라는 높은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며 상대팀의 도루를 막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포도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같은 해 KBO 골든 글러브 포수 부문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97

[현대 유니콘스 이적]

재정난에 빠진 쌍방울 레이더스를 떠나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했습니다.

1997년 11월, 재정난에 처한 쌍방울 레이더스가 이근엽, 김형남 선수 외에 현금 9억원을 받고 박경완 선수를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1998

[현대 유니콘스 한국시리즈 우승 및 골든 글러브]

현대 유니콘스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두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이적 후 1998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주전 포수로 활약했습니다. 같은 해 KBO 골든 글러브 포수 부문을 수상하며 팀 이적 후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1999

[통산 100홈런 달성]

한화 이글스전에서 상대 투수 구대성을 상대로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달성했습니다.

1999년 7월 18일 전주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상대 투수 구대성을 상대로 통산 100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00

[MVP, 홈런왕, 40홈런 달성]

포수로서 압도적인 시즌 40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정규 리그 최우수 선수(MVP)와 홈런왕을 차지했고,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0년 시즌 타율 0.282, 40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40홈런은 포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며, 정규 리그 MVP와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고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해 세 번째 골든 글러브도 수상했습니다.

[국내 최초 4연타석 홈런]

한화 이글스전에서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00년 5월 19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조규수, 오창선, 김경원 투수를 상대로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최초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2001

[포수 최초 20-20클럽 가입]

두산 베어스전에서 포수 최초로 20홈런-20도루를 기록하는 '20-20클럽'에 가입하는 위업을 달성하며 공수 겸장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1년 9월 20일 수원 두산 베어스전에서 포수로서 전례 없는 20홈런-20도루를 달성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20-20클럽에 가입한 포수가 되었습니다.

2002

[SK 와이번스 이적]

FA 계약을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02년 12월, FA 계약을 맺고 SK 와이번스로 이적하며 새로운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03

[통산 200호 홈런]

SK 와이번스로 이적 후 KIA 타이거스전에서 개인 통산 200호 홈런을 달성했습니다.

2003년 6월 18일 문학 KIA 타이거스전에서 상대 투수 김진우를 상대로 통산 200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04

[두 번째 홈런왕]

KBO 리그 홈런왕 타이틀을 다시 한번 차지하며 여전한 장타력을 과시했습니다.

2004년 시즌 34홈런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두 번째 홈런왕에 올랐습니다. 4월 월간 최다 홈런(13개)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06

[역대 포수 최다 홈런 기록 경신]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개인 통산 287호 홈런을 쳐내며 이만수 선수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고 역대 포수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2006년 4월 9일 문학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황두성 투수를 상대로 8회 동점 2점 홈런을 치며 개인 통산 287호 홈런을 기록, 이만수 선수의 포수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룸과 동시에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2007

[SK 와이번스 첫 우승 주역 및 골든 글러브]

SK 와이번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네 번째 KBO 골든 글러브 포수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2007년 SK 와이번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주전 포수로 활약했습니다. 이 해 KBO 골든 글러브 포수 부문을 수상하며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받았습니다.

2009

[WBC 준우승 기여 및 아킬레스건 부상]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 주전 포수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팀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나, 시즌 중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입었습니다.

2009년 아킬레스건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WBC 국가대표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그러나 6월 2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루 전력 질주 중 왼쪽 발목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포수 최초 통산 900타점]

롯데 자이언츠전 만루 홈런으로 역대 8번째이자 포수 최초로 통산 900타점을 달성했습니다.

2009년 4월 2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내며 역대 8번째이자 포수 최초로 통산 900타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0

[부상 투혼, 한국시리즈 우승 및 아시안 게임 금메달]

아킬레스건 부상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투혼을 불태웠습니다.

재활 후 주전 포수로 복귀하여 SK 와이번스의 시즌 1위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승 후에도 부상당한 몸으로 스승 조범현 감독이 이끄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금메달을 획득했고, 귀국 후 오른쪽 발목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으며 투혼을 보여줬습니다.

[포수 최초 통산 300홈런]

LG 트윈스전에서 역대 5번째이자 포수 최초로 통산 300홈런을 달성하며 KBO 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2010년 4월 30일 문학 LG 트윈스전에서 상대 투수 박명환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역대 5번째, 포수로는 최초로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통산 2000경기 출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역대 5번째로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습니다.

2010년 9월 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개인 통산 2000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역대 5번째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13

[위대한 선수 생활 마감, 영구 결번 지정]

오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KBO 리그에서 공식 은퇴했으며, 그의 등번호 '26번'은 SK 와이번스의 첫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2013년 6월 16일 KIA 타이거즈전이 마지막 경기가 되었으며,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한 후 '이젠 지쳤다'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KBO 리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의 등번호 '26번'은 SK 와이번스의 첫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며 최고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2014

[SK 와이번스 2군 감독 선임]

선수 은퇴 직후 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 선임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선수 은퇴 직후인 2014년 SK 와이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2020

[SK 와이번스 감독 대행]

염경엽 감독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자 SK 와이번스의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습니다.

2020년 6월 25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당시 염경엽 감독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잠시 이끌었습니다.

2023

[LG 트윈스 배터리코치 선임]

염경엽 감독의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의 배터리코치로 선임되며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야인으로 지내다가 염경엽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23년 LG 트윈스의 배터리코치로 선임되어 다시 현장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강민호, 포수 최다 홈런 기록 갱신]

강민호 선수가 박경완 선수의 포수 최다 홈런 기록(314개)을 갱신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2023년 7월 22일, 강민호 선수가 박경완 선수가 가지고 있던 포수 최다 홈런 기록(314개)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박경완 선수가 세운 기록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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