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진
연표
1904
본명은 리야오탕, 자는 페이간이며, 러시아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과 표트르 크로폿킨의 이름에서 따온 '바진'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1923
[신사상 각성과 사회 운동 참여]
5.4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아나키즘에 심취한 바진이 집을 떠나 난징으로 유학하고, 이후 상하이로 가서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쓰촨성 청두의 대지주 관료 집안 출신인 바진은 5.4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신사상에 눈을 뜨고 아나키즘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이후 고향을 떠나 난징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으며, 상하이로 거처를 옮겨 사회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자신의 사상을 펼쳤습니다.
1926
[프랑스 유학과 데뷔작 《멸망》 발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바진은 파리에서 집필한 소설 《멸망》을 귀국과 동시에 발표하며 문단과 청년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바진은 1926년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라 파리에서 문학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쓴 장편 소설 《멸망》은 그가 중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발표되었고, 당시 청년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으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바진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데뷔작이었습니다.
1933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바진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1933년 쓰촨 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1937
바진은 쓰촨 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학업을 마치고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장편 소설들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40
[격류 3부작 등 주요 작품 발표]
바진은 자신의 생가를 모델로 한 대작 《가》를 시작으로 《봄》, 《가을》을 추가한 '격류 3부작'을 완성했으며, 항일전쟁기와 종전 직전까지 《휴식의 정원》, 《차가운 밤》 등 수많은 주요 작품을 발표하며 중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멸망》으로 등단한 이후, 바진은 자신의 성장 배경이 된 대지주 집안을 모델로 한 《가》를 집필하여 청년층에게 엄청난 반향을 얻었습니다. 이 작품은 후에 《봄》과 《가을》이 추가되어 '격류 3부작'으로 불리며 그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또한 항일전쟁이 격화되던 시기부터 종전 직전까지 《휴식의 정원》, 《차가운 밤》 등의 장편과 다수의 동화, 단편을 발표하며 약자에 대한 깊은 애정과 평범한 소시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풍을 확립했습니다. 이 시기는 바진이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활동기였습니다.
1966
종전 후 공적인 기관에서의 활동도 활발히 하던 바진은 1960년대 중반 시작된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부르주아 전위'라는 비판을 받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이 시기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탄압받았고, 바진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005
2005년, 중국 현대 문학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20세기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수많은 걸작을 남긴 바진이 101세의 나이로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서거는 중국 문학계에 큰 슬픔과 아쉬움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