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프리드먼
연표
1912
[밀턴 프리드먼 탄생]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대중적 지식인 밀턴 프리드먼이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후에 저명한 경제학자로 성장하며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32
1933
1935
[정부 기관에서 연구 시작]
학업에 종사할 수 없던 밀턴 프리드먼이 워싱턴으로 옮겨 국가 자원 계획 위원회에서 대규모 소비자 예산 조사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훗날 그의 중요한 이론인 '소비 함수 이론'과 '항상소득가설'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37
[국립경제연구국 연구원 활동]
밀턴 프리드먼이 국립경제연구국(NBER)에 고용되어 사이먼 쿠즈네츠와 함께 직업적 수입에 관한 연구를 도왔다.
이 연구는 '독립적 직업 관행으로부터의 수입'이라는 공동 저서를 탄생시켰고, 그의 핵심 이론인 '항상 소득'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1946
[시카고 대학교 교수 임용 및 박사 학위 취득]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밀턴 프리드먼은 시카고 대학교의 경제이론 교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앞으로 30년간 시카고 대학에 재직하며 '시카고 학파'라는 지식인 공동체의 설립에 기여하게 된다.
1951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
밀턴 프리드먼이 뛰어난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하며 학계에서 인정받았다.
1954
[케임브리지 대학교 방문 펠로우]
밀턴 프리드먼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곤빌과 카이우스 칼리지에서 풀브라이트 방문 펠로우로 활동했다.
당시 케인즈주의와 반케인즈주의 파벌 사이에서 그의 견해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1957
[항상소득 가설 발표]
밀턴 프리드먼이 자신의 '최고의 과학적 연구'라고 언급한 '항상소득 가설'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소비자가 장기적인 소득에 따라 소비를 결정한다는 내용으로, 현대 경제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2
[《자본주의와 자유》 출판]
정치적·사회적 자유 창조 수단으로 정부 역할 축소를 주장하는 역작 《자본주의와 자유》를 출판하며 자유 시장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66
[뉴스위크지 칼럼니스트 활동]
1966년부터 1984년까지 뉴스위크지에서 주간 칼럼을 연재하며 대중과 정재계 인사들에게 그의 경제 철학을 널리 알리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1976
[세계 경제학의 정점, 노벨 경제학상 수상]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대한 논증 등 탁월한 업적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그의 경제학적 공헌을 만방에 알렸다.
이는 그의 경력에 있어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는 케인즈와 더불어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로 여겨지며, 통화주의 경제학파의 주요 지지자로서 인플레이션과 통화 공급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특히, 애나 슈워츠와 공동 집필한 '미국 화폐사(1867-1960)'는 화폐 공급과 경제 활동의 역할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로 평가받는다. 노벨상 수상은 이러한 전반적인 공헌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1977
[시카고 대학교 은퇴 및 후버 연구소 활동 시작]
65세의 나이로 30년간 몸담았던 시카고 대학교에서 은퇴한 밀턴 프리드먼은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샌프란시스코 연방 준비 은행의 방문 학자가 되었고,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에 소속되어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1980
[대중과의 소통, 《선택할 자유》 방송 및 출판]
프리드먼은 PBS에서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 《선택할 자유》를 통해 자유 시장의 작동 원리와 사회 문제 해결 능력을 대중에게 쉽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이 시리즈는 그의 아내 로즈 프리드먼과 공동 저술한 책으로도 출판되어 널리 읽히며 대중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했다.
1988
[미국 최고 훈장 수상]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 과학 훈장과 대통령 자유 훈장을 동시에 수상하며 국가로부터 그의 공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경제학계를 넘어 미국 사회 전반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6
[밀턴 프리드먼 타계]
미국 경제학계의 거장이자 자유 시장 경제의 선구자 밀턴 프리드먼이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자유주의적 경제 사상을 전파하며 전 세계 경제 정책과 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