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의당
연표
1979
[12.12 군사 반란 발생]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며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이후 민주정의당 창당의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전두환이 이끄는 하나회는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을 강제 해체하고 구 정치인들의 활동을 규제하며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1981
[11대 총선, 과반 의석 확보]
창당 후 치러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며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의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집권 여당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민주정의당 창당]
전두환의 집권을 위해 신군부 세력이 주축이 되어 민주정의당이 창당되었습니다.
'안정, 평화, 그리고 번영'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제5공화국의 집권 여당으로 자리매김했고, 초대 총재로 전두환이 추대되었습니다.
과거 민주공화당 및 유신정우회 인사들과 일부 변절한 야당 인사들이 참여했으며, 검찰 출신 인사들도 당에 합류했습니다.
1985
[12대 총선, 제1당 유지]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생 야당인 신한민주당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제1당 및 전국구 2/3 의석 배분이라는 선거법 특혜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며 집권당의 위상을 유지했습니다.
1986
[건국대 항쟁으로 위기 봉착]
폭압적인 독재 정치와 고문, 감금 등 인권 유린으로 국민적 반감을 사던 중, 건국대 항쟁이 발생하며 민주정의당은 심각한 민주화 요구에 직면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경찰의 고문으로 서울대생 박종철이 사망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이 들끓었습니다.
이 사건은 6월 민주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어 민주정의당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6월 민주 항쟁 격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민주화 요구가 봇물 터지듯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6월 민주 항쟁이 격화되었습니다.
민주정의당은 정권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6.29 민주화 선언 발표]
전국적인 6월 민주 항쟁의 압력 속에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시국 수습을 위한 8개항을 담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며 민주화 요구를 전격 수용했습니다.
이 선언 이후 전두환 총재가 사퇴하고 노태우가 총재 권한 대행이 되었습니다.
[노태우 총재 취임 및 직선제 당론 채택]
6.29 선언 이후 열린 중앙위원회 운영위원회에서 노태우가 신임 총재로 추대되었고, 대통령 직선제 당론을 공식 채택하며 민주화 흐름에 발맞추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전두환 전 총재는 명예총재로 추대되었습니다.
대표위원제가 폐지되고 부총재직이 신설되었습니다.
[13대 대선, 노태우 후보 당선]
부정 선거 의혹 속에서도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 실패와 부정선거 의혹으로 인한 국민의 불신은 깊어졌습니다.
1988
[13대 총선, 과반수 의석 상실]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야당에 패배하여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여소야대' 정국을 맞이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안 부결 등 국정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1990
[3당 합당, 민자당 창당 결의]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의 전격적인 '3당 합당'을 결의하고, 통합 신당인 민주자유당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로써 민주정의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민정당, 3당 합당으로 해산]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전격적인 '3당 합당'을 선언하며 민주정의당은 공식적으로 해산되고, 새로운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보수정당 계보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후 민주자유당은 신한국당으로 개칭하며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계보를 이어 나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