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당 (대한민국)
연표
1963
[민주공화당 창당]
5·16 군사정변 주도 세력과 기존 정치인, 학계 인사들이 모여 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초대 총재에는 정구영, 당 의장에는 김정렬이 선출되었다.
창당 준비 과정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군사 정부의 신당이 좌익 '사회노동당'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군사 정부는 이를 부인하며 보수 양당제를 희망한다고 해명했다.
[박정희 대통령 후보 추대]
민주공화당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당헌이 개정되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추대되었다.
[박정희 총재 추대]
박정희가 철원비행장에서 예편하자, 민주공화당은 제3차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박정희를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로 정식 추대했다.
[5대 대선 승리와 집권]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주공화당은 17년간 대한민국 집권 여당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1965
[박정희 총재 재추대]
민주공화당 제5차 전당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총재로 재추대되었고, 김종필 전 의장이 당의장으로 임명 동의되며 정책 방향이 채택되었다.
1967
[6대 대선 후보 박정희 추대]
민주공화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이 추대되었고, 대선 공약이 채택되었다.
1969
[4·8 항명 사건 발생]
신민당이 제안한 권고병 문교부장관 해임권고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공화당 내 반란표로 가결되는 '4·8 항명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여당이 제안한 장관 해임안이 반란표로 가결된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었다.
박정희 총재는 즉시 주동자 처단을 지시했으며, 이 사건은 개헌 논의에 대한 반대 의사 표명으로 해석되었다.
[항명 의원 제명]
박정희 총재의 지시에 따라 민주공화당은 의원총회에서 4·8 항명 사건을 주도한 양순직, 예춘호 등 5명의 의원을 제명했다.
[당원 대규모 제명]
민주공화당은 당명불복을 이유로 중앙위원 11명, 지구당부위원장 4명을 포함한 총 93명의 당원을 대규모로 제명하는 숙당 조치를 단행했다.
[3선 개헌 추진 결의]
민주공화당 제7차 임시 전당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개헌 추진이 공식적으로 결의되었다.
1971
[7대 대선 후보 박정희 추대]
민주공화당 제8차 전당대회에서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이 추대되었고, 백남억 의장서리가 당의장으로 임명 동의되었다.
1972
[유신정우회 조직]
10월 유신 선포 이후, 박정희 총재에 의해 친위 조직이자 제2여당 격인 유신정우회가 조직되어 민주공화당과는 별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9
[박정희 총재 피살]
민주공화당의 총재를 겸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당은 급격한 혼란과 함께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
[김종필 총재 추대]
박정희 총재 피살 이후, 민주공화당 당무회의에서 김종필 전 총리가 새 총재로 추대되며 당의 수습에 나섰다.
1980
[민주공화당 해산]
신군부의 정치활동금지법에 따라 민주공화당은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당의 재산은 민주정의당에 양도되었고, 구 공화당 인사 중 일부는 한국국민당을 창당하며 명맥을 이었다.